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시인방'에서 어떤 시를 보았다.
단어와 문구가 어색하기에 내가 지적하는 듯한 댓글 달았는데도 ...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성질 급한 내가 지우고는 여기에 올려서 글감으로 삼는다.
개울 건너 맞은 편집 신혼살림 차린 삼촌
외 광목 아기 기저귀 바람에 펄럭이고 있구나
아래는 내 재댓글이나 차마 올리지는 않았다.
개울 건너 맞은 편집 신혼살림 차린 삼촌
* '편집' 이런 집도 있을까요?
→ ... 개울 건너 맞은편 집 ....
외 광목 아기 기저귀 바람에 펄럭이고 있구나
→ 왜광목 ...
왜 : 일본을 얕잡아서 쓰는 말.
'왜광목'으로 붙여서 써야 할 듯.
1949년 1월생인 나.
서해안 면내에는 헌옷에 물감을 들여주는 염색집이 있었다.
1950년 ~ 70년대 초를 떠올린다.
커다란 드럼통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그 속에 무슨 화학제품을 풀어서 섞었다.
그 드럼통 안에 헌옷가지 등을 잔뜩 집어넣고는 긴 작대기로 후이 후이 내젓으면 옷에 물감이 들었다.
대부분은 검정색.
꺼집어 내서 물에 휑근 뒤에 긴 빨래줄에 걸쳐서 물기를 빼내고,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염색집에는 유난히 광목이 많았다.
허름한 광목은 일제시대에 보급되었다고 해서 '왜광목'으로 불렀다.
내 어머니는 검정색 왜광목을 사다가 재봉틀로 바지를 만들었다.
아무런 모양새도 없는 그냥 광목바지였다. 색깔이 시꺼멓게 물들었으니 더러운 때가 끼어도 별로 더럽다는 느낌조차도 없었다.
어린아이들한테는 그게 적격이었다.
어머니는 미싱기를 돌려서 삯바느질을 해서 푼돈을 조금씩이라도 만졌다.
시집가는 처자들의 치마 저고리를 만들어서 내주었기에.
고갯길, 십리길 걸어서 가는 먼 새장터.
장터 안에는 염색집이었고, 1970년대 초까지도 존속했다.
그 염색집을 지나가려면 왜그리 화공품 약냄새가 고약하게 독하게 났는지.
그게 언제까지 존손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젊은날 객지로 떠났기에...
지금은 2021년.
서울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쓰레기장에는 헌 옷, 헌 이불 등이 엄청나게 나온다.
나한테는 전부 다 욕심이 나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차마 차마 하나라도 집어오지 못했다.
집어왔다가는 아내한테 된통 혼이 날 게다.
왜 멀쩡한 옷들을 그냥 내다버려야 하는지.
나는 그거 주워서 시골로 가져가서 농사 짓는데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늦가을철에 어린 나무의 밑둥을 헌옷으로 감싸고, 기름보일러를 감싸고, 바깥 한데에 설치한 LPG가스통을 에둘러서 보온하면 무척이나 실용적인데도 말이다. 아쉽게도 지금 나는 서울에 살고 있기에 그런 헌옷가지를 욕심 낼 수도 없다.
일제시대에 조선에 들어온 광목.
'왜광목'은 굉장한 상품이었으리라. 그 당시에는 모시로 만든 베옷이나 입었을 터.
광목바지 속에는 목화송이에서 빼낸 목화솜을 넣고는 바늘로 누벼서 두툼하게 만들어서 추운 겨울을 보냈으리라.
어린시절 내가 입었던 광목바지, 솜바지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외 광목'은 틀렸고, '왜광목'이 맞다.
왜광목으로 바지 저고리를 만들어서 입었던 시골아이가 생각이 난다. 코를 질질 흘리던 코흘리개는 아직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별것이 다 글감이 되는 세상인가...
문학카페가 무슨 뜻인가? 글자를 다루는 카페이다.
문학카페에서는 누구나 다 글 다듬어 썼으면 싶다.
그리고
독자/네티즌은 어색하고 잘못된 곳을 댓글 등으로 지적했으면 싶다.
확인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서로 글쓰기 공부을 더 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