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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제 지내기 (堂山祭) | ||||||||||||||||||||||||||||||||||||||||||||||||||||||||||||||||||||||||||||||||||||||||||||||||||||||||||||||||||||||||||||||||||||||
마을제사는 동제(洞祭), 당제(堂祭), 촌제(村祭), 부락제(部樂祭)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전라도 지역에서 당산제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당산제는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는 당산에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드리는 제의이다. 마을 주민 가운데 선출한 제관의 주재아래 매년 정월 14일 밤에 진행되는데, 오곡의 풍년과 마을의 제액을 기원한다. 제물은 삼실과 삼채, 돼지머리 등을 차리지만 마을마다 차이가 있다. -------------------------------------------------------------------
서낭당 마을 어귀에 가족의 초상화를 그려 놓은 서낭당, 1901년
서낭당 인왕산국사당의 서낭나무 서낭당 (-堂) 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 지방에 따라 성황당(城隍堂)·할미당(전라남도)·천왕당(경상북도)·국사당(國師堂;평안도) 등으로 불린다. 중국의 성황(城隍)에서 유래하였다 하나 분명치 않으며 한국 고유의 것으로 보인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최근까지 가장 널리 제사지내던 신이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로, 보통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갯마루, 한길 옆, 부락·사찰 입구 등 전국 도처에서 발견되는 민간의 보편화된 신당(神堂)이다. 서낭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상이 없고 다만 현실생활의 문제로써 액·질병·재해·호환(虎患)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의 관습에서 비롯된다. 즉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은 헝겊조각, 상인이 재물과 이익을 위해 걸어놓은 짚신조각 등이 있다. 또한 길에서 떠도는 악령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돌무더기 위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다. 정초에는 여성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무병무사를 빈다. 현재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나 영동·영남지방에서는 신당을 가지고 대규모 서낭굿을 하는데 동해안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가 대표적 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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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신앙하는 마을의 수호신.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그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고 매년 1∼2회씩 주기적으로 동제(洞祭)를 올려 마을의 평안과 풍년, 주민들의 풍요와 건강을 기원한다. 동신의 종류는 명칭상으로 볼 때 100여 종이 넘으나, 성격상으로는 천신계통(天神系統)의 천신·천왕신·천신대감신·도당천신(都堂天神)·삼황신(三皇神)·삼성신(三聖神), 성신계통(星神系統)의 칠성신·노성신(老星神)·노신·성신, 지신계통의 후토지신(後土之神)·지신·토지신·오토지신(五土之神), 산신계통의 산신·상산신(上山神)·주산신(主山神)·서낭신·국수신, 수신계통의 수신·해신·용신·수령신(水靈神), 왕신계통의 태조대왕신·공민왕신·뒤주대왕신·천자신(天子神), 장군신계통의 임경업·남이·최영·김유신장군신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산신·서낭신은 전국적으로 신앙되고, 해안지역에서는 용신과 도깨비가, 경기지역에서는 부군신(府君神), 경상도 동해안지역에서는 골매기신이 신앙되고 있다. 동신의 신체(神體)는 자연물(산·바위·돌·나무 등)과 인공물(위패·신상·그림·방울 등)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마을이 형성되면 동민들이 신당을 지어 동신을 봉안하고 동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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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이란?
부적이란 불교나 도교, 민간신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악귀나 잡신을 쫓고 제액을 물리치기 위하여 제작하거나 봉안하며, 이로서 신비한 힘을 얻어 신명의 위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믿어지고 있는 물건으로, 정해진 길흉화복의 운명을 간절한 염원과 적덕을 바탕으로 수정해 보려는 의지를 담고있으며, 이의 실현을 위해 신들을 부리는 명령서로도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소원을 위하여 허황된 정신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부적을 봉안하지 아니함만 못함을 명심해야한다. 언제나 기본정신은 정심정계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쓰여있는 효험이나 힘을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는것은 무리이다. 부적자체만으로서의 영험한 신비를 바라는 미련한 짓을 하지않기를 바란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자기자신의 성실한 노력과 염원, 그리고 부적을 쓰는 사람의 원력과 기도에 따라 부적의 영험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바로 인식하였다면 다음의 설명들을 읽어 내려가도 좋지만 맹목적인 신비한 기운만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면 다른 싸이트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부적의 종류와 효과
부적에는 그형태에 따라서 입체부와 평면부로 나뉜다. 입체부의 예로는,
석류부 조개부 여자단속곳 여우자궁부 호랑이코 수탉꽁지털 도끼부 작침부 바늘부 벽초목 평면부는 주로 종이에 경명주사로 그려지며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들이 알려져 있으나, 이 홈페이지에서는 가장 보편적이고 본인의 경험상 추천할 만한 효능있는 부적들을 소개하고자한다.
입체부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물건들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효험을 가지고 쓰여지며, 평면부는 주로 종이나 나무등에 문자의 형태로 쓰여지는것을 말한다.
안산, 구자득손,부부화합등의 효험이 있다고 믿어져 옛날에는 여자들의 노리개나 비녀등에 모양을 넣기도하고 실물을 벽에 장식삼아 걸어두기도 한다.
재수를 빌고 자손창성을 기원한다.
전당포나 노름꾼들이 지니면 재수가 이루 말할 수 없다하여 비싼 값을 치루고라도 꼭 구하려고들 했단다.
기생이나 첩실들이 옛날에 지니려고 애를쓰던 것으로 남자의 접근을 갈구하던 여인들의 마음의 의지처였다.
임신부의 방문위에 걸어두면 씩씩하고 신분이 높아질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수탉의 꽁지털 3개를 임신부의 요속에 몰래 넣어두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한다.
자그마한 도끼모형을 구리나 쇠로 3개 만들어 끈으로 꿰어 허리에 차고 다니면 큰 인재가 될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까치가 떠난 오래된 집을 털어서 얻은 콩알만한 돌을 작침이라하는데 이를 몸에 지니면 마음에 둔 사람에게 사랑이 발동한다고 믿었다.
남편의 외박이 잦다던가 사이가 좋지 못할때 눈에 뜨이지 않는 옷안에 넣어두는데 삼베에 실을 끼운 바늘을 꽂아만든다.
벼락맞은 대추나무에 주사로 부적을 그려 지니면 호신보명한다고 한다. 는 등등의 수많은 종류가 있다.
부적의 제작방법
부적의 제작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한 방법은 괴황지(백지에 치자물을 들인 노란색종이)에 경면주사나 영사를 갈아 들기름에 개어서 쓴다. 본인의 경우는 괴황지에 경명주사로 쓰기도 하지만, 백지에 먹을 갈아 쓰기도 하는등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물론 종이만드는 방법도 따로 있고, 부적을 쓸때 지켜야할 여러가지 어렵고도 복잡한 방법들이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요즈음처럼 바쁜 세상에 그 법도를 일일이 지키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굳이 그렇듯 어렵게 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의 정성과 지니는 사람의 믿음만 있다면 부적의 효과는 크다고 본다.
부적신장과 글문선생의 도움과 영력으로 쓰는 부적이니만큼 꼭 격식을 따를 필요는 느끼지 못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부적을 쓰는 순간은 정신통일이 되어 그 부적의 영험한 효과발현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참고로 이 홈페이지 안에 있는 여러부적들은 부적의 형태를 알리기위한 그림파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둔다. 혹시라도 이 부적들을 인쇄하여 지녀보면 상응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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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적을 바탕화면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파일을 바탕화면에 가운데 정렬로 배치하여 놓고 사용합니다. 어느구석에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게 될까 생각하면서 들여다보면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이 부적은 만령수호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정주법사의 강신부적입니다. 아뭏든 취업을 기다리시는 분, 사랑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 분, 컴퓨터에 우리꺼 한번 써 봅시다.
매일 컴퓨터를 켜실때면 나타나는 이 부적을 보며 여러분들의 소망을 빌어 보십시오.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빨리 성취되겠지요?
저의 조그마한 선물로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모든 고민과 걱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버리십시오.
강신부란 정해진 틀이 없이 신이 내린 상태에서 강신무가 써놓은 부적을 말합니다.
이 만령수호부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개인에 따라 다르게 발생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소원들을 개인의 근기에 어울리게 성취시켜 준답니다.
그렇다구 컴퓨터 앞에다 촛불켜 놓구 정한수 바칠 필요까지는 없구요.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시는 분, 건강을 되찾고 싶으신 분,
가정의 평안을 걱정하시는 분,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
성적을 올리고 싶은 학생들, 이름을 날리고 싶으신 분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음 속의 진정한 소원을 절실하게 빌어 보십시오.
혹시 알아요?
공짜부적인데두 영험은 끝내 줄지? 하하하...
배경화면 지정하실땐 가운데 정열로 해 주세요.
난잡한 사진들보다는 훨씬 실용적일겁니다.
무속을 알리는 방편의 하나로 부채도사가 드리는 서비스니까 부담(?)없이 사용하시구 친구들한테두 마니마니 소개 해 주세요.
소원성취 하세요....
위 부적 이외에도 70여종의 부적이 '부적의 신비'코너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소원에 따라 적당한 부적을 골라 바탕화면에 설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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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신앙은 우리 선조들의 가장 오래된 민족종교였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토신(土神).수신(水神).목신(木神).조왕신을 비롯, 미륵신(彌勒神). 장승신(長承神) 등 수많은 신들이 있어, 이들 신은 사람들의 복(福)과 화(禍)를 들이기도 하고 또한 쫓을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갖은 것으로 믿어 왔다. 그래서 정초(正初)에는 안택(安宅)을 2월에는 영등(靈登) 할미를 모시는 할만네들, 6월에는 용신제(龍神際)를, 7월에는 백중행사, 중양절인 9월9일에는 선조들의 제사, 동짓날에는 잡귀 쫓는 행사 등 절기마다 토속신을 모시는 행사를 가졌다. 특히 정월초에는 대부분의 가정마다 판수(점을치는 장님)나 무당에게 안택을 하여 재앙을 쫓고 집안을 보호해 줄 것을 빌었으며, 대부분의 어촌 마을은 공동으로 용신제를 지내는 등 한 해의 평안과 풍어(豊漁)를 기원했다.
----------------------------------------------------------- 1. 상달고사의 어원 10월 상달고사의 풍속 또한 가택의 수호신으로서 성주가 있는데, 이것은 대들보나 대공에 한지를 접어서 신체로 삼는 경우도 있고, 마루 한구석에 큰 독을 놓고 그 안에 철따라 보리와 벼를 갈아 담아 두기도 한다. 10월은 다양한 곡물을 농가마다 풍성하게 보유하고 있는 시기로서, 예로부터 다양한 시절음식이 전하고 있다. 이 시기의 시절음식으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0월 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울 풍속에 숯불을 화로에 피워 번철(燔鐵)을 올려놓고 소고기에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고춧가루 등 양념을 하여 화롯불에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데, 이것을 난로회(煖爐會)라고 한다. 이 달부터 시작되는 겨울의 추위를 막고자 예로부터 난로회를 시절 음식으로 즐겼다. 또 쇠고기· 돼지고기· 무· 외· 훈채· 계란을 섞어서 장탕(醬湯)을 만드는데, 이것을 열구자신선로 (悅口子神仙爐)라 하였다. 상고하면 세시잡기(歲時雜記)에 북경 사람은 10월 초하루에 술을 걸러 놓은 후 고기를 화로에 구우면서 둘러앉아서 마시며 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 한다고 하였다. 또 상고하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10월 초하루에 유사(有詞)들이 난로와 술을 올리라고 하면 민가에서는 모두 술들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를 했다고 하며, 지금의 풍속도 그와 같다. 10월에는 메밀이나 보릿가루로 만두를 만드는데, 채소· 파·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두부 등으로 소를 만들어 싸고 이것을 장국에 익혀서 먹는다. 또 밀가루로 세모나게 빚은 만두를 만드는데, 이것을 변씨 만두라 한다. 그것은 변씨가 맨 처음 만들었던 까닭에 그런 명칭이 생겼을 것이다. 생각하면 사물기원(事物記原)에 제갈공명이 남만국의 맹획을 정벌할 때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남만의 풍속은 반드시 사람을 죽여서 그 머리를 신에게 바쳐서 제사하면 신이 받아먹고 음병(陰兵)을 보내 준다고 했다. 이에 제갈공명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양고기, 돼지고기를 섞어 밀가루로 싸서 사람의 머리모양을 만들어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신은 이것을 받아먹고 군사를 보내 주었다. 후인들이 이것을 만두라고 한다고 했다. 만두는 큰 소쿠리에 넣어서 찌므로 증병(蒸餠) 혹은 농병(籠餠)이라 한다. 또 후사정(侯思正)이 먹었을 때 반드시 고기에 파를 잘게 썰어 섞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또 멥살떡, 꿩고기, 김치, 만두가 있으나 김치가 가장 조촐하고 소박한 시절음식이다. 그 근원을 살펴보면 제갈공명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요즈음 반찬 중에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다. 두부를 가늘게 썰고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지지다가 닭고기를 섞어 국을 끓이면 이것을 연포탕(軟泡湯)이라고 한다. 여기서 포라는 것은 두부를 말하 며 한 나라 무제(武帝) 때 신하 회남왕(淮南王)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상고하면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이르기를 솥을 닦고 여기(黎祁)를 지진다는 글 뜻의 주(註)에 촉 인(蜀人)은 두부를 여기(黎祁)라고 부른다고 한 것을 보니 지금의 연포가 곧 이것인 것이다. 아직 자라나는 쑥을 뜯어다가 쇠고기와 계란을 넣어 섞어서 떡을 만들고 볶은 콩가루를 꿀에 섞어 바르 면 이것을 애단자(艾團子)라 한다. 또, 찹쌀가루로 동그란 떡을 빚고 삶은 콩을 꿀에 섞어서 불그스레한 빛이 나게 만든 것을 밀단고(密團)라고 하며, 이 음식은 거의가 초겨울의 시절음식이다. 찹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크고 작게 썰어서 이것을 햇볕에 말렸다가 기름에 튀기면 누에고치마냥 부풀어오르지만 그 속은 빈 구멍이 난다. 여기에 흰 깨, 검은 깨, 흰 콩가루, 파란색 콩가루 등에 엿물을 뿌려서 붙인다. 이것을 강정이라고 한다. 상고하면 송나라 남전여씨(藍田呂氏)의 가품명(家品名)에 원양소(元陽蕭)가 바로 이것이다. 또 상고하면 중국의 병이한담(餠餌閒談)에 수병은 콩가루에 설탕 혹은 깨를 발라서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호마병(胡麻餠)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것도 역시 같은 떡 종류이다. 또, 다섯 색깔의 물들인 강정도 있으며, 잣을 다시 잣가루에 묻혀서 칠한 것을 송자강정[松子乾 ]이라고 한다. 그리고 찹쌀을 불에 살짝 튀겨 꽃 모양을 만들고 엿으로 붙인 것을 매화강정[梅花乾 ]이라 한다. 서울 풍속에 무, 배추, 마늘, 고추, 소금 등으로 김장독에 김장을 담근다. 여름철의 장담기와 겨울철의 김장을 담그는 것은 사람들이 일 년 중의 중요한 행사계획이다. 당시의 시절음식은 이렇듯 다양하나 사회 문화적인 변화로 인해, 오늘날 먹거리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장은 오늘날 여전히 전승되고 있으며 다양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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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의 열 일곱 번째 절기이다.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9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 195도의 위치에 이른 때이고, 양력(陽曆)으로는 10월 8. 9일경이다. 의미는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찬 이슬이 내린다는 뜻이다. 이 시기는 단풍이 짙어지고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수확하는 시기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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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 이기도 하다. 한로절(寒露節)은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露)이 찬 공기(寒)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옛 사람들은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저녁이면 붉게 익은 감을 까치 밥으로 남겨 둔 고향집이 그리울 때이기도 하다.
이 무렵에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산 수유(山茱萸)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산수유 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 색은 양기(陽氣)의 색으로 사귀(邪鬼)를 쫓는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
한로와 상강철의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기어(魚)+가을추(秋)가 미꾸라지 추(鰍)자인 것을 보면, 가을[추(秋)]에 누렇게 살찌는 고기[어(魚)]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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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으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황금빛 벼들의 물결에 맞춰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의 가을 들판은 너무도 다르다. 주인은 논둑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콤바인이 굉음을 울리며 순식간에 논을 오가며 벼를 담은 가마니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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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황 당
1. 성황당의 개요
서낭당의 원말은 성황당(城隍堂)으로, 서낭이란 말은 서낭신(神) 또는 서낭神이 붙어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서낭神은 원래 수성을 지켜주는 神이었다. 옛날에는 고을의 관위(官衛)가 있던 곳에는 반드시 성황사가 있었고, 밀양(密陽)의 성황사는 본래 추화산(推火山)에 있는 것을 선조 경진년에 성내로 옮겼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다. 그러나 점차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도성(都城)을 지켜주던 성황신이 토속신(土俗神)으로 화하여 마을의 터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定着되었다. 이는 대개 자연부락(自然部落)의 동구(洞口)에 당나무를 심고 석축을 쌓아 올린 돌무더기에 입직(位置)한 성황객에 모셔져 있다. 이 때 심는 당(堂)나무로는 느티나무(귀목나무), 팽나무(포구나무), 고욤나무 등이 주종(主種)으로, 이는 수령(樹齡)이 길고 수세(樹勢)가 왕성한 수종(樹種)으로 정자나무로 이용되기도 한다.
당제(堂祭 : 서낭신에 대한 제사)는 동리마다 약간의 착오가 있다. 시기로는 대개 음력 10월과 5월 보름날 자시(子時)에 지내고, 제관(당제를 지내는 사람)의 선정은 대를 잡아 서낭신이 지정하는 집에서 당제를 받들었으나 오늘날에는 농민들이 의논하여 제관을 정하는 마을이 많다. 제관으로 지적된 집에서는 경건한 몸과 마음가짐(집안의 청소와 찬물에 목욕 제계(齊戒))으로 제수를 장만하여 한해동안 동민(洞民)의 무사태평과 풍년을 축원하는 제를 올리게 된다. 아울러 당제를 지내는 날에는 동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수(祭需)를 나누어 먹고 그 자리에서 동회를 개최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한다. 이와 같이 무속적(巫俗的)인 행사는 주로 농경시대에 성행된 것으로 공업화, 도시화에 따라 점차 변화되거나 퇴색해가는 추세이다.
우리 향토에도 마을마다 당사(堂祠)나 제단이 있었고, 그 근처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있어 지금도 이곳에서 무속 행사가 이어 지고 있는 동리가 많다.
2. 신리 성황당
신리 성황당은 신리 5반과 신리 2반에 각각 한체씩 있다. 신리 2반에 있었던 성황당은 1995년에 농산물 간이집하장이 들어서면서 신리 1반으로 이전 되어 있다. 성황당은 옛 조상들의 토속신앙(土俗信仰)과 더불어 자연과 사는 삶에 뜻을 두었고 토속신을 모심으로써 모든 사상과 믿음을 중요시 했던 불교의 넓은 가르침을 보여준다. 성황당의 주위는 보통 돌담으로 쌓여져 있고 , 4평 남짓한 공간에 지은 집으로 오래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마을의 평온함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고사를 지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건강과 평화, 무사를 기원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성황당은 산신당과 서낭당(원말)이 합쳐진 복합신앙의 모습과 용신당과 장군당이 혼합된 형태를 지니기도 한다. 신수, 당집, 제단 등의 용어는 이러한 성황당의 토속성을 잘 보여준다.
옛날의 우리 할머니, 어머님 들이 자식 걱정에 애환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더 나아가 모든 만물의 평화와 공존이 함께하는 원시적 신앙심이 깊이 베어있는 금기와 경외의 영역으로 우리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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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 (神主) |
요약 |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대개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8치, 나비는 2치 가량이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지게 되어 있다. 치장(治葬) 때에 만들었다가 하관하여 매장한 뒤 제주(題主)를 하여 모신다. 신주는 주신(主身)과 받침대의 2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주신은 앞쪽(前身)과 뒤쪽(後身)으로 나뉘고 이것들을 함께 받침대에 끼우게 되어 있다. | |
설명 |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대개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8치, 나비는 2치 가량이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지게 되어 있다. 치장(治葬) 때에 만들었다가 하관하여 매장한 뒤 제주(題主)를 하여 모신다. 신주는 주신(主身)과 받침대의 2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주신은 앞쪽(前身)과 뒤쪽(後身)으로 나뉘고 이것들을 함께 받침대에 끼우게 되어 있다. 제주 때에 이전신의 분면(粉面)에 아버지의 경우 <현고모관봉시부군신주(顯考某官封諡府君神主)>와 <효자모봉사(孝子某奉祀)>라는 방제(旁題)를 쓰고, 함중(陷中)에 <고모관모공휘모자모신주(故某官某公諱某字某神主)>라고 쓴다. 신주는 비단으로 만든 덮개[韜] 및 깔개[藉]와 함께 독좌에 모시고 독개를 덮은 뒤 창독에 넣어 사당의 감실(龕室)에 보관한다.
신주 사당의 감실에 모신 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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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신앙 (鄭鑑錄信仰) |
요약 | |
《정감록》을 근거로 한 한국 고유의 민간신앙. 진인출현설(眞人出現說)을 핵심으로 한 신앙으로서 조선 후기에 형성되었다. 그 뒤 이에 가탁(假託)한 모반사건·민란 등 민중운동이 많이 일어났으며 동학을 비롯한 조선 말기 신흥종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기원〕 사상적 연원은 고대중국의 자연철학적 우주론과 정치적인 역성혁명(易姓革命)이론에서 비롯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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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짐대당산, 전북 부안군 신안읍 대아리
마을신앙 고인돌, 강원 양구군 양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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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에서의 지신
⑴ 가신 중의 지신:집터의 안전과 보호를 주관하고 있는 지신은 <터주> 또는 <터줏대감>이라고 부르며, 터주는 지역에 따라 지신·철륭·뒤꼍각시라고도 한다. 집주인은 명절 때나 집안에서 큰 굿을 할 때 터줏상을 차려서 지신을 모시는데, 터주를 위하지 않고 흙을 함부로 다루거나 하면 터주가 노하여 집안이 재앙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동티[動土]라고 한다. 흔히 집터가 세다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터주가 강하고 노하기를 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재앙을 면하려고 터주를 위하는 고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터를 누른다>고 한다. 터주와 관련된 민속행사로는 영남지방 일대에서 정초에 행하는 <지신밟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도 역시 땅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신을 위로하여 한해를 평안하게 지내려는 기원 행사로서, 주로 집 안에 있는 우물터·곳간터·마굿간터·장독터 등의 여러 신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항아리나 작은 병 속에 쌀 또는 벼를 넣고 짚으로 덮은 것을 터주의 신체(神體)로 삼아 장독대의 모퉁이나 뒤뜰에 안치하여 터줏단지·터주병·터줏까리라고 한다.
⑵ 동신(洞神) 중의 지신:제주도에서는 방위의 신인 오방신(五方神)이 오방토신(五方土神)으로 불려 지역수호신을 토신으로 본다. 그리고 마을신인 본향신을 토지관(土地官) 또는 토주관(土主官)이라 한다. 한편, 한 마을로 들어서기 전 재를 넘는 고갯길에 누석단(累石壇)인 서낭당을 두어 서낭신을 모신다. 먼 여행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그곳에 돌을 하나씩 쌓아 놓음으로써, 고갯길을 지키는 서낭에게 먼 길을 가는데 발이 탈나지 않고 다리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뜻이 있는데, 이 서낭신은 지역토지신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⑶ 농촌공동체의 사직신앙(社稷信仰):중국에서는 상고시대부터 토지와 농업을 맡은 신을 존중해왔다. 특히 토신인 사(社)에 대한 제사는 본래 각 부족집단의 제사였지만, 나중에는 농촌공동체나 서민집단 단위로 제사가 베풀어졌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사직은 지신으로 제사되었고, 한(漢)나라 때부터는 민간의 <사>에 대한 제사는 금지되고 촌락의 제사 또는 축제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농신(農神)에 대한 제의가 상고시대부터 자생적으로 행해졌고, 고려 때는 토속신에게 제사지내던 팔관회(八關會)와 함께 토지신을 섬겼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직제가 종묘의 제사와 함께 중요시되어 서울에서는 사직단을 설치하고 봄·가을로 임금이 제사를 지냈으며, 각 군읍에서도 사직단을 설치하여 그 고을 수령이 제사를 올렸다. 사직신앙은 농촌공동체의 민간신앙을 넘어서 국가적인 신앙대상이 되었다.
민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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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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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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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만족한 상태 또는 그에 따르는 기쁨. 일반적으로 행복이나 길운(吉運)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연숭배·조상숭배·샤머니즘 등의 형태로 유지되어온 민간신앙은 언제나 현세 기복(祈福)에 그 목적을 두어왔다. 이런 신앙행위는 유교·불교·도교 등의 종교가 유입되자 이들과 융합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복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굳이 유교·불교·도교 등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복은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즉 "아내를 잘 얻는 것도 복이다", "누구든지 자기 복은 지고 태어난다"는 등의 말처럼 복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실제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복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복의 개념은 2가지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다. 첫째는 불교와 관련된 개념이다. 불교의 대삼재(大三災)인 화재·수재·풍재와 소삼재(小三災)인 도병재(刀兵災)·질역재(疾疫災)·기근재(饑饉災), 그리고 팔고(八苦)인 생·로·병·사·애별리고(愛別離苦: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원증회고(怨憎會苦:미워하는 사람과 마주쳐야 하는 고통)·구부득고(求不得苦: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오음성고(五陰盛苦:色·受·想·行·識의 五蘊이 성하여 일어나는 고통) 등과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삼재팔고가 모두 현세의 액이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복의 관념을 지니고 있다. 둘째는 유교적인 개념이다. 이는 오복이나 삼복 등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오복은 〈서경 書經〉에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有好德)·고종명(考終命)으로 언급되어 있고, 삼복은 연명장수(延命長壽)·부귀영화·평강안녕(平康安寧)을 의미한다. 이 역시 모두 현세의 액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나, 또는 현세의 안녕을 바라는 것이다. 복을 얻기 위한 행위로서 소극적으로는 액막이·나례(儺禮:악귀를 쫓는 축귀의례)·부적·방귀매(防鬼枚: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빗자루로 창살을 두드려 잡귀를 문 밖으로 내쫓는 민간신앙) 등으로 표현되었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성공제(誠貢祭)·기은제(祈恩祭)·고사(告祀)·굿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런 기복행위는 구체적인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복을 주관한다고 믿었던 제석신(帝釋神)·대감신(大監神)·성주 등의 신격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 신격은 인간의 수명·재물·성공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민간신앙에서 토착화된 불교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삼성각(三聖閣)·산신각(山神閣)·칠성각(七星閣) 등에 모셔진 신격도 역시 이들과 동격이었다. 한편 복을 비는 행위나 상징은 가신(家神) 신앙을 통해 잘 나타났다. 가신 신앙은 집안에 깃들어 있는 신을 모시는 무속의 일종으로 집에는 다양한 신격들이 있어 이들이 집안의 요소요소를 도맡아 보살펴준다는 믿음이었다. 명절이 되거나 별식(別食)이 생기면 우선 가신에게 바쳤고, 정초의 안택(安宅)이나 가을 상달고사 때는 이들 가신에게 고사를 지냈다. 이들 신이 보살펴주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이 복을 받고 편히 살며 집안의 대소사가 평안하다고 믿었던 것이었다. 가신에는 집안의 죽은 조상을 모시는 조상신, 출산신인 삼신, 외양간신인 우마신, 뜰의 신인 지신, 샘의 신인 우물신, 장독의 신인 철룡신 등 다양했다. 또한 의식주생활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식생활의 경우 명절의 음식에 잘 나타났다. 설날에는 새로운 정신과 몸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복을 빌며 차례도 지내고 세배를 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을 먹어야만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또다른 기복의 행위는 간지(干支)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간지는 10간과 12지를 서로 조합하여 만든 60개의 순서를 통해 우주만물을 주역의 이치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이는 결혼·장례·이사 등 특정일의 날을 잡는 일에 이르기까지 민간생활과 아주 밀접한 것이었다. 특히 사람의 생년·월·일·시의 간지를 사주(四柱)라고 하는데, 사주가 그 사람의 운명을 미리 결정한다는 속신의 발생과 함께 혼인의 택일, 남녀의 궁합을 정하거나 흉일을 피하는 비방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길흉사를 결정하는 각종 재난을 미리 예언하여 이를 피하고자 하는 수단으로도 사주는 이용되었다. 기복행위는 제액(除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세시풍속에 따라 정기적으로 행해졌다. 조선 후기의 혼란한 사회상황에서 복에 대한 갈망은 각종 신종교 발생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한 외래종교가 유입되더라도 민간에서는 이를 기복적인 성격으로 변형시켜 흡수했다. 崔禎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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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신 (人格神) | |
인간적인 의식이나 형상을 지닌 신.
유신론의 대표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인 유일신을 가리키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신격화된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전자의 의미로서의 인격신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대부분의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격적인 신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의 원시시대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만물이 제각기 정령(精靈)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정령이 곧 숭배의 대상이었는데, 이와 같은 신관을 자연신관이라고 한다. 이 자연신에서 바빌로니아·이집트·그리스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신교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신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부여한 데서 유일신의 형태가 도출되었다. 유일신으로서의 인격신은 창조와 섭리, 그리고 심판(審判)의 신이며, 신은 이 세계와 우주의 모든 존재를 창조한 유일의 초월적 존재이다. 즉 신은 역사와 개인생활에 개입하면서, 모든 것을 섭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최후의 심판을 내리는 존재이다. 신은 또한 합리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존재로서 계시를 통해 자기자신을 드러내며, 인간은 초자연적인 은총의 빛을 통해서만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신개념은 이신론적(理神論的)인 관념이나 범신론적(汎神論的)인 관념에서의 신개념과 구분된다. 이신론은 신을 존재하는 세계의 근거 및 원인으로서 파악하며, 범신론은 존재 그 자체를 신으로 파악하고 신을 초월적 존재가 아닌 전체로 보는 데 반해, 유일신으로서의 인격신은 인간을 유한성 및 모순과 부조리의 상황 속에서 구원할 수 있는 절대적·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한편 후자의 의미에서의 인격신은 주로 신령사상(神靈思想)이나 민간신앙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령사상은 종교학적 의미에서의 아니마(anima)나 아니마트(animat)를 의미하는 넋[靈]이 실체로 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사람에게 길흉화복의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고, 그러한 신령을 숭배 또는 경외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신령사상은 죽은 사람의 넋인 사령(死靈), 역사적인 인물들의 넋인 위령(威靈), 산에 사는 산령(山靈) 등 셀 수 없이 많으며, 민간신앙에서는 이러한 영들과 융합한 존재를 신명(神明)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신명들 중에서 으뜸가는 것은 천신(天神)인데, 무속신앙에서는 총천신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신령사상과는 별도로 한국의 개국시조(開國始祖)인 단군이나 박혁거세, 동명왕(東明王) 등은 사후에 신격화된 인물들이다. 민간신앙에서는 기복(祈福)을 목적으로 역사상의 여러 인물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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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숭배 (祖上崇拜, ancestor worship) | |
개요죽은 인척의 혼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종교적 신앙과 의식. 이들 중에는 신화적인 인물도 있을 수 있다. 조상숭배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섬기거나 두려워하는 것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넓은 지역에 걸쳐 여러 문화에 나타난다. 조상숭배는 아프리카·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문자사용 이전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고대 지중해 연안의 민족과 고대 유럽 민족 가운데에도 나타났으며, 아시아 문화권, 특히 한국·인도·중국·일본에 뚜렷이 나타난다. 조상숭배가 행해지는 문화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공동체의 서로 다른 두 계급이 맺고 있는 것과 동일한 관계를 맺는다. 왜냐하면 죽는다고 해서 어떤 사람의 사회적 단위(가족·씨족·종족·촌락·국가)에 대한 귀속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다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우호적인 존재, 즉 친척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은 자가 잠시 동안 후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분노할 수 있으며 이런 마음은 응분의 존경·경외·숭배를 나타내 보이면 사라진다고 본다. 죽은 자, 특히 죽은 타향인의 영혼은 그 사회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인 존재로서 개인이나 사회 전체에 해를 줄 수 있는 악의를 지닌 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조상숭배는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죽은 자가 살아 있을 때 속해 있던 사회의 구성원인 가족·씨족·종족·국가가 죽은 자를 숭배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공동체 단위의 숭배는 로마의 마네스(조상의 영혼) 숭배에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때에는 특정한 혈통에 속한 영혼을 섬긴다. 이 경우 죽은 개인은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고, 생명력(genius)으로 간주되었다. 보다 널리 행해지는 조상숭배는 조상 개개인의 숭배이다. 이러한 조상숭배는 공동 숭배와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된다. 로마의 황제 숭배와 이집트의 선왕(先王) 숭배, 일본의 황실 숭배 등이 그 예이다. 모든 조상들이 똑같은 숭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조상이 다른 조상보다 더 능력이 있는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 집단의 평범한 일원이 죽었을 때는 직계만이 그를 돌보아주거나 전혀 돌보지 않거나 또는 일정 기간만 돌보는 반면, 위대한 명사(名士)는 사회 전체가 정성들여 숭배한다. 유명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연장자라는 이유 때문에 조상숭배의 서열에 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계(家系)의 시조(始祖)는 여러 세대가 지난 후에도 계속 그 가문의 숭배를 받을 수 있다. 어떤 한 선조가 경배받을 만한 모든 특성을 겸비하고 있거나 어떤 특성을 탁월하게 보여주면 그는 죽은 영으로 간주되지 않고 신(神)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를 보여주는 분명한 실례는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는 그리스의 여러 지역에서 신으로 숭배받는 인물이지만 영웅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또한 그를 공경하는 일만 하는 아스클레피아다이(의사들의 조합)도 있다. 조상의 영들을 불러서 기도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공동체를 여러 방면으로 도와달라고 빌기 위해서이다. 즉 가계가 계승되고 질병과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풍성한 농작물을 수확하고(조상들이 땅에 살고 있다고 간주했음) 신들에게 중재하도록(조상들은 신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이나 혹은 신들의 거주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되었음) 빌었던 것이다. 조상의 영혼들과 신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조상이 신보다 열등하기는 하지만 조상의 영이 살아 있는 자들보다는 신의 호의를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조상숭배한국의 조상숭배는 유교의식인 제례(祭禮)와 민간신앙의 가신신앙(家神信仰)이나 무속(巫俗)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제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가족은 죽은 조상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조상은 이승에서 후손과 함께 살고 있는 존재이며, 집은 조상과 후손이 함께 거주하는 장소이다. 이런 이유로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祠堂)은 가옥구조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일정한 시기마다 지내는 조상들에 대한 제사는 집안의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사당은 가정생활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가정사는 대부분 사당 앞에서 행해졌으며 집안의 대소사는 먼저 사당에 계신 조상에게 알린 다음에 이루어졌다. 아침마다 사당에 문안을 드렸으며, 청명(淸明)·한식(寒食)·중추절(仲秋節)·중양절(重陽節) 등의 명절 때가 되면 새로운 음식을 올리는 신례(新禮)를 지냈다. 이러한 사당제(四堂祭) 외에도 계절마다 중월(仲月)인 2·5·8·11월에 지내는 사시제(四時祭), 9월에 부모에게 올리는 미제(彌祭)와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 등의 제례가 있었다. 지금도 중요하게 행해지고 있는 유교의 조상제례에는 크게 기제·차례·묘제의 3가지가 있다. 기제는 장손의 부(父)·조(祖)·증조(曾祖)·고조(高祖) 등 직계 4대조에 해당하는 조상들과 그 정식 배우자들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대개 죽은 날 자정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기제사의 대상 가운데 여자 조상은 어머니, 할머니로서의 자격이 아니라 남자조상의 부인자격으로 제사를 받는다. 차례는 정월 초하룻날과 추석에 드리는 명절제사로서, 장손의 집에서 제사지내는 모든 조상들을 다 모시고 음식을 차려 인사드리는 것이다. 명절제사 때는 4대조의 직계조상뿐만 아니라 자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남계의 방계(傍系)조상과 친족에 대해서도 제사를 드린다. 묘제는 시제(時祭)·시향(時享)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지역에서 문중을 형성하고 있는 씨족마을 성원들이 그 문중의 중시조(中始祖)나 입향시조(入鄕始祖)를 시작으로 5대조 이상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대개 음력 10월에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조상의 묘소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 유교에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제례를 통해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 사이에 친밀하고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하려고 해왔다. 유교의 제례가 한국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조상숭배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민간신앙에서 이루어지는 조상숭배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민간신앙에서의 조상숭배는 가신신앙과 무속에서 볼 수 있다. 가신신앙에서의 조상숭배는 가신의 하나로서조상신(祖上神)을 모시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조상신은 안방의 윗목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며, '제석오가리'(전남)·'조상단지'(전북·경남)·'세존단지'(경북)·'제석주머니'(서울·경기)·'조상님'(충남) 등의 여러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단지·항아리·주머니 등의 형태로 모셔진다. 단지나 주머니 속에는 쌀을 넣어두었다가 매년 가을에 신곡(新穀)이 나면 햅쌀로 바꿔넣으며, 묵은쌀로는 밥을 지어 식구들끼리만 나눠 먹고 남에게는 절대로 주지 않는다. 그 단지 속의 쌀의 양이 늘어나면 풍년이 들고 집안이 잘 되지만, 양이 줄거나 빛이 변하면 흉년이 들거나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여 정성껏 모신다. 조상신은 종손이나 맏아들의 집에서만 모셔지며, 명절이나 가족의 생일 때 음식을 바쳐 농사가 잘 되고 집안이 무고하며, 자손이 잘 되기를 빈다. 제물로는 밥·떡·나물·돈 따위를 놓으며, 술이나 고기는 놓지 않는다. 제석오가리·세존단지·제석주머니 등의 명칭과 제물에서 드러나듯이 가신신앙에서의 조상은 불교적 성격과 삼신(三神)의 성격, 그리고 농신(農神)의 성격 등이 결합되어 있는 존재로서 유교적 의미의 조상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신의 하나로서 집의 중심부인 안방에 모셔지고, 여러 계기를 통해 조상신이 모셔진다는 것은 가신신앙에 있어서도 죽은 조상이 살아 있는 후손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갖게 되는 가족의 한 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유교제례의 신주·위패(位牌)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 '신주단지'·'등오가리'(호남지방)·'조상당세기'(영남지방)는 4대조 이내의 조상에 대해서 같이 모셔지기도 한다. 무속에서 조상숭배와 관련되는 것은 흔히 '조상거리'·'조상굿'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지는 절차이다. 이 절차는 굿하는 집안의 모든 조상을 윗대부터 차례로 모시는 절차로 살아 있는 후손이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조상을 청하여 조상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 이때 청해지는 조상은 직계·방계의 구분이 없으며 남녀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직계와 방계,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유교적 의미의 조상개념과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굿을 통해 조상이 청해지고 도움이 요청된다는 것은, 무속에서도 죽은 조상이 살아 있는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속적인 소통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교적 제례와 민간신앙의 가신신앙 및 무속에서 나타나는 조상숭배는 조상의 개념과 조상을 모시는 형태에서 나름대로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조상숭배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즉 조상은 죽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후손들과 끊임없이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상은 죽음과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과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소속되어 있던 공동체의 성원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의 조상숭배는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며, 가족은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함께 이루는 공동체로서, 죽은 조상은 살아 있는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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