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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탈 리 아 ☆
☆공식국명
Republica Italia.
☆수도
로마(Rome).
☆위치
유럽 남부이탈리아 반도
☆면적
30만 1천km² .
☆기후
지중해성 기후
☆인종
라틴족
☆인구
약5천7백만 (July 1999 est.) .
☆언어
이탈리아어
☆종교
카톨릭 |
☆주 요 도 시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인 밀라노는 이탈리아 최대의 공업도시로 이탈리아의 경제적 수도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왔으며 국제적인 패션의 중심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밀라노는 문화적 중심지로서
오페라 극장 및 다른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은데, 특히 백대리석 고딕 양식의 밀라노 대성당,
브라만테의 손이 가해진 산타 마리아 성당과 그 성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등이 유명하다.
오늘날까지 밀라노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산타 암브로시우스가 374년에 밀라노의 대주교가 된 이후,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밀라노 대주교의 권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유입 인구도 늘어나 11세기에는 롬바르디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5세기에는 대성당의 건축이 진척되고, 운하도 개통되었으며,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문인,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 모여들어 밀라노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뒤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1861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통일되었다.
이탈리아 제 2의 도시 밀라노는 언뜻보기에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베네치아 서쪽 124km 로마
북쪽 527km에 위치하고 있는
베로나(Verona)는 아름다운
아디제 강을 끼고 형성된 전원적인 도시이다.
과거부터 북 이탈리아의 열쇠라고 부를 정도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베로나는 주변지역에서 베네치아 다음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과거의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며 현대 도시의 발전을 겸비한 이 도시는 농산물 국제시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베로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베로나가 섹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실제로 중심가에 13세기의 고풍스러운 벽돌저택의 줄리엣의 집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않는다.
또한 세계최고의 오페라 축제마당이며 이만 오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1세기의 로마유적인
아레나 원형극장이 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주도로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 만 안쪽에 흩어져있는 118개의 섬들과 100여 개의 운하와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져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와,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는 독특한
지형으로 인해,
흔히 '물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해, 7세기 말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10세기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했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도시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은 수상
버스와 수상 택시, 곤돌라다.
베니치아의 상징인 곤돌라는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이를 우려한 베네치아 정부는 '사치 낭비 단속 위원회'를 만들어
'선체는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선실의 덮개는 검은 나사 이외에는 사용하지 말라'라는 법령을 발표했다.
즉,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의 국비 절감 계획에 따라 곤돌라는 검은색이
된 것이다.
유리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 국제영화제 개최지 및 해수욕장, 카지노 등으로 유명한 리도 섬 등이 베네치아 시에 속하며,
대학 및 시 동부의 현대미술 전시장에서의 국제 비엔날레, 리도의 국제영화제 등 문화 활동도 활발하다.
베네치아의 구시가지는 아직도 지난날의 공화국의 번영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데, 오늘날 베네치아는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은 미술, 건축예술의 보고로 알려져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주의 주도다.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부르고 '꽃의
도시'라는 뜻이다.
아르노 강변의 교통로와 아펜니노
산맥을 넘는 교통로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피렌체는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다.
피렌체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12세기
무렵 모직물 공업
발전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해 유럽의
상공업, 금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는 한때 토스카나 지방의 수도였고,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문화예술품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13~15세기의 예술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의 보물을 간직한 박물관이라는 인상을 준다.
현대문학에 반드시 얼굴을 내미는 시인 단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플라토닉 러브의 발명가인 사상가 피치노,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의
쿠폴라를 완성한 천재 건축가 브르넬리스키,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화가 라파엘로 모두 피렌체에서 활약했다.
15세기 초부터는 메디치가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 코지모 및 손자 로렌츠가 실질적인 메디치가의 독재체제를 확립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으로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메디치가의 전성시대에는 메디치가가 많은 문화사업에 군주로서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 피렌체를 한층 화려하게 장식했다.
피렌체를 이야기할 때 메디치가를 빼놓을수 없으며 지금도 피렌체 거리마다 메디치가의 문장을 불 수 있다.
메디치가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하여, 피렌체를 인문주의와 르네상스 시대에 빛나는 별로 변화시켰다.
아씨시는 아펜니니산맥
줄기의 움부리아 지방에
자리잡고있으며,
올리브와 삼목들이 늘어서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무엇보다도 아씨시는
12세기의 청빈한 성자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도시로
아직도 전세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자의 자취를 찾아 모여들고 있다.
성지순례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서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성녀 키아라교회, 다미아노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등이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대성당들은 건축학, 회화 그리고 종교성의 종합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탈리아 고딕 예술의 전형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13세기와 14세기 대화가 들의 프레스코화가 잘 보존되어있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나폴리는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의 주도이다. 거대한
항구도시이자
지적 활동의 중심지며, 전통적으로 빈곤한 메초조르노(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금융 중심지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베아폴리스 이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폴리는 이탈리아
통일 이전에는
남이탈리아 전체를 다스리는 나폴리 왕국의 수도로 성장해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오렌지 가로수를 양 옆으로한 끝없는 모래 해안과,
그 뒤에 자리잡고 있는 베수비오 산이 장관을 이루고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있다. 예로부터 '꼭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잘 알려진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최저 평균 기온이 8 °C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은 점에서도 이탈리아의 도시중 기후가 가장 좋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번영한 항도였으며, 1024년 항구 확장 이후 현대 나폴리의 발전이 이루어져, 현재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 2의 항구가 되었다.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의 중요한 연결지점으로, 현대의 항만시설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재건되었지만 나폴리 여객항의 중요성은 감소되었다. 폼페이 유적이나 카스텔 누오보, 카스텔 델로보등의
건축물, 또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로 유명한 산타루치아 항구, 이탈리아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요리 등으로 관광의 중심지를 이루고있다. 이탈리아 최대의 오페리 극장인 산 카를로 극장, 산 마르티노 국립 박물관,
플레비시토 광장과 움베르토 1세 갈레리아도 볼만하며, 핏자와 아이스크림의 본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의
아펜니노 산맥에서 발원하는 테베레
강 하류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수도다.
로마는 현대
이탈리아 문화의중심지이며, 또 그
오랜 역사를
반영하여 고대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2,500년이라는 역사의 무대에 잘 어울리는 각양각색의 기념물은 여행자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
로마를 거꾸로 하면 'amor' 즉 사랑이라는 뜻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신적, 물질적 중심지로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겼으며, 인류의 예술 및 지성사에 커다란 금자탑을 쌓아올린
로마는
고대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건설 되었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 제국의 영토 축소, 경제의 마비, 정치적, 군사적 무력등으로 인해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의 세롁으로서의 힘은
잃었지만 입법,
교육,건축 도시로서 전 유럽에 계속적인 빛을 발했다. 또한
6~15세기에 교황들의 입지는 때로 위태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전 세계에 그리스도교를 확산시킨 도시로서 영광을 누렸고,
궁극적으로 부와 힘을 되찾았으며 또다시 미,지,혜,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공격 때 무방비 도시를 선언하여 귀중한
문화재는 전화를 모면할수있었다.
로마는 특히 수륙교통의 중심지다.
테베레 강 하구의 오스티아를 외항으로 하고, 또 로마를 중심으로 수많은 길이 이탈리아 각지로 뻗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고대부터 로마의 교통이 잘 발달된데서 비롯한 말이다.
콜로세움, 판테온등 고대유적이 거리마다 즐비한 로마에는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또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일대에는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등 볼거리가 많다.
성 베드로 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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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유명하며, 모든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내게 하는 대규모 |
의 건축술이 볼만하다. 특히 미켈란 젤로의 Pieta상이 많은 눈길을 끈다. |
바티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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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고대 로마시대의 유품,중세 시대의 카페트의 방,지도의
방,이집트의 방, |
씨스틴 소성당, 현대 미술관,교황의 유품들, 로마에서 가장 핵심으로 보아야 하는 장소. |
입장료 : 15,000 Lit. |
카타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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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동 묘지로써 3세기 초대 교회의 원형이라 불리운다.기독교인에게는 최대의 순교지이다. |
입장료 : 8,000 Lit. |
트레비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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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의 최대 걸작품인 이 분수는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로마로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
있다. |
베네치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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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탈리아가 통일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통일 기념관,베네치아 공화국 사절단이
사용하던 건물과 |
트라이아노 황제의 기념 원주 등이 있다. |
포로 로마노 |
2000년전 로마 공화정이 위치하고 있던 장소로 그 당시의 유적이 폐허로 보전되어 있다. 이곳을 걸을 때 |
고대 로마의 한복판을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콜로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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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경기장으로 원형이 가장 잘 보관되어 있는 건물, 그리스도 인들의 대단한 순교지이다. |
입장료 10,000 Lit |
카르칼라 야외 욕장 |
카르칼라 황제에 의해 건설된 고대 로마의 대중 목욕장으로 내부도 잘 보관되어 있다.
입장료 8,000 Lit |
치르코 막시모 |
벤허 경기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대전차 경기장 |
진실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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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설로 유명하며,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얼굴석상 |
판테온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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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전 건설된 철근이 들어 가지 않은 순수한 돌로 만들어진 돔으로 유명한 신전 |
나보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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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유역 분수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으로, 거리의 화가와 광대들의 몸짓이 많은 사람의 발길을 |
붙잡는다. |
스페인 광장 |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곳으로 유명한 계단, 많은
배낭 여행객의 |
휴식처이기도 하고 여름철마다 열리는 야외 패션 쇼도 유명하다. |
성 요한 대성당과 성 계단 성당 |
초대 교황청 자리가 있었다는 요한 대성당, 그 옆의 라테란 궁, 빌라도 법정의 계단으로
만들은 성 계단 |
성당 등 성지순례로 중요한 곳이다. |
십자가 예루살렘 성당 |
예수님 십자가의 죄 명패의 파편이 보관 되어 있는 곳 |
바울 참수터와 바울 대성당 |
바울 사도가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감옥과 마지막 참수를 당한 장소가 있다. |
성모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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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설지전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 로마 4대 주교자 성당 중의 하나. |
쟈니꼴로 언덕 |
서울의 남산처럼 로마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으로 로마 시민의 휴식처 |
이탈리아의 3대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상>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예술, 과학, 철학
출생지 :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빈치
주요저서 :《회화론》
주요작품 :《모나리자》《성 안나》《최후의 만찬》(1498)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출생지 : 이탈리아 카프레세
주요작품 : 《다비드》(1504)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1541)
◎라파엘로
<갈라테이아의 승리>
이탈리아의 화가 ·건축가.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미술, 건축
출생지 : 이탈리아 우르비노
주요작품 : 《토마소 잉기라미의 초상》 《레오 10세의 초상》(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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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음악☆
이탈리아인이 아닌 작곡가의 곡이나 이탈리아어 이외의 언어로 작곡된 것도 다소 포함된다. 한마디로 이탈리아오페라라고 하여도 그 양식은 시대와 더불어 많이 변천해
왔으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페라 창성기(創成期)의 양식, 오페라세리아의 양식,
오페라 부파의 양식, 낭만파의 양식, 근대에서 현대에 걸쳐서의 양식 등을 들 수 있다.
창성기의 오페라는 무엇보다도 극을 중시하고 말을 중요시하였는데, 몬테베르디의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악 그 자체가 충분히 극적인 박력을 지닌 걸작도 많이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쳐서의 오페라세리아에서는 음악이 극에 우선하고 성악성(聲樂性)의 존중과 함께 벨칸토창법이 발전하여 서창(敍唱)과 아리아의 구별이 명확해지고 음악형식도 정비되었다. 오페라부파는 희극적 성격에 의하여 다소 인습화되어 있던 세리아 중심의 오페라계에 신풍을 초래하고, 희극적인 저음의 역할을 정착시켰으며 중창의 효과도 충분히 살렸다.
오페라 부파는 그 비극적 성격과 함께 예컨대 이탈리아어의 대본에 의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등의 창작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19세기의 이탈리아음악계는 거의 오페라의 세계만이 활기를 띤 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나라라는 인상이 생겼고 나아가서는 이 시대의 작품이 이탈리아오페라를 대표하게 되었다. 낭만파 초기의 오페라는 주인공의 넘쳐흐르는 듯한 가창이 매력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얼마 후 베르디는 낭랑한 선율과 노래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가면서도 모든 음악수단을 통하여 오페라의 극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하여 허식을 배제하고 오페라에서 인간적인 진실을 구하려고 하였으며 그러한 진실주의의 여러 작품도 이 방향으로 나아갔다.
푸치니는 진실주의적인 사상에서 출발하면서 선율과 극과의 훌륭한 통일에 성공하였으나, 현대적인 이탈리아오페라는 부소니의 약간 고전적인 인생의 관조 및 음형화(音形化)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도 많은 이탈리아의 작곡가는
극장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각기 방향은 달라도 일반적으로 음악을 통하여 인간의 드라마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오늘날에는
오페라극장의 유지는 곤란한 듯하나 대극장에 있어서의 연주수준은 일반적으로 매우
높다.
16세기 말의 피렌체에서는 문예부흥의 세례를 받아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려는 운동이
일어나 근대적 음악극인 오페라가 창출되는 동기가 되고,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모노디의 수법이 확립되었다. 몬테베르디는 크레모나·베네치아에서 초기 오페라의 걸작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음악가들은 오페라를 비롯하여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의 성악과 아울러 기악의 여러 형식의 형성과 발전을
통하여 바로크 양식의 확립과 발전에 있어 유럽 여러 나라에 앞섰으며, 18세기 전반에는 고전양식의 성립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19세기의 이탈리아에서는 바로크 시대에서처럼 음악의 전면적인 전개와 발전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직 오페라의 창작활동만은 활발하여 이 분야의 베르디 등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기악의 창작활동도 다시 활발하게 일기 시작하였으며 오페라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이탈리아는 이른바 전위파(前衛派)의 활약이 대단하여 창작·연주의 두 분야에서 유럽 유수의 음악국의 체면을 유지해 가고 있다.
칸초네(canzone)노래’ 또는 ‘가요’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순클라식곡은 제외하고 널리 대중이 애창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포퓰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