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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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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 |
ⓒ 김종현 |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 고 재 종 -
어른 다섯의 아름이 넘는 교정의 느티나무,
그 그늘 면적은 전교생을 다 들이고도 남는데
그 어처구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선생들이 그토록 말려도 둥치를 기어올라
가지 사이의 까치집을 더듬는 아이,
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
거기 매미처럼 붙어 늘어지게 자는 아이,
또 개미 줄을 따라 내려오는 다람쥐와
까만 눈망울을 서로 맞추는 아이도 있다.
하기야 어느 날은 그 초록의 광휘에 젖어서
한 처녀 선생은 반 아이들을 다 끌고 나오니
그 어처구니인들 왜 싱싱하지 않으랴.
아이들의 온갖 주먹다짐, 돌팔매질과 칼끝질에
한 군데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지 끝에 푸른 울음의 별을 매달곤 해도
반짝이어라, 봄이면 그 상처들에서
고물고물 새잎들을 마구 내밀어
고물거리는 아이들을 마냥 간질여댄다.
그러다 또 몇몇 조숙한 여자 아이들이
맑은 갈색 물든 잎새들에 연서를 적다가
총각 선생 곧 떠난다는 소문에 술렁이면
우수수, 그 봉싯한 가슴을 애써 쓸기도 하는데,
그 어처구니나 그 밑의 아이들이나
운동장에 치솟는 신발짝, 함성의 높이만큼은
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운다는 걸
늘 야단만 치는 교장 선생님도 알 만큼은 안다.
아무렴, 가끔은 함박눈 타고 놀러온 하느님과
상급생들 자꾸 도회로 떠나는 뒷모습 보며
그 느티나무 스승 두런두런, 거기 우뚝한 것을.
- 고재종 시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전문
이 시를 쓴 고재종 시인은 1957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1984년 실천문학사의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처녀 시집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등의 시집을 상재한 중견 시인이다.
고재종의 시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는 2004년 10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쪽빛문장> 이란 시집 속에 실려있는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담양 한재초등학교는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에 자리한 초등학교이다. 시는 초등학교 안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느티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
담양 한재초등학교는 병풍산과 삼인산을 병풍으로 삼은 한재골이라는 마을에 둥지를 틀고있다. 현재 이 초등학교엔 담장이 없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이 학교 운동장에 자리잡고 있다.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이 노거수는 전국을 돌면서 명산을 찾아 불공을 드리던 태조 이성계가 이곳서도 불공을 드리고나서 심고 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요샛말로 하자면 기념식수인 셈이다. 1982년 천연기념물 284호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높이 34m, 가슴높이의 둘레가 8.78m나 되는 어처구니다(문화재청 자료 참조). 어처구니란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말한다.
이 학교 아이들은 이 어처구니 아래서 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워간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까치집을 더듬고 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잠을 자기도 하고 때론 다람쥐와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꿈과 사랑을 배워간다.
느티나무는 아무런 설교도 없이 몸으로 용서가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아이들의 온갖 주먹다짐, 돌팔매질과 칼끝질에/ 한 군데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봄이면 그 상처들에서 다시 새잎들을 피워내 아이들을 제 그늘 안에 품어준다. 느티나무야말로 이 학교의 가장 큰 스승이다. 시가 보여주는 풍경은 이렇게 싱그럽지만 이 학교 역시 탈농현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등 뒤에 감추고 있다. "상급생들 자꾸 도회로 떠나는 뒷모습 보"게 되는 것이다.
고재종 시인은 자연의 풍경을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바꿀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고요와 다소곳한 그리움으로 채움으로써 시를 읽는 독자를 아득하게 한다.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라는 시를 읽는 동안 난 오랜만에 그리움의 포식자가 되어 큰 정서적 기쁨을 누린다.
* 고재종 시인
1959년 5월 30일 전라남도 담양 출생
학력 : 담양농업고등학교 (중퇴)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수상 : 2001년 제16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경력 : 1996년 계간 시와 사람 편집주간
시집 <쪽빛 장> <고래를 기다리며>(제13회 1999년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산문집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