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가절이지만 결혼 청첩장이 뜸하다. 교인 아들이 결혼한다는데 청첩장을 못 받았다. 하객을 가족과 친구들로만 제한해 담임목사도 초청 못했단다. 이래저래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더 자주 다닐 처지이다. 어쨌거나 청첩장 얘기를 실로 오랜만에 들었다. 친구자녀들이 모두 오래전에 결혼해서 청첩장 받을 일이 드물어진데다 이제는 결혼식 자체가 드물어졌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에 비해 결혼을 늦게 한다. 평균 초혼연령이 신랑 35.8세, 신부 32.7세다. 대학을 나오고도 10년가량을 부모 집에 얹혀산다. 취직이 안 돼 경제적으로 자립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나마 미혼자(未婚者)들은 언젠가 결혼할 가능성이 있지만, 평생 동안 작심하고 결혼하지 않는 이른바 비혼자(非婚者)들도 많다.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라는 비혼자들의 캐치프레이즈가 이젠 고루하다. 예전엔 혼자 살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삐딱한 눈길을 받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비혼자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 조사에서 비혼자를 포함한 1인 가구가 27.2%로 전체 가구유형 중 가장 많았다. 그 뒤를 2인 가구(무자녀 부부)가 26.1%로 빠짝 따랐다.
미국 상황도 비슷하다. 미혼성인 수가 기혼성인 수를 이미 2014년에 앞질렀다. 혼자 사는 성인이 3,100여만 명으로 전체성인 7명 중 한명 꼴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인 밀레니얼들 가운데 30%만이 결혼을 인생의 중대사로 인식한다. 이들 중 25%는 비혼자가 될 전망이다. 미국 전체성인 5명 중 한명은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역대 최고수준이다.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흔히 ‘삼포세대’를 자처한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인간관계와 집을 보태서 ‘오포세대’로 발전하기도 한다. 결혼식 없이 동거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프리섹스 풍조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미혼청년(25~34세) 4명 중 한명이 결혼식 없이 파트너와 동거한다. 전체 흑인 어린이 중 73%가 독신모 태생으로 호적상 아버지가 없다.
생활기반이 취약한 젊은이들의 결혼식이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여건이 좋은 중년들의 만혼과 노년층의 소위 ‘황혼재혼’은 늘어나고 있다. 55세 이상 미국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53%)이 배우자와 이혼 또는 사별한 후 재혼한 사람들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 후반 45년을 쓸쓸이 살려는 과수댁은 드물다. 경제문제도 있지만 로맨스(섹스)도 무시 못한다.
ABC-TV의 뉴스 앵커였던 다이앤 소여는 42세 때 영화 ‘졸업’을 감독한 마이크 니콜스와 결혼했다. 헐리웃 여배우 샌드라 불록과 엘리자베스 헐리도 각각 41세 때 결혼했다. 코미디언인 제리 사인펠드와 수지 에스먼은 각각 45세, 53세 때 연예계에서 짝을 만났고, ‘스타트렉’의 인기스타 조지 타케이는 71세에 브래드 올트먼과 ‘정식결혼’했다. 이들은 게이다.
황혼재혼 중에 ‘5월-12월 결혼(May-December Marriage)’이 있다. 연령차가 큰 남녀간 재혼을 일컫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8세 때 모델 멜라니아(34세)와 3번째 재혼했다.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은 50세에 28세 모델과 결혼했다. 언론인 래리 킹은 63세 때 37세 여성과 8번째 재혼했고, 여배우 조운 콜린스는 68세에 36세 연하남과 5번째 재혼했다.
부인이 오랜 지병 끝에 세상을 떠난 후 7순을 앞두고 재혼한 한 목사님은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역시 부인과 사별하고 7순이 훨씬 넘어 재혼한 한 동료기자는 금방 갈라섰다는 소문이다. 새 부인의 재산 때문이라고 했다. 황혼재혼의 가장 큰 벽은 유산과 관련한 자녀들의 반대이다. 그래서 황혼재혼의 유산문제를 정리해주는 변호사들이 많다.
자녀들의 반대나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피하기 위한 편법 황혼재혼도 있다. 평소 따로 떨어져 살면서 한 차례에 며칠씩, 아니면 주말만 함께 사는 이른바 ‘주혼(走婚)’이다. ‘반동거’ 또는 ‘비혼 동거’로도 불린다. 남의 눈엔 외도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엄연한 부부다. 황혼재혼이나 주혼엔 대개 예식이 없다. 앞으로 청첩장 받을 일이 점점 더 드물어질 것 같다.
10-21-2017
첫댓글 "생육하고 번성하라." 지상명령이 무색해져 가는 세태입니다. 하긴 이미 말세는 2000여 년 전에 시작이 됐으니...
젊은 시절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결혼 안 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나, 독거 노인이야, 하하하." 하면서 젊게 살아요. 우리 집안 젊은이들 중 두 아이가 아이를 안 낳는답니다. 아는 사람 중 재혼하려고 사귀다가 양 쪽의 재산 때문에 갈라섰구요. 먼 이웃 중, 60대에 재혼 하고 20년을 잘 살다가 80대에, 엊그제 이혼하고 집을 팔았지요. 윤 선생님의 콕 찍은 글을 읽으니 시대의 흐름이 이렇구나. 실감하며.....점점더 편하게 살아가는 이기주의자들이 똑똑한 건지, 인간미 없는 미운 사람들인지,
생각이 오락가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