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온전히 나만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이 도대체 얼마만이더냐!
2년동안 줄창 동행한 나의 답사지기이자 평생지기가 이번 토일요일은 웬일로 바쁘시단다.
세상에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있을까ㅋ
이제 외로운 가을 늑대 한마리는 어떻게 이 슬픔을 달랠까 고민에 돌입한다. 우~우~~
문화유산의 미학적 측면에만 치중한 마눌님 덕분에 한동안 지정문화재 위주로 답사했었다.
문화유산의 동지적 측면도 강조하는 나의 성정상 이번에는 비지정문화재도 포함하여 답사하기로 마음먹는다.
음...그럼 지역은 어디로 갈까나?
그동안의 답사일지를 대충 훑어보니, 답사한 지 10년이 넘은 지역이 세 곳이 나왔다.
서천, 울진, 영덕.
서천은 계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보령과 부여, 홍성을 답사하다가 시간에 쫓겨 번번이 가지 못했었다.
울진과 영덕은 강원도 영동 답사를 위해 늘상 지나다녔던 곳인데 그냥 계속 지나만다니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울진과 영덕에 답사 소외지역 복지혜택을 나누기로 한다.
서천아, 미안해~~
울진과 영덕의 답사예정지를 대충 추려보니 30곳이 나왔다.
울진의 가장 위쪽부터 아래로 치고 내려오기로 계획같지도 않은 계획을 진지하게 세웠다.
무계획의 계획, 수필 같은 계획이다.
나의 답사는 언제나 김밥집에 김밥을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밥 주문에 별다른 변수는 없었다.
30년 답사 경력에 점심식사는 따로 없었다.
옛님을 하나라도 많이 보기 위해 차량에서 이동 중에 해결하던 버릇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또한 이 김밥이 아침이자 점심이 되어 내 답사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1시간을 못달려 휴게소에서 김밥을 까먹게 만드는 나의 위장에게 신의 축복을~
출발 3시간 40분만에 도착했다.
원래 첫번째 답사예정지가 아니었는데, 동선상 이곳으로 급히 수정했다.
역시 무계획의 계획, 수필같은 답사의 시작답다.
이 전시관이 2011년에 개관했다고 하니, 나는 전시관 없을 때의 기억만 흐릿하다.
전시관 건물 앞마당 양쪽에 비림이 있다.
특별히 비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나, 비석머리의 문양을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현령과 관찰사면 플라이급과 헤비급의 체급 차이인데도, 철비의 크기나 조형은 비슷하다.
답사 중에 간혹 철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심충성 님이 생각난다.
심충성 님 이전에는 철비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그 분 덕분에 이렇게 철비도 살펴보게 되었다.
순수하고 착한 분이셨으니 극락에서도 즐거이 답사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우와, 1타 2피!
한 선정비에 두 관찰사라...
예산 문제, 두 관찰사의 친연 관계....왜일까...
비석머리의 서툰 듯 천진난만한 문양, 한참을 살펴봤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은 비석 전문 전시관이다.
뒷마당에 광개토대왕비, 이차돈순교비,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등 32기의 모형비가 있다.
이번 답사 목록 중에 유일한 국보이다.
524년 법흥왕 때의 기록이니, 1145년생 삼국사기는 감히 쳐다도 못볼 기록계의 시조새다.
법흥왕과 6부 귀족이 울진지역의 불만세력을 손봤다는 내용 등이다.
대학 시절 한국고대사 교수님께서 신라비가 연이어 발견되었다고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이 산을 제대로 찾지 못해 선과 주인장께 전화로 문의한 끝에 이렇게 오를 수 있었다.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여러 답사기를 너무 맹신했고 내비 아가씨도 나를 어중쭝한 곳에 내려놓았다.
선과 주인장은 선택적 기억능력자다.
전국 제일의 답사가로 수많은 답사지의 위치와 지형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기억은 그냥 범부필부의 기억력이다.
태실비 바로 뒤, 나무가 자라난 움푹 패인 곳이 태함이 있던 자리리라.
올해 봄에 발생한 울진 삼척의 산불 흔적을 태실과 태봉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흑룡은 파란 하늘로 몸부림치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무의 색깔과 그림자의 색깔이 슬프게도 닮았다.
슬픔의 색깔에서도 사부작거리는 푸른 아기생명이 대견하기만 하다.
태실 또한 푸른 아기생명이었다가 흑룡이 되었다.
주인리 절터를 찾아가는 길, 황금소나무를 만났다.
사전 조사에서도 황금소나무가 황금색인 사진을 보질 못했다.
색깔보다는 수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울진 주인리 절터를 찾아간다.
개울 따라 걸어가는데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작은 돌멩이를 떨어뜨리려다 내 그림자 흩어질까 살포시 내려놓았다.
벼린이가 벼른이로 성장하는 길
푸른색이 노란색으로 익어가는 마법의 길
잠자리를 만났다.
행여 도망갈까 숨죽여 지켜본다.
쁘띠 노랑나비는 내 마음도 모르고 나풀거린다.
사진기에 담기기 싫어 이리저리 잘도 피해 나풀거린다.
비포장길을 한참 걷다보니 다시 포장길에 접어들었다.
고즈넉한 산골마을의 정취를 듬뿍 느끼다 눈에 익은 곳에 시선이 닿았다.
선과 주인장의 답사기에서 보았던 사진과 같은 장면을 만났다.
단지 물이 조금 많아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시멘트 둔덕이 보인다.
선과 주인장이 답사기에서 언급한 계곡이 틀림없다.
계곡을 계속 올라가다 자그마한 소를 마주했다.
그리 깊지 않은 소이지만 적잖이 당황했다.
선과 주인장과 다른 분의 답사기에서도 신발을 벗고 소를 건너야 한다는 정보를 보지 못했던 까닭이다.
앗, 이게 아닌데!
일단 후퇴해서 선과 주인장께 전화를 드렸다.
소의 존재도 말씀드리고, 진입한 계곡의 사진도 보내드리고, 이런저런 지형지물도 전달받았다.
결국 마을 초입으로 돌아가서 다시 되짚어 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마을 초입에서 주인리사지의 석탑과 석불을 알고 계시는 마을분을 만났다.
내가 진입했던 계곡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그 계곡이 아니란다.
그곳에서 100미터 정도 더 올라가면 첫번째로 만나는 계곡이라신다.
나도 드디어 귀인을 만난건가..
그로부터 30분 후 나는 칡넝쿨과 엉클어진 수풀 속을 헤매고 있었다.
다시 선과 주인장께 전화를 드렸다.
그로부터 30분 후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었고 한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그로부터 30분 후, 또 그로부터 30분 후...
나는 점점 엉클어진 수풀을 쌍둥이처럼 닮아갔고, 한손에는 휴대폰이 화석처럼 들려있었다.
다리가 풀리고 넝쿨에 걸려 꽈당 넘어지는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주식하는 사람이 손절을 못해 나락으로 떨어진다더니, 내가 바로 손절 못하는 개미투자자나 다름없었다.
늦었지만 과감히 손절하고 시절인연을 기약하기로 했다.
1년치 마눌님과의 통화시간도 이보다 길진 않으리라.
핸드폰 너머의 그분께도 아쉬움과 감사함을 전했다.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어디서 많이 듣던 지형지물을 연속으로 만났다.
숱하게 들었던터라 마치 꿈에서 방금 본듯 생생하다.
이곳이다. 여기가 틀림없다.
그런데 온통 뒤엉킨 수풀 뿐,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나뭇가지를 들고 수풀을 헤치기 시작했다.
먼지가 주위를 뒤덮고 산모기 소리가 더 요란해진다.
그때 저멀리 석탑이 머리를 삐쭉거리는 게 보였다.
순간 울컥했다.
손에 쥔 나뭇가지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이리저리 빠르게 휘저어졌고, 나는 풀악셀을 밟은 스포츠카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석탑과는 반갑게 상봉했으나 회포를 풀 수는 없었다.
수풀이 휴전선처럼 더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리번거렸다.
석불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선과 주인장께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질 않는다.
통화 불가, 인터넷 불가 지역이었다.
휴대폰이 네모난 돌멩이가 되는 순간이다.
나뭇가지 와이퍼는 다시 바쁘게 움직였고,
수풀에서 잠자던 먼지는 다시 주위를 뒤덮었고,
귀한 손님을 맞은 산모기들은 더욱 요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것이 절정으로 치달은 후 고요가 찾아왔다.
수풀보다 작은 키에 꼭꼭 숨으셨네.
내가 찾았으니 이제 부처님이 술래 하시소.
그렇게 나는 속세로 되돌아갔다.
네모난 돌멩이는 다시 휴대폰이 되었고,
사라졌던 휴대폰 너머의 그분도 다시 나타났다.
포기하고 마을로 내려가던 길,
첫 실패를 맛봤던 계곡으로 다시 진입했었다.
자그마한 소를 다시 만났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그 소를 건넜다.
5분을 걷다보니 선과 주인장이 그토록 얘기했던 지형지물이 연속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소 건너 5분이면 될 것을 소 앞에서 뒤돌아서 2시간을 헤매었다.
여기서 도합 세 시간을 넘게 있었고, 시계는 딱 그만큼 밀려 오후 4시를 넘었다.
바로 불영사로 향했다.
비구니 사찰에 너무 늦을 수도 없고, 걸어 들어가야할 길도 멀다.
불영사로 가던 중에 발목에 이상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욱신거림이 심해졌다.
주인리사지를 헤매던 어디선가 다쳤나보다.
근처 불망비를 끝으로 오늘 답사는 접기로 한다.
장사꾼 철비는 보호각에,
현령 석비는 노천에 그냥 있다.
장사꾼에게 철비라...
장사꾼이 이익에 몰두하지 않고 인심에 집중했나보다.
숙소를 잡으러 시내로 가는 동선이라 잠시 들렀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향교는 문이 잠긴 곳이 거의 반이상인 것같다.
오늘도 담장 너머로 도둑감상을 한다.
전학후묘의 구조다.
뒤쪽 대성전을 보니 불현듯 한 분이 생각난다.
언젠가 그분을 대성전에 모셔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답사계의 성현, 선자(善子)를 대구향교 대성전에 모시리라.
절집에 들어서니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부지런히 장독을 옮기고 계신다.
숙소를 찾고 저녁을 먹고 쉬어야 하는데, 몸이 마음을 잘 따르지 않는다.
마음도 말 안듣는 몸을 그리 나무라진 않는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하지만 여기는 그때의 자리가 아니고 조선 철종때 옮겨온 자리이다.
앞으로는 동해, 왼옆으로는 왕피천이 내려다 보이는 지금 자리 또한 절경이 아닐 수 없다.
해변에선 두 강태공이 낚시를 하고 있다.
떨어지는 해를 낚으려는지 수평선 너머가 벌겋다.
아마 내가 먹어본 짬뽕 가운데 최고가이지 싶다.
울진 지역답게 게가 들어가 있다.
2만원이라는 가격에는 맛이 살짝 못미치는 느낌이다.
이제 짬뽕을 먹으면서 급히 예약한 숙소로 이동한다.
어제 저녁에 온수찜질을 했는데도 아침부터 욱신거린다.
편의점에서 파스를 사서 응급조치 후 답사를 시작한다.
답사는 울진의 일출시각에 맞추어 시작된다.
500년 세월, 죽변 바닷가에서 모진 풍파를 견디셨다.
이제 지팡이를 짚고 계시는 신세지만, 아직도 마을주민에게는 믿음과 위엄으로 큰어른 역할을 하시리라 믿는다.
가지가 밑으로 처져 있는 생김이 큰 파라솔 같다.
그 아래서 도란도란 이바구 나눌 수 있는 님이 그립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보다는 못하지만,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보다는 상태가 양호하다.
다음 인연까지 강녕하시길 빌어본다.
골짜기에 아담한 마을이 앉았다.
그 아담한 마을에 아침이 깃들기 시작한다.
마을 외진 한켠, 스님 한 분 외로이 자리한다.
아침 선정에 드신걸까..
다른 스님 어디 가고 나 홀로 수행일꼬!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볼때면 쉬폰 치마를 입고 춤추는 여인네가 떠오른다.
아니나다를까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결, 순정이다.
코스모스 흔들리면 가을 손길에 내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비구니 사찰에 너무 이른 방문은 결례일까 싶어 시간을 조절했다.
매표소에서 이곳까지 30분 남짓 호젓한 산길을 걸어야 하지만, 아픈 발목 때문에 차량출입을 허가받았다.
아..얼마만인가..
2010년 언저리 산사음악회에 맞춰 방문한 기억이 난다.
불영사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실까..
오늘 시간되면 아버지 산소에 가자신다.
갑작스런 아버지 생각에 명부전에서 한참을 울었다.
잊힌듯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아버지다.
잊어도 잊혀져서도 안될 이름이 아버지다.
세월 지나 어느 해 다시 불영사를 방문한데도 아버지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제일 먼저 명부전에 삼배를 올릴 것이다.
대웅보전 기단 아래 두 분 돌거북이 계신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두 분 용이 반야용선을 이끄는 서울 안양암 극락왕생도가 떠오른다.
불영사를 뒤로 하고 다음 답사지로 향한다.
차를 세우고 그냥 멍하게 바라본다.
불멍, 물멍만 있는게 아니다.
익어가는 가을, 답사객은 벼멍의 품에 한참을 안겼다.
당간지주 사이 농부 부부가 보인다.
내내 허리를 숙이시고 바삐 움직이신다.
숙여야 가꿀 수 있고 숙여야 사랑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니 쌍탑이다.
석탑과 (감나무)목탑
불법(佛法)은 감이 되어 주렁주렁 열렸고,
감즙은 감로(甘露) 되어 깨우침을 베푼다.
영덕 칠보산에서 개구리를 만났다
입은 크게 벌리고 있는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비 올 무렵이면 소리나게 울까..
유금마을 감나무 집성촌에 가만히 자리했다.
소박하고 투박한 모습이 스님의 생전 모습을 닮았을까..
뒤쪽을 살펴보다가 뱀을 만났다.
울진 주인리 마을에서도 뱀을 봤었다.
주인리 마을 뱀보다 훨씬 느릿하게 도망가는 모습에 적이 당황했다.
이렇게 간 큰 뱀은 처음 본다.
유금사에 들어선다.
왼쪽 가건물의 등장에 기분이 쎄~하다.
사전에 정보가 없었고, 불길한 느낌은 여지없다.
스님께 부탁을 드렸다.
가건물 안에는 해체된 석탑재가 가득했다.
몇 장 사진을 찍었지만 비공개로 하기로 약속했고,
보기 힘든 3층옥개석만 공개를 허락받았다.
탑의 복원은 예산 문제로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스님께 법명조차 여쭙지 못한 이 못난놈을 용서하소서.
발굴조사의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
2017년 유금사 삼층석탑 주변에서 나투셨다고 한다.
높이 39.5cm 대형불에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보존 처리 후 경주 불국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 예정이란다.
낯선 상호, 낯선 약병...
세월이 흘러도 낯섬은 쉬이 흘러가지 않는다.
유금사에서 내려와서 잠시 바다멍을 했다.
해운대 바다를 자주 보지만 이 바다는 또다른 느낌이다.
7번국도는 바다멍의 순례길이다.
답사객은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자유를 느낀다.
실타래 목걸이의 멋쟁이 미륵불~
박카스를 누가 공양하셨을까..
나에게서 나온 것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게 선업이든 그게 악업이든.
정담이라는 분의 충절에 대한 표창비이다.
아주 먼훗날 선과 주인장 정려비도 세우기로 서원했다
길은 자유다.
유금사 답사는 10년이 안되었지만, 장육사 답사는 10년이 훨씬 지났다.
사찰 주변이 너무 변해서 옛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장육사를 둘러보는 내내 아무도 보지 못했다.
드넓은 불국세계를 나만 홀로 거닐었다.
장육사 바로 직전에 나옹왕사기념관이 생겼다.
2020년 나옹왕사 탄신 700주년을 맞아 개관했단다.
또한 장육사 주변에는 선수행길, 인문힐링센터 등 다양한 나옹왕사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단다.
나옹왕사는 영덕이 배출한 최고의 인물로 추앙받고 계셨다.
일요일이라 휴관인데, 관람을 허가해주신 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기념관이라고는 하지만 나옹왕사 관련 유물이나 작품은 없었다.
아무리 나옹왕사가 영덕 출신이고 장육사를 창건했다 하더라도, 나옹왕사하면 양주 회암사지와 여주 신륵사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덕 생활문화센터 마당 철망울타리 너머에 계신다.
우리의 무관심에 꽁꽁 갇혔다.
원래는 저수지 둑길로 진입 예정이었으나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이번 답사에서 벌써 세번째로 선과 주인장께 전화를 한다.
이제 확실히 마눌님과의 1년치 통화량을 넘겼다.
다음에는 반드시 선과님을 답사해야겠다.
생불이 따로없다.
역팔자 눈이 어딘가 눈에 익다.
어디지.. 어딜까..
울산 청송사지 부도 기단부의 그분이 생각난다.
마음내어 찾아오지 않으면 절대 뵐 수 없는 분.
외롭지는 않으신지..
헤어짐 앞에 다음 인연을 두손 모아 기다린다.
마지막 답사를 마치고 돌아나가는 길,
시원하게 입수했다.
비록 돌부리에 걸려 강제 입수당했지만 예술점수는 꽤 괜찮았으리라.
멀리서 바라보니 도로가의 내 차 앞뒤로 포터가 주차되어 있다.
통행에 방해도 되지 않는데, 저 넓은 도로가에 왜 굳이 내 차 앞뒤로 주차했을까...
내 차로 다가가니 마을주민분들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신다.
뭐지..이 끈적한 시선은!
어르신께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다.
송이버섯 도둑이 극성이라 낯선 차를 보면 확인을 하신단다.
하긴 이번 답사길에도 외부인 송이 채취금지라는 팻말을 더러 보았었다.
송이 도둑놈들은 그 업을 어찌 다 감당하려고 그럴까..
어느 중년남자의 가을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느 청년남자의 봄이야기도 그랬었고,
어느 노년남자의 겨울이야기도 그럴 것이다.
그 남자의 이야기는 별거없다.
그냥 길 위에 선 답사이야기다.
-----------------
2022. 9. 24.~25.
길 떠나는 답사객, 무애
첫댓글 깊이와 재미와 감동이 넘칩니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주로 7번 국도를 이용하니 경치 또한 좋습니다.
어느 좋은 날, 기쁜 마음으로 옛님을 만나시기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멋진 답사를 하셨군요. 주인리는 작년 추석무렵 낫들고 가서 벌초했던 기억이 나네요..유금사 탑이 복원되면 갈까싶어 애타게 기다리는 중입니다..조만간 같이 답사 한번 합시다.
노마드님의 주인리 답사기를 미리 참고하였습니다.
저도 낫을 들고 가려고 트렁크를 열었더니 호미만 서너자루 있더라구요.
수풀이 우거진 시기에는 낫 없이 답사하기는 힘든 곳이더라구요.
유금사 탑 복원 즈음 같이 한땅 뜁시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 깊은 지식, 유머가 버무려져 있네요.
주인리 답사기는 소설을 방불케 하고요~~
늘 과하게 칭찬해 주셔서 부끄럽습니다.
선과 주인장 덕분에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도 시니브로님의 답사기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멋진답사하셨군요
아버지 생각에 눈물 흠친글보고 저두 아버지 생각나 울컥하였네요ㅠ
아버지란 이름은 심해에 가라앉은 듯 해도 늘 수면 바로 아래에서 찰랑이는 모양입니다.
아무도 없는 명부전에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반추하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오랜만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답사글과 사진에 감사합니다
발목은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다친 발목은 답사의 훈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많이 나아졌어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이번 답사는 완전 주인장 덕분입니다.
답사기에서 언급한 대로 대구향교에 선자로 모시고 배향하겠습니다.
또한 정려비를 세워 후대 답사객들에게 길이길이 그 공덕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줄창 ㅋㅋㅋ
뱉어낸 수많은 단어 중에 '줄창'이 키워드??
줄곧이라는 말보다는 더 와닿지 않은신감?
단숨에 읽었네요.
덕분에 잘 보아습니다.
善子, 선정비도 재미있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인(仁)과 예(禮)'라면, 선자(善子)의 철학은 '알아서 배워서 남주자'이지요.
오랜만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답사기네요
요즘은 불교 문화재 위주로 답사하니까, 항상 공부하는 느낌이라 부담스러운 데..
10여년 전 비우고 답사할 때가 생각납니다^^
요즘 너무 열심히 공부하시는거 아니에요?
채움과 비움도 사인곡선처럼 왔다리갔다리 하더라구요.
채워지면 자연스레 비워지고, 비워지면 자연스레 채워지니 마음가는 대로 하시자구요~
@무애 어허! 큰일이네요
든 것도 없이 자꾸 공부한다는 소문만 나서...
스스로 펌핑했으니, 자책할 수 밖에..ㅎㅎ
"답사객은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자유를 느낀다."
멋진 표현입니다.
힘들지만 자유로운 여정... 그리고 그 결과물... 편하게 잘 보았습니다. ^^
문화유산 자체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많은 걸 배웁니다.
인간이 조형한 작품과 신의 조형한 작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답사객의 특권이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6월에 갔던 장육사도 고요함을 혼자 만끽하다가 벌님이 환영 표시로 귓볼에 x침을 놓는 바람에 며칠간 끙끙대던 기억이..
길떠나는 답사객은 여행작가로 변신하시지...고정 구독자 1인.
정확한 사실 묘사와 감성 그리고 유머가 어우러진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육사에서 그런 추억이 있으셨군요. 저는 이번에 불영사에서 추억이 될 만한 일이 있었지요.
답사객은 그런 기억 속에서 행복하고, 또다른 기억을 쫓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셔요~
홀로 다니는 답사의 자유
그 여정속에서
중년의 품격이 느껴 집니다
짧은 시간 긴 여정 힘들어겠지만
무애님의 마음을 풍요롭게한
달콤한 추억을 저축한 시간인것 같네요
덕분에 저도 즐거웠습니다
품격이랄 것도 없지만 작은 품격이라도 있다면 노년까지 쭉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답사길이 더 행복합니다.
마치 술이 맛나게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마애, 무애 크로스하는 날을 고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멋있다 !! 무애님 노년에도 품격이 이어지실듯 ..
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까지도 발견할 수 있는 답사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