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학생회 행사로 콩나물 키트가 반에 배부되었다. 내 앞 자리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작은 식물을 잘 키우고 계시고 말투가 조곤조곤 예쁜 분이신데 그 아름다운 말씨로 어떻게 콩나물을 키우는지 여러 선생님들께 말씀해 주셨다. 누가 키운다고 할지 궁금한 가운데 어떤 반은 너무나 열정이 넘친다고 하고 어떤 반은 키우겠다고 나서는 학생이 없다고도 한다.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키우긴 뭘 키우니. (제발) 너희부터 커."
어우 그러게 말입니다. ㅋㅋ
- 여름 날씨다. 날이 더워지니 날벌레가 늘어났다. 특히 요새는 검고 날개가 여러 개인 요상한 것이 눈에 많이 띈다. 옆 자리 선생님께서는 집에 그게 자꾸 들어와서 전기 모기채로 잡는데 유치원생 아이가 엄마 모습을 그렸다고 보여주셨다. 세스코라고 쓰여진, 우주복 같은 하얀 옷을 입고 한 손에 전기 모기채를 든 모습이다. 벌레를 잡는 엄마 모습이 멋졌나 보다. ㅋㅋ 벌레를 잡을 때 덩치 있는 것은 진동이 있어서 너무 징그럽다. 슬견설에서도 이야기하듯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귀한 것이나 벌레와는 정말 공생하기 싫다...
- 지도가 너무 어려운, 아무리 해도 잘 달라지지 않는 학생들 이야기를 듣는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 제 1의 화제가 되기 마련이므로 선생님들끼리 식사하면 이야기 점유율은 그런 학생들이 제일 높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을까. 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선천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가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을까. 친구, 선배, 선생님 등을 잘못 만났기 때문일까.
내가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그냥 오늘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학생이 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할 일은 학생에게 그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 최근에 TV에서 영화 '슈퍼맨'이 나왔다. 너무 유명한 캐릭터인데 정작 영화는 본 적이 없어서 보았다(늦은 시간이라 잠깐 보다 잠들긴 했지만).
슈퍼맨, 즉 초능력을 지닌 자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된 캐릭터다.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좌절감을 느낄 때 누구나 슈퍼맨이 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의 욕망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해소해 주는 창작자가 있어서 우리는 즐겁게 잠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슈퍼맨이 된다면 이루고 싶은 욕망은 무엇인가.
- 예지가 어제 양천경찰서에서 등기가 와서 1층 교무실에 내려갔다 왔다. 그는 자기가 모르는 새 범법 행위라도 저질렀나 무단횡단했던 게 잘못이었나 중얼거리며 다소 불안한 모습이었다. ㅋㅋ 오늘 확인해 보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고 한다. ㅋㅋ
- 어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로 다연이가 영어 시간에 게임을 한 것을 기록했다. 무슨 게임이냐고 했더니 문장을 듣고 받아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와... 그게 재미있었대... 모범생이네...
그는 다행이었던 일로 '기술 수행을 보지 않았다'고 썼는데 기술 수행평가가 없어진 거냐고 물으니 오늘 본다고 한다. 엄... ㅋㅋ
- 학생회 행사인 콩나물 키우기를 누가 한다고 할지 궁금했는데 우리 반은 수안, 혜라, 은찬, 지원이 하겠다고 손 들어 주었다. ㅎㅎ 예뻐라. 잘 부탁해. :)
p.s.
콩나물 키우기 키트에 포함된 설명서를 보니 꽤 길다. 읽고 내용을 잘 이해하는 능력(문해력)도 필요해 보인다.
- 기말고사 출제 관계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무실을 출입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교무실에 들어오지 말고 문 밖에서 선생님을 부르도록 안내지가 붙어 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막 들어온다. 그걸 본 옆 자리 선생님께서 거기 멈추라고 화급히 외치며 손 동작으로 제지하셨다. 그건 마치 장풍을 쏘는 동작 같았다. ㅋㅋ
-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음운 분석해 보는 학습 활동 문제가 있다. 초성 자리에 오는 'ㅇ'은 음가(소릿값)가 없어서(=소리가 안 나서) 음운이 아니므로 음운 분석 대상이 아니다. 이를 헷갈릴 학생들이 있을 것 같아 이름 중 초성 자리에 'ㅇ'이 오는 은찬이가 이름의 음운 분석을 해 보도록 하였다. 은찬이가 'ㅇ'을 음운 분석 대상으로 넣었는데 학생들에게 이 분석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끄덕, 틀렸으면 고개를 도리도리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민겸이 보고 앞에 나와 틀린 부분을 고쳐보라고 하였다. 난감한 표정으로 마커를 잡은 민겸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 끄덕끄덕했는데..."
ㅋㅋㅋ
- 학습지에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는데 모두 찾은 반(14반 규리, 다연 / 13반 수빈, 현수)이 나와서 기분이 좋다. 훌륭한 학생들이다.
- 혜라가 나에게 자기 핸드폰 번호를 일본어로 말해보겠다고 하였다. 난 어차피 일본어를 모른다고 했는데 열심히 말해준다. 맞았겠지 뭐. ㅋㅋ 아이들과 만나 서로 알게 되는 직업을 가진 것이 너무 보람있게 느껴진다. 대체 어떤 아이가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이런 재롱을 보여주겠니. ㅋㅋ
- 보건실 앞 '스스로 처치대'가 없어졌다. 너무 엉망으로 쓰는 통에 없애셨다고 한다. 도대체 처치대를 어떻게 하면 엉망으로 쓸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깨끗하게 쓰는 것이 어렵나? 아니 뭐가 어렵지? 보건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이들에게는 많은 것이, 아니 모든 것이 어려운 것 같다고 하셨다. 마스크가 여기 저기 널려 있고 반창고 겉부분 버리라고 둔 쓰레기통에 온갖 개인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를 않나, 보건실 앞 음수대에서 쓰라고 컵을 두었더니 복도며 저 멀리 창문 옆 선반까지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등 난장판이 지속되어 모두 없애셨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얌전히 쓰지만 너무 지저분하게 쓰는 소수의 학생들 때문에 결국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 쓰레기 버리기 담당 **이는 쓰레기 버려달라고 오늘 종례 시에 두 번이나 말했음에도 그냥 갔다.
- 연이어 폭염인 날들이다. 이런데도 축구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 작년 우리 반이었던 축구 선수 민준이가 생각난다. 작년 여름 너무 더운 날인데도 훈련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저 담담하게 그렇다고 하던 민준이. 힘들지 않은지 내가 물으니 약간 그럴 때도 있다고 또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는 공부도 잘했는데 무더위든 장마든 추운 날이든 축구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수행평가도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그저 말 없이,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해 내는 그의 모습을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미래를 이루기를 기원했다. 더운 날이 되니 그랬던 것들이 떠오른다. 그는 내가 존경했던 학생으로 앞으로도 종종 생각날 것 같다.
- 요새 자주 보이는 검은 날벌레는 유난히 짝지어 있는 모습이 많다. 그걸 보고 어떤 반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벌레도 짝이 있는데..."
엄... 숙연해진다... ㅋㅋ
오늘도 학교 다니느라 수고 많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