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제비는 무엇을 위해 날았는가?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고향 땅에 푸른 제비(淸燕)처럼 날아들고 싶었던 한 여자 이야기를요.
가난하고 우울했던 소녀 시절 억새풀밭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꿈을 키운 경원(장진영)은 자라서 일본의 다치가와 비행학교 학생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의 일입니다. 홀로 현해탄을 건너와 고학으로 비행사 훈련을 받고 있는데요. 경원은 우연히 조선 최고 갑부의 아들 한지혁(김주혁)을 만납니다. 둘은 곧 호감을 갖게 되지만 지혁의 아버지가 찾아와 지혁을 일본군에 입대시키고 맙니다. 일 년 후 지혁은 다치가와 기상대의 장교로 부임해 와서 경원과 재회합니다. 윤종찬 감독의 영화 〈청연〉(2005)은 전 일본 비행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장거리 비행으로 조국의 상공을 날아보겠다는 꿈을 좇는 식민시대 한 조선 여성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청연〉은 개봉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였어요. 주인공인 박경원이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아니라는 반론부터 영화가 박경원의 친일 행각을 미화했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됐습니다. 조선 ‘최초’ 여성 비행사로는 박경원보다 앞서 군 비행사가 된 독립운동가 권기옥 지사가 있었고, 박경원은 일장기를 달고 활동했으며 황군 위문 비행 도중 사망했다는 주장입니다. 제국군 입대를 독려하는 선전 활동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당시 외무대신 고이즈미(고이즈미 전 총리의 조부)와의 내연 관계로 혜택을 입은 것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불매운동과 거센 비판에 직면한 영화는 49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어요. 개봉 당시로서는 막대했던 97억 원 예산(순제작비)의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처참한 결과였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뒤늦은 옹주의 귀환, 〈덕혜옹주〉 영화 〈청연〉으로부터 약 11년 후, 고향에 가고 싶었던 또 한 여인이 스크린에 등장합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서 덕혜옹주(손예진)가 일본 땅을 밟은 것은 박경원이 비행학교에서 수학하던 1925년 무렵입니다.
일제의 볼모가 되어 강제 유학을 가게 된 옹주 덕혜는 배다른 오빠인 영친왕(박수영)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덕혜는 세숫간 나인이었던 양귀인(박주미)의 소생이었어요. 마침 어릴 적 부마 후보로 거론되던 김장한(박해일)이 나타나 덕혜와 영친왕의 망명을 돕겠다고 했고, 친일파 한택수(윤제문)는 조선의 징용 노동자들 앞에서 위문 연설을 하면 위독한 모친을 보러 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를 합니다. 하지만 망명도 병문안도 허사가 됐죠. 그 연설에서 옹주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며 조선어로 항일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본인 소 다케유키(김재욱)와 결혼한 덕혜는 해방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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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입국을 금지당했다가 한일 수교를 맞아 1962년에야 비로소 조국 땅을 밟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을 보낸 정신병원에서의 기억과 여전히 병든 몸과 정신의 질병을 동반한 귀국이었지요.
개봉 직후 〈덕혜옹주〉도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말년이 비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와 달리 덕혜옹주는 한글학교 설립이나 독립운동과 무관했고,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처럼 대접받으며 살았다는 거지요. 특히 일본군 중장이었던 영친왕의 친일행각에서 옹주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사 왜곡 논란 속에서도 〈덕혜옹주〉는 〈청연〉의 열 배가 넘는 559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한국영화 시장과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덕혜옹주〉의 순제작비가 85억 원(마케팅 포함 총제작비 100억 원)이었고, 손익분기점이 350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두었던 셈입니다.
왜곡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감독 허진호는 말했습니다. “그랬으면(용기와 힘을 내서 독립운동을 좀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고 말이죠. 역사가 그대로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 한 그의 발언은 타당해보입니다. 하지만 왜 〈덕혜옹주〉는 되고 〈청연〉은 안 되는 거였을까요?
상징체계에 균열을 내는 영화적 상상력 찾으려고 들면 역사적·문화적으로, 또 영화적으로도 적잖은 이유들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만 〈덕혜옹주〉와 나란히 이 영화를 다시 보자니, 오히려 대중영화로서 〈청연〉이 ‘앞서 갔던’ 지점과 성취가 눈에 들어옵니다. 〈청연〉은 일단 역사적 인물을 다룰 때 영웅-희생자 아니면 피해자, 예컨대 독립투사 아니면 ‘위안부’로 간편히 재편되던 당위적 재현의 틈새를 파고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으로 명명되던 남녀의 상징체계를 뒤바꾸지요. 영화 〈청연〉이 혹시 오늘날 더 의미 있게 읽힐 수 있다면 이 점에 주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이 왜 좋아?” 지혁이 묻습니다. “하늘에 올라가면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남자나 여자, 그런 게 다 필요 없잖아. 난 그래서 하늘이 좋아.” “난 땅이 좋아…, 네가 있는 땅이 좋아.” 지배층이자 갑부인 남성 지혁이 ‘땅’을,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여성 경원이 ‘하늘’인 겁니다. 더욱이 지혁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 ‘기상 관측장교’입니다. 오매불망 ‘하늘’을 관찰하고 기다리는 일, 이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죠.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지혁이 조선어로 하는 첫 대사이자 노래입니다. 지혁은, 그러니까 이 영화는 조선 여성 박경원에게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어설프고 불완전하게나마 그 희망을 응원하죠. 영화가 경원의 추락 이미지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다소 무리수를 둔 듯한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희망’을 위한 장치가 됐어요. 〈청연〉은 여성들, 특히 꿈이 좌절된 일본 여성 기베(유민)와 경원을 우상처럼 따르던 정희(한지민)를 포함한, 아시아 여성들의 희망을 말합니다.
반면 〈덕혜옹주〉는 덕혜에게 “너의 희망(꿈)이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묻지 않습니다. 묻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이요. 왜냐하면, 그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으니까요. 이를테면 단지 엄마가 보고 싶었던 이 여성에게 타이틀과 신분에 맞게 행동하라고, 영화적으로 부추기지요. 따라서 잠시나마 영화가 덕혜에게 독립운동가의 이미지를 덧입힌 것은,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을 복원하는 최근의 전방위적 과업 측면에서는 차라리 퇴행적 상상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친일 논란을 예외로 하더라도, 역사적 인물이자 여성인 덕혜를 다시 ‘영웅-희생자’ 구도에 가두어 두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지막이어서 희망이 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은 그 때문에 더 ‘불쌍’해졌으니까요.
평생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던 황녀는 죽어 등장한 영화에서조차 독립운동가와 황족의 가면을 쓰고서야 환영받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그조차도 동정과 연민의 모양으로요. 반면 〈청연〉은 어쩌면 봄이 되기 전에 너무 일찍 날아올라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 다리 꺾인 제비였던가 합니다. 제비는 결국 고향 마당에 도달하지 못했군요.
앞서간 그녀와 앞서간 영화, 너무 앞서서 가버린 두 배우, 고 김주혁과 장진영을 애도합니다.
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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