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맛 사탕
-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을 읽고
[최지연]
이번에 드라마 <여왕의 교실>이 드디어 끝을 맞았다. 감동적이었든, 허무했든, 늘 어떤 종류로든 끝이란 텁텁한 끝맛을 남긴다. 더욱이 이 드라마는 포도맛 사탕을 먹고 파래진 혀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에게 진한 색깔의 여운을 남겼다.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마녀 선생'이라는 별명이 있는 초등하교 교사 마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서 아주 혹독한 방식을 선택한다. 매 주마다 시험을 보고 순위를 매겨 차별을 주며, 심지어 방학까지 학교에 나오게 하고, 한 아이를 의도적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것도 겨우 열 세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계속 선생님을 원망하던 아이들은, 마지막에서는 '선생님과 같이 공부해서 감사했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는 말을 내뱉는다. 마치 그동안의 일을 모두 잊었다는 듯이 말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많은 것을 배웠고 행복하니, 이 일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들은 그렇게 울었다.
<우상의 눈물>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단연 형우와 선생님의 행동이었다. 인생은 끊임없는 행동의 연속이다. 우리는 존재하기에 움직이고, 때로는 존재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매우고 있는 그 행동들은, 모두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의 물병을 모두 한 가지 행동으로만 채울 수는 없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게 아무리 나쁜 길 일지라도 그 문이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참 많은 길이 있듯이, 선택에도 역시 참 많은 길이 있다. 그 중에는 저 숲속 오솔길처럼 내가 몰랐던 길도 있고, 새까만 아스팔트길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반트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각해보면 참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어찌보면 '선택'이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서 유일히 누릴 수 있는 위대한 특권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선택이란 여전히 두려운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절대 박하 사탕처럼 뒷맛이 화사하게 개운하지도 않고, 앞의 잘못된 선택들을 깨끗이 씻어 주지도 않는다. 특권이기에 책임이 따르는 것, 그것이 선택이다. <우상의 눈물>에서의 선생님은 기철이에 대한 많은 선택의 길 중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결국에는 모두가 보기에 성공적으로 잘 풀렸다는 것이다. 재수파 아이들과 기철에게 린치와 피해를 보는 아이들도 없어졌고, 기철이는 힘들던 가난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반은 드라마화될 정도로 바람직하고 훌륭한 반이 되었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상처를 가진 날라리 남자 아이가 좋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만나 도움을 받아 철이 들고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 라는 소년만화와 성장소설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훈훈한 결말을 맞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철이가 한 말은 달랐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선생님의 선택은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박하사탕처럼 완벽한 선택은 없으니, 우리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갈 뿐이다. 그리고 곧 반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결말'을 맞았다. 애초에 기철이는 그의 수비 범위 내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지막 기철이의 말을 보고는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의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그의 반의 보편적으로도 아주 감동적인 결말을 맞았다. <여왕의 교실>에서의 마선생도 여러 방식 중에서 아주 특이한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매우 혹독하게 가르치며 상처를 준다. 결국에 좋은 끝만 맞을 수 있다면 좋다고 아이들에게 칼을 들이대는 행동도 서슴없다.
'좋은 결말'이란 무엇일까. 과연 기철이의 감정과 아이들의 상처를 무시한 결말이 과연 '좋은 결말'일까. 그리고 만약 그것이 좋은 결말이라 쳐도, 그 끝만 좋으면 다 괜찮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말이다. 괜찮지 않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저 마음 깊숙이에서 그 상처는, 영원히 괜찮지 않을 것이다. 박하사탕처럼 완벽한 결말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결말보다 모두가 행복한 '과정'에 조금 더 중심을 둔다면, 그 비슷한 '박하맛 사탕'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