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피는 계절이 오면
김용완
햇살이 유난히고 밝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높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들녘에는 , 아직 이르지만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가을걷이를 기대하며 준비 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가을, 모든 사람들은 풍요한 결실이나 단풍을 연상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던 고정관념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러니 하게도 가을을 대표하는 것은 국화와 코스모스가 아닐까 싶다. 국화와 코스모스는 똑같은 국화과에 속하면서도 형태나 그것이 풍겨주는 뉘앙스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우리에게 남다른 감성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국화는 어딘가 모르게 고상하고 고고한 반면 코스모스는 애잔하고 교태스러워 많은 사람들은 국화는 고절한 선비요, 코스모스는 이국적인 여인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국화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동양적이고, 코스모스는 멕시코이기 기 때문에 서양적 이라고 말한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이제는 두 꽃 모두가 가을을 대표하는 우리 고유의 꽃이요, 우리 가슴에 깊이 각인된 꽃임엔 틀림없다. 나는 젊은 시절에 여인과의 편지에서 '들국화'로 이름을 대신 했다. 왜 그랫느냐고 묻는 다면 성격상 나름대로의 고집이랄까.
그래서 50여 년 전 빛바랜 앨범 맨 앞에는 들국화가 찍힌 사진 한 장이 붙어있다. 국화는 오상고절이라 해서 홀로 서 있을 때 빛이 난다. 코스모스는 군락을 이룰 때 더 아름답다. 국화는 뜰이나 서재, 그리고 응접실 등 비교적 분위기 있고 안정된 장소가 재격인데 비해 코스모스는 벌판이나 외로운 시골길에 하늘거리며 바람에 나부낄 때 더 아름답다. 아무리 가을 꽃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형태나 모습이 왜 다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어디를 가나 코스모스 길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예전에는 고향 호수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반겨 주었는데 지금은 4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그 모습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며칠 전 임실 신덕을 가다보니 구이로 가는 구 도로에 코스모스가 피어 하늘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집나간 강아지가 돌아 온것처럼 반가웠다. 절기로는 추분이 지났다.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찜통 더위에서도 코스모스는 아름다운 꽃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년 가을엔가, 김제 지평선축제를 찾아가면서 옛날로만 생각했던 그 아름다운 코스모스 길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월촌에서 화호까지 6km 정도의 2차선 도로에 코스모스가 도열하여 피어 있는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잊었던 기억을 되찾아 주었다. 맑은 가을 날 선선한 바람곁에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옛 정취에 빠져 보는 것도 하나의 멋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비포장도로가 있었던 시절, 부락에서 맡은 구역 도로에 심었던 추억의 거리, 아니 지금이라도 좋다. 구이로 가는 길처럼 내 고향 임실에서도 코스모스가 피어 한들거리며 반겨주었으면 좋겠다.
가을운동회
김용완
"가을 운동회가 너무 쓸쓸해. 우리 클때만 해도 운동회가 있을 때면 밤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그것뿐이 아니지요. 달리기를 할 때는 일등을 하려고 이를 악물고 뛰었었는데 그러한 풍경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어요" 라고 못내 아쉬워하는 아내의 얼굴이 그늘져 어둡다. 사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인지 몰라도 운동회인지 아니면 아이들의 이벤트인지 너무도 초라하다. 존엄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가장 부러워 했던 것은 선생님들의 복장이다. 흰 운동모에 운동화, 위아래 흰색 운동복 차림의 통일된 복장은 어뗳게 생각해 보면 청결하고, 신성한 느낌을 주었던 운동회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뿐 만이 아니다. 입에 물고 하나둘! 구령을 부치면서 힘차게 불던 호루라기도 그렇고, 장갑도 모두 흰색이였다. 국민체조를 시작으로 경기 시간표에 따라 학생들은 청군 백군 청군 또는 홍군으로 나누어 자기편 응원에 열을 올렸던 시절, 이젠 어런 것 모두가 수평선 너머로 떠가는 돛단배 마냥 아득한 추억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아내는 손녀 운동회 하는날 학교에 갔다가 학부모 줄다리기에 참가해 '화장지랑 탓다' 라며 수다를 떠는 것을 보니 그 순간만은 옛날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에 하는 학교 운동회가 '약식' 아니 '미니'라고 해야 할까. 운동회 날이 다가오면 왠지 마음이 설레면서 들떠 기다려지는 운동회! 지금은 별다른 낭만을 느끼지 못 한것 같다.그저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덤덤하게 시간 때우기로 무의미한 운동회가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는 직장에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신 참가하고 보니 신나는 운동회가 될 수가 없다. 운동회의 꽃인 남녀 200M 계주 등 15개 종목의 다채로운 행사라고는 하지만 신명나는 운동회는 아닌 것 같다. 그나마 그것 마저도 오전이면 끝이 난다. 오랜 세월 탓인지 세대가 바뀜에 따라 대회 경기종목의 명칭도, 방법도, 구세대가 해왔던 운동회와는 달리 너무 많은 변화가 온 것 같다. 예를 들어 개인 달리기를 ' 더 빨리 끝까지'랄지. 줄달리기를 '영치기 영차!' 랄지 등등 용어 자체가 전후세대 어른들에게는 보고나서야 그런것이고나 할 뿐 그저 생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어쩌랴. 달팽이처럼 제 집안에서만 사는 세상, 시대의 흐름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다. 달리기 등 뛰는 학생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1등을 해서 연필 하나라도 더 타려고 안간힘을 다했던 시절, 지금의 아이들은 그것도 아닌,뛰다가 뒤처지면 포기하는 모습이 아쉽다. 성취욕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또한 청 백군 응원도 그렇고, 가을 햇곡식으로 정성꼇 만들어 온 도시락이나 밤, 고구마 등 푸짐 했던 간식을 다른 아이들과 나누어 먹던 것 대신 과자나 빵, 인스턴트 음료수가 등장하고 있는 것들, 어떤 어린이는 과체중으로 걸음을 걷기가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공부위주로 하는 교육, 건강을 위한 운동은 뒷전, 절름발이 교육에서 오는 기현상인 것을 어쩌랴. 더하자면 어린이 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 마저도 여선생님들의대거 진출엥서 오는 불균형도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젠 어떠한 등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즐겁고 그립던 추억속의 운동회로 잠시 시름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