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eartless homeland.Gregg Chenoweth&Tricia Miller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숨고, 도망치기 바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재학중인 북한 여성은 “만일 내가 말하면 가족들이 해를 입을까 두렵다”고 설명한다.
430명 가량의 탈북자들이 지난 7월, 동남아 모국가로부터 서울로 왔다. 언론들은 최대의 탈북자 입국이라고 했다. 한국정부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탈북자를 받아들이는데 신중하지만, 관리들은 이들 탈북자들을 위한 길을 열어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수는 보도에 의하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 1285명에 달했는데, 2002년에 1140명, 2001년에 583명이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인은 30명 가량이다.
누구도 확실히 알진 못하지만, 30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중국에 은신해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한의 동맹인 중국은 이들 탈북자를 추적하려고 제보자에게 5백위안(미화 62달러)을 지불한다.
탈북자 지원 단체들에 의하면, 중국은 한 달에 5천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는데, 가끔 손목과 코를 꿰어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은 우리를 마구 팼다.”라고 2002년 송환됐던 탈북자는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에 말했다. “일부는 머리가 깨졌고, 이가 부러졌으며, 다리와 팔을 심하게 다쳐 다신 걷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다.”
북한과의 직접적인 정치적 대결을 피하려고, 일본 같은 지역의 민주국가(regional democratic countries)들은 중국주재 자국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제3국으로 넘긴다. 유럽 난민 회의에 의하면, 1982년부터 주중 일본 대사관을 통해 일본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주민의 수는 약 3천명이다. 작년에만, 353명이 신청했고, 12명만 망명이 허용되었다.
2002년 5월 일단의 탈북자들이 중국 셴양에 있는 일본 영사관 문을 부수고 진입했을 때 정치적 긴장이 드러났다. 그 중 일부는 들어갔으나, 중국 경찰은 영사 관계에 관한 1963년 비에나 협약을 위반해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 2명의 여성 및 어린이를 끌고 나오며 폭행을 가했다. 또 다른 두 명은 남성들이었는데, 들어간 지 10분도 안돼 중국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왔다.
그 모든 과정이 한국 언론에 의해 촬영돼 아시아 전역에 방송되었다. 탈출을 면밀히 기획하는걸 도운 비정부기구가 언론에 알렸다. 그 장면은 “서울 트레인(Seoul Train)이란 다큐멘터리 필름에 담겼으며, 올 가을 공개될 예정이다.(www.seoultrain.com)
그 전에, 세 명의 탈북자들이 셴양 주재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한국으로 갔다. 두 명의 북한인이 베이징 주재 캐나다 대사관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3월에, 25명의 탈북자들이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했으며, 모두 비정부기구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탈북자들이 곧바로 휴전선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일은 드물다. 남북을 갈라놓은 150마일의 비무장 지대에는 1백만개의 지뢰가 매설돼있으며, 관측소간에 철책이 설치돼있으며, 남북 양측에 대략 2백만의 병력이 있다.
북한 주민들은 세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탈북을 감행한다.
기아. 비록 북한 공산 정권은 숫자를 22만으로 줄였지만, 서울의 일간지 코리아 헤럴드에 의하면, 2천2백만 북한 인구의 10퍼센트(2백2십만)가 굶어 죽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한가지 예를 보고했다. 한 북한 부부가 굶주리는 두 자녀(2세,4세)를 데리고 11월의 추운 날씨에 탈북해 돈을 벌려고 벌채를 했다. 그들은 중국에 있는 기독교 교회를 발견한 후 굶주림과 추방이란 이중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교회를 통해 그들은 기독교가 북한 공산 정권의 말처럼 “무시무시한 종교”가 아니란걸 발견했다.
경제 침체. 북한의 경작지는 국내 총생산이 세계 15위인 한국과 비슷함에도, 1990년대 중반의 혹독한 기아에서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한국 행정자치부의 2003년 보고서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음식쓰레기량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라는 거다.
북한은 또한 심각한 의료지원 부족을 겪고 있다. 북한 병원에서 18개월간 근무한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 박사는 어린이들이 외과용 메스나 항생제 없이 수술을 받으며 환자들은 맥주병에 링거 주사액을 넣어 사용한다고 순교자의 소리(Voice of Martyrs)에 얘기했다.
잔혹함. 1987년 제정된 북한 형법 47조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7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진다. 북한 인권을 위한 미국위원회에 의하면 탈북했다 잡히거나 자진 귀국한 15만명 이상이 그런 “교화소”에 있다.
그 조항은 계속해서 모호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다. “조국반역행위를 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한국행을 택하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만이 아니다. 작년에 약 30명의 조선족(ethnic Koreans native to China)이 서울에서 12주의 헤어 디자이너 훈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교육 비자를 얻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북한은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복음이 가장 필요한 북한과 접하고 있는 한국은 복음의 열정이 가득찬 나라 중 하나이나, 남북 사이의 벽은 거대하다.
역사상 가장 큰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80만명의 교인을 자랑한다. 680개의 지교회가 있으며, 대학과 50만부를 발행하는 일간신문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며, 매일, 매시간 버스가 기도의 전사들을 실어나르는 기도원도 있다.
한국에서 장로교인들은 7백만명으로 번성한다. 서울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 두 곳은 각각 3만5천명과 2만명이 매주 예배를 드린다.
나사렛 교회(The Church of Nazarene)의 교구중 가장 큰 곳이 한국으로, 전국에 259개의 교회가 있다. 나사렛 교회측은 대학과 신학교를 운영하며 수십 군데의 고아원을 돕고 있다. 나사렛 교회는 매년 8퍼센트씩 성장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할 수 있는데까지 탈북자들에게 다가간다. 장로교회(미국)소속으로 1972년부터 한국에 있는 미국 태생의 아트 킨슬러(Art Kinsler) 선교사는 소속교단이 과거 몆 년간 한국에 온 탈북자 “5천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국 나사렛 교회의 스티븐 봉 이(Stephen Bong Lee)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캘리포니아의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범을 따를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끔찍한 가난을 완화하는걸 도우려고 북한에 국수공장을 세우는데 돈을 기부하고 있다.
하지만 손버릇 나쁜 공산정권이 이런 노력을 허사로 만들수 있다고 한국에서 30년간 선교중인 팀 머서(Tim Mercer)나사렛 교회 한국지회장은 말한다.
“한국의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국수공장에 주어진 돈이 전부 그곳에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부자들에게 돈이 제대로 쓰여짐을 보여주려고 북한 관리들은 국수공장 사진을 찍어 보여 준후, 돈은 다른 목적으로 전용된다고 한다.
이 목사는 또한 한국어 성경을 중국에 밀수할 것도 제안한다. “나는 중국에서 탈북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는 ‘성경책이 충분하지 않아 탈북자들이 성경책을 한쪽씩 찢어 간직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머서(Mercer)는 그런 노력이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신중을 기한다. “성경이나 성경의 일부분이라도 탈북자가 갖고 있다가 발각되면 북한에서 사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의 말씀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번역:캡틴 쿡
출처:Christianity Today Magazine
Hot Issues > Persecution
Christianity Today, October 2004
A Heartless Homeland
Why more North Koreans than ever are fleeing their country.By Gregg Chenoweth & Tricia Miller
| posted 10/06/2004 9:00 a.m.
North Korean refugees rarely tell their stories. They are too busy ducking, whispering, and running.
The wrong word finding its way to the wrong person could be disastrous. As a North Korean woman attending university in South Korea explained, "I fear my family will be harmed if I speak."
In July, more than 430 North Koreans were airlifted to Seoul from an undisclosed Southeast Asian nation, possibly Vietnam. News reports called it the largest-ever movement of refugees into South Korea. Seoul is normally wary of accepting North Korean defectors for political and economic reasons, but apparently officials helped pave the way for these refugees.
The number of defectors from North Korea to South Korea has been steadily growing, according to news reports. Last year, it reached 1,285. It was 1,140 in 2002 and 583 in 2001. As many as 30 Koreans sought asylum with the United States over the past decade.
No one knows with certainty, but an estimated 300,000 North Korean refugees may now be hiding in China. As a North Korean ally, however, the Chinese government pays informants 500 yuan (US$62) to track down these refugees. China marches 5,000 North Korean defectors a month back to their country across the Tuen Bridge in the northwestern Jilin Province, sometimes with wire passed through wrist and nose, according to rights groups."The police beat us," a 2002 victim told Voice of the Martyrs. "Some had their heads cracked open, some had their teeth broken, and some could not walk again because their arms and legs were so injured."
To avoid political confrontation directly with North Korea, regional democratic countries like Japan receive defectors in their China-based embassies, then reroute them to a third country.
Nearly 3,000 North Koreans have applied for asylum in Japan through its embassy in China since 1982, according to the European Council on Refugees and Exiles ledger. Last year alone, 353 applied; at last count, only 12 had been granted asylum. Political tensions were on display in May 2002 when a group of North Korean defectors crashed the gates of the Japanese Embassy in Shenyang, China.
Several men in the group made it through, but Chinese police violated the 1963 Vienna Convention on Consular Relations by reaching inside the Japanese Embassy gate to drag two women and a child, kicking and screaming, into custody. Two others, both men, had 10 minutes of refuge inside the embassy before Chinese police forcibly removed them. The entire episode was caught on videotape by South Korean media and paraded before the Asian world.
A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that helped orchestrate the defection had tipped off the media. The images are included in the documentary film "Seoul Train," to be released this fall (see www.seoultrain.com).
Previously, three other North Korean men had entered the U.S. consulate in Shenyang, then departed for South Korea. Two more North Koreans had sought help at the Canadian Embassy in Beijing. In March, 25 North Koreans took refuge in the Spanish Embassy in Beijing, all assisted by NGOs. Defectors rarely trek south directly to South Korea, where passage is more perilous. The three-mile wide, 150-mile long demilitarized zone (DMZ) separating the two countries has 1 million land mines, razor wire stretched between observation posts, and approximately 2 million troops on either side.
Fleeing Evil
North Koreans take flight for some combination of three reasons.
Famine. Ten percent (2.2 million) of North Korea's population of 22 million people have died of starvation, according to the Seoul daily Korea Herald, although the Communist regime lops the figure to 220,000.
The South Korean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reported one example. A North Korean couple defected with their starving two- and four-year-olds to China in the bitter cold of November, where they logged the forest for money. They survived the dual threats of starvation and deportation after they encountered a Christian church in China. Through the church they found that Christianity was not the "fearsome religion" the regime had told them it was.
Economic Stagnation.
North Koreans are still reeling from the severe famine of the mid-1990s, despite sharing the same type of arable land—about the size of Indiana—as that of South Korea, whose gross domestic product is among the world's top 15.
Ironically, a 2003 report by South Korea's Ministry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and Home Affairs noted that "the amount of food-waste dumped in South Korea was more than enough to feed North Koreans."
North Korea also faces severe medical care challenges. Norbert Vollertsen, a German medical doctor who spent 18 months working in North Korean hospitals, reported to Voice of the Martyrs that children underwent surgery "with no scalpels or antiseptic," and there were "drip lines attached to patients via beer bottles."
Brutality.
According to Article 47 of the 1987 North Korean Criminal Code, defectors "shall be committed to a reform institution for not less than seven years." More than 150,000 returned runaways reside in such "Enlightenment Centers," according to the 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The code continues with pointed punishment for vague crimes: "
In cases where the person commits an extremely grave concern, he or she shall be given the death penalty." Native North Koreans aren't the only ones seeking creative passages to South Korea. Last year about 30 ethnic Koreans native to China obtained education visas to take a 12-week hair designer training course in Seoul. They never returned.
Reaching OutThe Koreas present a paradox: Bordering one of the world's neediest populations are some of the kingdom's brightest ministries, but the wall between them is great. The largest church in history, Yoido Full Gospel in Seoul, boasts 800,000 members. It has planted 680 branch congregations; operates a university, a daily newspaper with circulation of half a million, and a job-training complex; and owns a mountain where buses shuttle prayer warriors every hour, every day.
Presbyterians thrive in South Korea with 7 million members. Two of their largest churches in Seoul are bursting with 35,000 and 20,000 regular attendees, respectively. The Church of the Nazarene's largest district on the planet is South Korea, with 259 churches across the peninsula.
It operates a university and seminary, and ministers in numerous orphanages. With 20,000 members, it is growing at an annual rate of 8 percent. The Christians in these South Korean churches reach out to the refugees as they can.
Art Kinsler, an American-born missionary to South Korea since 1972 for the Presbyterian Church (USA), says the denomination reaches out to "some 5,000 North Koreans" who have come south in the past few years. But to explain the ministries in print, he says, "might result in no longer being able to visit [North Korea] and send help there."Stephen Bong Lee, pastor of a Korean Nazarene church in California, believes Christians could follow the example of Korean Americans in California.
They donate money to establish noodle factories in North Korea to help alleviate the brutal poverty. But the regime's sticky fingers may weaken these efforts, says Tim Mercer, Nazarene field director of the Korea National District and a 30-year missionary in South Korea. "Reliable sources here in the South," Mercer says, "indicate that not all the money given for noodle factories really ends up there." As a show of what donors help provide, he says,
North Korean officials present them with pictures of a noodle factory that it passes off as many such plants. "The money is then diverted to other purposes," Mercer says.
Pastor Lee also suggests smuggling Korean Bibles into China. "I met a Korean man doing evangelism in China to North Koreans," Lee says. "He said they don't have enough Bibles, so each person tears out one page of a Bible to share it." Mercer again cautions, though, that such efforts can backfire. "We have to remember," he says, "that any Bible or portion thereof found in the possession of a person returning to North Korea will condemn them to death."
Word on the ground, Mercer says, is that Scripture is imported into North Korea orally—"via one's memory, a few verses at a time."
Gregg Chenoweth is professor of journalism at Olivet Nazarene University. Tricia Miller is a congressional intern for Rep. Jerry Weller (R.-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