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코끼리1
지은이: 최양숙
글쓴이의 말
끝나지 않을 사랑의 역사
1992년 6월 28일, 미네소타를 떠나며
2년 간의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 :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편지로만 데이트를 나누는 것)는 이제 끝이다. 몇 시간 후면, 어느 틈엔가 내 남
자가 되어 버린 고국의 사내 앞에 서게 된다. 그를 처음 만나는 순간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2년 동안의 설레임과 원망이 그의 가슴 속으로 고
스란히 파고 들 수 있을까... ... .
나는 문득 2년 전의 어느 가을날 그로부터 받았던 첫 편지를 떠오린다.
안녕하십니까.
고국의 계절은, 시골의 초가 지붕 위에 널어 놓은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되살아나게 하는 가을입니다... .. .
하지만, 초가 지붕 위에서 고추가 익어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힘에 넘치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속에서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영신이라는 이름의 사내.
언니와 형부는 한국에서 중견 기업을 경여하고 있는 비즈니스 맨이라며 그
를 소개해주었었다. 하지만, 은행에 근무하면서 늘 대해왔던 것이 비즈니스 맨이
었던 탓인지, 그말은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있어도 결혼만큼은 고국의 사내
와 해야한다는 생각을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진작 그를 만나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조금만 더 참아달
라고 했다. 스스로 좀더 완벽한 모습을 갖춘 뒤 나를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만남을 더 이상 미루지 않았다. 그가 늘 말해
왔던 완벽한 모습이 갖추어진 것일까.
그보다는, 이번의 만남조차 미루어진다면 우리가 만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
리고 말 것임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신 부모님의 뜻을 거역
하기는 힘들었으리라.
1992년 6월 29일, 여수공항
꿈에 그리던 사내와의 해후. 비행기 안에서 첫인사를 수없이 연습했건만, 나
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1992년 7월 2일, 서울
그와 함께 한 고국에서의 며칠을 가만히 뒤돌아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도 같은 아름다운 순간들. 그러나 장미의 가시처럼, 석연치 않은 무엇인가가 그
아름다움의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수 없다. 그리고 순천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그는 왜 밑도 끝도 없이 마피아 이야기를 꺼냈던 것
일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요?
그는 걱정스러운 듯 물어 오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그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연다.
참, 이틀 후에 중국 출장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 어떻게 하죠?
갑작스런 질문이었지만 나는 '같이 가면 되죠'라고 경쾌하게 대답한다. 일하시
는 데 방해만 안하면 되잖아요... ... .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의 얼굴은 순식간
에 납덩이가 되어 버린다. 내가 무얼잘못하기라도 한 걸까. 나는 너무나도 뜻밖
인 그의 반응에 그저 그의 안색만 살핀다. 그는 숨을한번 몰아쉬고는 힘겹게
입을 연다.
사실은.. ... 이틀 후에 중국출장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교도소로 돌아가야 해
요.
교도소?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입에서 계속 무겁게 흘
러내리는 낯선 낱말들. 양은파의 2인자, 구속, 고문, 계엄군법회의, 사형, 무기징
역, 그리고 6박 7일간의 귀휴... ... .
스스로 완벽한 모습을 갖춘 뒤 나를 맞아들이겠다는 것이 고작 6박 7일의 귀
휴를 얻어내는 것이었던 말인가.
나의 의식이 우주 저멀리 산산이 흩어지는 아득함 속에서 그 동안 나를 짓눌
러 왔던 석연치 않았던 점만이 또렷해져 온다. 그리고 그와함께 언니와 형부의
얼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의식은 컴컴한 터널로 향한다. 나는 정신을 잃
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그때 고문당했던 상처들은 다 아물었나요?
그는 예상 밖의 대답에 놀라움과 감격이 묘하게 뒤섞인 얼굴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내가, 도저히 내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 목소리에 더욱 놀란다.
내가 그토록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던가? 아니면 한 남자 앞에서 품
위를 잃지 않으려는 억지스런 자존심?
운명이란 말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게 운명이라는 것일까. 그래, 이것이 내
사랑의 운명이라면....... 나는 오히려 그를 위로하는 말을 건넨다.
내일 미국에 전화해서 회살 그만두겠어요.
1993년 12월 9일
그의 이름과 내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는 호적등본을 한참 들어야 본다.
강영신의 처 최양숙.
결혼식도 없는, 기약 없는 무기수와 옥중 결혼, 그러나 이제 그누구도 내가
그의 아내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1995년 3월, 부산교도소
접견실의 아크릴 칸막이 저편에 서 있는 그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그러나 나
도 결코 물러설 수없다. 내가 최초로 경험하는 부부 싸움인 셈이다. 사랑을 찾아
혈혈단신으로 차라리 외국 같은 고국에 들어와 가족들도 모르게 기약 없는 남자
와 결혼한 내처지를 생각해서 모든 걸 감싸 주기만했던 그였지만, 자신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모든 걸 바쳐 헌신했던 조양은이라는 사람을이제 그만
기억속에서 지워버리라는 말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15년의 징역살이 끝에 출소한 조양은 씨를,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잠깐 만난적이 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내 남자의 뜻에 의해서였다. 잠깐 동
안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내 남자가그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그는 내 남자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딱히 무어라 할수는 없
지만, 여자의 직감이라고나 할까. 주위사람들로부터 내남자가 그를 죽음의 문턱
에서 구해 낸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그에게서는 내 남자
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는 눈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덤에까지
지고 간다는, 사나이 세계의 의리라는 게 고작 이런 것인가.
1996년 8월 26일
조양은씨가 출고 후 1년 5개월 만에 재구속되었다는 소식으로 TV와 신문이
떠들썩하다.
비록 그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기는 했어도, 나는 그가 이제는 후회없는 삶
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었다.그것은 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남자를 위
해서 였다. 그것만이 내 남자의 기약
없는 징역살이가 아주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따는 유일한 위안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위안마저 썩은 지푸라기로 판명됐고, 나는 이제 그의 재
구속이 내 남자에
게 가져다 줄 악영향을 염려해야 하는 어이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1996년 9월, 서울지검 강력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벌써 고향으로 옮겨 놓고 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미네소타인가 서울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조차 내게는 사
치스럽다.
내남자는 부산교도소에서 서울지검으로 호송되어 연 사흘째 조사를 받고 있
다. 조양은 씨의 재구 속의 배경이 되었던 이른바 '순천교도소 난동사건'과 '골
든벨 살인미수사건'에 대해 내 남자가 관련됐는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나의
우려는 우려로만 그치지 않았다.
나의가슴은 가뭄 끝에 갈라지는 논바닥 같다. 의리라는 명분 아래 모든 죄를
홀로 뒤집어썼던
내 남자가 또다시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바싹 타들
어 가게 한다. 그
가 조금이라도 나를 생각한다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제 그를 잊으라는 내
말에 버럭 고함을
지르던 내 남자의 모습에 나는 불안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내남자는 결국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검찰의 조사를 통해 내 남자
는 이제 더 이상 조양은 씨의 일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 명확히 입증된다.
1996 11월, 부산교도소
서울에 다녀온 후, 나는 청춘을 묻어야 했던 오랜 징역살이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내 남자가 좌절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표
정은 차라리 홀가분해 보인다. 조양은씨의 재구속을 지켜 보면서 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에 나가서도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것을 내 남자는
깨닫고 있는 듯하다.
요즘 들어, 그는 면회 때마다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리는 일이
자주 되풀이된다. 무슨일이냐고 물어도 다음에 말해 주겠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나는 그의 표정으로 보아 나쁜 일은 아닐거라 짐작할 뿐, 더 캐묻지는 않는다.
그러기를 한달 남짓 하고서야 그는 드디어 입을 연다.
사실은... ... ... .
나는 그가 내게 비즈니스 맨이 아니라 무기수임을 처음 털어 놓을 때처럼 긴
장하며 그의 얼굴을살핀다.
난 어쩌면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의 불행한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당신
의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주고 싶었소. 그런데 그게 백마디 천 마디 말로만 해선
아무 소용이 없으니... ... .
하여, 나는 출소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 나갈 방법을 찾기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감중인 처지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궁리 끝에 그는 평소 생활
속에서 경험했던 불편한 점들을 개선할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특허
출원하는 일을 진행해 왔고, 이미 스무 건 가까운 특허를 출원해 놓았다는 것
이다. 내게 진작 그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가장 심혈을 쏟은 전기용 접기에
관한 아이디어 정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한꺼번에 이야기해 줄려고 그 동안 참
아 왔다는 것이다.
유레카(Eureka)!
나는 내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감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오랜 미국 생활
탓에 영어가 먼저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르키메데스가 금관의 순도 측정법을 발견해 내고 기뻐 지른 소리예요. 우
리말로는 '그래 이거다!'라는 뜻이죠.
기술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는 내 남자가 이루어낸 것들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걸음 한걸음씩 목표를 향해 다
가가는 삶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그자체가 내게는 아르키메데스의 순도 측정법보
다 훨씬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중에 용접기를 상품화하게 되면 '유레카'라는 상표를 붙이는 게 좋겠
다는 내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교도소 정문을 나선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몇
번이나 외쳐 본다.
유레카! 유레카!
1997년 4월 10일, L.A.로 향하는 기내에서
미네소타는 아니지만 어쨌든 미국 땅을 밟게 되는 것은 내 남자를 만나러 고
국을 찾은 뒤 꼭 5년 만의 일이다. 그 동안 부모님과 형제들이 견딜 수 없이 그
리워질 때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내 남자의 결혼을 인정받을 수 있
게 되기 전에는 절대 밟지 않으리라며 입술을 깨물었던 미국 땅이다.
완벽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겠다던 내 남자의 소망은 소망으로 그쳤지만, 그
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에는 미국에 들어가지 않겠노라는 내결심만은
지켜 주었다. 그가 고안해 낸 전기용접기는 생각보다 훨씬 이르게 상품화가 진
행되고 있다. 국외의 한 회사가 독점 생산하기로 하여 이미 계약을 끝마친 상태
다. 그리고 이제 닷새 후면, L.A. 에서 열리게 될 '미국 세계용접기자재 박람회'
에 내 남자를 대신해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미 중국, 멕시코, 인도 등의 업체
와 합작 생산을 위한 상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번의
박람회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오직 내 남자와 함께 할 날이 어서 다가오는 것뿐이었다.
법조계의 전문가들이 7년정도가 적정 형량이라고 말하는 죄를 짓고도 '재수없게'
계엄 군법회의의 서슬에 걸려 삶과 죽음을 수없이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아래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8년이나 감옥에 세월을 묻어야
했던 내 남자, 이제 자신의 지난 날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던가를 뼈저리게
깨닫고 밝은 삶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남자를 더 이상 가두어 둔다는 것
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는다. 내가 비즈니스맨이라
고 소개받았던 그에게서 부귀영화를 기대했더라면 그와의 역사는 5년 전의 짧은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아니였기에 나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사랑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라고.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어 가는 것이 느껴지며 이제 곧 L.A. 공항에 도착하리라
는 안내 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진다. 무심코 내다본 창 밖으로 푸른 바닷가 끝
없이 펼쳐져 있다. 나로하여금 생각보다 일찍 미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내 남자의 힘만은 아니었다. 손으로 꼽을 수 없는 많은 분들이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내게 힘이 되어 주셨다. 드넓고 푸른 태평양 위에 고마운 이름
들을 하나씩 써 본다. 동일수 님, 한원식 님, 김태진 님, 강 상무 님, 종수 스님,
정각 스님, 장무란 님, 제해철 님... ... 그리고 현재 미국에 계시는 연세 많으신
아버님, 어머님께 제일 미안하고, 내가 성공할 때가지 오래 사시기 바라며, 모든
가족들이 나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받은 아픔과 고통에 대해 미안함을 이 기회
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다.
또,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주시기로 한 도서출판 벽호의 민숙자
사장님과 더위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편집자 분들게 감사드린다.
나는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저 푸른 바다와도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온갖
물줄기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는 바다----- 나와 내 남자로 인해 상처를
받은, 그리고 나와 내 남자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하지만, 그들의 명예를
위해 실제 이름은 거론할 수 없다. 조양은 씨의 경우에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알
고 있을 이름이기에 실명을 거론했을 뿐 그의 명예에 상처를 주고자 하는 의도
는 손톱만큼도 없다.)과 그렇게 어울리고 싶다. 랭보의 시구처럼, 상처없는 영혼
이 어디 있으랴.
1997.7
최양숙
18년 동안 냉장고에 갇혀 있는 푸른 코끼리
1.비정의 거리
기억이란 무용(武勇)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위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스
탕달----
비정의거리 / 차례
글쓴이의 말 / 3
프롤로그 / 17
1 통금에 쫓기며 / 24
2 공포의 검찰청 / 32
3 운명의 만남 / 49
4 보복 작전 / 63
5 자유보다도 달콤한 복종 / 86
6 무덤까지 지고 갈 의리 / 99
7 임기응변의 명수 / 111
8 배신의 대가(代價) / 131
9 가혹한 고문 / 175
10 1979년 10월 / 197
11 갱목 사업과 동료와의 갈등 / 210
12 아버지의 임종 / 247
13 비정의 도시 / 285
프롤로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은 방법은 ----
한 때 우스갯소리로 이문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답이 '먼저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 안으로 밀어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느다.'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만일, 그 문제가 1980년 5월에 유행했더라면 그답은 무엇이었을
까? '코끼리를 대검으로 난자해서 냉장고 안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삼청 교육'
이라는 마녀 사냥이 휩쓸고 다니던 무렵이었다면? '코끼리에게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켜 몸집을 줄인 다음, 냉장고 안으로 선착순!
하고 외친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87년 봄이었다면? '코끼리를 탁, 하고 치면
코끼리가 억, 하고 냉장고 안으로 들어간다.' ... ...
아무려나, 이 글은 18년째 냉장고에 갇혀 있는 한 코끼리의 이야기 이다.
*
이제 18년째의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영신에게 1996년 8월 26일은 그가 18년
동안 헤쳐 온 격한 풍랑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는 듯한 하루였다.
조간신문에서부터 터져 나온 조양은의 구속 기사. 그리고 오전에 있은 전두환
에 대한 사형 선고. 이들 두 가지 사건은 서로 기묘하게 얽혀 들면서 영신의 세
월을 18년 전으로 디돌려 놓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그의
귓전에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목소리.
"피고인 강영신을 사형에... ..."
꿈속에서라도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목소리.
*
교도소의 지붕과 벽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도 그 뜨거운 열기를 이제 자신의
추억으로 접으며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바람곁엔 계절
의 변화를 예고하는 서늘함이 배어들었고, 패잔병처럼 초라하게 남은 8월의 마
지막 며칠은 달력이 어서 넘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영신은 교도소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언제나 상반된 느낌을 갖고 있었
다. 그 지리한 질곡의 세월이 그저 하룻밤의 악몽처럼 훌쩍 스쳐 지나가 버렸으
면 하고 바라면서도, 청춘을 시퍼런수의에 실려 보내고 어느 틈에 사십줄에 접
어들어 머리에 세월의 잔설이 희끗희끗 내려앉은 그로서는 질곡의 세월조차 바
로 자신의 것이었기에 세월의 흐름이 못내 아쉽기도 했던 것이다.
일 주일에 한 번 꼴로 그를 찾는 아내 수영을 대할때도 그와 마찬가지로 상반
된 감정이 서로 맞물렸다. 아내가 면회를 오는 날이면 마치 소풍날 아침의 어린
아이처럼 마음이 들뜨고,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반가움을 억누르지
못하면서도 가슴 한 귀퉁이에서 고개를 쳐드는 무력감과 은밀하고도 처절한 혈
투를 벌여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처럼 가슴이 엉망으로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느껴지는 것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오늘 그를 찾은 아내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일주일 전의 면회때, 수영은 전두환, 노태우 두전직 대통령의 선고공판에 다녀
오겠노라고 했었다. 가서, 말도 되지 않는 재판 절차를 통해 남편을 이렇게 만들
어 놓은 그들의 추악한 권력에 대해 법의 철퇴가 내려지는 현장을 두눈을 똑똑
히 담아 오겠다는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겠느냐는 영신의 만류에도 그녀
는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었다.
수영이 그들의 선고 공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
다. 그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벌써 18년째 징역살이를 하고있는 남편의 처지에
유리한 영향을 줄는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1980년 2월 세칭
'양은파 사거'으로 구속된 후 계엄군법회의에 넘겨져 가혹한 구타와 고문 끝에,
실제 혐의 내용에 비해 턱없이 과중한 형벌을 받아야 했던 영신이었기에 두 전
직 대통령에 대한 유죄 판결은 곧 영신에 대한 구제의 길과 연결될 수 있지 않
겠는가 ... ... 그런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동안 1980년 계엄군법회의를 통해 재판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몇
차례에 걸쳐 사면, 복권 등의 구제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조직 폭력 관련자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 앞에서 무너지려는 가슴을 부여
잡아야 했던 수영은, 전두환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면 이전과는 뭔가 상황
이 달라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수영은 하필 선고 공판일 아침부터 터져 나온 양은의 재구속 뉴스에 그
실낱 같은 희망마저 물거품처럼 꺼져 버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5년
동안의 감옥살이와 출소한 지 1년 5개월 만의 재구속. 더구나 사기와 단순 폭력
이라는 표면상의 구속 사유는 더 큰 혐의를 캐기 위한 신병 확보 조치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중형 선고가 영신에게 가져
올 유리한 영향을 가늠해 보는 것은 고사하고 양은의 구속이 '양은파 2인자'인
영신에게 불러 올 회오리를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15년의 징역
살이 끝에 출소한 지 1년 5개월 만에 재구속된 양은의 운명에서 영신도 그리 멀
리 떨어져 있찌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서방파의 김태산과는 다르다'고 인터뷰에서 힘주어 말했던 양은이 결국
김태산의 길을 따라가고 만 것처럼.
"알고 계시죠?"
"... ... "
영신은 그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아내의 질문이 어느 쪽을
가리키는 것일까를 생각하면서.
"신문을 보니까, 그사람이 출소한 뒤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해서 주먹세계
를 미화시킨 점이 검찰의 신경을 거스른 거래요."
"그렇게 났더군."
"하지만, 주먹세계를 미화시켰다기보다는 자기 자신ㅇ르 미화시켰다는 편이 정
확하지 않을까요?"
수영은 양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과 영화에서 영신을 사실보다 과장해서
지극히 잔인 무도하게 묘사한 반면 자기 자신은 관대한 보스로서 부각시키려 했
던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 그 얘긴 그만 둡시다."
" 금나 둘 이야기가 아니예요. 이젠 절대로 딴 생각하시면 안 돼요. 희생은 한
번으로 족해요. 아니, 족한게 아니라 아까워 주겠어요. 영신 씬 그 사람과의 의
리를 무덤에까지 지고 간다고 하셨지만, 직접 관련도 없는 일을 또다시 뒤집어
쓰시려 한다면 전 정말 미국으로 달아나 버리겠어요. 명심하셔야 해요."
수영은 격한 오조로 말을 뱉어냈다. 그녀가 말한 '직접 관련도 없는 일'이란
이른바 '순천교도소 난동 사건'과 '골든벨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순천교도
소 난동 사건'은 당시 순천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양은이 갑작스런 이감에 불
만을 품고 재소자를 규합하여 난동을 일으킨 사건이었고, '골든벨 사건'은 1980
년 2월 구속 당시 양은과 영신 등을 검찰에 밀고했던 동료 박창세를, 후배들을
사주하여 박창세가 운영하는 서울 독산동의 골든벨 스탠드바 앞 대로상에서 난
자하여 그를 거의 죽었다 살아나게 했던 사건이었다. 영신은 '순천교도소 난동
사건' 당시 순천교도소에서 전 재조자를 대표하는 총반장의 위치에 있었고, 또한
배신자를 어떤 식으로든 응징하고 마는 그의 성격 때문에그 두 개의 사건 모두
에서 의심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신은 최근들어 그 두 개의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기 시
작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양은의 재구속 역시 시간 문제라고 짐작하고 있
던 터였다.
신문에서는 양은이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른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소
후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도 의심의 눈초리가 거둬지지 않을 텐데, 가뜩
이나 소설이네, 영화네 하며 기관의 신경을 잔뜩 거슬러 놓았을 뿐만 아니라, 공
소시효도 지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 해 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떠벌여댔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문제는 그 불똥이 언제 어떻게 영신에게 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것 역시 시간문제일 터였다.
아내는 면회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절대로 딴 생각을 하시면 안돼요.'라는 말
을, 마치 무슨 주문이라도 외우듯 되풀이하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놓았다. 영신은 역시 걱정 말라는 말을 되풀이 했지만 아내의 눈동자에 가
득한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접견실을 나서는 영신의 눈앞에는 꼭 20년 전인 1976년 봄 양은을 처음 만나
던 순간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가슴에 울려 퍼지던 알 수 없는 떨림.
그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던 다짐.
의리.
영신은 그 두 개의 음절을, 마치 비석에 새겨진 자신의 묘비명을 손가락 끝으
로 매만져 보기라도 하는 듯한 심정으로 천천히 되뇌어 보았다. 무덤까지라도
지고 가려 했던 그 의리.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 오는, 그를 비웃는 메마른 목소
리.
의리라는 두 글자 등에 지며는
바로라는 두 글자 따라 붙는다.
*
힘없이 돌아서던 아내의 모습은 영신의 두눈동자에 깊속이 박힌 채 좀처럼 지
워지지 않았다. 하루의 마지막 인원 점검이 끝나고 저녘 음악 방송이 흐르기 시
작할때가지도 그러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에 대해 그것이 운명적인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영신과 수영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적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 소수 민족이라는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맑고
꿋꿋하게 성장해 왔던 순수한 여인과 조직 폭력계의 거물로서 무기징역을 받아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한 사내의 만남, 더구나 상대가 언제 바깥 구경을 할지도
모를 무기수임에도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지기로 결심하고 결혼까
지 감행했던 그녀와의 사랑을 어찌 운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사동 복도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에서는 듀엣 '해바라기'의 노래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탓이었을까, 헝클어졌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영신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허무한 이 한밤에
잠못 이루고 홀로 앉아
지나가 버린 일을 헤아려 보네
가슴 아픈 일을 헤아려 보네
우우, 내 모습 그대로
우우, 내 진실 하나로
지금까지 지금까지 살아가는데
나는 나는 철 없는 나는
자유인인가
해바라기, '나는 자유인인가'
1. 통금에 쫓기며
망각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었다. 한 시대를 주물러 온 독재자의 갑작스런 죽
음 직후 마치 제 부모의 상을 당하기라도 한 듯 한동안 집단 히스테리를 보였던
사람들은 그로부터 서너 달이 지난 지금, 언제 그런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독재자의 죽음으로 조금은 다른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기대해 보기도 하던 이들은 정치적 상황이 불투명해지자, 남북이 팽팽하
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자유쯤은 유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또 다른 군부의 등장을 당연시하는 눈치였다.
영신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지난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탓에 머릿속이 먼지로 꽉 들어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먼지구덩이 속에서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좌충우돌 하며 그를 더욱 깊은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있
었다. 그것은 엊저녁 '투모로우'로 찾아온 이동표가 그에게 던진 말들이었다. 이
동표는 영신의 고향 선배로, 중앙정보부의 대간첩 작전을 수행하는 부서에서 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상황이 지극히 좋지 않아. 당분간 몇 달 동안이라도 어디 조용한 시골에
내려가 있다가 좀 잠잠해지면 올라오는 게 좋을 것 같으이."
"아니 형님, 나가 지난번에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얼마 되도 않은
디, 뭔 죄가 있어서 상황이 좋고 안좋고 하겠습니까?"
영신이 뜨악한 표정으로 툴툴거렸지만 이동표는 심각한 얼굴로 도리지를 했
다.
"이 사람, 나가 왜 자네헌티 헛소리를 하겄어? 이건 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
그의 말은, 이를테면 대대적인 '후리까리(일본어로 된 은어로서'소탕작전'의
뜻)'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영신에게 꼭 자기 말대로 하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거듭한 뒤, 영신으로부터 그렇게 하겠노라는 답을 듣고 나서야 자
리를 떴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영신의 시야가 맑아졌다가 뿌예지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
다. 잠을 설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영신은 손등으로 두눈을 비비고
는 눈에 힘을 주어 정면을 주시했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을 어제 이동표에게서 처음들었다면, 그가 아무리 심각
한 얼굴로 소리죽여 이야기했다 해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 영신은 평소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기관 쪽의 몇몇 사람
들로부터 비슷한 충고를 계속 받아오고 있었기에 그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일이
아니었다. 사실, 엊저녁 이동표가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 말에 당황하는 꼴
을 보이고 싶지 않아 별 관심 없는 척 했을뿐, 속으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영신의 녹청색 스포츠카는 호텔 현관앞에서 부드럽게 멈추었다. 도어맨에게
자동차 키를 맡기고 거피ㅅ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나와있던 경석, 수복, 상진 세
명의 아우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꺾었다. 영신은 아무들의 얼
굴이 한결같이 굳어져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들이락도 있는 거여? 아침부터 왜 그리 죽상들을 하고 그러는 거여?"
영신이 핀잔을 놓자, 상진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형님, 소문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역시 그랬군... ... . 영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후리까리말입니다."
"후리까리?"
아우의 입에서마저 그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영신은 갑작이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 되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후리까리'가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
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가자!"
영신은 아무들을 모두 차에 태우고 삼각지의 집으로 달렸다. 속도와 승차감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았던 그의 차가 갑자기 느림보 거북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
이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평온하기만 한거리는 때 아닌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
린 영신을 더욱 침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개새끼들, 이루코 조용허기만 헌디 후
리까리는 뭔 후리까리여... ....
"뭔 일 있대야?"
집에서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허둥대며 다시 집으로 들어서는 영신을 바라보
는 어머니의 눈빛과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마침 연인의 집을 찾은 세화의 말
없는 눈빛도 불안감으로 짙게 물들었다. 영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려 애
쓰며,이가 어긋물려 잘 열리지 않는 지퍼를 억지로 열때처럼 입술을 힙겹게 움
직였다.
"엄니, 나 며칠 지방 출장 좀 다녀와야 쓰겄소."
"또 갑작시리 뭔 출장이여?"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에 전혀 뜻하지
않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45일 동안 수감돼 있을 때에도 양은은 영신의 어
머니에게 제주도 출장을 보냈노라고 둘러댔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ㅇ구만요."
영신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그가 옷가지를
챙기는 동안 두 여인의 불안한 시선은 그의 등 뒤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걸릴 모양이니까, 나 없는 동안 자주 들러서 어머니 말동무도 해 드리고
그래."
"... ... 알았어요."
몇 벌의 옷을 옷걸이째로 손에 든 영신이 세화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뭔가
물어보고 싶어하는 듯한 눈치를 보이다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영신이 철
창 신세를 지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생이별의 고통 앞에 선 그녀.
영신은 세화의 손을 살짝 잡아 주고 나서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는 도망치듯
대문을 빠져 나왔다.
"몸조심 허그라. 연락이라도 자주 하고... ... ."
등뒤에서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영신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입으로만 대답을 했다. 옷가지를 손에 든 영신이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
자, 골목 입구에 세워 둔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우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와 옷을 받아 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영신은 백미러 속에 어른거리고 있는 세화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영신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돌아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백
미러 속에서 얼른 그녀의 모습을 지워내려는 듯이 거칠게 가속 페달을 밟아 댔
다.
영신은 신촌으로 차를 몰았다. 신촌의 모 호텔에서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선배에게 맡겨 두었던 돈을 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피해 있으려면 돈이 필요
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자신뿐만 아니라 아우들까지 챙겨 주
어야 했다. 아무리 제가 맡겨 놓은 돈을 찾으려는 것이라 해도 이렇게 불쑥 찾
아가기가 여간 껄끄럽지 않았으나 일 년이면 삼백육십오일 현금이 돌아가는 오
락실이 었기에 돈을 돌려받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지금은 체면 따위를
찾을때가 분명히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영신의 일행이 선배의 오락실에 도착했을 때 선배는 자리에 없었다.
하긴, 급한 것은 영신쪽이었지 그가 아니었다. 오락실 영업을 하는 그가 오전에
사무실에 나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영신은 어쩔 수 없이 선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오락실 근처에서 시간을 죽일 도리밖에 없었다.
그가 선배와 얼글을 마주할 수있었던 것은 오후 열시가 다되어 갈 무렵이었
다. 영신은 그를 기다리느라 꼬박하루를 허비하다시피 한 터여서 긴 말을 할 여
유가 없었다. 이 계통에서 오래 굴러 눈치가 빤한 선배역시 그의 말을 아껴 주
었다.
"안그래도 자네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지."
선배는 직원을 불러 영신이 맡겨 놓은 금액을 현찰로 준비해서 가져오도록 지
시한 뒤, 자기도 '후리까리'의 소문을 들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역시
피해 있어야 할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겠노라고 덧붙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지랄이니, 이거야 원... ...."
이미 사십줄이 넘은 선배. 영신이 그에게서 자신이 박정희 시대에 '후리까리'
에 걸려들어 '국토건설단'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 나왔노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해 낸 것과 지시를 받고 나갔던 직원이 검은색 비닐 봉지에 싸인 것ㅇ
르 들고 안으로 들어선 것은 거의 동시였다.
"확인해 보겠나?"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영신은 그렇게 반문하며, 마치 돈 뭉치를 빼앗아 들기라도 하듯 거머쥐었다.
"어서 가 보게. 자네 얼굴 보니, 커피 한 잔 하자 소리도 못하겠구만, 어딜 가
든 몸 조심하게."
"예, 형님도 몸조심하십시오."
영신은 그와 짧은 악수를 나누고 오락실을 빠져 나왔다. 오락실 맞은 편 잡화
점에 설치된 공중 전화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공중전
화 앞으로 다가갔다.
"아, 나 강 부장인데 최 사장 좀 바꿔라."
영신이 돌린 것은 조선호텔 나이트클럽 '투모로우'의 전화번호였다. 잠시후 최사
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나 강부장이요, 일이 좀 생겨서 당분간 가게에 못 나갈 거 같소, 그리 알고
대처하시오."
"알았소. 몸이나 조심하고, 무슨 일 있거든 바로바로 연락하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테니... ..."
영신은 최사장과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아우들이 기다리고 있는 다방안으로 들
어섰다. 오랜 기다림에 따분해 하던 아우들은 그가 나타나자 반색을 했다.
"일은 다 보셨습니까 형님?"
"그래."
영신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는 아우들
에게 적당한 금액을 나누어 주고나서 나머지는 자신의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각자가 있을 만한 곳을 잘 생각해 봐라. 상황이 언제 풀릴지 모르니 돈은 될
수 있는 한 아껴 쓰고... ..."
영신은 어지간하면 아우들과 같이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럿이
몰려다닌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경석이 물었다. 영신은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양은이 그 날 저녁에 백남호텔
에 나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일단 백남으로 다 같이 가자."
피할 때 피하더라도 양은은 꼭 만나야 했다. 양은은 조선호텔 나이트클럽 '투
모로우' 뿐만 아니라 백남호텔 나이트 클럽에도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클럽 동
료인 박창세와 안종섭이 영업부장과 연예부장으로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백남호텔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그의 생각과는 달리, 영
신은 그곳에서도 양은을 만나지 못했다 .그도 아마 '후리까리'의 소문 때문에 그
곳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박창세와 안종섭의 모습도 역시 보이지 않았
다.
영신은 양은이가 있을만하다 싶은 몇 군데에 전화를 해 보지만 끝내 그와의
통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일단 압구정동에 있는 양은의 아
파트로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까지는 이십분도 채 남지
않았다. 통금에 걸리지 않으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저희도 그만 가 보겠습니다. 형님."
상진을 제외한 두명의 아우들이 한쪽으로 비켜 서며 말했다.
"그럼, 일단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각별히 몸조심들 허야 한다."
"예, 형님. 형님도 몸조심하십시오."
"그래."
영신은 아무들의 손을 차례로 잡아 주었다. 그들이 맞잡은 손끝으로, 곧 다시 만
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한마음이 되어 흘렀다.
"형님, 통금에 걸리시겠습니다. 그만 서두르십시오."
경석이 통금의 임박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온국민을 시간에 쫓겨 허둥대
는 신데렐라로 만들어 버리는 통금이 오늘처럼 갑갑하게 가슴을 욱죄어오는 것
도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통금에 별 구애를 받지 않고 살
아왔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영신은 상진 하나만을 차에 태운
채 압구정동을 향해 내달렸다.
첫댓글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