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6:10)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지금까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얘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술람미 여인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한 여인은 아니다.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인이다.
이런 비유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 군병이기 때문이다.
신부는 교회의 상징이다.
거울 앞에서 화장품을 찍어 바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탄의 간계를 능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살기 힘들다고 징징 짤 것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거스르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군에 갓 입대한 훈련병 시절의 일이다.
군인수첩을 나눠 주면서 거기 빽빽이 적힌 암기 사항을 다 외우라고 했다.
‘내무생활 지침’, ‘병의 책무’, ‘차례 자세의 목적’, ‘군인의 길’ 등
십 수 가지를 다음날 점호 시간까지 외우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암기력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서너 페이지에 빽빽하게 기록된 암기 사항을 하루 만에 외울 자신은 없었다.
하물며 내무반에 있는 모든 훈련병이 그것을 다 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의 표시로 짧은 것 몇 개만 골라서 외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많은 것을 모두가 다 외운 것이다.
비결은 간단했다. 패니까 되었다.
“너”
“예! 훈련병 아무개”
“군인의 길?”
“잊었습니다.”
“이 새끼가! 대가리 박아!”
“너”
“예! 훈련병 아무개”
“병의 책무?”
“잊었습니다.”
“이 새끼가! 대가리 박아!”
이런 식으로 서너 명을 본보기로 두들겨 패니까 나머지는 전부 다 알아서 외웠다.
역시 군대는 군대였다.
그때 욕설과 구타가 난무하는 공포 분위기에서 속으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맞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군인이 군인인 이유는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명이 통하지 않으면 저절로 강인해진다.
그런데 십자가 군병이라고 하는 우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신앙을 지켜내고야 말리라는 각오로 이를 악무는 사람은 없고,
핑계 대기에 바쁜 사람은 수두룩하다.
학교에서도 통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통하지 않고, 군대에서도 통하지 않는 변명이 교회에서는 늘 통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날이 곧 닥친다는 사실이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엄위하신 하나님 존전에 서는 날을 상상해 보자.
그때 게으른 신앙생활에 대한 책망을 들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평생직장의 개념이었다.
한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연공서열이 통했다. 입사 연차에 따라서 직급도 상승했고 임금도 올라갔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월급을 많이 주고 승진을 시켜주는 회사는 없다.
이제는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을 따진다.
건강도 능력이고, 돈 버는 것도 능력이고, 지식도 능력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영적인 능력은 어떤가?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건강하고, 지식을 많이 쌓아도 그것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기인한다.
그래서 영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말 십자가 군병이라면 그 사실을 영적 전투력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 『거룩한 에로스 아가』, p162-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