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노래 「공무도하가, 공후인(公無渡河, 箜篌引)」와 명나라 전후칠자 문학
2020년 12월 5일
임아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公無渡河,
임은 말려도 강물을 건너시네요. 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네요, 墮河而死,
죽은 임을 나는 어찌하랍니까? 當(當, 또는 將, 其)奈公何?
고조선의 「공무도하」는 노래 가사와 곡조가 아주 슬프다고 전해옵니다. 가사는 짧으나 뜻이 깊고 곡조는 무척 슬펐답니다. 고조선 사람들의 정서와 문학을 대표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노래입니다. 지금은 「아리랑」이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합니다.
고조선의 이 노래는 망국의 슬픔을 노래하고 순국한 뜻에서는 중국 문학사에서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와 채문희(蔡文姬)의 「비분시(悲憤詩)」에 견줄 만큼 중요한 문학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공무도하」와 한국의 「아리랑」에 실린 슬픔(悲)은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자신에게는 수없이 많이 쌓이거나 패인 감정의 골을 씻어내어 맑게 해주고 치료하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불쌍함을 느껴 구원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슬픔(悲)은 누구 개인이 좋아하고 싫어하거나(好惡) 기뻐하고 화내거나(喜怒)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슬픔(悲)이며 즐거움(樂)을 마주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슬픔(悲)은 즐거움(樂)을 마주합니다.
백수 광부의 늙은 부인마저 감당할 수 없도록(當) 어쩔 수 없는(奈何, 목적어를 奈何 사이에 넣습니다.) 슬픔(悲)을 겪었다는 것을 보면, 아무튼지 「공무도하」 노래는 슬픔(悲)이 지나쳐 미쳐버리는 미침(狂)까지는 가지 말라고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슬픔(悲)은 가슴에 복받치듯이 아픈 애(哀)보다는 깊으나 넘쳐서 한(恨)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가슴 아픈 애(哀)는 함께 살면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 아내 자식 등 가족을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인데 오래 가지만 일시적으로 커다란 슬픔입니다. 그런데 슬픔(悲)은 가슴 아픈 것을 넘어 내 자신도 누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어쩔 수 없는(奈何)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슬픔입니다. 마음속 기억에서 수없이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다시 하나하나 촘촘하게 떠올려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찌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수많은 장면을 촘촘하게 떠올려서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체념(諦念)이며 이것마저도 막혀버린 것이 체념(滯念)입니다. 그러나 슬픔(悲)은 체념(滯念)에 그친다고 또는 잊으려고(忘情) 술병째 들고 마신다(提壺)고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슬픔(悲)에 빠지면 감정 기제(메카니즘)이 무너져서 미치겠지요(狂). 예를 들어 나라가 망하고 가족까지 모두 잃었을 때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비(悲)이겠지요. 「공무도하」 노래의 슬픔(悲)은 내가 미쳐버릴지언정(狂) 죽더라도 체념(滯念)할 수 없고 상황을 보고 들은 자손들까지도 체념(滯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恨)에는 후회와 원망이 담겼고 지나치면 마음을 얽어매는 아주 딱딱한 응어리(結)가 되어 가슴 속에 계속 남아 작동하는(使)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殺害之心)까지 품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하고 그리워하던 연인이 배반하였을 때 배신감을 넘어 저주하다가 죽음으로 끝맺는 듯한 느낌이 한(恨)입니다. 춘향이는 이도령을 잠시 의심하고 미워하였더라도 한(恨)을 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무너뜨리고 가족을 해친 적군에게는 한(恨)을 품을 수 있겠지요. 한(恨)이 자라고 커지면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貪瞋痴)의 진(瞋)이 되어 모든 감정과 이성조차 누르고 막기에 정상적인 정신활동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진(瞋)이 다른 탐치(貪痴)까지도 조장한다고 말하고, 진한(瞋恨)을 치유하려면 자비관(慈悲觀)을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어느 민족의 노래에도 슬픔(悲哀)이 있으나 한(恨)으로 자라지 않도록 하기에 한(恨)을 민족 정서로 삼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있고 문제도 많이 제기되었습니다만, 현재 중고교 교재에서는 노래 가사의 내용을 늙은 남편이 미쳐서 물에 빠져 죽어 부인이 어찌 하느냐고 번역합니다. 남녀 또는 부부의 이별 또는 사별이라고 묘사하고 정서는 한(恨)과 체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물”의 상징적 의미가 이별이거나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노래가 고조선에서 불렸던 시기와 지역 등 역사 사실을 아예 설명하지 않고 한과 망각의 체념이라는 부정적인 정서의 상호관계라고 마구잡이로 해석하였습니다. “물(河)”의 상징 의미는 오히려 고조선의 오랜 역사이며 늙은 부부마저 멸망한 고조선의 역사와 함께 따라죽었으나(殉國) 고조선 역사의 강물은 여전히 흐른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습니다. 더구나 한나라에서 유행한 시기와 역사적 배경도 모르고 중국 역대 문인들이 불렀다는 것도 모릅니다. 공후 악기가 무엇인지 노래의 곡조와 형식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해한 가장 큰 이유는 진(晉)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음악、공후인(古今注、音樂、箜篌引)』에 실린 한문 내용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표가 중국사람 입장에서 고조선 유민들의 망국 슬픔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마치 남녀 또는 늙은 부부의 이별만을 묘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의 이 노래는 백수 광부의 아내가 공후 악기를 들고나와서 두드렸다는 기록을 보면 공후 악기는 고조선이 한무제에게 멸망 당하기 이전에 이미 널리 유행하였고, 가사와 곡조도 이미 있고 여기에 가사 일부를 얹은 것 같습니다. 공후인(箜篌引)의 인(引)은 악기를 연주하는 활을 당기는 뜻이며 연주 형식은 나중에 희곡에서 도입 부분에서 연주하는 곡조가 인(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노래 가사가 짧은데 두 마디가 한 구절을 이루고 두 구절로 완성한 노래이지만, 아마도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 또는 개인이 어떤 슬픈 감정을 노래할 때마다 도입 부분에서 시작하는 곡조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곡조에 개인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얹어서 길게 노래할 수 있는 정형화된 노래 형식의 곡조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이 노래는 하나의 노래 형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리랑에도 지방마다 사람마다 이야기를 넣어 불렀듯이요.
조선 나루터 뱃사공 곽리자고(霍里子高)는 조선인이며 아마도 곽리가 성(姓)이고 자고가 이름인 것 같습니다. 지역은 강물을 하(河)라고 부른 것을 보면 요하(遼河)인가 봅니다. 남편 곽리자고가 듣고 와서 들려준 노래와 곡조를 그의 부인 여옥(麗玉)은 공후를 타서 노랫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고(寫其聲) 주위 사람 여용(麗容)에게 그대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요하지역의 고조선 마을 사람들도 노래와 곡조를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삼켰다고 합니다. 여옥은 창작이 아니라 들은 대로 공후로 노랫소리를 흉내 내어 연주하였을 뿐입니다. 흰머리 풀어헤친 미친 늙은이의 아내가 공후를 두드리고 뱃사공의 아내 여옥이 탔던 공후는 당나라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 따르면 한무제 시기의 공후는 줄이 7가닥의 7현(絃)이라고 합니다. 공후가 나중에 25줄 악기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노래가 고조선의 요하지역에서 먼저 널리 유행하였고 다시 한나라에 유입되었는데, 유입된 시기는 고조선이 한무제에게 멸망 당한 이후이며, 노래가 지어진 시기와 배경은 한무제의 조선 정벌 때문에 조선이 멸망하였고 한무제 군대는 수많은 고조선 사람들을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전쟁 모습은 채옹(蔡邕)의 딸 채문희(蔡文姬)의 글을 보면 동탁(董卓)이 끌고온 강족(羌族)과 흉노족이 중원지역에 쳐들어오면 말 안장에는 남자 머리들을 달고 말 안장 뒤에는 젊은 여자를 붙잡아 태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고조선이라는 역사가 길고 영토가 넓은 나라를 잃은 고조선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은 오랜 세월 동안에 멀리 현재 북경 지역에서부터 밀려나서 요동지역 중심지까지 잃고 한무제에게 멸망 당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흰머리까지 풀어헤치고 미쳐버린 늙은이는 오랜 역사와 넓은 영토의 고조선이 멸망 당한 안타까움과 고통과 설움과 슬픔을 겪으면서 미쳤습니다. 그의 부인은 망국 설움에 미친 남편까지 잃은 슬픔과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슬픔은 갈수록 더없이 깊어갔고 감당할(當, 감당하다, 마땅하다) 수 없었겠지요.
백수 광부는 아마도 나라는 망하고 젊은 자식들마저 잃었기에 미쳐서 술을 마셨고 더 참을 수 없어 강물에 몸을 던졌나 봅니다. 남편은 나라를 잃은 슬픔에 물에 빠졌고 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까지 더하여 물에 빠졌습니다. 더없는 슬픔을 부인이 공후를 타지도 못하고 그냥 두드리며 노래로 불렀습니다. 남편은 얼마나 많은 슬픈 노래를 불렀어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나 봅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불러도 가시지 않는 슬픔에 물에 빠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한(漢)나라 시기에 초연수(焦延壽)가 지은 『초씨역림(焦氏易林)』의 점괘 설명에서도 인용할 만큼 한나라 시기에 널리 유행하였답니다. 나중에 서진(西晉)나라 최표(崔豹)가 노래의 연유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최표는 이 노래의 슬픔(悲)이 슬프고 허망하다(悽愴)고 느꼈습니다.
공후(空侯)는 원래 악공 감후(坎侯)의 이름이며 나중에 와전되어 공후(箜篌)가 되었습니다. 연유는 한무제가 남월을 멸망시킨 뒤에 太一과 后土에 제사를 올리며 처음 공후로 음악을 연주시킨 것에서 유래하였답니다. 이 말뜻은 공후가 고조선이나 한나라에서 유행하였는데 한무제가 공후 악기를 개선한 것을 말합니다.
漢武帝가 기원전 111년에 南越을 멸망시키고 太一과 后土에 제사를 올리며 처음 공후(箜篌) 악기로 연주하였답니다. 한무제는 기원전 109년에는 朝鮮을 정벌하려고 싸워서 이듬해 기원전 108년에 멸망시켰습니다.
「공무도하」 노래는 한나라부터 위진시기,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근현대까지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시인은 물론이고 도사와 스님까지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었습니다. 당나라 이백을 비롯하여 근대 강유위(康有爲)까지 수백 명 시인이 수백 편 시를 남겼습니다. 대체로 헤어질 때 슬퍼서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당나라 이하(李賀, 790-816)의 「李憑箜篌引」이 대표작이니까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명나라에서도 이 노래를 널리 불렀는데 이몽양과 하경명을 비롯한 전칠자와 왕세정 등 후칠자도 불렀고 시를 지었습니다. 이들은 이 노래에서 중국 고대의 순박한 정서의 원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정작 한국 사람들이 찾아야 할 고조선 정서의 원형을 명나라 시인들이 찾아 나섰습니다.
최근까지 중국 학자들도 이 노래를 연구하여 자신의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錢鍾書,『管錐編』,第2冊(1986年).
陳良運,『焦氏易林詩學闡釋』(2000年).
胡大雷,「從『焦氏易林』占辭看“公無渡河”的早期影響與原型」,『廣西師範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44卷3期,2008年6月.
중국학자 胡大雷는 백수광부가 혹시 기자(箕子)의 이미지와 닮았다고 글을 썼는데 물론 아닙니다. 기자가 미쳤던 시기는 고조선의 멸망과는 시간도 맞지 않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TV 연속극에서도 인용하여 방영되었답니다.
참고자료:「公无渡河,公竟渡河,究竟要怎样度过这条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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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1995년 7월 26일, 앨범 앞면
애절한 한이 담긴 무대 “온도”의 “공무도하가”, 2019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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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洁, 古筝箜篌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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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焦延壽(기원전 95년에 태어나고 기원전 35 또는 기원전 20년 전후에 죽음, 京房의 스승),『焦氏易林』,
「屯」之「大有」︰
河伯大呼,津不可渡。船空無人,往來亦難。
하백은 사람들에게 물에 빠지라고 크게 부르니까, 나루터에서도 강물을 건널 수 없네요.
배는 비었고 사람이 없네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어렵네요.
姤之姤︰
河伯大呼,津不可渡。往復爾故,乃無大悔。
하백은 사람들에게 물에 빠지라고 크게 부르니까, 나루터에서도 강물을 건널 수 없네요.
오가는 것이 여전하니, 큰 후회는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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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崔豹,『古今注、音樂』:
“「箜篌引」,朝鮮津卒霍里子高妻麗玉所作也。子高晨起刺船而櫂,有一白首狂夫,披髮提壺,亂流而渡,其妻隨呼止之,不及,遂墮河水死。於是,援箜篌而鼓之,作「公無渡河」之歌。聲甚悽愴,曲終自投河而死。霍里子高還,以其聲語妻麗玉。玉傷之,乃引箜篌而寫其聲,聞者莫不墮淚飲泣焉。麗玉以其聲傳鄰女麗容,名曰「箜篌引」焉。”
“「공후인」 노래는 조선현 나루터 뱃사공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 여옥(麗玉)의 작품이다. 자고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의 노를 지어물로 나가는데, 어떤 백발 미친 남자가 흰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들고 물결을 덤비며 건너가고 있었고 아내는 뒤를 따라와 부르면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끝내 물속에 빠져 죽었다. 그래서 아내는 공후를 가져와 두드리면서 「공무도하」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랫소리가 아주 슬프고 허망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와서 노랫소리를 아내 여옥에게 들려주었다. 여옥이도 슬퍼서 공후를 가져와 들은 대로 노랫소리를 따라 연주하였다.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눈물을 흘리거나 눈물을 삼켰다. 여옥은 이 노랫소리를 이웃집 여용(麗容)에게 그대로 가르쳐주었고 「공후인」이라고 노래 이름을 붙였다.”
참고자료:
箜篌引:
공후를 타는(引) 악기 소리.
刺船:
『莊子、漁父』:“乃刺船而去,延緣葦間。”
櫂:棹
『釋名』:在旁撥水曰櫂。櫂,濯也,濯於水中也,且言使舟櫂進也。
墮河水:
물속은 천천히 깊어가다가 갑자기 낭떠러지처럼 깊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속에 떨어져 죽었다고 말합니다.
鼓之:
공후 악기를 활로 타지 않고 두드렸습니다.
引箜篌而寫其聲:
공후 악기를 타서 노랫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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箜篌 3종:臥箜篌、豎箜篌、鳳首箜篌.
현재 日本 奈良의 正倉院에 唐代의 漆箜篌와 螺箜篌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臥箜篌:
唐、杜佑,『通典』:“漢武帝使樂人侯調所作。……今按其形,似瑟而小,七弦,用撥彈之如琵琶也。”
豎箜篌(胡箜篌, Harp):
『隋書、音樂志』:“今曲項琵琶、豎頭箜篌之徒,並出自西域,非華夏之樂器。”
鳳首箜篌:인도에서 유입.
『樂唐書』:“鳳首箜篌,有項如軫。”
唐、杜佑,『通典』:“鳳首箜篌,頭有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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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여자는 15살에 공후를 배웠다고 합니다.
『孔雀東南飛』:
“十三能織素,十四學裁衣,十五彈箜篌,十六誦詩書。十七爲君婦,心中常苦悲。君既爲府吏,守節情不移。賤妾留空房,相見常日稀。雞鳴入機織,夜夜不得息。三日斷五匹,大人故嫌遲。非爲織作遲,君家婦難爲!妾不堪驅使,徒留無所施。便可白公姥,及時相遣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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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공후(箜篌) 유래:
『史記、武帝紀』:“於是塞南越,禱祠泰一,后土,始用樂舞,益召歌兒,作二十五弦及箜篌瑟自此起。”
『史記、封禪書』:“於是塞南越,禱祠太一,后土,始用樂舞,益召歌兒,作二十五弦及空侯琴瑟自此起。”
『宋書、樂志一』︰
空侯,初名坎侯。漢武帝賽滅南越,祠太一、后土用樂,令樂人侯暉依琴作坎侯,言其坎,坎應節奏也。侯者,因工人姓爾。後言空,音訛也。
『風俗通』:
“箜篌,一曰坎侯。或曰空侯,取其空中。”
『事物紀原』:
“箜篌,漢靈帝好之。體曲而長,二十三絃,抱於懷中,兩手齊奏之,謂之擘。”
『樂府、解題』:
“漢武滅南粵,祠太乙、后土,令樂工侯暉依琴造坎,言坎,坎應節也。坎或作贛。侯,工人之姓。因名坎侯,後譌爲箜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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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李白, 701—762)
이하(李賀, 790-816)
이몽양(李夢陽, 1473-1530)
하경명(何景明, 1483-1521)
왕구사(王九思, 1468-1551)
왕세정(王世貞, 1526-1590)
이반룡(李攀龍, 1514-1570)
고린(顧璘, 1476-1545)
축윤명(祝允明, 1461-1527)
설혜(薛蕙, 1490-1539)
원굉도(袁宏道, 1568-1610)
이백(李白, 701—762), 「公無渡河」:
黃河西來決昆崙,咆哮萬里觸龍門。
波滔天,堯咨嗟,大禹理百川,兒啼不窺家。
殺湍煙洪水,九州始蠶麻。
其害乃去,茫然風沙。
被髮之叟狂而癡,清晨臨(一作徑)流欲奚爲?
旁人不惜妻止之,公無渡河苦渡之。
虎可搏,河難憑,公果溺死流海湄。
有長鯨白齒若雪山,公乎公乎掛罥(一作骨)於其間,箜篌所悲竟不還。
황하는 서쪽에서 흘러오며 곤륜산맥을 갈라놓고, 큰소리 내며 만리를 흘러와 용문을 칩니다.
파도는 하늘까지 쳐서 요임금도 걱정하고 우임금이 많은 강물을 다스리느라고 집에서 어린 아들이 울어도 가보지 못하였답니다.
큰 여울을 없애고 홍수도 막았기에,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농사짓고 편안히 살았답니다.
황하 수해가 없어지니, 아득한 모래바람이 불어옵니다.
머리를 풀어헤친 늙은이는 미치고 바보가 되었는지, 이른 아침에 강물로 뛰어드니 어찌하시렵니까?
주위 사람들도 안타까워 아내에게 말리라고 합니다,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힘들게 건너려는지요.
호랑이와는 싸울 수도 있으나 강물은 이기지 못한답니다, 당신은 빠져 죽어 바다로 떠내려갔지요.
바다에는 고래 이빨이 눈 내린 높은 산과 같은데, 당신 당신은 고래 입에서 뼈라도 남겠나요, 공후 노래를 아주 슬프게 불러도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답니다.
唐、李賀,相和歌辭,「箜篌引」︰
公乎公乎,提壺將焉如?
屈平沈湘不足慕,徐衍入海誠為愚。
公乎公乎,床有菅席盤有魚。
北里有賢兄,東鄰有小姑。
隴畝油油黍與葫,瓦甒濁醪蟻浮浮(一作瓦瓶濁酒醪蟻浮)。
黍可食,醪可飲,公乎公乎其奈居?
被髮奔流竟何如?
賢兄小姑哭嗚嗚。
당신 당신은 술병을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굴원이 상수에 빠져 죽은 것을 따르지 마세요, 천천히 물에 빠져 죽어 바다로 떠내려가는 것은 어리석어요.
당신 당신은 자리도 펴놓고 물고기 반찬도 있답니다.
북쪽 마을에는 형님도 계시고 동쪽 마을에는 누이도 있어요.
밭에는 좁쌀과 마늘도 푸르게 잘 자라고, 술독에는 술이 익어 개미들이 덤벼요.
쫍쌀 밥도 먹고 술도 마셔요, 당신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에 떠내려갔는데 어디로 가셨습니까?
형님과 누이가 목놓아 울고 있어요.
明、李夢陽,「公無渡河」二首,『空同集』,卷七:
其一:
盤螭作川梁,功奇勢難久。
魴鱮尾屣屣,天吳戴九首。
용왕의 아들 무각룡(螭)이 똬리를 틀어 개천의 다리를 만들었어도,
모양이 멋있으나 오래 버티기는 어렵지요.
방어와 연어의 꼬리는 비늘이 많고(屣屣?),
천오(天吳) 수신(水神)은 머리가 아홉이랍니다.
其二:
公無渡河,河深不可渡,中有白石,齒齒嶄,嶄兮峨峨。
蛟龍九頭,戴角崢嶸,崟磕兮水鱗,鱗兮沖素波。
公無渡河,吹沙暮多風。
河伯築梁結兩螭,汝無羽翼墮水中。
涉水雖可樂,不如登山阿。
噫!
嗟嗟公無渡河。
당신은 강을 건너지 마세요! 강물이 깊어 건널 수 없어요.
강물 속에는 흰 돌이 있어요, 이빨처럼 삐죽한데 삐죽하게 튀어나왔답니다.
아홉 머리의 용은 큰 뿔이 달렸어요, 비늘에 부딪히면 비늘이 흰 파도를 일으킨답니다.
당신은 강을 건너지 마세요, 모래바람도 불고 저녁에는 바람이 세답니다.
하백이 다리를 놓고 용 두 마리를 묶어놓았어요, 당신은 날개가 없어서 물에 빠진답니다.
강물 건너는 것이 좋더라도 산길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답니다.
아!
쯧쯧! 당신은 강을 건너지 마세요!
明、李夢陽,「渡河篇」:
小麥黃,黃河波,君柰何,今渡河?
昔君遊此,思君一見。
經旬累月,不君一面。
君今渡河,乃往何縣?
跂予望之,淚下如霰。
汀有鳬兮沚有蘭,枝相亞兮居不單。
人生心事豈有殫?君慎動靜加君餐。
보리가 누렇게 마르도록 가물어도 황하 파도가 큰데, 당신은 왜 지금 건너시렵니까?
옛날 당신이 여기에 왔었다니, 당신을 한번 보고 싶군요.
날이 가고 달이 가도록 기다려도 당신 얼굴 한번 볼 수 없네요.
당신은 지금 강물을 건너가면, 어디로 가신답니까?
나는 짝 발로 서서 강물을 바라보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집니다.
강물에는 오리 떼가 떠다니고 강가에는 난초가 자라네,
난초 잎은 천 개라도 서로 닮아 외롭지 않겠네요.
사람 걱정거리에 죽는 것만 있겠나요?
당신께서 잘 움직이시고 좀 더 잡수세요.
明、李夢陽,「黃河風雪詞」,七言絕句︰
渺渺黃河風雪生,雲愁海思不堪行。
陽春白雪非難和,公無渡河無限情。
넓고 넓은 황하에 눈보라가 치는데,
걱정과 생각이 구름과 바다처럼 많아 건널 수 없습니다.
따듯한 봄날에도 흰 눈이 날린답니다.
공무도하 노래가 끝없이 슬픕니다.
明、何景明,「公無渡河」︰
公無渡河,河濁不見日,汝今欲往何時出?
公無渡河,河廣浩無涯。
往而不返,化為泥與沙。
夸父渴走成鄧林,至今丘冢猶岑崟。
河中蛟龍見人喜,縱有舟楫誰救爾?
噫嗟嗟,公無渡河,渡河而亡,不如陸死噫。
嗟嗟公無渡河。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강물이 흐려서 햇빛도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가려고 나루터에 나왔습니까?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강물이 넓고 넓어 끝이 없답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서 진흙이 되고 모래가 된답니다.
과보(夸父)는 해를 따라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고 지팡이는 등림(鄧林, 桃林)이 되었고,
지금도 그의 무덤이 높답니다.
황하 물에 사는 용은 사람만 보면 좋아한다는데,
배를 탄들 누가 구해줄 수 있겠나요?
쯧쯧,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강물을 건너다가 죽을 테니 차라리 육로로 가다가 죽는 것만 못하답니다.
쯧쯧,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明、王九思,「無題」(七言律詩)︰
寂寞西風翡翠樓,黃昏斜抱玉箜篌。
彩鸞影逐秦簫斷,紅葉心隨御水流。
天外行雲難入夢,手中團扇易驚秋。
愁來只恐嫦娥笑,明月疏簾不上鉤。
明、王世貞,「箜篌謠」︰
公無渡河,諮諮河波生鱗。
公無渡河,諮諮河伯不仁。
公不知兮,渡河而公溺之。
妾知公兮,非茲流誰與歸,嗚呼噫嘻。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쯧쯧 강물에는 파도가 치고 용머리에는 삐죽삐죽 비늘이 있답니다.
당신은 강물을 건너지 마세요, 쯧쯧 강물 수신 하백은 착하지 않답니다.
당신은 모릅니다, 강물을 건너면 당신이 빠져 죽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 강물은 누구도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아! 흑흑.
明、李攀龍,「東飛伯勞歌」︰
東飛伯勞西飛鵲,黃金倉琅葳蕤鑰。
誰家女兒倚高樓,含嬌吐怨彈箜篌。
明珠翠羽紅粉妝,單衫婀娜春風香。
女兒年幾十五餘,開顏發艷玉不如。
箜篌宛轉作新聲,可憐一曲傾人城。
明、祝允明,「水詩」︰
雨漫天兮天不得見。
水漫地兮地不得踐。
烝人不粒兮桑田變。
神仙老死佛入滅,伯禹乘龍,仲尼乘筏。
出八極兮睨洚淫而不即。
公無渡河兮公既沒。
婦逐狂夫,與子偕溺。
青山推,鰲足斷,蛟蛇騰拿,萬物錯亂。
厥初天一兮生水,其載與天地兮為終始。
明、袁宏道,「長安有狹斜行」︰
按金駒,立長溝。
枇杷落盡茱萸秋。
山西女兒帕勒頭。
面上堆粉鬢堆油。
二十五弦彈箜篌。
猩紅衫子葡萄紬。
笑問南裝如此不。
明末清初、錢謙益,「秦淮花燭詞十首為蕭孟昉作」,其七,七言絕句︰
十五盈盈比莫愁,將雛一曲倚箜篌。
莫辭年少矜夫婿,珍重生兒字阿侯。
明、顧璘,「公無渡河」︰
願公渡滄海,不願公渡河。
海水有定性,河水多回波。
金堤失上策,瓠子遺悲歌。
山陵且震盪,將柰公身何。
白骨葬黃流,化為黿與鼉。
不信妾言苦,請觀龍門津。
自古斷舟楫,公今徒殺身。
殺身亦不易,竟使傍人嗤。
妾言公不聽,公心妾不知。
箜篌之曲令人悲。
明、薛蕙,「皇帝行幸南京歌」十首,其六,七言絕句︰
燕姬玉袖抱箜篌,馬上長隨翠輦遊。
春來照影秦淮水,愛殺江南雲母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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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元稹,「六年春遣懷」八首,其三,七言絕句︰
公無渡河音響絕,已隔前春復去秋。
今日閒窗拂塵土,殘弦猶迸鈿(一作細)箜篌。
唐、張祜,「箜篌」,五言律詩︰
星漢夜牢牢,深簾調更高。
亂流公莫度,沈骨嫗空嘷。
向月輕輪甲,迎風重紉縧。
不堪聞別引,滄海恨波濤。
宋、蒲壽宬,詠史八首,其七,「朝鮮婦」︰
白首攜一壺,亂流去何之。
婦呼吻欲裂,彼乃昏不知。
箜篌彈復彈,河水風瀰瀰。
宋、釋文珦,「公無渡河」︰
河源來自昆崙西,滔天沃日無津涯,擢夫漁子不敢窺。
公欲徑渡公誠痴,痴公溺死如⑴何為。
竟委骨肉於蛟螭,徒使萬古箜篌悲。
宋、白玉蟾,「公無渡河」︰
君不見猿啼蒼梧煙,風捲瀟湘水。
雙蛾無處挽重瞳,粉篁點點凝春淚。
又不見鶴飲瑤池月,露泣龜台花。
百官極目望八駿,青鳥寥寥空暮霞。
嗚呼,不自愛惜甘蹈死,亦不聞乎千金子。
公無渡河要渡河,公要渡河爭奈何。
元末明初、劉基,「公無渡河」︰
丈夫不愛死,成仁心所安。
殞身苟無故,哀哉徒自殘。
水能殺人人共知,公獨茫然狂以痴。
黃河渺渺無津涯,乃欲絕流而渡之。
公也溺死人誰悲,世路如何,險惡實多?
平地倏忽,滔天風波。
利淫慾餌,孰知其佗?
不見不聞,縱橫網羅。
固不必如公之痴,可揕以魚中之鈹,亦不必如公之狂,可禽以伏甲之觴。
眼前言笑百媚出,寧知兵刃羅心腸。
公無渡河河無津,箜篌一曲愁殺人。
明、沈鍊,「箜篌引」︰
公乎公乎聽我言,河流洶湧波瀾翻。
斂身收足莫西渡,渡河而死誰煩冤。
河流何太濁,發源高山邊。
山崩川竭等閒事,渡河死者真狂顛。
明、張居正,「漢江」︰
漢江東流風作波,南船北楫愁經過。
舟師縮手抱雙槳,對客唱公無渡河。
襄陽渡頭春可憐,襄陽城北花含煙。
大堤高樓酒初熟,歡吟且駐木蘭船。
明末清初、屈大均,「哭華姜」,一百首,其一,七言絕句︰
頻年失志臥林丘,正賴佳人慰四愁。
欲寫三閭哀怨曲,今無麗玉引箜篌。
清、納蘭性德,「採桑子」︰
冷香縈遍紅橋夢,夢覺城笳。
月上桃花,雨歇春寒燕子家。
箜篌別後誰能鼓,腸斷天涯。
暗損韶華,一縷茶煙透碧紗。
清、康有為,「登輪舟」︰
海氣拍天白浪浮,秋風策策生高樓。
行人解纜少顏色,客子華鬢生離憂。
美人容華渺天末,芙蓉淒露香玉愁。
飛舲浩浩破雲去,相思咽斷銀箜篌。
近現代、金天羽,「藝林九友歌」
序:丁巳秋,餘在金陵,始讀畢節路金坡朝鑾詩。晚清詩人學蘇最工者,推何猿叟、范伯子。金坡遺貌取神,與何范機杼又異。次年正月,遂過吳門,且與俞丈粟廬等度曲。粟廬名宗海,松江人,僑於北街張氏,自謂曲劇得葉、鈕之傳。葉鈕事詳龔定盦《記金伶文》。粟廬年鬢七十,審律精嚴,弟子滿吳下,而吳癯庵梅驚才絕艷,少狎海虞黃摩西,詩詞曲並工,考證曲史,著《顧曲麈談》及傳奇多種行於世,金坡旋入都,書來稱與癯庵讀曲甚歡。是時吳中數才士,曲必癯庵,而詞必蒓農,卓然名其家,號稱雙絕。癯庵與餘總角交,蒓農則於甲辰五月孥舟訪餘同川,弱冠美少年,慷慨論世事,不知其能倚聲也。憂患疊更,陶寫絲竹,妍唱遂多。己未春,以《十年說夢圖》徵餘題,餘不工詞,勉譜《鶯啼序》一闋,蒓農復以所著《西神樵唱》數十首寫寄。庶幾梅溪、草窗之遺,東南人士談次及蒓農,無不知為梁溪王蘊章也。蒓農亦工傳奇,楷法絕精,皆可愛玩。曼殊,粵人,俗姓蘇,字子谷。曾在吳中公學授武藝,既有夙慧,遂逃於禪。然好為綺語,以樂府神理譯英詩人擺倫寫情之作。繪《祝融峰圖》,一行腳荷擔朝山,蓋自狀也。又繪《紅樓笛韻》及其他寫意諸幅,匯為《文學因緣》一冊。並世晝手如林,獨顧鶴逸丈抗希元明為巨擘,曼殊嫣然風致,定為逸品。天津李叔同,工西洋水彩畫,餘曾見其《鶯粟花圖》,書法北碑,縑素滿東南,篆刻不下二千方。一日焚筆硯入杭州虎跑寺,為頭陀。曼珠、叔同皆贊鼎革,天南天北,一棄儒冠,脫文字海,一以緇流,浪跡扶桑,綺語談禪,神通遊戲,何其相反邪。叔同名息,號惜霜,叉號苦李。其所篆印章,西泠印社拓石室以貯之。同時虞山蕭蛻公亦以儒生耽淨業,茹素誦經。蛻公初攻小學,文章足名一家,尤邃醫理,篆師吳昌碩。而衡陽符鐵年書似學清道人,然皆自具爐錘,不襲窠臼。鐵年篆隸真書,筆力精勁,或潑墨寫竹石,稍莽蒼矣。江陰鄭覲文工琴,以琴譜改橫行,附西洋簡譜為合壁。自製塤篪、琴瑟、箜篌、箏及諸管樂,釋樂理之沈滯,訂諸家之異同,以《三百篇》譜入風琴,使青衿誦習。今年夏,避暑來餘家,授諸弟子琴調,且鼓瑟為樂。餘述藝事無弈人,弈人之良者非雅故,而前濟南鎮守使馬子貞得少林真傳,以劍術拳藝蓋中國,由馨航紹介,贈餘所著柔術書。庚申夏,以參戰軍在濟應段氏,事敗棄職,所部健兒皆雲散。成敗不足論其人,蓋一奇男子也。餘女弟子上海錢素君,亦師蛻公,畢愛國女中學業。習技擊,至咯血不衰,技成,蕭然負笈美利堅遊學。昔畢秋帆選《吳會英才集》,殿以王采薇,餘詠藝林九友,以素君附傳,蓋取材之難也。
腳踏衡岱匡廬尖,攬勝未入川與黔。
學詩二杜三李間,能事不到眉山髯。
眼中詩友金坡賢,瓣香直為髯蘇拈。
偉干風流腹笥便,餘技顧曲新詞填。
吳中葉鈕聲秘潛,粟廬垂老管律嚴。
曲三百支被管弦,吳梅入室文采鮮。
東塘財思足比肩,惆悵旅食京華年。
吳蜀二子聲華駢,並轡側帽登歌筵。
大鶴漚尹雙詞仙,蒓農後起少不廉。
揚帆直掛南溟天,象王宮闕蠔山黏。
桄榔面澀椰酒甜,蠻姬紅語嬌勝蓮。
詎知秋士心腸煎,淚下檀板金樽前。
蘇晉長齋參畫禪,櫻花三島春漫漫。
徵鞍柳絮方脫棉,紅樓吹笛寫嬋娟。
間翻擺倫詩一編,宗風窈窕離言詮。
苦李祝發投筆銛,道俗易境無猜嫌。
蘇今去返兜率天,何時高屐參軍鈐。
苦李入寺心祇洹,平生結習勇棄捐。
水繪番紙鶯粟妍,墨妙碑體虯筋拳。
燈明凍石手自鎸,西泠石室關鎖鍵。
五君多藝超鄭虔,聲詩律呂書畫兼。
吳中六法我推袁,神化丹青顧陸專。
缶廬篆刻久恐刓,行楷獨以晉法傳。
海藏貌谷心誠懸,偽體我欲祧臨川。
有生好結翰墨綠,開新納故門庭寬。
蕭書茂密古衣冠,符書俊健翔鵷鸞。
蕭今習靜修止觀,符生匯筆升斗沾。
虛堂六月松風乾,何人減字譜幽蘭。
九疑山人雙譜刊,賞音坐聽谷口彈。
制器刌合宮羽難,琴桐簫竹尋荒山。
箜篌塤篪巧力彈,瑟聲微帶湘江瀾。
夜聞十指泉嗚灘,風流藝事書生孱。
琴心跌宕創膽寒,伏波被議收軍權。
當年虎帳看龍淵,臂鷹射獵南山巔。
醉向灞陵亭下眠,公孫弟子雙鬟偏。
分曹角劍羅裳纖,觥觥奇女無人憐。
淨洗脂粉拋翠鈿,乘槎海外驚鴻騫。
近現代、金天羽,「分水犀德潛艇橫行,吉青納大將死於海」︰
君不見長鯨高磨波浮山,沖波駕濤船無難。
誰知犀牛入海如平地,海王亦伯犀牛鼻,海王者誰英吉利。
英吉利乃在海西頭,朝來驛騎如星流。
徵兵赴遠方,壯士皆習流。
將軍統六師,膝上置吳鉤,陸剸犀象水斷蛟與虯。
那知一觸潛牛怒,將軍競逐波臣去。
英倫傅唱箜篌歌,海水茫茫公無渡。
出師未捷身已殲,攫我良士太不廉。
沈船洞腹如劍銛,長流遂葬韜與鈐。
海行從此驚相告,碧眼估胡船載寶。
五洲重洋衽席過,掛帆直放珊瑚島。
豈知蛟鱷暗相守,龍宮被請頭難掉。
命輕人鮓瓮頭船,兕甲真能百札穿。
安得錢王強弩手,燃犀燭怪探重淵。
犀兮犀兮我欲換汝麒麟頭上角,仁獸來遊天下太平樂。
不然兵凶戰禍酷,支祈之頸看汝金鎖著。
첫댓글 이렇게 시공부 하다보면 선생님도 철학을 시로 풀어 지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