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유종인-
월요일 아파트 재활용 마대자루를 비우고
슈퍼에서 라면 두 봉을 사 자루에 담아 오니,
뱃구레가 허우룩한 자루는
이내 든든해진다
역량은
저 달,
달은 제 몸을 헐어
달은 제 속을 비워
주머니를 찬다
오오, 자루를 가지는 뱃구레,
빈 데가 있으니
방문(訪問)이 큰 바람들
어느새 저문 들판을 휘휘
큰 사랑처럼 싸잡아 온다
그믐에서 보름까지 가는
기나긴 자루 사냥,
정안수에 풀린 둥근 달빛
기도는 잘 맺혀야
내일이 모레로 글피로 그글피로 이어 사느니
가끔은 자루를 고쳐 잡는 시여,
빈 자루를 수갑처럼 옆구리에 차고
채울까 하고 비워 온다
다 비웠는가 하고 뒤적이니
다 못 버린 구린내,
그러고도 아직 내 자루에서 떨려 나오지 않는
저 천둥의 적막, 그 여자의 귓속말 같은 연애
자루를 비우고 자루를 털며
이미 비운 옛것을
다시 자루에 담는 시여
숫제 보쌈을 해볼까
시는 내가 죽였다 부고를 낼까
귀퉁이를 빛낼까 사랑은
아찔한 보쌈이지만 한 가락만 담긴다
가락 하나 오래 뜯어서
어이, 저
달이 가만 기운다 다시
마음 자루가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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