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님을 위한 보너스 말씀입니다...ㅋㅋ
이제 난해구절은 그만..^^
고린도전서 15장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가 안 믿고 죽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세례를 받아준다.
그러면 아버지가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가르치는데....
그러나 전혀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앞 뒤 문맥을 바라보면서 말씀을 상고해 본다면 충분히 문맥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자! 그럼 달려볼까요...^^
여기서<세례>의 개념은 물세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례]는 말씀을 위하여 핍박을 당하고 고생을 죽어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 다 버리는 것을 말하죠.
말씀을 퍼붓는 것은 [말씀 세례]
물을 퍼붓는 것은-[물세례]다.
성령을 퍼붓는 것은 [성령 세례].
그러면 고생을 막 퍼붓는 것은 무슨 세례인가요?
[고난, 고생 세례]라 하죠...이 말씀이 그런 의미입니다.
고난을 세례라 하고 있어요.
희랍어 원어에서 [세례준다]라는 단어는
bapti,zw 라고 쓰는데 [밥티죠]라고 읽는데.
그 의미는 [푹 담근다]입니다.
물속에다 집어넣어서 푹 젖게 한다는 말씀이죠
우리 말로는 [셰례] 또는 [침례]라고 번역하는데 이것 때문에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침례]냐 [세례]냐 하는 것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기어히 싫다고 하는 사람을
물속에다 밀어 넣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밥티죠]라는 단어를 그런 식으로 고집하지 말고....
원래대로 생각하면 침례도 틀렸고 세례도 틀린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밥티죠]는 외형적인 [예식]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禮]라는 글자를 집어넣어서 번역을 해가지고 원래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으며,
그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것이죠.
[침례]나 [세례]라고 생각을 하지 말고 원래의 뜻 그대로
[푹 담근다]로 이해를 했으면
침례교회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인데 쓸데없는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맥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세례의 의미는 30절에 나오는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라고 외치는
말씀에서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세례]라고 묘사 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31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에서도 [세례]의 의미는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고전 15장 29절 이하의 [세례]는 죽는 데다 담근다는 얘기입니다.
엄청난 괴로움에다 담근다는 말이죠.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조금 뒤에 해석하고 있어요..다..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전혀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 받는다> 말이 무슨 말인가?
우리는 조금 있으면 영원한 세계로 갑니다.
만일 이것이 없으면 여러분이나 저나 예수 믿을 필요가 없죠?
죽은 다음에 아무 것도 없는데 뭐 하려 예수 믿겠어요?
왜 믿는가? 신앙 생활을 왜 하는가?
왜 세상의 아름다운 것 다 버리고 사는가?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러하죠...
우리가 예수 믿어 거듭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심령이 변해서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말씀으로 나타내주시고, 아들을 이 땅에 두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들어가서 살 것을 지금 여기서 준비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만일 그 세계가 없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잖아요.
내세가 없으면 저나 여러분이나 말짱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내세가 없는데, 어디 예수님이 있고
신앙 생활을 해서 무엇하고, 거듭나는 것은 뭐 하려고 거듭 납니까?
거듭 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죠.
이것이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왜 우리에게 오셨는가?
영원한 세계를 연결하게 하기 위하여,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 살게 하기 위해서 말씀이 우리에게 오셨지요.
이 짧은 인생 얼마나 덧없는 인생인가요?
여기 있는 것 다 놓고 가는 날,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
거기 가서 사는 것 미리 준비하라고 그것 준비하라고 말씀을 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고난의 세례를 주십니다.
고난을 물 붓 듯이 퍼붓어요..고난의 물 속에 담근다....
왜 고난을 받느냐? 고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세를 위해서 받는다.
여기서 고난받는 것, 내세를 위하여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지금 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올 세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
30절 <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위험을 무릅쓰다>--이것이 세례입니다.
앞에서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다] 하시고 뒤에서 그것을 풀어 나갑니다.
"위험"을 [세례]라고 풀어 나갑니다.
31절에 사도바울은 자기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32절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구체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맹수> --사자, 호랑이인가요?
다른 동물인지, 사람을 얘기하는지 확실하게 모르지만,
옛날에 검투사들이 있었죠.
예수 믿는다고 잡아다가 원형 경기장 같은 곳에 집어넣고 사자와 같은 짐승을 풀어 놓는데.
그러면 그 맹수와 싸우죠.
사도 바울이 그런 검투사였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받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별 문제가 없겠죠?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그렇지 않는가요?
다음 세계가 없이 내일 죽을 것이면 뭐하려고 난리 차는가? 하는 얘기입니다.
-속지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
죽은 자를 위한 세례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악한동무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회안에 있는 악한 동무를 얘기하는 것이죠.
결코 교회 밖에 있는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으며 형제라고 부르고 열심히 봉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악한 동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엉뚱한 것을 가르쳐 형제들로 하여금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가장 조심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악한 동무들은 우리 자신의 정결에는 관심이 없죠.
정결보다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는 상황이죠?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악한 동무> 원어로는 [o`mili,ai kakai,](호밀리아이 카카이)인데
o`mili,a 는 교제, 교통
kakai 는 악한
그러므로 악한 교제, 교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악한 동무들과 교제하면 결국은 좋지 않는 것만 배우죠?
좋지 않은 것을 배워 몸에 익힙니다.
잘못된 가르침과 교제를 하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어요.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교회밖앝에 있는 것으로 생각지 마세요.
사단은 그렇게 멍청한 존재가 아니거든요...
이렇게 쭉 설명을 해 나가는데 그뒤에 34절에 죄를 짓지 말라,
깨어 의를 행하라...는 식으로 말씀을 풀어나갑니다.
고린도전서15장을 제말씀과 비교해서 찬찬히 읽어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