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mer6] 퇴장 그 후

[지훈th]

이번 2008/09 시즌 분데스리가 후반기의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도 리가 선두 싸움이다.
헤르타 BSC 베를린이 TSG 1899 호펜하임과 전통의 강호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드디어 리가 선두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1929/30, 1930/31 시즌 연속 우승 말고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우승 경력이 없는 베를린의 선두 도약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2007년 7월 1일 부임한 루시앙 파브르 감독은 20개월 만에 팀을 리가 상위권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난 2000/01 시즌 15라운드에 선두에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베를린은 이번 시즌엔 3라운드의 10위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필자는 뜻하지 않은 이영표의 퇴장으로 지난 20라운드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Die Rote Karte von Lee war für mich eine zu harte Entscheidung. Es ist ein langer Ball, er guckt nur darauf und sieht unseren Mann nicht. Meiner Meinung nach keine Rote Karte."
이영표에게 주어진 레드카드는 내 생각엔 너무 심한 처사였다. 단지 그는 긴 패스를 응시하고 있었고, 우리 선수를 보지 못했다. 레드카드 감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에네르기 코트부스의 단장 슈테펜 하이드리히가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한 인터뷰 내용이다.
동독 국가대표 출신의 하이드리히는 자신의 선수를 쿵푸킥으로 가격한 상대방 선수에 대해 퇴장감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영표에게 가격을 당한 코트부스의 80년생 수비수 사보 파비체비치는 몬테네그로 대표팀으로 12경기나 뛴 베테랑이다.

사실 필자가 퇴장당한 이영표를 변호할 마음은 없다.
주심의 권한을 '18번째 규칙'이라 부르듯이, 축구는 어디까지나 심판의 재량으로 운영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투명하고 진지한 판정들이 선행되었다면, 그 다음의 이야기들은 호사가들의 괜한 논쟁에 불과하다.
고의가 아닌 심판의 판정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이영표에게 레드카드를 준 페터 지펠 심판은 이번 시즌에 주심으로 분데스리가 10경기에서 나섰는데, 곧바로 퇴장을 명령한 것은 두 번째이다.
다른 한 명은 팔꿈치로 상대방을 가격한 하노버 96의 공격수 이리 슈타이너였는데, 12라운드 FC 쾰른과의 원정 경기였다.
이영표는 공에 집중한 나머지 상대방을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나름 너그러운 심판인 지펠 주심의 눈에 비친 그의 플레이는 거칠기 짝이 없었을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점이다.

다만 이영표의 반칙이 그의 말마따나 고의가 아니라는 것만은 짚고 넘어가도 될 문제이다.
A매치를 101경기나 소화한 베테랑이, 분데스리가 16경기에서 14개의 반칙만을 기록한 영리한 수비수가 마치 투우장의 마따도르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직후 빌트 지가 내걸었던 'Kung-Fu-Lee'라는 자극적인 제호가 사건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범근 수원 감독이 이영표를 '브루스 리'라고 불렀던 것은 그의 투지 때문이지, 평소 잦은 쿵푸킥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 부분은 우리보다 더욱 열성적인 그의 클럽과 팬들이 실질적인 증거 수집에 나섰다.
일단 클럽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영표는 가벼운 판결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글로 부당함을 구체화시키기에 바빴다.
일단 주장 제바스티안 켈은 이런 인터뷰로 지원 사격을 했다.

"Lee ist jemand, der keiner Fliege etwas zuleide tun kann."
이영표는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클럽의 웹진 '디 키어쉐' 역시 이영표의 경기력에만 초점을 두었다.
약체와 1:1로 비기고 있는 급박했던 추가시간에 베테랑으로서 자제력을 잃고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는 말보다는 도르트문트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경기 뒤 웹진에 평점을 매기는 마티아스 메어발트 명예기자는 3점을 주면서, 주전 왼쪽 윙백의 불행을 아쉬워했다.

Bis zur 90. Minute ein sehr ordentliches Spiel des südkoreanischen Nationalspielers. Wies eine makellose Zweikampfbilanz und eine sichere sowie zielstrebige Ballführung auf und setzte außerdem zunehmend Impulse ins Angriffsspiel seiner Mannschaft. Stieg dann überhart im Zweikampf ein und musste mit Rot vom Platz. Sehr hart, aber vertretbar.
90분까지 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는 매우 착실한 플레이를 펼쳤다. 일대일 상황에서 나무랄 데 없는 모습과 안전하게 목적이 뚜렷한 공 관리를 보여줬고, 게다가 팀의 공격에서 추진력을 더욱 증가시켰다. 그 때 일대일에서 너무 플레이를 거칠게 했고, 경기장에서 레드카드를 받지 않으면 안 됐다. 매우 심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 이 날 경기에서 이영표가 받은 키커 평점도 3점이었다.
독일 최고 권위의 축구 저널리즘인 키커 지는 퇴장의 성격에 따라서 최저점인 6점을 주면서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한 명예형을 가한다.
키커 지는 이영표의 퇴장 원인을 '야만스런 플레이(rohes Spiel)'로 기록했지만, 6점 명예형이 부과하지는 않았다.

Rot gegen Lee in der Nachspielzeit war zu hart.
추가 시간에 이영표에 대한 레드카드는 너무 엄격했다.

키커 지가 지펠 주심에게 내린 평이다.
결국 주심에게도 평점 3점을 주면서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었음을 공인했지만, 경력 11년차의 분데스리가 베테랑 심판에 대해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적어도 키커 지는 이영표의 반칙을 고의적인 비신사적 행위로 간주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독일의 주류 축구인들의 시각으로 바도 무방하다.

하지만 슈타이너의 키커 평점도 5.5였다.
키커의 6점 명예형은 굉장히 신중히 부여되는바, 아무리 키커가 정상적인 평점을 줬다고 해도 면죄부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이영표의 플레이를 느린 화면으로 봐도 고의성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결국 위험한 플레이였다는 주심의 판정에 토를 달기는 힘들다.

당초 독일축구연맹(DFB) 스포츠법원의 단독재판부는 이영표의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대해 소송을 건 DFB 감독위원회의 고소를 받아들여 세 경기 출장 정지라는 다소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
단독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한다면 24시간 안에 구두 심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도르트문트 클럽은 재심리를 청구했다.
결국 파비체비치를 가격하기 전 공을 먼저 건드린 것을 헤아려, 최종 형량은 협회 산하 리그의 두 경기 출장 정지 처분으로 확정되었다.

"Dies ist für uns eine positive Nachricht."
이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소식이다.

일단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일간지 루르나흐리히텐을 통하여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부상자가 늘고 있는 추세인데, 사실상 수비선을 이끄는 이영표의 결장은 감독으로서 충격적인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영표의 오랜 결장은 팀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대륙 축구의 체계상 그라운드 밖의 모든 업무는 매니저가 맡는데, 징계 수위를 낮추는데 아무래도 단장인 미하엘 쪼르크가 애를 썼다.

쪼르크는 임피레(IMPIRE) 정보은행 주식회사의 자료까지 단독재판부에 제출하는 열성을 보였다.
임피레는 지난 15년 동안 분데스리가의 정보를 수집·정리·축적하고 있는 분데스리가 유한회사의 공식 협력업체이다.
클럽 변호인단은 임피레의 자료 협조로, 분데스리가 16경기에서 14개의 반칙만을 했던 이영표의 데이터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출장 정지 처분이 한 경기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Dieses Urteil ist für uns zu akzeptieren. Es freut uns zudem, dass man erkannt hat, dass Lee bislang als tadelloser Sportsmann aufgetreten ist."
이 판결을 우린 받아들였다. 또 우린, 사람들이 이영표가 여태껏 흠잡을 데 없는 스포츠맨이어 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기뻤다.

이영표 경력에서 초유의 퇴장 사태는 이렇게 갈무리되었다.
다행히 파비체비치가 무거운 부상을 입지 않았고, 이영표 역시 고의성은 없었다는 판결이 나와 마음이 한결 가볍다.
외국 리그에서 뛰면서 적당히 가져야할 강인한 이미지도 만들어진 느낌이다.
일주일 내내 이영표를 다룬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그러한 인지도를 높일 것이다.

2주 쉬는 것이 주전 경쟁에서 치명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복없는 안정적인 윙백으로서의 역할과 수비선의 조율은 이영표가 낫기 때문이다.
이영표가 전처럼 공격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꾸로 데데나 마르첼 슈멜쩌가 골을 몰아치는 선수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꾸준하게 자신의 클래스를 선보이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번 21라운드 숙명의 레비어더비에 이영표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변함없다.
레비어더비는 엘 끌라시꼬, 더비 디 밀라노, 올드 펌과 더불어 이 대륙의 4대 더비 아닌가.
샬케 04의 돔구장인 아우프 샬케에서 치러지는 이 중요한 시합에서 이영표의 공백은 클롭 감독과 코칭스탭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즌이 아직 13경기나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롭 감독은 "이번 시즌의 최종적인 시합(Das ultimative Spiel der Saison)"이라며 팀의 독전을 마쳤다.

일단 왼쪽 윙백으로 슈멜쩌가 언급되고 있는데, 클롭은 다시 한 번 그와 자신의 미드필더들과의 호흡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슈멜쩌가 막아야할 샬케의 오른쪽 루트는 뻬루 국가대표 윙인 제퍼슨 파르판과 독일 대표팀의 하이코 베스터만, 그리고 브라질의 역동적인 오른쪽 윙백 하피냐로 이어진다.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방법이 없다.

이번 레비어더비엔 분데스리가 191경기에서 주심으로 활약한 볼프강 슈타르크 심판이 배정되었다.
지난 번 시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치러진 132번째 더비는, 루츠 미하엘 바그너 주심이 몇 개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온 루르를 일주일 내내 공황 상태에 몰아넣기도 했었다.
그 결말도 없는 도덕극이 다시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그라운드 안 동료의 부름조차 들리지 않는 광란의 더비 원정에 이영표가 서지 못한다.
다행스런 일인지 아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분데스리가 데뷔전이었던 레비어더비의 결장은 후자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
그 팀에 있기에 1년에 단 두 번 극도의 예민함 속에 뛰고 구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루르의 가장들을 확신범 직전까지 몰고 갈 133번째 레비어더비는 우리 시각으로 내일 새벽이다.

http://www.hoochoo.com/2006_board/hoochooboard_r_hoochoo.asp?b_idx=257&page=1&search=&keyword=

[한두식]

독일인들이 영표형 까는거아니겠죠? 나름 도르트와서 훨훨 날아주고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