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살이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정답인 듯 하다.
이는 류시화 시인의 어록이다.
이 짧은 문장이 지닌 함의(含意)에 대해서, 필자는 오랫동안 철학과 인문학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덧이어서, 삶에 대한 적확하고 명징한 표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새해 벽두부터 다소 복잡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까닭은, 일평생 장애로 인한 정서적 소외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의기소침하며 사회생활을 하고있는 적지 않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행복하거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뉘라서 똑 떨어지게“ 그렇다”라고 할 수 있는가.
비록, 가난하고 장애를 지니고 있어도 자신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세상을 살아갈 때,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연해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이 자신이 가진 의지를 떳떳하게 실현하는,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당당한 공동체 주체가 되라는 것과 맞물린 용어이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가장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신으로 불리우는, 예수, 석가 마흐멧 조차도, 다른 정서에서는 지적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소크라데스나 플라톤, 공자라고 해도 나름대로 실책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자신의 마음안에 쓸데없는 욕심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남의 떡은 그냥 남의 떡으로 정리하자.
만족(滿足)이라는 단어의 의미는“발목까지 차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족이라고 해서 가슴 위의 목까지 가득 차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모두는 주목해야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 일평생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다.
장애, 비장애인, 남녀노소, 동서양, 귀천, 부자, 가난 따지지 않고 누구든 반드시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기죽을 필요가 없다.
세상의 주인공인 자신이, 무엇 때문에 고개를 떨구며 살아가야 하는가.
부디, 떳떳하고 당당한 갑진년 한해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