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광야 한 복판에 두 명의 무사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늙었지만 육중한 체구의 검은 투구와 갑옷을 입고 무겁고 큰 장검을 쥐고 있었고 그 상대는 젊은 무사로 황금빛 머리 끈을 맨 채 오른팔은 알 수 없는 힘을 내뿜는 수수께끼의 의수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양손에 두 자루의 브로드 소드를 쥐고 있었다. 노인과 젊은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모래바람이 그 두 사람을 가르며 불면서 잠시동안이나마 적막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노인은 침묵을 깨뜨리며 제자에게 말을 건넨다.
"대답해라!! 커크우드!! 이것은 무인으로써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너와 나, 스승과 제자간의 구호가 될 것이다!! 자, 간다!!"
그리고 노인은 묵직한 그 장검을 들고 제자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제자에게 검을 내리치며 묻기를.....
"북방(北方)의 제왕(帝王)은!!"
그러자 제자는 두 자루의 브로드소드로 X자형으로 사부의 장검을 막아내며 대답하는데
"유수(流水)의 별들을 다스리는 자!!"
그 대답에 스승은 검을 휘감듯이 구사하며 제자에게 되묻는다.
"북왕불패(北王不敗)가 가는 군왕(群王)의 길은!!"
역시 제자는 검으로 맞받아 치더니 스승에게 휘몰아치듯 자신의 두 자루 검을 휘두르며 답한다.
"위대한 악몽(惡夢)의 유성(流星)들이 천상(天上)을 달린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는 100 여 합이나 검무(劍舞)를 추며 서로 검을 주고 받았다. 그러더니 이어서 동시에 외치기를..........
"듣거라! 북방(北方)의 차디찬 어둠 속에서 장엄한 불꽃의 섬광(閃光)들이 높이 떠올라 만방(萬方)을 비추며 작렬(炸裂)하리라!!!
그리고 두 사람은 각기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서로에게 검을 겨눈다. 제자는 오른팔 의수에 쥐고 있는 검을 꼬나 잡고 반대 손으로 당장이라도 상대를 찌를 듯이 나머지 검 자루를 쥔 채 들고 있다. 그리고 스승은 당장이라도 휘몰아칠 것처럼 기묘한 포즈를 취하면서 제자의 의수가 쥐고 있는 검과 부딪친다. 그와 동시에 제자의 검과 부딪친 스승의 검은 팔괘진의 기운을 이루더니 그 팔괘진 한 가운데의 태극 무늬에 '성(星)'자가 선명하게 나타나 황금빛을 비추었다.
그것은 심연의 그림이 그려놓은 혼돈의 바다.... 유혈의 낭자극..... 그것은 분노, 증오, 슬픔, 파괴, 광기, 멸망... 그 모든 것들의 소용돌이들이 뒤엉킨 겁화의 장. 황혼보다 더 짙게, 새벽 별보다 더 찬란하게, 어둠보다 더 어둡고, 흐르는 피보다 붉디 붉게, 타오르는 불꽃보다 더 뜨거운 가증된 창이 되어 구속의 사슬을 끊어라.
-고대 현자 다비드리트리히의 예지록 제3090권 497장 5677절-
올카메스트 성을 떠난지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소년이 자신의 수양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도 아스토라피아 대륙은 여전히 난세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들의 출현에 대해 더욱 온통 흉흉해졌다. 그것은 인간들이 동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전설적인 존재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인간들의 혼란에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계와 동맹을 생각하고 있는 마프티 공화국의 엘프들이었다. 마프티 나비유 에린 자유 연방 공화국 국가원수의 신경은 오늘도 인간계에 쏠려 있었다. 마프티 나비유 에린이란 고대 엘프어로 '정당한 예언자의 왕'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인간들의 세계 아스토라피아의 왼쪽 하단에 자리잡고 있는 유계의 대륙 탈루미아의 북서부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강대국이다. 일종의 의원 내각제와 비슷한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탈루미아의 삼국 연합(엘프들의 나라 마프티 공화국, 드워프의 왕국, 셈브랑포톤 왕국, 용족의 나라 벨츠하이거 공국)의 맹주이자 탈루미아의 실질적인 패권 국가로 군림해왔었다.
하지만 그러던 이 마프티 나비에 에린 공화국도 갑작스레 들고 일어난 신흥 세력인 흑수 철갑 연맹군에 의해 눈깜짝할 사이 주요 식민지는 말할 것도 없이 거의 60% 이상이 이미 점령된 상태였다. 흑수 철갑 연맹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을 거듭해 겔릉가라는 반(半) 분지의 지역에 육박해 있었고 셈브랑포톤 왕국과 벨츠하이거 공국 등도 멸망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세 나라는 언제나 합심해 천계의 신족과 사계의 마족 군대에 대항해 왔었다. 그러던 이 세 나라의 연합 원정군이 두 적대 세력에 대한 대출정을 전개한 틈을 타 흑수 철갑 연맹군이 총공격을 개시해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풍전등화에 놓인 연합 세력의 총수이기도 한 마프티 공화국 국가 원수의 옆에는 그리펠리우츠 티르본과 크란티볼 베르테르가 있었다.
아스토반 원수는 인간의 나이로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 사이의 연령대로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연한 갈색의 긴 머리칼, 음푹 들어간 연한 초록빛의 작고 가는 두 눈, 젊은 시절 역전의 용사였음을 상징하는 메부리코에 그어진 상처, 까칠까칠한 수염 등 중후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수려한 용모의 남성이였다. 회색 비단의 외투 망토로 온몸을 감쌌고 하얀 고급 조끼를 입었으며 기품이 넘치는 셔츠에는 작은 리본 넥타이, 남성용 실버 정장 바지, 남성용 하이힐 등의 차림은 그를 공화국 국가원수로써 공화국 최고 장로 평의회 의장이라는 직책에 걸맞는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인간계에 잠입해 있는 우리 동족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 역시 난세지국이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감지하고 계시겠지요, 또다시 인간계에 크나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마프티 공화국 해군 8함대 사령관이자 공화국 해군 함대사령장관인 그리펠리우츠가 입을 열었다. 아스토반 국가원수보다 조금 젊은 중년의 엘프 장성은 제복 군인 서열 넘버 원으로 공화국 원수임을 상징하는 직육면체같은 노란 원수 계급장이 양 어깨에 붙어 있는 푸른색의 군 장성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스토반 원수의 정면 좌측 자리에 잇는 크란티볼 베르테르 제독이 있는 데 그는 제복 군인 서열 넘버 투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날카로운 은빛 눈썹, 장신은 아니지만 어깨 폭이 넓어 위압감을 풍기는 장군이였다.
"인간계의 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전해 오는 소식에 의하면 유계의 마족들이 인간계에 나타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답니다. 아직까지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들이 인간계의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펠리우츠 제독이 말을 마치자 뒤이어 그 베르테르 제독이 발언권을 얻었다.
"드워프의 부족 족장인 티르가 왕께서는 여전히 인간계에 회의적이십니다. 그들의 혼란을 방관하고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자고 하시지만 인간들의 위치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싫더라도 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에 그리펠리우츠도 동의를 했다.
"인간계에 분명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자들을 찾기 위해 우리 엘프들이 그곳에 잠입해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좋은 소식이 있긴 합니다. 인간계의 바우슈타트 제국의 사천왕 중 한사람인 북왕불패 크라케 선생이 우리 아이들과 합류하여 인간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 말을 듣고 엘프들의 국가 원수인 아스토반 에슈트브렘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이라면 분명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자는 우리 엘프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로써 우리와 오랜 우정을 나눠온 사람이였으니까 말입니다."
한편 인간계의 가장 큰 제국인 바유슈타트 제국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게르하르트 대공은 오늘 있을 황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그의 옆에는 아내 그리넬리가 의관을 직접 챙겨 주고 있었다. 때는 차남인 커크우드가 수련을 떠난 지 꽤 며칠이 훌쩍 지나간 뒤로 대공은 공인으로써의 책임을 위해 참석해야 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커크우드가 잘 가고 있는지 그리 너무 먼 곳에까지 간 건 아닌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쁜 무리들에게 휩쓸리게 되지나 않는지 등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뤼켄볼트 가문은 대대로 내려오는 무가(武家)로써 전통적으로 장남이든 차남이든 막내든 떠나 10대 중반 정도의 소년기에는 혼자만의 강인한 수련을 쌓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였다.
장차 부뤼켄볼트 가는 지금까지 숱한 명장들을 배출해온 가문이였기에 장남도 물론이거니와 차남에 대한 대공의 기대감은 대단히 남달랐다. 물론 부뤼겐볼트가는 처음부터 대문벌 귀족이 아닌 일개 국경 지대를 지키는 하급 무인 귀족 출신이였지만 어느 새 현재 이 가문은 당대 제국 최대의 문벌 귀족 가문이요, 나아가 제위 계승권 1위의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 이제 머지 않아 부뤼켄볼트가는 아우구르스트슈타인 왕조를 대신할 새로운 왕조로써 지존의 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런 고귀한 가문인만큼 대공은 그 긍지와 자부심이 큰 편이였다. 젊은 시절에는 그 가문의 '긍지'같은 것에 대해 경멸을 품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더욱 그는 개인 수양을 위한 여정을 떠난 아들이 걱정스럽지만 이를 애써 감추고 강인한 무가의 당주로써, 황태자로써의 책무에 신경을 돌리기로 했다. 대공비 전하 그리넬리는 그런 남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아들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도 불과 여섯 살 아래의 의붓 아들이 무척 심려스럽지만 아들이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회의도 언제나 그랬듯 무의미하게 입씨름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르겠소. 요즘 정국이 어수선한 마당에 폐하께서는 노환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그 틈을 타 다들 관직 싸움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그럴수록 대공께서 보다 강인한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중심에 서 그들을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중심인 대공께서 약해지신다면 더욱 황실과 조정의 권위는 실추될 뿐입니다."
"부인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나는구려."
장남과 동갑인 어린 아내의 격려에 쉰을 넘은 게르하르트 대공은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태자인 그에게 온갖 교언영색으로 달라붙는 해충들 따위에 비하자면 이 천사같은 절세가인(絶世佳人)의 한마디가 만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을 만했다. 잠시 후에 집사가 들어와 마차가 준비되었음을 알렸고 대공은 어린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황궁으로 향했다. 올카메스트 성에서 수도 올란바토르까지는 대략 10 여㎞에 못미칠 만큼 가까웠다.
바우슈타트 제국의 심장부인 올란바토르의 바로 오른쪽에 자리잡은 올카메스트 대공국의 주인이기도 한 대공 전하는 화려한 사륜 마차와 수행들을 거느리고 마침내 황궁에 들어왔다. 황궁은 돔 양식과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고딕 양식 등등을 절묘하게 조합한 웅장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제국의 권위를 높이 살리고 있다. 올카메스트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될 만큼 규모가 몇배나 컸다.
'골덴 가이에 산스시 부르크(Golden Gaiesanseusiburg; 황금 독수리의 성)'이라 불리는 장려한 모습의 황궁 입구에는 수십 여개에 달하는 근위 여단의 병사들이 성 문 앞의 가교 주변을 순시하더니 대공의 마차 행렬과 마주치자 일제히 받들어 창 자세를 취하고는 거수 경례를 하며 몸을 경직시킨다. 그들을 지나치고 나서 마침내 대공은 조정의 관료들이 이미 모여 있는 대합장에 들어섰다.
고풍스런 큰 원탁에 둘러앉은 조정 신려들... 하나같이 길고 굵직굵직한 직함을 가진 문벌귀족과 대제후들이였다. 대공이 자리에 앉자 일동들도 모두 앉았다. 그리고 대공이 회의의 개막을 선언하자 여기저기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요즘 민심이 흉흉하다는 것은 다들 알 것입니다. 거기다가 전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지요."
"지금껏 새로운 전쟁이 일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아무 일 없이 평안히 지났습니다, 근거없는 사소한 풍문들만 너무 믿고 일일이 신경을 써야할 이유는 대관절 무엇입니까?"
"전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근거없이 사소한 풍문이라니요?"
"누가 사소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까?!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일일이 시시콜콜한 일에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조국의 존망이 좌우되는 마당에 무슨 그런 안일하게 말씀하십니까?"
"소문만을 가지고 나라의 존망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늘 그랬듯 그들은 고성과 삿대질을 주고 받으며 평소에 운운하던 귀족의 자긍심이나 품위 따위는 온데간데 없이 험악한 입씨름만 거듭하지만 이번에는 바우슈타트 제국 올카메스트 대공국 영주이자 황태자 전하께서 주먹으로 원탁을 크게 내리찍고 질타함으로써 심각하고 험악하지만 무의미한 싸움을 진정시켰다.
"그만들 두시오!! 지금 여기서 소문의 진위나 따지자고 모였습니까!!"
그의 호통에 주위가 잠잠해지자 대공은 그들을 추스르듯이 말을 이어간다.
"경들의 애국심은 이해합니다, 국외로는 사방 팔방의 외적들의 불온한 움직임이 또다시 꿈틀대고 국내로는 역병의 창궐과 괘씸한 불한당들이 활개를 쳐 황실과 조정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만큼 정국이 날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경들 모두 이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모여서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무미건조한 다툼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자기 지위의 영원한 안정, 국정 권한과 황궁 내의 강대한 영향력에만 눈독들인 저 우둔한 자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어 바우슈타트 제국 국무상서인 재상 비트겐슈타인 공작 리브하임 공이 대공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희끗희끗한 회색의 반 민대머리, 붉그스름한 들창코에 야비한 늙은 사기꾼을 연상케하는 뱀눈에 창백한 얇은 입술, 뾰족한 얼굴.... 그리고 약간 허리를 굽은 듯한 왜소한 체격의 노인으로 그 사기꾼의 인상에 더하여 험상궃은 모습까지 마치 전형적인 난신적자(亂臣賊子)라고나 할까....
대공 다음으로 노환때문에 유명무실한 늙은 황제를 대신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로 올해 여든을 넘은 고령의 문관으로 대공보다 무려 서른 이상이나 많았다.
"현명한 통찰력을 갖추고 계신 대공 전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사사로이 진위를 따질 만큼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합니다. 국내로 그 역병과 도적들, 그리고 사교도들이 창궐해 기승을 부리고 크고 작은 지방 반란이 빈번한 데다 대외적인 상황을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 적대국인 겔렌시타르 왕국은 놀라운 발전을 했습니다. 그 연소함에 걸맞지 않게 탁월한 식견을 갖춘 현명한 국왕의 통치 아래 우리 제국과는 상반된 모습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와 겔렌시타르 폭에 둘러싸여 있어도 여전히 양측 사이에 만만치 않은 종교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작센톤 교주국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 교활한 법왕 아르고펜키스트 7세 교주국 교제 존하(敎帝 尊下; 작센톤 교주국의 우두머리인 법왕을 교제라고 하며 경칭을 존하라고 부른다.)는 결단코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될 인물이죠."
바우슈타트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두 세력이 거론되자 대공을 위시로 한 귀족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대공을 제외한 그 우둔한 무리들에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였다. 만약 이 두 세력이 손을 잡고 바우슈타트 제국의 동, 서, 북방의 오랑캐들을 선동한다면 이 우매한 외척들과 문신들의 위치도 심각하게 흔들릴 거라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우슈타트 제국과 겔렌시타르 왕국은 서로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오랜 전쟁을 벌인 강력한 경쟁국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제정 일치 전제 군주국으로 작센톤 교주국은 종교와 경제의 힘으로 두 나라와 동시에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그 힘으로 두 강대국에 큰 영향을 끼쳐 함부로 교주국을 건드릴 수 없게끔 만들었다. 역사는 두 강대국에 비해 훨씬 짧지만 막강한 경제력과 두 나라의 종교 모두의 중심으로써 양국 백성들의 정신을 거의 완벽히 지배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백성들의 폭동을 조장해 양 강대국을 단번에 돌이킬 수 없는 아비규환의 장으로 몰아넣어 회복 불능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우슈타트 제국의 역대 국무상서 사상 가장 교활하고 간사하며 냉혹 비정한 비트겐슈타인 공조차 경계할 만큼 현재의 법왕국의 주인은 대단히 굉장히 인물이였다. 국무상서는 이어 말을 계속 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정세는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일단 눈앞에 있는 불부터 끄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그 예의 역병과 무뢰배들이 날뛰는 국내의 정황부터 말입니다."
그러자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신다.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곳곳에서 언데드와 뱀파이어 같은 무리들까지 들꿇는다는 소문들이 자자한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군대를 보내서라도 이를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대공의 의견에 다들 동의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에 나설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 그런 성가시고 위험한 일에 저 우매한 종이 호랑이들 가운데 어느 누가 나서려 하겠는가.
대공은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집무실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장남 크슈리나단이 다가왔다.
"아버님, 잠시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오늘도 역시 조정회의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으셨죠? 거기다가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사교도를 비롯한 반역 무리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대공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요즘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문제가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저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알게 되는 사실도 많아져서요, 혹시나 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 사실은 그 도당에 대해 강경 대처하자고는 했지만 그것을 누가 나설 지 고민이로구나. 산적들은 그렇다 쳐도 사교도의 경우 여기저기 비밀리에 그들과 연관을 갖는 자들이 많아 백살일비(百殺一匪)의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섣불리 처리할 일이 아니야. 그것도 최근에는 그자들이 무슨 약물인가..... 마법인가를 써서 언데드 따위의 해괴한 괴물을 양산한다는 흉문이 떠도는데다 그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 부근에서는 역병이 도는 곳이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단다."
그러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야심차고 패기가 넘치는 장남 크슈리나단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한다.
"아버님, 그 일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소리에 대공은 어리둥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어떻게 한다는 거냐? 게다가 왜?"
크슈리나단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각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했다.
"지휘권만 넘겨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게다가 저도 이제는 성인이고 군 복무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배우고 경험을 쌓은 상태입니다. 더욱이 저는 자랑스런 명문 무인 대귀족 부뤼켄볼트가의 장남. 장차 지존의 관을 쓰실 아버님의 장남으로써 당연히 그 용명을 더욱 크게 떨쳐 가문의 영광을 만세에 알려야 하는 것이야말로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30세기 동안 난세지국의 형세에서 허우적거리는 명예로운 바우슈타트 제국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내야 하는 길을 아버님 당신의 이 아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만 하고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하고 싶습니다. 이 혼탁한 전국 시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없이 필요한 건 패도(覇道)의 길. 그것의 첫걸음으로써 한 발자국 나아가고자 하는 이 아들이기에 제 자신이 과연 그 길을 걸어갈 자격이 있는 지 기량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크슈리나단은 마치 선동이라도 하는 듯 혹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천부적인 웅변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한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며 열의를 다해 자신의 출진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대공은 소름이 끼치도록 감동했다. 차남도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난 지 오래인지라 커크우드의 안부가 심히 걱정되고 있던 마당에 장남은 그보다 더 큰 스케일을 품고 날개를 펴려 한다. 그것에 대공은 자신이 크슈리나단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자랑스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도....라.... 이 아비가 한 때 품었던 그것을 네가 대신 이어주겠다라는 게로구나..... 적어도 이 아비가 너만한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대공은 아들이 기특하면서도 자신이 젊은 시절 품었던 그 야심과 패기를 오래전에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아쉬워 한숨을 들이내쉬었다. 그것도 입가에 묻은 무언가를 황급히 지우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탄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당찬...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담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부자가 있는 방 밖에서는 조심스레 대공비 전하께서 문 열쇠 고리 틈을 통해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후에 '광속(光速)의 진홍 맹호'라고 불리게 될 젊은이가 창천을 향해 비상하려 할 무렵 커크우드는 말을 타고 라빌타르 산맥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라빌타르 산맥은 수도 울반바토르의 서쪽과 북쪽을 마치 활처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산맥이였다. 올카메스트에서 출발한 지 대략 이틀 정도 지났을까.... 수도에서 올카메스트까지는 대충 몇 시간도 채 안될 만큼 가깝지만 수도에서 이 산맥을 향해 가는 동안은 제법 다소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북쪽을 통과하는 관문을 나오자 굽이굽이 휘어진 잘 다듬어진 국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을 통해서 대략 3시간 정도 경유하다 보니 울란바토르 수도권은 물론이고 그 라빌타르 산맥까지 포함해서 -라빌타르보다 훨씬 더 큰- 지노넨 산맥이 부채꼴로 놓여 있었고 그 산맥의 입구에 다다르면서 서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높디높은 산을 넘어 정상을 지나 40여 개의 협곡을 거쳐 지나가면 '뱀의 강'이라고 불리는 크고 깊은 강물이 흐른다. 이 대륙 아스토라피아에는 인간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아니, 이 모든 전세계의 종족들을 구분하자면 천계를 다스리는 신들과 그들을 섬기는 종족인 신족(神族), 사계 대륙을 음침하고 사악, 교활, 비정한 마왕들과 그 마왕들을 받드는 순수 마족(魔族; 탈루미아의 마족과 크게 구분된다.)들이 있다.
그리고 탈루미아에는 인간보다 조금 체격이 크고 거의 대부분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엘프, 다크 엘프, 하프링, 용족, 그리고 투박하지만 장인 기술이 뛰어나고 탈루미아 대륙 최강의 전차 군단을 자랑해온 드워프 등 외에도 사계의 마족과 달리 야수와 뒤섞인 반수반마(半獸半魔) 족속인 오크, 고블린, 트롤, 오우거, 뱀파이어, 요수(妖獸; 요괴라고도 불리는 둔갑 능력이 뛰어난 반인반마적인 사나운 종족이다. 가끔 이 요수 또는 요괴와 다른 종족간의 교미를 통해 <반요半妖>가 태어나곤 한다) 등등이 있다.
게다가 탈루미아 대륙에는 뜻하지 않게 우여곡절로 아스토라피아에서 흘러들어온 인간들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탈루미아에서 아스토라피아로 건너들어오는 종족들이 있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청순하고 순진무구한 아름다운 소녀들로만 이뤄진 종족 님프와 사람의 손바닥 만한 작은 체격에 잠자리 또는 박쥐 날개를 달고 다니며 철새처럼 살아가는 종족인 페어리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물론 리치나 인비저블 같은 사악한 반수반마같은 괴물 종족들도 탈루미아나 카스발그루드에서 인간계로 유입되기도 한다. 게다가 오크나 오우거 같은 야수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까닭에 이 '뱀의 강'이라고 불리는 유역에는 가장 쉽게 인간이 아닌 종족들을 자주 목격되곤 한다.
그 강을 건넌 커크우드는 잠시 후 그 예의 님프들이 숨어산다는 실라우스 숲으로 가려 했다. 커크우드는 이 숲을 지나서 지융족의 영역도 아닌 엘파타무르스라는 고산 지대에 가서 험난한 수련을 쌓기로 결심했었던 것이다. 그 곳은 일찍이 부뤼켄볼트의 숱한 남자들이 바우슈타트 제국 서단 국경을 넘어 남하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인데 울창한 숲과 폭포 등 수련을 쌓는데는 아주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였다.
그곳을 향하기 위해서 이 실라우스 숲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숲을 지나는 일을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의 가학성 변태 성욕적인 잔학함 때문에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저항할 힘이 거의 없는 청순 가련한 님프 족들은 인간들을 무서워하여 마법을 통해 숲 근처를 통과하려는 방랑자나 혹은 님프 사냥꾼들을 산 속에서 헤매도록 길을 엇갈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님프들은 본시 엘프들의 동족으로 숲과 호수 등에서 엔트들과 함께 살아가는 착하고 아름답고 영리한 소녀들만이 사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하급 마법 말고는 그 어떤 포악한 종족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힘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님프들은 자연 그 자체인 셈이었다. 때문에 연약하고 아름다운 소녀 종족인 님프들에게 불순한 욕망을 자극받은 인간들은 돈에 눈이 멀거나 님프의 미모에 심취하여 걸핏하면 이 산 전체를 거닐고 있는 님프들을 사냥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자주 사냥감 대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님프들은 인간들에게 붙잡히면 강제로 아내가 되거나 아니면 성 노예로 팔리기도 한다. 혹은 마녀로 몰아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최고 신 갈덴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인신 제물로 쓰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고 영리하지만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린 가여운 요정들은 비참한 신세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들어 나날이 갈수록 님프들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것을 들은 바가 있는 커크우드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잔인함이란 대체 어디까지일까? 그런 잔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되새길 때마다 커크우드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었다. 2시간이 더 지나면서 커크우드는 주먹밥을 꺼내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산을 넘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어느새 실라우스 숲을 지나고 있었다. 그럴 때 즈음 어디선가 가녀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린 소녀의 것이었다. 그러자 커크우드는 검을 뽑아들고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달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오크 수십 마리 정도와 인간들이 아직 너무 어려 보이는 님프 소녀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린 님프 소녀는 아슬아슬한 (님프들은 부끄러운 신체를 큰 나뭇잎으로 가려 의복으로 삼는 습성이 있었다) 의상을 입고 있었고 주저앉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용병으로 보이는 검사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어린 님프 소녀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 꼬마 팔면 대충 얼마 나올까?"
"대충.... 하기야 요즘 수도에서는 로리콘들이 부쩍 증가하고 있으니 2백만 제국 탈렌마르트 정도는 벌 수 있을 거야."
"아저씨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소녀는 겁에 질려 호소하지만 더욱 더러운 본성을 드러내는 두 인간들과 오크들이었다.
"물론 살려주지. 암, 살려주다 마다. 그 전에 넌 우리들을 위해 좀 놀아줘야겠어."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뭐든지 다할께요. 그러니까 제발......"
"뭐든지 다 해준다고? 들었지, 발터?"
"그래, 들었다마다. "
추잡한 웃음을 지으며 님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소녀 님프의 몸에 손이 가기 크로스 보우가 날아와 그 두 인간들에게 고용된 오크들 중 하나의 머리통에 박혔다.
"웬놈이냐!?"
"그 더러운 손. 당장 치워!!"
커크우드가 다가오며 소리쳤지만 두 인간들은 커크우드가 불구라는 것을 안 순간 피식 비웃으며 깔보기 시작한다. 자동 장전이 가능한 라이크 크로스 보우를 다시 어깨에 매고 마검 소울 캐논을 뽑아든 커크우드였다,
"뭐야!? 저 한쪽 팔 없는 팔 병신 애송이가 뭔데 우리 일에 끼여들고 까부는 거지?"
"야, 꼬마. 넌 뭐냐?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했냐? 보아하니 방랑자인 것 같은데...."
"네놈들은 대체 그 소녀와 무슨 볼일이 있다고 집적거리는 거지? 그 아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헤... 이 건방진 게 뭘 믿고 까불어!? 야, 너희들. 혼 좀 내줘라."
고용된 오크 용병들이 으르렁거리면서 커크우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커크우드는 말에서 내리더니 지그재그로 돌면서 소울캐논으로 오크들을 베어나갔다. 그리고 몸을 빙글빙글 돌며 높이 도약하여 공중제비를 하더니 허공 위에서 그대로 검을 가른다. 그러자 검에서 에메랄드 빛 기운이 뿜어 나와 단숨에 많은 수의 오크들을 녹여버렸다.
그리고 가볍게 착지한 커크우드는 자신이 쥐고 있는 소울캐논이 과연 마검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오크 세 마리를 베고 다섯 정도를 한번에 쓸어버리자 커크우드를 둘러싸며 덮치려던 오크들은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크와 고블린과 트롤 등은 먼 친척 관계라 할 수 있는 야수 무리 종족이다.
얼핏 보기에는 세 종족 다 비슷해 보이지만 오크는 리카온 또는 하이에나의 머리와 흡사한 개의 두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고블린은 오크보다 털이 더 많고 두 눈은 표범과 비슷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트롤은 어딘지 모르게 약간 고릴라나 오랑우탄과 약간 흡사해보이는 그러나 뒤통수에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의 작운 뿔이 달려 있어 세 종족을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세 종족은 항상 인간을 증오하고 있으며 직립 보행은 물론 도구를 사용하는 지능적인 야수 무리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나 언어 등등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집단성을 띄고 있어 철저한 계급 사회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은 종족은 역시 오크와 고블린이다. 그 중에서 인간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야수 마족은 역시 오크다. 오크들은 동포인 고블린과 트롤처럼 인간들을 극도로 증오하지만 가끔 용병으로써 인간에 의해 고용되기도 하고 혹은 인간을 오히려 고용하기도 한다.
돈에 관해서는 종족간의 증오심과 별개인 모양이다. 그 오크 용병들이 픽픽 쓰러지자 두 불한당들은 어이없어 했다.
"저 애송이... 마검사였잖아!? 빌어먹을!!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주마!!"
짐승 가죽 옷을 입고 있던 악한 둘 중 하나가 묵직한 언월도 하나를 들고 소년에게 일기토를 걸어온다. 그렇게 해서 커크우드는 검으로 상대의 언월도를 맞아 60여 합을 겨룬다. 거세게 달려드는 적의 매서운 공격에 처음에는 커크우드는 아주 잠깐이기는 해도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무거운 언월도라서 그런지 그것을 들고 있던 놈은 커크우드가 외팔이라는 것을 얕잡아 보았지만 절대로 뒤지지 않는 힘과 스피드에 당황하여 빈틈을 보였다.
사실 커크우드는 일부러 선수를 허락해 상대방의 전력을 가다듬으며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냥감이 먼저 날뛰도록 허용한 다음 기회를 봐서 빈틈에 일격을 가하는 식이였다. 커크우드가 어릴 적에 알고 지내던 어떤 하인이 기른 용감하고 충성스런 사냥개들 중 골든 리트리버의 싸움 방식을 보고 배워 자신의 전투 방식으로 흡수했었던 것이다.
커크우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언월도가 자신을 내리치려 할 때 몸을 재빨리 뒤로 빼내 공격을 피한 다음 반작용으로 몸을 돌아 그대로 단숨에 그 두툼한 언월도의 칼날을 소울 캐논으로 부숴 버리고 단번에 놈의 머리통을 칼로 찍었다. 비명도 지를 겨를 사이 없이 녀석은 단칼에 두 동강이 난 머리에서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발터!! 감히 내 친구 발터를 죽이다니!! 고작 님프 계집애 하나 땜에 같은 인간을 죽여!?"
그러자 커크우드는 차갑게 분노의 시선을 상대방에게 던졌다. 이 어린 생명을 가지고 놀던 네놈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너희 같은 쓰레기를 인간이라고 호칭하다니 듣기가 구역질이 나는군."
"뭐라고!? 이 팔병신 애송이가!!"
그 자는 두 자루의 도끼를 들고 커크우드에게 달여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크들까지 추가로 협공을 했다. 하지만 커크우드는 어릴 적에 혼자 익힌 검술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구사해 본다. 몸을 비틀비틀 거리는 듯 하다 오른발을 크게 땅을 밟고 그대로 높이 뛰어 올라 거꾸로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기술을 발휘한다.
"풍류파(風流波)!!"
그리고 검을 쥔 한 팔을 쭉 벌리며 360도로 고속 삼연속으로 풍차처럼 돈다. 그와 함께 검에서 강력한 자색 기운이 발생, 그대로 그 자색 기운이 4개의 돌풍을 만들어 오크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뚱이가 풍선처럼 처참하게 터져 버린다. 바닥에 착지한 커크우드는 위력에 감탄을 했다.
"성안에 있던 고서를 보고 혹시나 해서 익힌 것인데 효과가 생각 이상인데......?!"
그리고 재빨리 도끼 두 자루를 쥐고 있는 상대에게 파고들어 도끼 하나를 부수고 나머지 도끼조차 부숴 버렸다. 상대는 주춤거리더니 그대로 뒤로 물러난다.
"이런... 이런 제길!!"
뒤로 나자빠진 사내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심한 고동 소리..... 땅을 극히 울리는 어떤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놈의 뒤에서 오우거 4마리가 나타난다. 키가 18미터가 되는 긴 털 복숭이 괴물은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몸집과 인간의 얼굴에 입술은 없이 그대로 잇몸이 드러난 이빨의 앞에는 얼굴의 3분의 1을 덮을 듯한 길이의 뾰족한 이빨이 위 아래로 2개씩 뻗어 나와있었다.
눈은 불을 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번뜩이면서 노란빛을 띤 붉은 색이었고 금방이라도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담고 있었다. 머리에 난 물소의 뿔을 닮은 황토색 뿔은 오우거의 머리가 왜소해 보일 만큼 거대했다.
"오우거들인가!?"
커크우드는 일시적이나마 그 포악한 거대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이 녀석 보통 용병이 아닌데?!"
"이것들아!? 뭘 하고 있냐? 저 꼬마를 잡아 뜯어먹으란 말이다!!"
명령을 접수받은 네 마리의 오우거들.... 그리고 이어서 커크우드의 뒤와 좌우에도 같은 수의 오우거들이 나타났다. 열 여섯 마리의 오우거들을 상대로 싸워야 할 형편이었다. 우락부락한 오우거들은 기본 체격은 10m는 거뜬히 넘었다. 탈루미아의 오우거들은 곤충과 파충류가 혼합된 듯한 기괴한 형상이고 이 오우거들보다 훨씬 더 크지만 열 여섯 마리의 오우거들은 어딘가 모르게 덩치 큰 곰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대륙의 오우거와 저 탈루미아의 오우거 등의 공통점은 조류나 파충류처럼 알을 낳고 또 거대한 해처리(Hachery; 부화장) 자체가 이동하는 둥지인 마냥 무리를 지어 그 해처리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 다니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공통점이다. 온통 털복숭이의 야수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철퇴 따위 등을 쥐고 있었는데 철퇴 길이는 어림잡아 2m는 넘을 것 같았다.
"잠깐 기다려!!"
누군가가 소리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커크우드가 기대고 있는 나무 위에 두 명의 엘프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커크우드를 미행해 오던 잭슈와 카르바였다.
"뭐지!? 엘프 따위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힘도 없는 인간 주제에 엘프 따위라고 했냐 지금?! 잭슈, 저 녀석 머리통은 내가 날릴 거야. 끼어 들지 마!!"
"좋을 때로. 그럼 나는 오우거들을 정리하지."
"잭슈. 마법을 부탁해."
"뭐지? 이 엘프들은? 아니, 정말 엘프가 맞나?"
커크우드는 어리둥절해 했다.
"깨어나라. 나의 전사들이여....."
잭슈가 주문을 외우자 숲 속의 바위들이 모여 합쳐지더니 커다란 거인의 형상을 이루어 골렘이 되었다. 그리고 잭슈는 골렘들에게 명령해 오우거들을 상대하도록 했다. 골렘 14마리와 오우거 16마리간의 둔탁하고 파워풀한 격투가 시작되고 카르바는 바람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소환해 오우거들에 타격을 입히더니 그대로 악당에게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너, 아까 엘프 따위라고 모욕했지? 각오해!!"
"제길!!"
하지만 상대는 생각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슨 주문을 외우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상대의 주변을 보호하고 카르바는 튕겨나가다가 오우거 한 마리가 두 손으로 그녀를 붙잡아 움켜쥐었다.
"...?!"
"카르바!!"
"모두 움직이지마!! 당장 검을 버리고 저 골렘들을 해체시켜!! 빨리!! 안 그러면 네 동료는 죽는다, 이 한심한 엘프들아!!"
순간 잭슈는 주춤거렸다.
"저 자식이!!"
"거기 팔병신 애송이도 칼 버려!!"
"제기랄......"
커크우드와 잭슈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갑자기 굵고 위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은 것들..... 엘프라고 큰소리 치더니 그까짓 오우거 따위와 하급 마검사에게 쩔쩔매다니 진짜 한심하구나."
"웬놈이냐!?"
악당의 질문에 대답하듯 검은 살기의 기운이 어딘가 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오우거들을 단숨에 쓰러뜨린다. 그리고 회색빛 머리칼과 수염을 단 우람하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60대를 넘은 노인이 나타났다.
"흥!! 너 따위 애송이야말로 이 북왕불패를 알아볼 리가 없겠지."
"북...북왕불패라고!? 거짓말!! 오래 전에 실종되어 죽었다는 사람이 이런 곳에 어떻게?"
"아니.... 저 흑기사는 토너먼트에서 나와 겨뤘던 그 사람!?"
커크우드는 깜짝 놀랬다. 자신과 결승전에서 겨룬 그 흑기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북왕불패 크라케란 말인가?! 그 위대한 악몽의 기사라고?
첫댓글 제3090권 497장 5677절 대단;;
눈아퍼..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