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자작소설 (삭발소설 시즌 15 외전) Ep. 7 : 헤스티아

[삐삐]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가장 언급이 없는 헤스티아는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다. 사실 화로는 집안에서 중요하긴 했지만, 집 중간에 있지 않고 떨어져있으니 어떻게 보면 화로의 여신인 헤스티아가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다만 고대 그리스에서의 화로는 매우 중요했고, 그래서 헤스티아는 그 위상만큼은 엄청난 신이었다. 그런 위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슈는 하고싶은 스타일을 오랫동안 고민하는 손님들을 꽤 많이 본 과거가 있었기에 차분하게 기다렸다. 헤스티아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혹시 짧은 머리 사진을 좀 볼 수 있을까?"

슈는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헤스티아는 아래의 두 사진들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당 인물은 실존하지 않으며, AI로 합성한 이미지입니다.

해당 인물은 실존하지 않으며, AI로 합성한 이미지입니다.

"이 두 개가 마음에 들어. 혹시 이 둘을 합칠 순 없을까?"

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럼 샴푸부터 하실까요?"

슈는 헤스티아의 베일을 벗긴 뒤 머리핀을 뽑기 시작했다. 헤스티아의 머리는 아주 길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았다. 슈는 그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 분명한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헤스티아는 인간이 쓰는 화로의 여신이며, 그 화로를 안전하게 관리해서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슈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감겨주며 대화를 시작했다.

"긴 머리도 잘 어울리시는데, 왜 갑자기 짧게 자르시려는 거죠?"

"사실 일탈을 한 번 쯤은 하고 싶어서. 이래봬도 난 올림포스 최초로 결혼을 안 한 처녀신인데, 너무 엄숙하고 조용하게만 산 것 같아서 눈에 띄는 변화가 필요해."

"그렇죠. 누구라도 가끔은 변화가 필요한 법이죠. 머릿결이 엄청 좋으시네요? 헤스티아 님은 다른 여신님들처럼 치장을 많이 하진 않으셨지만, 오히려 그래서 예뻐보이시는 것 같아요."

"고맙구나. 난 마지막 차례니까 그냥 적당히 예쁘게 해주렴."

"아니에요. 마지막 분이시니 만큼 끝까지 열심히 해드려야죠. 자, 샴푸 끝났습니다."




슈는 샴푸를 끝낸 헤스티아를 다시 자리에 앉힌 뒤 커트보를 두르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말 후회 안 하시죠?"

헤스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슈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뒤, 짧은 단발 정도의 길이로 잘라냈다. 그리고 앞머리와 옆머리의 일부를 앞으로 빗어 넘긴 뒤 다른 머리카락을 한 손에 쥐고 말했다.

"한 동안 머리 대부분이 짧을텐데, 진짜 괜찮으신가요?"

헤스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슈는 그대로 가위질에 들어갔다. 헤스티아의 짙은 갈색 머리는 황금빛 가윗날에 거침없이 잘려나갔고, 헤스티아는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덧 헤스티아는 앞머리만 길게 남겨둔 반삭 스타일로 변했고, 다 됐다는 슈의 말에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치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머리색은 너무 개성없어! 초록색으로 만들어줘!"

슈는 어떤 초록색으로 할 지 물었고, 헤스티아는 청량감이 넘치고 시원해 보이는 민트색을 골랐다. 이에 슈는 바로 염색을 진행했고, 헤스티아는 만족해하며 축복을 내렸다.

"위대한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가 명하노니 그대의 사라진 목숨 가운데 하나가 돌아올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는 언제라도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니라."




헤스티아가 말을 끝마치자 슈의 몸이 반투명해졌다. 여신들은 모두 슈에게 고맙다며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었고, 섬광이 슈의 눈앞을 감싸는 순간 슈는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tommy]

반삭은 예상 밖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