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영 목사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각오로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주간에는 연일 이색적인 시업식 광경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물론, 주로 젊은층의 벤처기업들이 대부분이지만 신선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느 회사는 등산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는 회사에서는 전 사원이 동남아 여행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45m의 높은 곳에서 외줄에 발목을 묶고 뛰어 내리는 번지점프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전사원이 병원에 가 신체검사를 하고 헌혈을 하는 것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거리에 나가 말띠 처녀들에게 보약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전사원이 고아원에 찾아가 봉사하는 것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물론 남자들끼리겠지만 목욕탕에 단체목욕으로 시무식을 하고, 어느 식당에서는 포장도시락을 만들어 불우 노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시무식을 하고 있습니다. 늘 죽 늘어서서 훈시를 듣는 경직된 시업식 보다 참신하고 생산적인 시업식 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새해를 맞으시면서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몇 일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아무것도 새로워진 것이 없이 지난날을 반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전도서의 저자는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수 있으랴"(전 1:9-10)하였습니다. 과연, 새로운 것이란 없는 것이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의 주제도 "새 것"입니다.
이사야 42:5-9의 말씀은 새 일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세우실 좋은 이방에 빛일 빛이 되어 소경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암흑에 처한 자를 그 사이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 졌느니라" 하신 말씀은 지난날 고래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본토로 귀환시키시던 일과는 달리 메시아께서 직접 새 일을 하실 것이데 이 일이 시작되기 전에 너희에게 알린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후 5:16-19의 말씀은 새사람을 증언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은 우리 모두가 함께 죽은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심은 우리 모두가 다시 산 것이니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 새 사람임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안에 새 사람은 사람을 육체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위의 말씀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시간과 사람과 일을 새롭게 하는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새 시간입니다.
이사야 42:9에 보면 "보라!"라는 말이 있고 고후 5:17하반절에도 "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자의 "보라"는 옛일과 새 일의 전환점을 나타난 말이요, 후자의 "보라"는 옛사람과 새 사람의 전환점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보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경구입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으시면서 새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에는 새 시간이란 없습니다.
희랍사람들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로서 무의미하게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로서 의미를 가진 시간입니다.
여기 "의미"라는 것은 만물과의 창조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관계가 없이 흐르는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요, 창조적인 관계가 있을 때 시간은 의미를 갖게됩니다. 1분이라도 사랑의 관계가 있는 시간은 카이로스요, 천 날이라도 사랑의 관계가 없는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1분도 사랑하기 위해 미소를 짓는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1분도 "잘한다"라고 칭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1분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1분도 이웃을 즐겁게 하고 용기를 주고 행복을 주기에도 충분한 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을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쓰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 속에서 영혼이 성화 되는 새 시간이 됩니다.
기도하는데 쓰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새 시간이 됩니다.
전도하는데 쓰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는 새 시간이 됩니다. 사랑하고, 봉사하고, 섬기는데 쓰십시오.
그리하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새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해 시간을 쓰십시오. 그리하면 영원한 투자가 되는 새 시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새시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강권하시고 우리 속에서 사랑의 관계를 갖게 하는 능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새 사람입니다.
고후 5:17상반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하였습니다.
새 사람이란, 마음을 새롭게 가졌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도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새로 왔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새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의 새 사람이란 얼굴이 변하거나 성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 변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후 5:16상반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도 가치관의 변화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바 울사도도 전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육체대로, 즉 세속적인 평가 기준대로 평가했다고 고백합니다. 인종, 국적, 가문, 재산, 지위, 지식으로 평가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가? 그에게 믿음이 있는가? 그에게 사랑이 있는가? 그에게 소망이 있는가? 그에게 겸손과 섬김과 희생이 있는가? 를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가치관의 변화는 자기 중심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 생활로, 자기 숭배에서 하나님 숭배로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가치관이 변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시작은 반드시 회개를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한국의 무디라 불리는 유명한 부흥사입니다. 그러나 그가 젊었을 때는 동네 부랑자요, 술꾼이었습니다. 5일 장날이면 장보러 가는 사람들이 서낭당에 돌을 던지며 "제발 오늘은 김익두 놈을 만나지 않게 해주소서"하고 빌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떡장수 만나면 떡 뺏어먹고, 엿장수 만나면 엿 뺏어먹고, 계란장수 만나면 계란 뺏어먹고, 술집에서는 술 뺏어먹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비요, 주먹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선교사의 전도지를 받고 돌아서서 코를 풀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부터 코가 근질근질하더니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어! 이거 재수 없게 서양 귀신이 붙었나?"하고 얼굴까지 부어 오자 그는 겁이 덜컥 나 수건을 쓰고 선교사가 있는 교회를 기웃거렸습니다. 선교사는 그를 불러드려 정성껏 치료를 해주고 먹을 약까지 지어 주며 교회에 계속 나오게 했습니다. 그는 서양귀신이 무서워 계속 선교사를 따라 다니다 선교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 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김익두를 보면 슬금슬금 피했으나 그가 참으로 변한 것을 알고 많은 사람이 그의 전도로 구원을 받았고 마침내 목사가 되어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 새 일입니다.
이사야 42:7에 보면 "네가 소명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세우신 종이 오셔서 하실 일은 눈을 밝히고 하나님을 보게 하고 죄에서 해방하여 자유 하게 하며 어둠에서 끌어내서 밝게 살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이란 아무리 다시 시작해도 새 일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일도 주안에 있을 때 새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전에는 지식과 교양과 인격을 전달하는 교육자였으나 주안에서는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죄에서 해방되며 어두운 구습에서 나오게 하는 전도자가 됩니다.
기업인들은 전에는 생산비 절감과 매출고 향상만을 위해 땀을 흘리며 일했으나 주안에서는 공해 배출 감소를 위해 투자하고 근로자들의 복지후생을 위해 연구하고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일합니다.
이것이 새 일입니다.
누구든지 주안에 있으면 지난날에는 나를 위해 일했으나 지금은 주님을 위해 일하고 이웃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시간을 새롭게 하시고,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일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은 주안에서 새 사람으로서, 새 시간, 새 일을 만들어 가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