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살아야 합니다.”
절규하는 안동교구 사벌 ․ 퇴강본당 주임 사제
이성길 프란치스코 신부
구제역에 울부짖고 낙동강은 파헤쳐지고
전형적인 농촌본당인 안동교구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사벌 ‧ 퇴강본당 주임 이성길 프란치스코 신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우리 시대 가장 큰 아픔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임을 실감하게 한다. 구제역으로 살 처분되는 소와 돼지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4대강 사업으로 마구 파헤쳐지고 뜯겨진 낙동강의 핏빛 살점이 보인다. 행정구역으로는 상주지만 서울에서 가기에는 점촌에서 들어가는 편이 낫다. 오전 오후 하루에 두 차례 점촌과 퇴강을 오가는 버스시간 맞추기 어려워 서울에서 내려간 기자들을 이 신부가 승용차로 직접 태워가는 시골길. 구제역 방역을 위해 소독약을 흠뻑 뿌리는 틈새를 지나니 낙동강 바닥 흙을 파 나르는 덤프트럭들의 행렬이 우리는 맞는다. 소음과 먼지 일으키며 달려간 트럭들이 쏟아붓는 강바닥 흙으로 산을 이루고 농과 밭이 파뭍힌다.
“모래는 벌써 다 걷어내고 지금은 감 밑바닥 흙을 퍼다가 저렇게 산을 이루지요. 그것으로 그 많은 모래와 흙을 쌓을 수 없으니 논과 밭에 마구 버려 농사를 못 짓게 합니다. 농토 주인에게는 3년 동안 나올 수입을 보상해 주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합니까? 강에 보를 만들면 물안개로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데 말입니다. 농사를 짓는다 해도 저 땅이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땅이 될는지도 의문입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덤프트럭 60여 대가 쉼 없이 저렇게 강을 파헤쳐 흙을 나릅니다. 최근에는 구비 구비 흐르는 이곳 낙동강 물줄기를 직선으로 곧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등 작업 내용에 대해 현장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합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거지요. 공사 구간이 이곳만입니까. 상류에 안동 구간이 있고 하류로 가면서 낙동, 구미, 왜관으로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한꺼번에 국토를 마구잡이로 파헤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전문가 진단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한 두 구간이나 어느 강을 택해 해보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든가 해야지 이렇게 한꺼번에 전 국토를 파헤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서 이 신부는 집채만 한 트럭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간직했던 속내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어지는 이야기 내용에서도 구구절절 우리 농촌의 아픈 현실을 전해 준다.
“이번 구제역만 하더라도 안동에서 초기 대응을 너무 잘못했습니다. 첫 발생 축산농가에서 발생 신고를 했으나 양성이냐 음성이냐 하는 판정을 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 간이검사만 하고 1주일을 그대로 흘려보냈습니다. 그 사이 구제역은 완전 무방비 상태로 뚫려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 나간거지요. 연구소에서 검사 장비를 대여해 줄 수 없었다는 군요. 농민들은 답답해서 신고했는데 공직자들은 자기들 일 아니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지금 구제역이 발생하면 예방한답시고 반경 3Km 이내 소나 돼지는 다 묻습니다. 소 한 마리나 많게는 150여 마리씩 기르던 농민들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소는 그래도 안락사를 시켜 묻지만 돼지는 수가 워낙 많아 그대로 구덩이로 밀어 넣습니다. 살아보려고 소리 지르고 발버둥치는 놈들을 포크레인으로 찍어 떨어뜨리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입니다. 다리 부러진 놈, 내장이 터진 놈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
이 신부는 강을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전문가 진단이나 적절한 과정을 생략한 채 마구 파헤치는 일이나 가축을 먹을거리로만 생각하고 대량 생산에 급급한 행태를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야만적 태도는 하느님의 창조 섭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마치신 뒤 ”보시니 좋더라. “고 창세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 종대로 번성하기를 하느님께서는 원하셨고 그 관리를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위임한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법칙에 따라 더불어 살면서 주어진 일을 다 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초기 대응도 문제였지만 바로 생태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는 풀을 뜯어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먹을거리 문화가 고기를 원하고 그것도 대량으로 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생태계는 날로 파괴돼 사육 면적은 좁아지는데다가 고기를 대량으로 원하니 사료를 먹일 수밖에요. 면역력이 약해질 것은 뻔한 이치 아닙니까? 가축을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이익을 위해 공장 물건처럼 대량 생산하는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탐욕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고 봅니다. 저럴게 파묻은 소와 돼지들로 인해 초래될 토질 오염과 악취 및 각종 질병 감염은 분명 상상을 뛰어넘는 재앙이 될 겁니다.”
이 신부가 사목하는 지역은 함창 생활권에 속하는 유서 깊은 퇴강 성당과 상주 생활권에 속하는 사벌 성당 두 곳으로 이루어 져 있다. 이 신부는 사제관이 있는 퇴강성당에서 거처하며 주일이면 8시에 퇴강성당에서, 10시 30분 사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신자들은 60대를 주축으로 70~80대 어르신들이 많으며 50대는 팔팔한 청년이다. 주일미사에는 사벌성당에 75~80명, 퇴강성당에 50~55명이 참례하며 두 곳 합해 헌금은 30만 원 정도다. 지난해 교무금 2,650만 원, 주일헌금 1,730만 원, 기타 추수 감사 헌금 600만 원으로 본당 운영비 6,300만 원을 충당하지 못해 교구 지원금을 받아야 했다. 교구 전 본당에서 사무장을 두지 못하는 실정이 아니더라도 사무장은 생각하지도 못하며 수녀 두 명이 있으나 한 명분 월급만 지급하는 실정이다. 신자들은 날로 줄어들고 있으며 귀농자도 없다. 명절 때나 되어야 150명 정도 주일 미사에 나오고 반가운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리지만 이마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멀리 떠난 자식들이 찾아와 예전에는 2박 3일 정도 머물더니 요즘은 하룻밤 묵고 가는 이들도 드물다. 재래식 시설에다가 컴퓨터나 게임기 등 도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도 없어 몇 시간 머물다 훌쩍 떠나고 만다. 남아 있는 노인들의 쓸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기에 구제역 파동이 닥쳤고 바로 옆을 지나가는 젖줄 낙동강은 저렇게 찢어지고 파헤쳐지고 있다.
쓸쓸한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 본당 신부
이 신부의 사목은 그래서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최우선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기도 바치고 독서한 뒤 사무일 보고 동네 한 바퀴 돕니다. 농번기에는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도 함께 합니다.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 나가 함께 지내면서 밥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주로 듣는 편이지요. 농사일이나 객지에 나간 자식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그리고 성당으로 돌아와 저녁에 미사를 봉헌합니다. 화 ․ 목 ‧ 금요일에는 퇴강에서, 수 ․ 토요일에는 사벌에서 미사를 봉헌니다. 그리고 저녁기도를 바치고 취침하는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뭘 가르친다기 보다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퇴강리만 해도 40호 되는 가옥의 1/3이 비었는데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이런 농촌이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는 정부에서나 전문가들이 농촌을 살리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절규한다. 미국, 유렵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산업을 살리는 노력으로 농업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쌀 자급률이 40%에 그치는데 농업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식량 무기화’ 되는 것이 무섭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식량을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다.
“사제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농촌을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구체적인 방안은 정부와 전문 분야에 있는 분들이 연구해 제시해야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외지에 나가 보지 못하고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이 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 가셔서 그들을 위로하시며 병을 낫게 해주시고 행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셨으니 바로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고 설명해 주지요.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면 그제야 평화를 찾고 행복해 하십니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농촌 살리는 방안 제시해야
이 신부는 2005년 80세를 일기로 선종한 아버지 이창형 클레멘스 님과 남편이 선종한 그 해 충격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중인 어머니 이보석 테레사 님(81)의 3남 1년 가운데 장남으로 1953년 1월 17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원래 상주가 고향인 아버지는 신나무골과 대구를 거쳐 6.25 때 인천으로 올라가 평북 정주 출신의 어머니를 만나 이 신부를 낳고 서울을 거쳐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가 1961년 상주로 귀향했다. 대구대교구 총대리 이용길 신부와 원로 사제 이대길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이무길 신부가 4촌이며 서울대교구 이효언 신부가 6촌일 정도로 5대찌 신앙을 지켜온 구교우 집안이다. 가난을 실천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무척 존경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해 소신학교 과정인 대구 화선신학교를 거쳐 선목고교를 마치고 대신학교 진학 때 교구로 적을 바꿨다. 그냥 사제가 되어야할 것 같아 수도회에 입회했고 별 무리 없이 대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980년 1월 10일 안동교구 남성동성당에서 두봉 주교 주례로 신품을 받았다. 교구 사목국 차장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 동부동, 교구청 사목국장, 문경, 의성, 옥산, 남성동, 휴천동에 이어 2007년 7월부터 사벌 ‧‧ 퇴강 본당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교구는 설립 당시 인구 177만 명에 신지수 27,742명이었는데 2009년도 통계를 보면 인구수는 750,075명으로 줄었으나 신자수는 오히려 46,730명으로 늘었습니다. 사제수는 주교 1명에 한국인 신부 2명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외국인 신부 17명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 사제 80명이 사목하고 있습니다. 두봉 주교님 등 외국인 사제 3명은 모두 은퇴하셨지요. 다른 교구에 비해 교세가 약하지만 교구 신부님 모두 물질적인 문제로 위축되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초대 교구장님이신 두봉 주교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우리 신부들에게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성적으로는 얼마나 풍부한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 촬영이 유일한 취미인 이 신부는 월요일이면 가까운 주흘산, 백화산, 속리산 들을 찾아 혼자 등산하면서 야생화도 찍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는다. 망원렌즈 하나 있는 평범한 사진기다. 하늘을 나는 새는 안 찍는다. 고급 렌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욕심이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뵙습니다. 하느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글 / 최홍운 alsemffp@naver.com
사진 / 최주성 ritts200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