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해상대전(海上大戰)
"쑤와아악."
비단 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편이 움직이는 공간이 갈라졌다. 5미터에 달하는 편이 종횡으로 움직이자 갑판 위에 거대한 검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한은 그 장관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아차, 하면 그편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나갈 형국이었다.
진대희의 손짓 한 번에 목과 가슴의 요형이 모두 드러남을 깨달은 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물러날 수는 없었다. 갑판의 넓이는 7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다면 상대의 숫자를 생각할 때 그에게 공세의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편을 피하며 동북방으로 걸음을 딛던 한의 신형이 급박하게 두 바퀴를 회전했다.
그의 몸을 따라 푸른 빛이 돌풍처럼 일어났다.
"쨍쨍쨍!"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그의 어깨에 수직으로 떨어지던 두 자루의 칼이 튕겨나갔다.
한은 호선을 그리며 일본도를 퉁겨 낸 무정도를 몸 안쪽으로 끌어당겨 세우면서 일본도가 허공으로 튕겨 나가며 드러난 공격자들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다께다의 안색이 음침해졌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 하더니 곧 모습이 사라졌다.
가슴 앞에 곧추세웠던 무정도를 정면에 선자들의 비어있는 가슴을 향해 사선으로 내리긋던 한은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 허공에서 그의 정수리를 향해 칼을 내리 꽂고 있었다. 두 명을 없애려 목숨을 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무정도를 거두어 머리 위쪽에 작은 원호를 그었다. 칼 부딪침은 없었다. 다께다는 한이 무정도를 거두고 자신의 칼을 향해도를 휘두르는 것은 보며 칼을 거두었다.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바람처럼 공중제비를 돌며 한의 등 뒤로 돌아갔다.
한의 신형이 다께다가 사라진 허공으로 번개처럼 뛰어올랐다. 그의 발밑으로 손사포를 쏘아대 듯 구슬로 꿴 것처럼 무수하게 겹쳐진 창의 그림자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진운이 허공에 뜬 한을 보며 씩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진운의 웃음을 마주하는 한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얼굴이어서 그 모습을 보는 진운의 가슴에 불이 났다. 무시당한 기분이 든 것이다.
창을 거둔 진운이 한을 따라 허공으로 솟구쳤다. 바람이 그의 앞에서 갈라졌다.
한은 발밑으로 따라붙는 진운의 창을 보며 탄력을 받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반바퀴를 회전했다. 소요유운보상의 회풍결이다.
갑판에서 3미터 정도의 어두운 밤하늘에 수평으로 뜬 채 야생동물처럼 두 눈을 번뜩이는 그의 모습은 일반인들이 보았다면 귀신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런 모습에 가슴이 떨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들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요유운보! 역시 넌 천외천부의 잔당이었구나!"
한의 몸놀림을 보며 진운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바다가 놀라 일어날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동안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고함과 함께 진운이 창을 곧추 세우고 발밑에서 그를 따라붙을 때 다께다와 다른 두 명의 일본인이 도약하며 한의 머리와 하체를 향해 칼을 베어왔다. 동시에 그의 허리를 향해 거대한 검은 선이 떨어졌다. 진대희의 채찍이었다.
그 순간 한의 신형이 허공에서 네 개로 불어났다. 눈 한번 깜박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공격하던 사람들은 어느 것이 한의 실체인지 혼란에 빠졌다.
한이 펼친 것은 소요유운보상의 산형결이었는데 겉보기엔 분신술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산형결은 잔상이 채 사라지기 전에 다시 몸을 움직이는 수법이었다. 가공할만한 속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예전에도 그는 몸이 겹치는 듯한 빠름을 적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보여주는 산형결은 그가 예전의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눈에도 네 개의 분신으로 보일 정도로 움직이는 한의 몸놀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의 시도는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피유웅!"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십여 줄기의 은빛 선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허공에 뜬 그의 분신들을 산산이 으스러뜨렸다. 진대희의 우측에 서 있다가 아직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던 두 명 중 한 명의 손에 5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장난감처럼 생긴 활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 활이 쏘아 낸 짧은 화살들의 가공할 위세는 그 활이 결코 장난감이 아님을 증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잔상이 모두 부서지는 것을 본 진대희와 다른 사람들은 신형이 화살을 맞은 기러기처럼 흩어지며 갑판의 중앙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내려앉았다.
갑판의 중앙에 선 채 다시 주변을 포위하는 적을 바라보던 한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엇다.
"워밍업은 대충 끝난 것 같군."
"흐흐흐, 여유로구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죽고 싶어진 건가?"
한의 무심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진운이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한의 시선이 진운을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진운의 얼굴에 비웃음이 사라졌다. 그의 눈에 타오르는 무서운 살기를 본 것이다. 한은 이미 살기를 일으켰고 그것을 제어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진운은 한의 결심이 갖는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너부터 죽어라!"
한의 입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일갈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진운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고개가 돌아가면서 기이하게도 거울 앞이 아니라면 분명히 보여서는 안 되는 자신의 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그의 시야에 들어온 목 위에는 있어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림과 함께 자신의 상체로부터 하체까지 빠르게 눈앞은 지나갔다.
순간 그는 자신의 목에서 치솟는 시뻘건 피의 기둥을 보았다. 그것이 진운이 본 마지막 장면이엇다. 그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쿵!"
"털석!"
"운아!"
한의 손에 들려 있던 무정도에서 푸른빛이 환상처럼 일어난 직후 진운의 머리가 갑판을 구르고 뒤를 이어 그의 몸이 뒤로 쓰러지고 진대희의 입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은 선후를 분간하기 어려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무정도에서 일어난 푸른 번개는 초현된 천단무상검도의 제일 초 뇌전일격세였다.
무상진결 삼권에 기록되어 있던 천단무상검도는 이름 그대로 초식이 아닌 검의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천단무상검도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던 내용은 빠름에 대한 도리를 적어 놓은 것으로 쾌의 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일정한 초식이 적혀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이 천단무상검도를 수련하는 것은 무상진결의 일이 권의 수법들을 수련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검도의 이론을 근거로 초식을 창안해내야 했던 것이다.
쾌의 장에서 그가 나름대로 깨달아 낸 첫 번째 초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와 같은 기세와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 첫 번째 초식에 뇌전일격세라는 이름을붙였다. 그가 입산 수련한 1년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자신의 고행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의 능력으로도 도세가 일어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표적이 되었던 진운이 저항할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뇌전일격세의 기세와 속도는 불문가지였다.
쓰러지는 진운의 시체를 보며 한은 이를 악물었다. 진운의 죽음은 다카하시와는 경우가 틀렸다. 그는 살의를 가졌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살인 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상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분노와 살기로 불타는 진대희의 채찍이 그의 정면에 검은 장막을 드리우며 날아들고 있었다. 한의 얼굴에 긴장이 스쳤다. 채찍이 다른 것으로 바뀐 것도 아닌데 처음 그를 공격하던 때와 전혀 다른 채찍을 대하는 듯 했다.
"쓰으으윽!"
마치 공기를 칼로 베는 듯 기괴한 소음이 채찍을 따라 울려 퍼졌다. 채찍의 끝에서 흘러나온 1미터 정도의 길이의 서리와도 같은, 흐릿하면서도 예리한 기운이 채찍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검기와도 같은 기운, 편기였다.
진대희는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의 우측에 있던 다께다가 베어오는 일본도에서도 비슷한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일본도에서 일어난 도기는 그 길이가 1.5미터에 달했다. 그가 진대희보다 강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께다와 함께 온 일본인들의 도에서도 길이는 달랐지만 같은 도기가 일어났다.
편과 토에서 일어난 서릿발 같은 기운이 갑판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격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했다.
진대희의 편이 한의 무정도의 흐름을 끊으면 다께다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도가 한의 상중하를 순차적으로 노리며 그어졌다. 서로의 동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위험이닥치면 한의 공세가 이어지지 못하도록 하면서 위험을 직면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의 방어막에 드러난 허를 공격했다.
편과 도의 한복판에서 적들의 공격을 허깨비처럼움직이며 피하던 한의 몸에 상처가 한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린 무정도에서도 푸른빛의 도기가 일어나 적의 병기를 막아갔지만 모든 공격을 방어하지는 못했다. 그는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공격을 막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입산 수련을 하며 그는 천단무상검도의 세 장 중 두 장의 내용을 깨닫고 그 이치에 따라 두 가지 초식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두개의 초식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초식을 완성하기에 1년은 너무 짧았다.
뇌전일격세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연속해서 펼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뇌전일격세를 펼치기 위해서는 극도로 집중된 정신과 내공이 필요했다. 아무리 한이라도 그러한 집중은 움직이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혼전중인 상황에서는 뇌전일격세를 펼칠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한이 뇌전일격세를 펼칠 수 없다고 해서 그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무장도에서 솟구친 2미터에 달하는 도기는 무시무시한속도로 그를 공격하는 자들에게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파탄을 여지없이 찌르고 베었다.
무정도의 움직임은 일정한 법칙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진대희 일행이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속도를 갖고 있었다. 한이 천단무상검도에서 깨달은 빠름의 도리가 그 도세에 담겨 있었다. 진대희 일행이 동료가 없었다면 그들 중 누구도 한의 무정도 아래서 10초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자는 다께다였다. 한 명의 적을 연수 합격한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 한 명의 적이 그들과 대등하게 겨루고 있는 현실이 무사로서의 그의 자부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상황은 명백한 한의 열세였지만 그의 얼굴은 무표정해서 적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도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를 공격하는 네 명의 적이 펼치는 공세는 무서웠다. 하지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적들의 공세를 과감하게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격전에 뛰어들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아직도 둘이 더 있기 때문이다.
활을 가진 자는 시위에 네 자루의 화살을 먹인 채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자세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자의 살기는 한이 누군가의 허를 파고 들려고 할 때마다 강해졌다. 그것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누군가를 벤다면 그의 활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었고 그것이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뒷짐을 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 명이 더 남아 있었다. 아직 그 자는 무기를 꺼내지도 이 전투에 끼어들지도 않고 있었다.
치열한 균형이 무너진 것은 치미는 살기로 시뻘겋게 변한 눈을 한 다께다가 잘 짜여 돌아가던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온 순간이었다.
다께다의 동물적인 감각은 진운을 죽인 한의 수법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본능적으로 눈치 챘다. 폭우처럼 쏟아 붓는 공세 속에서도 그들은 방어를 소홀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이 진운을 죽인 그 가공스러운 공세가 언제 펼쳐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여러 번의 순간을 전력을 다해 회피하는 한의 모습은 그 수법을 아끼며 펼칠 기회를 찾고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이 그 수법을 펼치고 싶어도 펼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다께다가 더 이상 다른 자들과 수치스러운 연수합격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갑판을 차며 뛰어오른 다께다의 손에 쥔 일본도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다. 대신 허공을 유령처럼 부유하며 적들의 공세를 피하고 있던 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출렁이는 도의 바다였다. 바다가 출렁일때마다 살을 에는 듯한 도기의 파도가 그를 덮쳤다.
알본도를 휘두르며 한의 좌우측을 덮치던 다른 두 명의 신형이 뒤에서 무언가가 잡아끄는 긋이 물러났다. 다께다가 펼친 도기의 범위가 너무 넓어 그들조차 사정권에 들었던 것이다.
대신 움직인 것은 진대희와 활을 든 자였다. 다께다의 도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한을 쓸어가자 진대희는 편을 갑판에 깔리듯 휩쓸었다. 채찍은 갑판위에 검은 비단 막을 깔았다. 보기엔 아름다웠지만 딛기만 해도 뼈가 갈라진 비단이었다. 그와 함께 시위를 떠난 십여 줄기에 달하는 은빛의 섬광이 한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성의 비가 내리는 듯했다.
그 삼엄하던 공세 속에서도 변화가 없던 한의 안색이 희게 변했다. 바닷바람에 날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부릅뜬 두 눈이 무섭게 빛났다. 입술을 악문 그의 손에서 무정도의 모습이 사라졌다.
"꽈르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난 것은 무정도가 사라짐과 동시였다. 한의 양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정면을 향해 휘둘러졌다.
연환벽력수에 연환의 이름을 붙은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다. 서른여섯 초식의 연환으로 펼칠수록 그 위력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 연환벽력수의 진수가 망망대해 한복판 고기잡이 배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께다는 자신이 가장 자신하는 회심의 절초, 해천일도류의 기세가 막히는 듯 하더니 역류하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한의 손길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벌어진 일이었다.
전진하는 다께다의 도세가 주춤하는 것과 함께 허공에 떠 있던 한의 신형이
수직으로 뚝 떨어졌다. 그의 머리를 노리던 화살들이 간발의 차이로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미처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한 자루의 화살이 그의 우측머리를 스치며 한 움큼의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갔다. 살덩이가 떨어져 나간 곳에 언뜻 흰 빛이 비쳤다. 뼈였다.
선연한 핏줄기가 허공에 뿌려질 때 한은 진대희의 흑룡편을 걷어차며 도약하고 있었다. 쇳덩이도 잘라낼 수 있는 기운이 서려 있는 흑룡편신을 밟은 그의 오른발의 운동화가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짓이겨진 발바닥 살점과 피가 갑판 위에 흩뿌려다.
세차게 편을 움직이던 진대희의 살기가 젖어 악귀 형상이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측 이마에 난 상처에서 흐른 피로 피투성이로 변한 한의 얼굴이 어느 틈에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무표정한 그 얼굴은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였다.
"으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그러졌다.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난 무정도가 진대희의 명치 왼쪽부터 어깨 끝 부분까지
사선으로 갈라버린 것이 보였던 것이다. 갈라진 선의 사이로 진대희의 뒤에
있는 배의 난간이 보였다. 갈라진 선 사이에는 심장이 있었다. 즉사였다.
"이놈!"
굉렬한 외침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한은 진대희의 몸을 가른 무정도를 채 거두지도 못하고 바닥에 손을 짚으며 무릎을 구부린 낮은 자세로 세 바퀴의 공중제비를 돌았다. 다께다의 도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난자한 것은 찰나의 시간 차였다. 잘려나간 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어졌다. 그와 자리바꿈을 한 다께다의 도가 쉴 틈도 없이 그를 따라붙었다.
낮은 자세 그대로 바닥을 스치며 정면으로 질주하는 그를 향해 다른 일본인 두 명의 칼이 열십자를 이루며 그어졌다. 칼이 다가서기도 전에 서늘한 도기가 먼저 다가서는 형세가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지만 한은 이를 악물며 무정도를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막아!"
한의 의도를 눈치 챈 다께다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갑작스런 다께다의 외침에 한을 향해 칼을 그어대던 두 사내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은 바닥을 짚고 있던 왼손과 발을 동시에 박찼다. 웅크렸던 그의 몸이쭉 펴지며 일본인이 열십 자 형태로 이룬 도기의 하단을 단숨에 통과했다.
"슈우우웅!"
그의 정면에 있는 바람이 기괴한 소음과 함께 갈라지며 돌풍이 미친 듯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그의 등 뒤 옷이 솟구친 피 화살과 함께 터져 나갔다. 그의 척추
양쪽근육이 도기에 뭉텅 잘려 나가며 20여 센티미터에 달하는 피에 절은 근육의 단면이 드러났다.
활에 살을 매긴 채 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자의 얼굴에 독기가 피어올랐다. 피에 절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그를 향해 바람처럼 다가서는 한의 입가에 흰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도기의 막을 통과한 한은 한줄기 폭풍처럼 전진하던 기세가 그대로 담겨 있는 수중의 무정도를 수직으로 그어 올렸다. 그의 손에 들린 무정도에서 선연한 푸른빛의 도기가 정면을 수직으로 쪼개며 하늘로 치솟았다.
활을 들고 서있던 강원 지부 무력 책임자 김명산의 얼굴이 희게 탈색되며 크게 일그러졌다. 피할 틈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한의 진격은 살을 주고 뼈를깎는 식이어서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한이 일본인들에 의해 막힐 것이라는 낙관적인 추측이 그에게서 회피할 시간을 빼앗았다.
"나 혼자 죽지는 않는다!"
김명산의 입에서 절규와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며 그의 전면에 아름다운 은빛의 막이 생겨났다. 김명산이 수중에 남아 있던 열일곱 개의 화살을 한순간 모조리 연사한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수법. 흐르는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는 유성만천이었다.
한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밤하늘의 은하수가 바다 위에 내려온 듯한 장관이었지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처절한 살기는 전율스러울 정도였다. 김명산이 그러한 것처럼 한도 피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께다와 다른 두 명의 일본인이 휘두른 도가 그의 등을 향해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그어진 소리 없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으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선상을 뒤흔들었다.
"이야압!"
김명산의 정면으로 비스듬히 치솟아 오르며 한의 발이 그의 머리를 살짝 밟자, 그의 몸이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한일자로 베어진 채 두쪽이 났다. 그걸 본 다께다의 눈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무정도의 움직임을 따라 허공으로 떠오르던 한의 등 뒤에 다께다의 일본도가 거대한 도기를 뿜어내며 가공할 속도로 떨어졌다.
솟구치던 탄력을 이용해 몸을 반전시키며 무정도를 휘둘러 다께다의 칼을 막아가는 한의 모습은 끔찍했다. 다섯 개의 화살이 그의 전신을 관통하고 있었다. 화살들은 그의 왼발 허벅지와 정강이, 복부와 오른쪽 가슴, 왼쪽 견갑골 아래에 꽂힌 채 그의 움직임을 따라 덜렁거리며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한은 김명산이 날린 열일곱 개의 화살 중 열두 개는 피했지만 다섯개는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다섯 개의 화살마저 피해 버린다면 김명산은 그의 무정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상처는 두렵지 않다.
그는 소요유운보를 극성으로 펼쳐 피할 수 없는 다섯 개의 화살이 자신의 요혈을 적중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섯 개의 화살을 피하지 않는 대가를 김명산에게서 확실하게 받아냈다. 그의 목숨으로.
채ㅡㅡㅡㅡㅡ애ㅡㅡㅡㅡㅡ앵!
한과 다께다의 칼이 부딪치는 소성이 메아리처럼 길게 울려 퍼졌다. 해일처럼 일어난 막대한 도기가 그들의 신형을 덮고 있어서 남은 세 사람의 눈에 그들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께다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는 길게 한번이 났지만 그동안 그들의 칼은 스물아홉 번
부딪쳤고 상대의 몸에 각기 예닐곱 군데의 칼집을 새겨 놓았다. 한을 향해 미친 듯이 도를 휘두르는 다께다의 눈에선 광기마저 느껴졌다.
한국 지회 소속의 네 명 중 세 명이 죽었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허공에 뿌리면서도 마치 상처가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무정도를 휘두르는 한의 모습이 다께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다께다가 전력을 다해 펼치고 있는 도세의 범위는 너무 넓어 다른 사람들은 짧은 순간 합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그들이 다시 도를 휘두른 것은 다께다의 도에서 해일처럼 일어났던 도세가 변화를 위해 잠시 주춤한 순간이었다.
그들과 같은 초고수자들이라 해도 허공에 몸을 띄우고 머무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공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상대에게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체공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초고수자들은 공격 중엔 숨을쉬지 않는다. 호흡이 바뀌는 그 찰나의 순간이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결 중에 숨을 쉬지 않고 내력을 계속 운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홀로 수련 중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지만 대결 중에는 그렇지 않다.
대결 중의 급격한 몸놀림은 산소의 연소를 빠르게 만든다. 초고수자들은 그 연소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일반인보다 좀 더 오랜시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지 숨을 안 쉬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싸움을 지속하기 위해선 몸 안의 탁해진 산소를 신선한 것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게다가 대결이 오래 지속되면 탁해지는 것은 몸 안의 산소만이 아니다. 호흡이 가빠지면 진기의 흐름마저 탁해진다. 그리고 대결 중 원활하지 못한 진기의 흐름은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께다의 도세가 일시 주춤한 것은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 오랜 체공을 위해 탁해진 진기의 흐름을 바꿔 주어야한 했다. 그 순간은 찰나라고 할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다께다의 그 순간적인 멈칫거림이 한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도세를 변화시키는 순간 자신을 덮쳐 온 막강한 한의 도기를 막기 위해 일본도를 휘둘러 자신의 전면에 도막을 만들었던 다께다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앞에서 몸을 양단시킬 듯 가공할 기세로 움직이던 한의 무정도가 거짓말처럼 사리지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안 돼!"
다께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절규와 함께 환상처럼 피어오른 푸른빛의 안개가 선상을 휘어 감았다.
"탕, 탕, 탕, 탕, 탕!"
"으아아악!"
요란한 총성과 어지러운 비명소리가 난무한 것은 푸른빛의 안개가 일어난 것과 거의 동시였다. 선상엔 괴괴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으으으으"
다께다는 무릎을 꿇은 채 수직으로 깊숙이 갈라져 내장이 빠져나오고 있는 복부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감기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감기는 눈을 내버려 둔다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과 함께 한국을 밟았던 도호쿠(동북)지부와 츄부(중부)지부의 무력 책임자. 이노우에와 노부유키가 서 있던 자리를 훑었다. 그의 눈에 통한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들은 허리가 양단된 채 처참한시신이 되어 갑판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억울한 듯 눈을 감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의 주변은 아직도 잘린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갑판 중앙에 서 있는 한을 향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피가 뒤범벅이 되어 혈인(血人)으로 변해 있는 한의오른쪽 어깨에는 일본도가 꽂혀 있었다.
일본도는 쇄골의 절반으로 자르고 한의 등 쪽으로 빠져나가 도신의 절반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비도술로 던진 일본도였다.
한의 오른 손에는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그 두려운 무정도가 들려 있지 않았다.
다께다는 그 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한의 무정도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다께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조타실 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 문에는 한 사람이 두 발을 허공에 띄운 채 붙어 있었다. 그는 이미 죽은 상태였는데 최후의 순간까지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던 충청지부의 무력 책임자 이병두였다. 그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은 그의 양손에 두 자루의 권총을 쥐고 있었는데 숨이 끊어진 후에도 그것들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병두는 문에 붙어 있고 싶어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이 날려 보낸 무정도가 그의 미간을 관통한 후 남은 힘으로 그를 조타실 문 위의 벽에 못을 박듯 박아버렸기 때문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무정도의 날카로움은 쇠를 베어 낼 정도여서 지금 그의 미간은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수직으로 갈라지며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한을 향한 다께다의 시선이 그를 지켜보던 한의 시선과 부딪쳤다. 한의 눈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가 입은 상처는 그가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다께다의 칼은 한의 오른쪽 어깨를 수직으로 15센티미터 이상을 자르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미처 뽑아내지 못한 김명산의 화살 다섯 개도 여전히 그의 몸에 꽂힌 채 그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심한 상처는 그가 마지막에 이병두가 쏜 총탄에 맞은 상처였다.
이병두가 한의 무정도를 당하기 전에 쏜 총탄은 모두 다섯 발이었다. 한은 그중 뒤의 세발은 피했다. 하지만 최초의 두발은 피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던 이병두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지만 그가 설마 총을 꺼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두 발이 쏘아질 때까지 그의 소요유운보를 펼칠 여유가 없었다.
그가 맞은 두 발의 총탄 중 그의 오른쪽 귀를 절반쯤 날려버린 것은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심장의 바로 아래쪽을 관통한 총상은 상황이 달랐다. 총알이 관통한 그의 가슴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던 핏줄기는 이제 더 이상 뿜어낼 핏기가 없는 듯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으 그 마지막 도법의 이름이 뭔가?"
다께다의 입에서 쥐어짜는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분.뢰.전.격.세(分雷電擊勢)!"
한의 대답을 들은 다께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멋진이름이군.흐으흐으.먼저 가지만 곧 따라 올 테니 흐으 지옥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묘한 여운이 남는 미소를 지은 채로 그의 고개가 떨어졌다.
대명회 일본 지회의 관서 지부장이면서 일본 최대의 폭력 조직 야마구찌 구미의 대오야붕 다께다 마루의 최후였다.
분뢰적격세는 천단무상검도의 두 번째 장, 변화의 장에서 한이 깨달아 창안해 낸 초식이었다. 그것은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초식으로 그가 입산 수련 중 태풍 속에서 번개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고 창안한 것이다.
분뢰적격세는 다수를 상대하는 초식이어서 속도는 필연적으로 제 일초인 뇌전일격세보다 느려졌다. 하지만 빠름의 이치가 여전히 숨어 있어서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다께다와 다른 일본인 두 명이 대항할 틈도 없이 당한 것은 분뢰전격세의 위력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 분뢰전격세를 펼치기 위해 한은 이병두가 쏜 최초의 총탄 두 발을 맞아 줄 수밖에 없었다. 다께다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며 한은 천천히 자리에 주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그의 얼굴은 시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희다 못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이 시퍼렇기까지 해서 심장이 약한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심장마지에 걸릴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그는 행상의 고혼이 될 터였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살 수도 있는데 포기한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내상을 치료하기 전에 일단 몸에 박힌 무기를 제거해야 한다. 한은 다께다의 일본도를 먼저 제거했다. 꿰뚫은 것이 아니라 도끼처럼 내리 꽂힌 것이어서 일본도를 제거하는 것은 수월했다.
"천단무상검도를 완성시킬 시간이 있다면"
그는 허벅지와 정강이를 관통한 화살의 중동을 부러뜨려 앞뒤로 화살을 뽑아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대명회의 한국 지부는 나름대로의 세력을 구축하고 안정된 상태였다. 그가 무상진결을 완성하기 위해 폐관한다면 그들의 세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가 무상진결을 완성한다 해도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들도 지금 보다 강해져 있을 테니까.
그는 현금 수송 트럭을 탈취했던 날 이후 현재까지 단 하루도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동안 천단무상강기와 천단무상검도를 완성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 두 가지의 무예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회와의 전쟁에서 그가 살아남을, 그리고 승리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전투에서 그가 확인한 것처럼 그 두 무예는 아직 불완전했다. 예전 조인충과의 겨룸에서 그가 강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기운용에 여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한 이후 그는 회의 무력 책임자 급이라면 한 명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천단무상강기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그는 천단무상강기의 수발(受發, 펼치고 거두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단무상검도처럼.
그 두 무예의 수발이 자유로웠다면 그가 이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까닭도 없었다. 무상문의 진산절예들은 완성되었을 경우 그렇게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상체에 꽂혀있던 화살을 제거하고 막 지혈을 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