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벽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많이 더운 계절 잘 지내시지요?
얼음이 어는 온도는 0도라는 것, 누구나 다 아시지요.
그럼 페인트가 어는 온도는 몇 도인지 아세요?
물론 저도 몰랐지요.
제가 페인트 실린 마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되더군요.
영하 5도랍니다.
콜라라도주의 덴버시 옆 록키산맥의 몇몇 봉우리들은 아직도 눈모자를 쓰고 있을 정도로 그쪽 겨울 추위는 대단합니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이 보통이지요.
그래서 지난겨울엔 콜로라도 일정이 거의 없어지고, 겨울이라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따뜻한 텍사스 남서쪽,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매캘런과 라레도 쪽으로 주로 다녔답니다.
지난 3월경부터 콜로라도 쪽 일이 재개되었고, 맘자리 아재와 전 다시 기쁜 마음으로 콜로라도 산지와 고지 평원길을 동녘에 동이 트면 달리고 서녘에 노을이 물들면 잠을 청하며 그렇게 신나게 달렸습니다. 물론 밤하늘 별보기는 덤으로 따라오는 선물이었구요.
그런 기쁜 날들 중에 두 달에 한 번쯤 맘자리 아재가 힘들어하는 날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장거리 운전 때문에? 추워서? 아팠나?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장거리 운전과 달리기는 아재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 추위는 남쪽 달리며 잊고 살았고, 튼튼한 우리 둘은 아픈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 왜?
짐마차에는 저런 짐들이 스물두어 개 실린답니다.
한 팔레트 위에는 낱개로 15kg쯤 되는 페인트 바스켓 36개가 랩으로 둘둘 말려 3층으로 쌓여있지요.
높이가 일정하면 문제가 없는데, 더러 바스켓의 층수가 낮거나 다른 포장형의 팔레트가 낮은 높이로 실리면 운반 중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급한 커브길이나 경사가 큰길을 달리다 보면 저런 팔레트들이 높이가 낮은 짐이 실린 팔레트 쪽으로 넘어지는 것이지요.
끝부분의 짐들은 안전끈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지만 짐들 안쪽에 높이가 차이나는 그런 짐들이 섞이면 방법이 없습니다.
경험이 많은 선적인부들은 그런 점을 감안해서 높이 낮은 짐들은 빈 팔레트들을 여럿 쌓아서 높이를 맞추어 주는데, 경험이 적은 인부들은 그냥 순서대로 높이와 관계없이 쌓다 보니 그런 문제가 가끔 생기는 거지요.
3주 전쯤, 콜로라도에서 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마차에 실린 짐들 중 네 팔레트가 쓰러져 있었어요. 한 개 15킬로쯤 되는 바스켓 144개를 다시 들어 올려 쌓는 일은 사실 아재의 힘에 부치는 일 같았습니다.
8개 팔레트가 쓰러져있던 첫 경험 때는 마침 가게 일꾼들이 도와주었고, 그다음 한두 개 팔레트가 쓰러져 있을 때는 팔힘센 척하는 아재가 혼자서 잘 수습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여러 번 쉬며 하는 걸 보니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아재는 우울해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유튜브도 잘 안 듣고, 노래도 안 듣고 그저 앞만 보며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예감은 좋지 않았습니다.
설마... 저랑의 인연을?
아재 눈치를 살피며 저도 숨소리 줄여가며 며칠을 달렸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새벽, 콜로라도로 출발하며 아재가 말했습니다.
"새벽아, 아재 다른 일 해야겠다."
"......"
"아니... 같은 운전하는 일인데, 다른 일 말이야."
"......"
"이 회사는 좋거든. 그래서 내가 짐 내려주는 일 말고, 짐이 실린 마차를 끌고 가면 그쪽 인부들이 알아서 짐 내려주는 그런 일을 하는 팀으로 옮겨달라고 회사에 신청을 했어."
아재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 뒤에 이어 나올 말들이 무서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핑 돌 것 같았거든요.
"그제 금요일 회사에서 연락이 왔더라. 팀 이전 결정됐다고. 6월 넷째 주부터 새 일을 하게 됐어."
"......"
"나도 알아. 네가 많이 섭섭해할 줄. 그래도 아재는 이 넓은 대지를 달리는 일 정말 오래 하고 싶거든. 힘이 다할 때까지 달리다가 은퇴하고 싶거든."
"......"
"그쪽 팀으로 가면 새 트럭이 나온다더라..."
소리는 못 내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새벽아... 니 아나? 솔메이트란 말."
미국 말이긴 한데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치는 미리 챘다 하더라도 갑자기 찾아온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긴 힘들었으니까요.
"새벽이 니는 내 솔메이트야.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친구. 사실 친구가 아니라 내 자신이지."
달콤한 말에 속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지만 속에서는 일말의 기대가 일었습니다.
"새벽이도 마음 잘 싸서 아재 마음 보따리에 올려놔라. 아재가 보따리에 잘 싸서 새 트럭에 옮겨 놔 주께. 같이 가자."
맘자리 아재가 유튜브 틀어두고 자주 듣던 법상스님 이야기를 저도 같이 듣다 보니 어렴풋이 마음이라는 그 말뜻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ㅎㅎ 여하튼 헤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눈물 뚝 그치고 하하~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살림이 없어 짐 쌀 것도 별로 없습니다. 몸뚱이만 여기 남겨두고 가면 되니까요.
이번 주는 마지막으로 콜로라도 길을 달려갔다 돌아올 것입니다. 그간 그 길에서 만난 많은 자연 인연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을 겁니다.
이번 주가 끝나면 다음 주부터는 맘자리 아재와 함께 새 몸뚱이에 마음을 담아 동쪽으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까지, 서쪽으로는 캘리포니아주까지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달릴 것입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새 인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여명도 노을도, 산도 숲도 사막도, 밤하늘과 밤별들도, 바람들도... 그 속에 사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들에도...
다음엔 새 길에서 새 안부 전하며 인사드릴게요.
늘 건강하세요~
맘자리 아재 솔메이트 새벽이 올림.
첫댓글 새벽이랑 헤어지시는군요.
맘자리님 글에서 만나는 새벽이가 참
듬직하고 좋았는데 저도 아쉽네요.
지금과 다른 길로 운행하시면
혹여 길에서라도 만날 일도 없겠네요.
새벽아!
그 동안 고마웠다.
새 주인 만나서도 안전 운행하고
맘자리님과의 고운 인연을 오래도록
기억해주길 바래.
그리고 새 팀으로 이전하는 맘자리님의
행운도 빌어 드리렴! ^^
헤어지는 줄 알고 섭섭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새벽이 마음을
제 보따리에 담아가서 새 차에
리부팅하면 안 헤어질 수 있겠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새벽이와 저, 기분좋게 지금 잘 달리고 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지요.
이럴 때 적당하고 좋은 말~
순리에 따르고 또 다음을 기약하는 거에요.
마음자리님과 새벽이에게 Good Luck!!
글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헤어지는 줄 알고 섭섭했는데
헤어지지 않고 같이 계속 함께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이야기였어요. ㅎ
새벽이와 이별?
업종이 바뀌는것이 아니고?실리는 물건이?
알듯 모를듯...
이별 아닙니다. ㅎ
다음 팀은 식품 운반 일이라
실리는 물건이 달라지고
내려주는 일도 제가 할 필요가 없이
창고에서 알아서 싣고 내립니다.
오래 힐 수 있는 일 같습니다.
ㅎㅎㅎ 어쩐지 글이 애매하더라니...
제 표현이 조금 미흡했어요. ㅎ
동화같은 예쁜 글에서 보는 마음자리님 심성은 보들보들해 보이는데 프로필사진은 야성적으로 좀 무서워 보입니다.
옵션이 바뀌어 더 편하게 오래 운행할수 있으셔서 좋으네요.
ㅎㅎ 모처럼 프로필 사진 올려봤습니다.
눈썹이 굵어서 그런가 봅니다. ㅎ
최대한 껏 웃은 사진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