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님의 딸 *
레지오를 위한 모든 교육이나 행사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기자와 눈길을 마주치면 항상 웃으면서 “수고 하신다”고 활짝 웃으시던 그 분.
언젠가 한 번은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김영화: 요셉피나자매.
현 상주계림성당소속 신자이면서 상주 4개성당(서문동, 남성동, 개운동 계림동)
레지오 단원들의 "구세주의 어머니 꼬미시움" 회계 6년차이면서
창조주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서기 20년차 만년서기. 상주서문동꾸리아 서기6년,
계림동 성당이 분가하면서 다시 꾸리아 서기 6년, 부단장 6년
그리고 현 계림성당 카페운영자.
미리 그녀가 운영하는 계림동성당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요셉피나 언니 아프면 안 돼요 그 손에 딸린 식구가 얼만데
감기약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꾸벅. 공주암 말기환자언니 사랑합니다 .
많은 댓글에 달린 요셉피나자매의 답 글이 또한 걸작이다.
“이넘의 인기는 어째 식을 줄도 모르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가슴이 빠담빠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흔치 않는 두근거림이었다.
시내버스. 시외버스. 택시를 번갈아 타고 세 시간 걸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미리 열어둔 문 사이로 그녀의 환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혹 인터뷰를 거절하실까봐 걱정했는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나이가 얼만데요. 이 나이되면 보이기 위한 자신보다는 보여줘야 할 모습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성모님의 자녀이잖아요. 혹 신체적 정신적 시간적
이유로 레지오활동을 못한다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저는 만족해요.
지금 우리 레지오단원들은 특히 간부를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우리가
레지오를 해서 손해 볼 게 뭐가 있어요?“
레지오는 언제부터?
제 집안은 원래 불교집안인데 평소에 마음이 끌려 성당을 가겠다고 하니 저만
아버지가 허락하신다고해서 당시 대구에 있으면서 삼덕 성당에서 영세받고 즉시
청년 레지오에 가입했어요. 81년도이니까 이제 레지오에 몸담은지도 33년 되네요.
사정에 의해 집으로(상주) 오게되어 상주서문동성당의 김영필신부님 배려로
바로주보에 글을 실으면서 서문동성당 50년사 편집위원으로 일했지요. 편집위원으로
일하는 동안만 잠시 쉬고 다시 레지오에 입단해 지금까지 레지오에 매인 몸이
돼 버렸어요. 계림동에서 꾸리아 서기를 하고 있는중 김상진 신부님이 할머니
쁘레시디움인 창조주의 어머니를 설립해놓고 서기를 찾고 있던중 제가 자진해서
서기로 들어가서 서기를 20년째 하고 있어요. 20년 서기는 교본을 거스르는 면도
있지만 6년 연임하고 잠시 한 두달 명의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서기를 넘겨줬다가
다시 또 제가 승인받아서 하고 그런 실정으로.... 사실 1년에 한번 사업보고서를
작성할때면 힘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팀 단원들이 그저 “우리 서기 우리 서기”
해주니까 힘드는줄 모르고 하고 있지요. 하며 하하 웃었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까 공주암말기라는 댓글이 있던데?
하하하..제가 세 살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요. 아버지는 그 이후 4남매의 맏이인
저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지요. 아파서 칭얼대면 아버지가 당신의 배 위에서 저를 제우고
퇴근해서 돌아오시면 늘 제방부터 찾으시고 나는 “ 이 세상에서 우리 딸이 제일 이쁘고
좋다”고 하셨으니 아마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있는듯 하기도해요. 또 젊었을때는
실제로 예쁘서 남자들도 많이 따랐거든요...ㅋㅋ
(현관 입구 수납장 위에 세워둔 액자 속에 김태희가 울고 갈 사진으로 검증 샷)
글을 잘 쓰시던데요
원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장애인을 받아 주는 대학교가 없었어요.
19살에 저는 제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그때는 하느님을 몰랐거든요.
지금은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는 어디서나 시선집중의 대상이었고
저는 그게 싫었어요.
자존심이 강해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하기 싫었어요. 뭐든지 맡으면 완벽하게
다 해내느라고 힘들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 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오늘의 제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어려웠던 점은?
큰 어려움은 다 지나갔고 교회에서 어려움은 성사 보면 되고요.
인간적으로 외로울 때가 점점 많아져요.
특히 아플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네가 정말 사랑해서 간절히 원한다면
결혼을 하지만 하지 말아라. 남자에게 있어 사랑이란 변하게 마련이고 그 일로
고생하면 죽어서도 내 마음이 편히 않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했어요.
그 아버지가 치매로 돌아가실 때까지 저와 어머니가 돌보았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곧바로 다시 치매에 걸려 큰 동생집으로 보낼 때 그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 가장 죄스러운 것은 그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요양원에 모신 것이지요.
그 무렵 쓴 시를 한 편 보여 준다
주님
날 업고 건너지 못할 강이라면 아예 못 간다고 하시지 그랬어요.
날 업고 가시다가 강 목판에 내려놓으시면 난 어찌하라고요
왔던 쪽을 돌아봐도 까마득하고 갈 쪽을 바라보아도 어둡기만 한데
난 어떻게 이 강을 건널까나....
이루지 못할 소원이지만 등산을 하는것은 감히 바라지도 않고 생활하는데
불편함만 없으면 정말 좋겠어요.
나이가 드니 아픈 곳이 많아 더욱 더 힘드네요.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그와 나란히 누워서 인터뷰하느라 내 눈물이 흐르는
것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처럼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신부님한테 들었다는
퀴즈까지 낸다. “깨에 소금을 넣으면 깨소금인데 깨에 설탕을 넣으면 뭘까요?”
“ 깨달음” 이런 여유와 유머감각을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가 믿는 하느님과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가신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긍정적이고 또 여유도 있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하는 요셉피나자매.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예쁜 성모님의 딸입니다.
첫댓글기자님이 자기 생각대로 적은 글이기에 조금 거시기(?)한점도 없잖아 있지만 그러려니하고 봐주시고 제가 많이 수정해서 보냈는데 이대로 실어주면 좋으련만 또 많이 줄인다고하네요. 내용도 다소 바뀔수도....... 아무튼 적나라하게 들어난 저 자신이 조금 그렇지만 저에 대해서 좀 더 잘 아시라고 용감하게 제가 올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무지개언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시는 분이십니다~ 기자님도 있는 그대로 썼고 저도 모르던 언니의.상황도 알게되어 맘이 짠하기도 합니다, 가슴에 맺히는 회한을 아버님께서는 사랑으로 매워주신것 같습니다~ 언니의 삶속에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헬렌켈러 여사가 3일간만 눈을 떨수 있다면 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한 글이 카톡으로 전해져 참 감명깊게 읽고 생각하며 반성했었었는데 언니가 그렇게 잘 아픈 이유를 알았습니다. 건강한 저희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만 아픈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언니이니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무지개님!!! 존경합니다~~~ 카페에서 만나는 무지개님은 밝고 맑고 재치있고 너그러움에 열정까지~~~대단하게 느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보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지네요~~ 지난 주 토빗기를 공부하며 토빗은 평생 한결같이 자선을 행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양했으며 그것에 부유함으로 축복해 주신 하느님을 흠모했는데 ~~~ 오늘은 무지개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자주 아프다고 하신 무지개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주님으로인해 더더욱 행복하시길 기도중에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무지개님!!♥♥♥♥♥
첫댓글 기자님이 자기 생각대로 적은 글이기에 조금 거시기(?)한점도
없잖아 있지만 그러려니하고 봐주시고 제가 많이 수정해서
보냈는데 이대로 실어주면 좋으련만 또 많이 줄인다고하네요.
내용도 다소 바뀔수도.......
아무튼 적나라하게 들어난 저 자신이 조금 그렇지만 저에
대해서 좀 더 잘 아시라고 용감하게 제가 올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무지개언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시는 분이십니다~
기자님도 있는 그대로 썼고 저도 모르던 언니의.상황도 알게되어 맘이 짠하기도 합니다,
가슴에 맺히는 회한을 아버님께서는 사랑으로 매워주신것 같습니다~
언니의 삶속에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헬렌켈러 여사가 3일간만 눈을 떨수 있다면 이라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그냥](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3.gif)
이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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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한 글이 카톡으로 전해져
참 감명깊게 읽고 생각하며 반성했었었는데 언니가
그렇게 잘 아픈 이유를 알았습니다.
건강한 저희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만 아픈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언니이니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저 머리가 숙여질뿐입니다.![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60.gif)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발걸음들이 밑걸음이 되어
남은 생 환히 빛나는 그런 날들이기를 바랍니다........
사실 틀에 박힌 듯한 레지오활동.......그 긴긴세월을 인내와 기도로 함께하신 지기님의 공로는 성모님의 전구로 주님께서 갚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무지개님 그동안 수고 많은 삶을 살어셨네요
누가 뭐라해도 내가 나를 돌아봄에 부끄럼이 없다면
내 마음에 만족감만 바라보며 사는 겝니다.
비록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해도
수고 했다는 위로의 어깨 두드림은 없어도
내가 할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맛보며
자부심을 갖고 마음의 위로를 받을수 있겠지요
내가 꾸리아 단장 할 때 서기로 6년을 같이 했지요......글구 바로 부단장을 5년하고 꼬미시움으로 갔지요.....그러한 역사가 3월호에 그대로 실려 나오는군요........
부단장 6년 다 채웠는디유~~~~^^
5가 6옆에 있어 치다가 오타를 쳤네요......................부단장 6년을 한게 맞습니다.
무지개님!!!
존경합니다~~~ 카페에서 만나는 무지개님은 밝고 맑고 재치있고 너그러움에 열정까지~~~대단하게 느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보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지네요~~
지난 주 토빗기를 공부하며 토빗은 평생 한결같이 자선을 행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양했으며 그것에 부유함으로 축복해 주신 하느님을 흠모했는데 ~~~ 오늘은 무지개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자주 아프다고 하신 무지개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주님으로인해 더더욱 행복하시길 기도중에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무지개님!!♥♥♥♥♥
주님 이여인에게 강복하시어 사는데 육체적 고통없이하여주소서 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멘
언제보아도 살짝 작은 미소머금는 당신모습 모든이에게 위로이며 희망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