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붓글씨를 문에 붙이다 (사진10장)

[하늘새]

선물받은 붓글씨를 서류봉투 속에 넣어두었더니... 글씨가 누수 습기로 눅눅해져서 평평한 장롱문에 붙였다.

내게 글씨를 선물해주신 스님들은 표구해서 걸어 두라고 주셨겠지만... 표구비가 없어서.   

부처님 불 자를 나란히 두 장을 붙이고 보니 조화롭다. 밤중(새벽2시)에 사진을 찍어서 명암이 어둡다. 

예전에 지장경 불경 한 권을 가는 붓으로 내가 직접 사경해서 쓴 것이다.

  기도 후에 온정성을 모아서 썼더니 글씨 크기가 전부 일정하네. 마치 인쇄체처럼. ^^*

내가 썼다는 것이 지금 보니 믿기지 않네. 나는 평생을 혼자서 공부하는 체질이다.

불경을 쓸 때는 온정신을 모아서 쓰고, 붓글씨이기에 다 쓰도록 오자나 탈자가 안 나야 한다.

글자가 많아서 이틀을 나누어서 썼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쓰라면 가능할까?

그 후에 교통사고로 오른손을 다쳤으니 불가능할 것이다. 오른손등에 나사도 세 개나 들어있으니. 

사고 나기 전에 이 불경을 사경해서, 내가 대형 교통사고에서 5회나 수술 받고도 죽지 않고 살아났을까?

초등학교 때도, 부산여중에 다닐 때도, 필기한 내 노트를 선생님이 가지고 가셔서

반마다 친구들에게 본보기로 돌려보기도 했었다.

"손으로 쓴 것이 마치 인쇄된 교과서 같지? 너희들도 노트 정리할 때 본보아라." 하셨다고.       

지나고 보니 내가 옛날부터 유명했었네. 신문, 방송에도 내 글이 자주 오르고.

기독교방송국 여 아나운서가, 나를 보자 대뜸 내 수필을 직접 낭독하게 하더니

"어쩌면 그리 긴 글을 글자 한 자 안 틀리고 발음도 정확하고, 숨쉬기도 정확하고 목소리도 좋으니?

너는 나중에 방송국 아나운서나 성우가 되면 좋겠구나." 하면서 환한 미소로 칭찬해주었다.    

지금도 신문 방송과도 가깝게 지내지만. 내 운명 속에도 기자, 예술가가 있다.

그래선지 모임장소에서도 별로 말이 없는 내게, 붓글씨를 선뜻 선물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어느 유명 언론가는 <현녀-어질현, 계집녀>란 글씨를 써서 바로 내 모습이라면서 선물해주시기도 했다.

그분은 노인으로 타계하셨지만... 왜 글씨를 쓸 때 그분들이 나를 생각하는 것일까?

글씨 선물을 받고도, 망부석처럼 전혀 반응이 없는 나를 보시고는 후에 서운해 하시기도 했다.

보살은 남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훌륭한 성자들을 영혼으로 성원할 뿐입니다.  

멀리 경기도 용인에 사시는 어르신께서 글씨를 여러 점 보내 주셨다. 그분도 성자형이었다.

내가 천식으로 공해에서 피신을 하고 종종 병이 나는 것을 아시고는 평생 건강하라고 기원해 주셨다.

모아둔 것을 봉투에서 꺼내 보니 여러 분의 글씨가 들어 있었다. 유명 스님들 글씨가 많았지만...

습기를 먹어서 눅눅한 화선지를 빨래처럼 말리고 있다. 천이나 옷보다 마르는 시간이 더디다. 

누수된 습기로 인해서 하얀 화선지에 누런 얼룩도 져 있고.....   

오른쪽 천에 써진 글씨는 내가 딸이 대학시험 치르기 전에 정성으로 불경(팔양경)을 연필로 사경한 것이다.

천에 요철형 굴곡이 있어서, 연필로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써야만 글씨쓰기가 가능했기에.

장식장 안에 넣어두었던 그 글씨도 축축하게 젖었다. 세탁할 수도 없는데... 

낮에는 베란다에 널었다가 밤에는 방안에 널었다가....

봉투에 든 채로 읽어보지도 않고 넣어두었던 글씨 <돌의 독백>을 이제 읽어보니 시의 내용이 간절한 연서였네.

나는 전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그런 시를 내게 쓰다니... 말린 뒤에 태워버려야겠네.

명사라서... 이름은 감추고 내용만 보았다. 누수로 누렇게 얼룩이 져 있다.

그분의 지성은 반듯한 사람으로 성원하고 존경해왔지만... 개인적은 남녀간 친분은 전혀 원치 않았는데...       

이것 외에도 남은 글씨들이 있지만....

아래 노란 타올 덮어둔 것은 내가 즐겨 연주하는 전자피아노. 뚜껑이 없어서 덮개 대신. 건반 아래에

먼지가 들어가면 음질이 나빠지기에.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들어간다.  

2018년 10월 2일 / 하늘새

[하늘새]

오래된 아파트가 누수되는 곳이 있어서 빈 방에 글씨들을 보관하거나 붙일 수 없는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