-나는 게으른 비단구렁이/이진심-
나는 가만히 엎드려 기다렸을 뿐이다.
비단을 두른 내 몸,
무늬들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아름답게 잘 그려져 있다.
그 화려한 단청 같은 옷을 끌고
붉은 흙바닥을 미끄러져 다닐 때마다
나는 내 몸이 너무 두려웠다.
화려한 이 옷은 결코 보호색이 될 수 없었으니
마음의 주머니 오랫동안 헐렁해져 왔다.
나는 아직도 새로운 옷을
몸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바로 추억의 힘, 추억의 보호색.
이 평화스런 흙과 풀 아래에서
수많은 개미떼들이 길을 따라가며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 위에서 껍질을 벗고 다시 껍질을
죽음을 벗고 다른 죽음을 갈아입는다.
무시무시한 것은 끝까지 버텨야 할 것이
없을 때도
끝장낼 수 없다는,
끝장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生이 질리지 않는다.
천천히 누추해져 갈 뿐이다.
솔기도 없는 옷을
찢어낸 구석도 없이 벗어내기에는 수천 년도 짧다.
수천 년을 게으르기란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