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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국 왕실(王室)의 희비(喜悲)
2022년 9월 8일,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가 향년 96세를 일기로 스코틀랜드 애버딘셔(Aberdeenshire:영국왕실 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국왕실의 아픈 상처를 살펴본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에 즉위했으니 재위 기간 70년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긴 왕위 보유를 기록했다.
즉위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大英帝國:British Empire)이라 불리던 세계 최강의 나라로 전 세계에 걸쳐 약 70여 개의 통치지역(植民地)이 있었는데 세계 2차 대전 후 54개 지역이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갔고, 영국 여왕을 수반(首班)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14곳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가 낳은 아들과 딸들은 결혼과 이혼, 성매매 등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실의 품위를 지켰으며 군주(君主)로서의 역할과 행정부의 운영에도 큰 관심을 쏟아부었다.
일례로 엘리자베스의 장남인 찰스 3세와 결혼했던 다이애나(Diana Frances Spencer) 비(妃)는 아들을 둘이나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外道)를 참지 못하고 별거하다가 이혼하고 프랑스로 건너오는데 파파라치(Paparazzi/스캔들 전문 취재기자)들의 추격을 피하려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일생을 마치는 비극을 맞는데 향년 36세였다.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연민(憐憫)과 사랑을 독차지하던 다이애나의 사망으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는데 이후 수많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노래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영국 왕위에 오를 사람이 바로 남편 찰스 3세이다.
아들들은 못돼먹은 경우가 많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덕망이 높은 것으로 인정되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데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하여 안동 하회(河回)마을에서 73회 생일잔치를 벌이기도 했으니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찰스 3세와 다이애나 / 아들 윌리엄과 해리 / 다이애나 비(妃)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가장 못된 왕이 튜더왕조의 헨리 8세라고 생각되는데 1534년, 영국 튜더(Tudor)왕조의 헨리 8세(Henry VIII)는 왕이 되기 위해 의무적으로 형수였던 캐서린과 결혼한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자 아름답고 총명했던 시녀 앤 불린(Anne Boleyn)과 결혼하여 딸 엘리자베스를 낳는데 이 엘리자베스는 후일 여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가 된다.
그런데 또 다른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Jane Seymour)가 더 예뻐 보였는지 시모어와 결혼하기 위해 앤에게 억울한 누명(불륜설 등)을 씌워 런던탑에 감금하였다가 사형에 처하고.... 이후에도 수많은 이혼과 결혼을 반복한다.
헨리 8세는 형수인 캐서린과의 이혼, 앤과의 결혼과 이혼, 제인과의 결혼 등이 교회법으로 허용되지 않아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자 성공회를 만들어 자신이 수장(首長)이 되고 이 모든 것을 합법화한다.
이렇게 급조된 교단이 성공회(聖公會)인데 결국 영국 국교(國敎)가 되고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기도 했고 개신교 신자(청교도/淸敎徒:Protestant)들은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신세계)으로 떠나게 되는데 이들이 타고 갔던 배가 오월의 꽃(May Flower)이다.
헨리 8세가 성공회 본당으로 지정한 건물은 11세기 가톨릭 성 베드로(St. Peter) 성당이었던 건물로, 13세기 헨리 3세가 고딕(Gothic) 양식의 건물로 개축하여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역대 영국 국왕들의 유해를 모시고, 또 왕들의 대관식을 올렸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이 건물을 개축하여 성공회(聖公會 :Anglican Communion)로 만들었으니 로마 가톨릭에서 보면 기가 찰 노릇이었겠다.
에딘버러 궁 / 광장의 천사상 / 성공회(Westminster Abbey) / 가톨릭 성당(Westminster Cathedral)
*에딘버러 궁에 영국 국기가 있으면 여왕이 있고 없으면 외출 중
<1> 영화 1,000일의 앤
1969년, 영국의 찰스 재로트(Charles Jarrott) 감독의, 주제곡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그 영화의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앤 불린이다.
앤 불린이 낳은 엘리자베스는 후일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발판을 닦은 여왕, 어학과 문학 분야에서 천재성을 번쩍인 영국의 자랑.....’ 바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1533~1603)이다.
앤 불린(Anne Boleyn)은 결혼식을 올렸던 런던타워가 훗날 감옥이 되는데 이곳에 갇혔다가 헨리 8세에 의하여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지는데 마지막 남긴 말이 ‘주님께 제 영혼을 바칩니다.’였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앤은 남편(헨리 8세)에 대해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기꺼이 죽음의 길로...
앤 불린이 왕세자의 비(妃)로 있었던 기간이 단지 2년 반 정도였기에 ‘1.000일의 앤’으로 표현한 것이다.
<2>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는데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고 12살 때 시집을 냈으며, 스페인 무적함대와 결전을 앞둔 영국 해군들에게 한 연설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슴을 울리는 명연설로 꼽힌다고 한다. 『나는 내가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을 말입니다.』
1588년 4월, 영국은 당시 무적함대로 일컬어지던 스페인의 아르마다(Armada) 함대와 치열한 해상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른바 ‘아르마다 대회전(Armada Encounter)’으로, 스페인이 동원한 전함은 120여 척으로 알롱소 구즈만(Alonso de Guzmán)이 총사령관이었고, 영국은 동원된 전함이 200여 척이었고 찰스 하워드(Charles Howard)가 총사령관이었다.
전함의 숫자로 보면 영국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함의 크기나 전투능력에서는 영국이 훨씬 열세였다고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영국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고 5대양의 해상권을 거머쥐는 계기가 된다.
이후, 1805년에 와서 영국의 넬슨제독은 스페인 앞 트라팔가르 곶(Cabo Trafalgar) 앞바다에서 당시 무적함대라 일컬어지던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함대를 또다시 격파하고 승리를 하여 세계 해상권을 명실공히 거머쥐게 되는데 이것이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으로, 내가 런던을 관광할 때 런던의 트라팔가르 광장에는 우뚝 솟은 기둥 위에 당시 전함을 이끌었던 넬슨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이후 영국은 인도를 포함하여 세계의 1/4에 해당하는 대륙을 점령하고 해상권을 지배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3살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앤 불린)를 잃었고, 국가와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처녀 여왕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12살 때 펴냈던 시집에 실린 이 작품이 너무도 유명하다고 한다.
On Monsieur's Departure(임은 떠나는데)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면서 간추려보면,
조지 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에드워드 8세(Edward VIII)는 유부녀였던 미국의 심프슨 부인에게 빠져 왕위에 오른지 1년도 되지않아 스스로 왕위를 내던지자 동생 조지 6세(George VI)가 즉위(1936년)하는데 조지 6세와 왕비 보스라이언(Bowes-Lyon)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으니 곧 엘리자베스 2세(남편 필립공)이다. 영국은 통일되기 전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Wales), 아일랜드(Ireland)의 4개의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후일 통일되어 영국(United Kingdom)이라 통칭되었고, 세계로 세력을 뻗치면서 대영제국(Great Britain /British Empire)이라 불렀다.
그러나 현재 영국의 공식명칭은 ‘영 연방과 북아일랜드(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인데 서쪽의 섬인 아일랜드(Ireland)는 따로 독립해 떨어져 나갔지만 섬의 북부 일부지역(Northern Ireland)은 영국령이다.
이처럼 작은 소국(小國)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영제국의 왕위 계승도 왕족들이 돌아가며 계보를 잇도록되어 단일왕조의 부자세습(父子世襲) 제도는 전혀 아니다. 위의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England) 국왕으로 분류되고 조지6세, 에드워드 8세, 엘리자베스 2세는 잉글랜드 지역 출신이 아니므로 영국(Great Britain) 국왕으로 분류된다.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 기둥 위의 넬슨제독 / 엘리자베스 1세 / 앤 불린 / 바람둥이 헨리 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