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하고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한다. 벨베데레 궁전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20여분 정도 후에 도착을 한다.
벨베데레 궁전...구글
어퍼 벨베데레..상궁 (上宮)
로어 벨베데레...하궁(下宮)
벨베데레 상궁에서 정원쪽을 보면 정원이 벨베데레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비엔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하궁에서 상궁쪽을 보면
정원이 더 잘 보이게 된다.
가는 길에 슈테판 대성당이 보인다.
길거리가 한가하다.
건물색깔이 아름다운 곳도 지나고..
벨베데레 궁전 입구에 도착하고...
정문으로 들어가면 벨베데레 연못이 있는데 300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벨베데레 상궁이 완공된지 300년을 기념하는 숫자로
1723년도에 완공되었다.
들어가는 옆의 조형물
상궁으로 들어가겨려면 정원과 하궁을 보고 들어가게 된다.
벨베데레(belvedere)라는 단어의 의미는 좋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세운 건축구조물을 뜻한다고 하며 이탈리아
식 정원의 조경에서 계단식 조경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의 궁전으로서 빈 남동쪽에 있는 바로크 양식 궁전이다.
왕가는 1697년 부지를 사들이고 사보이의 왕자 오이겐(Eugen von Savoyen)이 거대한 공원을 우선 조성하였다. 벨베데레 궁전은
도시 근교에서 왕족이 보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1714년 건축이 시작되어 일단 틀을 닦고 정원도 만들게 되
었다. 그 주변으로는 오랑제리와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맡았으며 그는 지금까지
도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양식을 극대화한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와 함께 베네치아 출신의 조각가 죠반니 스타네티가 함께 하였다.
하부 벨베데레 궁전의 건설은 1716년 완공되었으며 천정은 마르니코 알트몬테라는 화가가 완성하였다.
서쪽에는 정교한 그로테스크 양식을 가미한 공간이 나타나며 침소로 쓰인 곳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회화 전시실도 있는데 그
곳의 장칙은 도메니코 파로디(Domenico Parodi)가 맡았다. 내부의 또다른 화강암으로 된 방은 1720년부터 지아코모 델 포라는 사
람이 천정 색채 작업을 하였다. 동쪽으로는 전체 응접실과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1720-1723년에 걸쳐 상부 벨베데레가 완공되었는데 원래는 중앙 정원으로 하여금 궁전의 축을 잡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궁전은 1752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렸고 그녀가 최초로 이곳을 벨베데레라 명하였다. 합스부르크 가 하에 궁
전은 더욱 더 명성을 다지게 되었다. 1775년 이후 벨베데레 궁전은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쓰였으며 하부 벨베데레 궁전으로 다른
궁전의 그림을 이전해오기도 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머물었던 사람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갤러리 박물관이 벨베데레 궁전으로 정해졌다. 2차 대전 중 많은 피해를 입어 복구에 상당한 시
일이 걸렸다. 현재 외부 개보수 작업에 착수하고 있으며 주로 정원을 다시 꾸미는 일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
년에 완공을 했다.(위키백과)
상궁은 지금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들어가는 입구
미술품들... Hans Makart라는 작가의 오감 중의 일부...한스 마카르트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가로 시각예술의 발전에 공헌하였다고
되어 있다.
한스 마카르트의 오감(五感)이라는 작품
에드워드 뭉크의 작품도...
사진을 찍었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슴 부분을 확대한 사진으로 아이가 젖을 빨고 있다.
클림트의 두 아이가 있는 어머니
그 유명한 키스라는 작품이다....이 작품 앞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서 있다.
머리 부분을 확대한 것
작품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호수에 있는 시골집이라는 작품
해바라기
농가
해바라기기 있는 농장 정원
누군지 기억이...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모네의 작품도 있고..
제목이 좀..정신과 도발 그리고 정신과 자극이라니...
에곤 실레의 자화상....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인체의 왜곡, 독특한 구도와 색채가 특징인 심리적이고 에로틱한 주제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1890년에 태어나 1918년에 죽었으니 28살을 살았다.
에곤 실레의 벽 창
벨베데레의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자크 루이스 베이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그림...네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하며
왕가의 그림인데 마리아 테레지아??
프란츠 자베르 메서슈미트의 케렉터 머리... Franz Xaver Messerschmidt는 극단적 인 표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흉상 모
음 인 "캐릭터 머리"로 가장 유명한 독일-오스트리아 조각가라고 한다.
어퍼 벨베데레(Upper Belvedere)에 있는 대리석 홀의 천장 그림
어퍼 벨베데레(Upper Belvedere)에 있는 대리석 홀의 천장 그림
상궁의 베란다로 나가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프란츠 자베르 메서슈미트와 에곤실레의 작품을 판다.
클림트의 키스...
베란다에서 보는 하궁과 정원...좌측에 슈테판 성당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느긋하게 벨베데레상궁(Schloss Belvedere)과 벨베데레 하궁(Unteres Belvedere)을 다 둘러 볼 수 있
겠으나 패키지로 오는 관광객들은 시간상 상궁의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과 다른 작품들을 보고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에곤 실레의 작품과 그 외 다른 미술품들을 보고 밖으로 나와 벨베데레 궁전(상궁)에서 벨베데레 정원을 멀리서 보고는 밖
으로 나온다.
비엔나를 찾는 관광객들이 전에는 모차르트나 다른 음악가들 때문에 온다면 지금은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을 보러 비엔나를 찾
는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클림트의 키스와 다른 작품들 그리고 에곤 실레 등의 작품을 보면서 그리 큰 감동이 없었는데....
아마도 미술품을 보는 눈이 없어서일 것이거나(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을 때도 그저 그랬었다.) 매스컴에서 많이 보아서
심드렁해서였거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시간 반 정도의 벨베데레의 관광을 끝내고는 슈테판 대성당으로 간다.
슈테판 대성당
하궁을 보면서 나오고...
정원에 있는 조각품... 그리스 신화속에 나오는 인물인 듯
벨베데레 정문
벨베데레 호수위 현대 조각품
나오고...
슈테판 광장으로 간다.
첫댓글 실크로드처럼 제가 가보지 못했지만
늘 그리워했던 곳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설렘으로 재미있고,
이곳처럼 제가 13년 전에 갔던 곳의 여행기는
추억으로 재미있습니다.
분명히 저곳을 다녀왔고, 가이드의 설명을
혹시나 놓칠세라 토씨 하나까지 귀 기울이며
수첩에 설명도 적었으나
이제 갔는지, 안 갔는지 지명마저도 아리송하지만
선생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아하! 맞다, 맞다.
저기도 갔어. 하면서 사진을 찾아 보기도 하고......
다녀온 곳마저도
마치 지금 처음 여행을 시작한 듯 재미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카페 떠나시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선생님의 여행기.
지우지 마셔요.
부탁드립니다.
이 다음에...... 많은 세월이 흘러
제가 비행기를 탈 힘도 없을 때
선생님의 여행기를 다시 읽으며
또 다시 눈으로, 마음으로 선생님의 여정을 따라
여행하고 싶습니다.
무슨 걱정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겠는데 글을 지우고 떠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 글을 지우라고 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내 여행기를 읽고 행복하거나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은 일일 것이며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라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도움이 되다면 글을 올린 보람이 있는것이니까요.
글도 하나의 정신적인 제품(상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상품이나 제품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글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 되어야 하겠지요..
지금은 중단하고 있지만 여행기 말고 가끔 세상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도 쓰게 되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거나 말거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배설하듯 쓰는 글들을 좋아하지 않다가 보니 혹시 그렇게 흐르지 않을까 하면서 조심을 하곤 하지요....
언젠가 세상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그 선택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알려 주고 싶기는 합니다.
나는 글을 쓸 때 남의 경험이나 남의 생각을 옮겨오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을 씁니다.
공무원으로서
답글기
@뿅망치(신현준) 40년의 생활도 종교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40년의 생활의 결과 얻어진 상식과 생각들을 글로써 왔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을 퍼 온적이 없습니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인용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요..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내가 올린 글들이 있는 카페의 글들을 보신다면 혹시 도움이 되는 글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종교의 속박에서 벋어나기를 바라면서 글을 올리는 카페랍니다.
찾아 오는 사람들은 없지만 ...
카페제목도 종교보다는 여행을 선택하라 입니다.
https://cafe.daum.net/moo-jonggyo
글 삭제와 관련된 내용들을 보았습니다만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행은 사람들에게 정말 유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그렇지 못하더군요...
여행기를 기록해 놓으면 언제 보아도 그 때의 그 느낌을 금방 느낄 수가 있어서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여행을 하시면 여행기들을 한 번 써 보시기 바랍니다.
다녀온지 오래되 저장되있는
사진찾기도 힘들고, 키스
작품의 가방과 백조
크리스탈 목걸이 길거리서 샀던 손수의
식탁보가 동유럽 여행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있을뿐인데
훌륭하신 여행기록 작가님이 계셔서 앉아서 편히 추억여행
하였습니다
뿅망치님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