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진살절(盡殺絶)
군유명은 별안간 흠칫했다. 그리고 한 모금의 샛빨간 피를 왁, 하니 높다랗게 뿜어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점점이 사방에 뿌려지도록 만들었다.
그런 연후에 그는 눈을 감고서는 급격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으며 얼굴은 파랗게 질려서 한참동안 한 자도 내뱉지를 못했다.
홍의여인은 약간 얼굴빛이 움직이는 듯 하더니 눈을 내려뜨고서 나직이 말했다.
『당신이 정신적으로 이와 같은 상처를 입고 이 지경까지 괴로워하게 된 것은 정말 미안하군. 그러나 나는 당신이 설사 이와 같이 깊고 무거우며 또한 타격을 참아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사실을 똑똑히 들어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녀의 말투가 갑자기 약간 부드러워졌다.
군유명은 미약하게 반쪽 눈을 뜨고서는 모기와 같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오…』
마백수가 비스듬히 한 걸음 내딛으며 나직이 말했다.
『금소저,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구려. 우리들은 아직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을 보아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동강도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오. 군유명이 데리고 온 그 두 녀석을 아직도 처치를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고…』
군유명은 두 눈을 벼락같이 부릅뜨며 피를 뿌리고 간을 찢는 듯이 거칠게 부르짖었다.
『늙은 개새끼야, 뭐라고 말했지?』
마백수는 냉랭히 군유명을 흘겨보더니 입을 열었다.
『노부는 동강이 아직도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고 자네가 데리고 온 그 두 마리의 충실하고도 늙은 개들은 정히 요절이 나게 되어 있단 말일세. 어떤가? 자네에게 아직도 고견이 남아 있단 말인가?』
풀과 같은 식은땀을 솜털구멍에서 짜내듯 하는 군유명의 전신은 거의 다 흠뻑 젖게 되었다.
그는 신음소리를 한 번 내뱉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아무래도…당신들은 그렇게 수월히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처치하지 못할 걸…』
마백수는 푸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소현동의 비각오호가 손을 합친 힘은 허허허, 설사 자네의 하일랑이 아무리 패도(覇道)적이라 하더라도 무사히 물러나리라고는 볼 수 없을걸. 더군다나 자네가 데리고 온 두 사람 역시 자네와 똑같이 약술을 마셨지. 차이가 있다면 다만 분량의 많고 적음과 발작의 늦고 빠름이 있는 거겠지!』
군유명의 이마팍의 혈맥이 마치 지렁이들처럼 불끈 치솟게 되었고 땀은 그의 눈썹 끝을 타고서 아래로 곧장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사래가 들린 사람처럼 기침을 해대며 고통스럽게 말했다.
『당신은…마백수, 독약을 우리가 저녁을 먹게 되었을 적에 마신 술 속에 탔다는 것이요? 그리고 하일랑이 소현동 쪽으로 가서 몰래 염탐해 보려는 일을 당신네들은 이미 그들에게 통지해서 방비를 하도록 했다는 말인가?』
마백수는 무겁게 응수했다.
『어찌 그들에게 통지만 하고 끝났겠는가? 비각오호는 원래 우리와 같은 선상에 서 있는 동업자들일세. 그렇지 않을 때 우리가 어째서 양릉으로 하여금 일부러 자네에게 사람을 소현동으로 보내 염탐을 하도록 건의를 했겠는가? 이것은 바로 함정을 만들어서 자네가 데리고 온 사람이 그 함정 안으로 뛰어들도록 만든 것이지. 군유명, 각개격파(各個擊破)와 축점소멸(逐點消滅)이라는 병가(兵家)의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한때 총명했다가 한때는 또 멍청해지는군.… 하일랑이 아무리 흉하다 하더라도 흥, 비각오호가 힘을 합쳐 상대하고 거기다가 그는 약술까지 마셨으니 설사 그가 손오공이 된다 하더라도 여래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는 못할걸!』
그리고도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재차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자네의 한 떼 수하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어라하고 자네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네. 그 사람을 관할하게 된다면 조만간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될 걸세.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각기 다른 교묘한 방법을 사용해서 일일이 그들을 제거할 것인데 모두 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운명이란 것은 그저 늦고 빠른 데에 있을 뿐이지!』
이 때 대청의 측문에서 다시 하나의 머리가 납작하고 노란 털의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한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두 손으로 하나의 검은 빛의 연한 쇠가죽으로 만든 연우피투(軟牛皮套)를 들고 들어왔는데 이 연우피투는 지극히 무거운 듯 두 손으로 들고 있는데 여전히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홍의여인은 그 추악한 사내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담담히 물었다.
『장포(章浦)? 손에 넣었는가?』
장포라고 불리운 사내는 지극히 공손하게 말했다.
『손에 넣었소이다, 소저.』
시력을 모아 장포의 두 손을 바라보던 군유명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속으로부터 쓰리고 새큼한 것이 치밀었다.
마치 그 누가 그의 오장육부에서 살 한 조각을 떼어낸 것처럼 아팠다.
그 장포라는 추악한 사내의 손에 받쳐들려진 검은빛 연우피투 안에는 바로 군유명이 목숨처럼 여기는 무기 천선장이 들어 있던 것이었다.
홍의여인은 날카롭게 군유명의 반응을 주시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마음이 아픈가 보지? 이는 그야말로 당신의 한 쪽 팔을 꺾어 놓은 셈이 되겠지? 그렇지 않은가? 나는 당신이 지금 받게 된 느낀 바를 알 수 있지. 그것은 틀림없이 괴로움에 다시 수모와 비운함이 곁들인 셈인지. 그러나 나로서는 그저 당신에게 좀 활달하게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구만. 당신이 그저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의 목숨이 사라지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 저와 같이 몸 밖의 물건에 대해서는 다시 걱정하거나 기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홍의여인은 눈을 한 번 깜빡깜빡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교만과 영광을 늙혀야 할 걸, 당신의 몸 극독에 중독이 된 이후에도 많은 이렇게 사람들이 여전히 한 마리의 맹호를 경계하듯 당신을 경계했으니 말이지. 우리들은 솔직히 말하는데 당신에 대해서 두려움과 존경 그리고 승복하고 싶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떠한 물건도 압수를 할 수밖에 없지. 설사 당신이 그것들을 재차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들로서는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이제 당신의 천선장은 이미 찾아내었고 다음 단계에서는 당신이 두 소맷자락에 숨겨 놓은 단장금차(斷腸金叉) 및 허리에 둘러서 감추어 놓은 은교련(銀絞鍊)을 찾아내는 거지…』
홍의여인의 맑고 카랑카랑한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버즘이 있는 검고 추척한 사내는 어느덧 와락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두 손을 급히 뻗쳐서는 신속하고도 깨끗하게 군유명의 좌우 소맷자락에서 두 자루의 길이가 세 치 정도가 되고 산(山)자 모양의 자루가 달린 금차(金叉)를 뽑아내었다.
이 두 자루의 금차는 끝이 날카롭기가 이를 데 없었으며 광채가 눈이 어두울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들은 각기 한 가닥 실띠로 묶어서는 군유명의 두 팔굽 옆에 갈무리해 두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번 힘을 주어 떨치기만 한다면 소맷자락 안에서 쏘아져나와 적에게 적중하게 되는데 군유명의 두 자루의 검자루를 사용하는 수법은 매섭기 이를 데 없고 또한 불가사의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이 한 쌍 금차 아래 죽은 인물만도 너무 많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금차의 이름은 원래 단장(斷腸)이라고 했다.
원래 군유명의 소맷자락에 새겨 놓은 단양화라는 꽃이름과 비슷했다.
그렇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두 자루의 금차 위에 던져지게 되었을 적에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확실히 사람의 간이나 창자를 잘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버즘이 있는 사내는 다시 군유명의 앞섶자락을 걷어 올리고 철컥하니 한 가닥의 새끼손가락 굵기의 은빛이 번쩍이는 짧은 쇠사슬을 뽑아냈다.
이 은빛의 짧은 쇠사슬은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과소평가를 했다가는 큰코다칠 염려가 있었다.
군유명은 이 짧은 쇠사슬을 이용해서 다섯 걸음 안에 있는 사람의 두골을 감아서 바술 수가 있었는데 그 솜씨가 백발백중이라 만 번 쏘아도 한 번 어긋나는 적이 없었다.
군유명의 그와 같은 은교련은 알고 있는 사람에 있어서는 비단 한 가닥 다섯 자 길이의 쇠사슬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어서는 은교련이 하나의 도깨비 그림자이고, 하나의 초혼삭(招魂索)이며 또한 한 마리의 그 독이 무엇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향미사(響尾蛇)였다.
그 사내는 그와 같은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 홍의여인의 손에 건네어 주었다.
홍의여인은 퍽으나 희안하고 호기심이 이는 듯 자세히 요모조모 곰곰이 돌려가며 구경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간드러지고 아름다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보기에 이 물건들은 금빛이 번쩍번쩍하고 은빛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꽤나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 같군. 만약에 갈파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이것들이 모두 다 살인의 이기(利器)라는 것을 모르겠지… 군유명,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물건들에 피를 묻히게 되었는지 말해 보실까?』
홍의여인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군유명은 한 쌍의 시큰거리고 난삽하며 모호한 눈동자를 들어 죽어라하고 한옆에 서 있는 양릉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 누구도 그 얼굴의 매서움과 원독(怨毒), 증오, 분노 및 멸시를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군유명의 두 가닥 시선은 비록 쇠약해져 힘이 많이 사그라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토록 예리하고 차가워서 이와 같이 절대적인 우세의 상황하게 놓여 있는 상황이었지만 양릉으로서는 그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떨리면서 얼굴이 푸르죽죽해질 뿐만 아니라 완전히 위축되어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군유명은 빨라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양형, 그래도 네가 사람다우냐? 사람이냔 말이다! 이 모든 것은 네가 덩달아서 계획을 세운거겠지?… 좋다, 잘했다, 이 종놈아! 그리고 짐승만도 못한 놈아, 능지처참을 하더라도 네가 지은 반역죄를 용서받지는 못할 것이다.』
양릉은 별안간 몸을 한 번 진저리를 치듯 부르르 떨었다.
그는 군유명의 아래에서 다년간 군유명의 위엄아래 자연스럽게도 군유명에 대하여 두려움과 공경하는 마음 그리고 승복하는 마음이 길들여져 있는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우열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하에서도 그는 감히 반박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힘차게도 무겁게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곤 하는 것이었다.
군유명은 늠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하일랑이 너에 독계에 의해서 함정으로 빠져들었다. 말해 보아라, 서운을 너는 또 어떻게 암산하고자 하느냐? 자, 내가 영원히 너를 기억할 수 있도록 나에게 이야기를 해 보려므나!』
양릉은 입 언저리를 세게 경련을 일으켜 떨면서 두려움과 공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때 그의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수치감, 양심의 가책 그리고 공포와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감정 이외에 다른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그가 어찌 그가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할 수가 있겠는가.
홍의여인은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당신은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시오, 양릉? 그렇게 배짱 없이 놀지 마시오. 당신은 한평생 저 사람이 당신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 있도록 할 참이오? 저 군가가 설사 한 마리의 호랑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그저 한 마리의 위세를 떨치지는 못하는 병든 호랑이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오… 당신은 그렇게 형편없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오…』
양릉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원래의 엷은 푸른빛마저도 모조리 가려져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그야말로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처지인지라 그저 두 손을 부벼만 댔고 목둘레마저도 몇 치 정도 부풀어 난 것 같았다…
홍의여인은 혀를 찼다.
『쳇, 못난 사람이군. 좋아, 당신이 저 사람을 두려워해도 나는 두렵지 않아.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대답을 해주지.』
그리고 그녀는 군유명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군가라는 양반, 우리가 서운을 상대로 한 방법은 매우 간단한 것으로서 당신을 상대했던 방법과 완전히 일치하는 방법이지. 당신이 그를 데리고 거리구경을 나가자고 해서는 어느 정도 구경을 시켜주고 그대로 그를 청유관(靑樓館)으로 청해서는 술을 대접하게 되었지. 그리하여 서운이 조금이라도 마시면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걸.』
그리고 그녀는 반은 조롱이요 반은 우쭐해 하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술에 탄 독약의 이름은 패왕도(覇王倒)라고 하는데 오늘 당신네들이 저녁밥을 먹게 되었을 때에 마신 화조술 그 안에 바로 그런 것이 들어 있었지. 만약에 약기운이 빨리 퍼지게 된다면 서운에게 다시 술을 더 먹이는 일이 필요 없이 서운은 온 몸뚱아리가 마비되고 말겠지. 우리들이 오늘 유심히 보았지만 오늘 밤 저녁을 먹게 되었을 적에 당신이 가장 많이 마시더군. 그리고 서운이 비교적 적은 편이고 하일랑은 그저 입에 대는 시늉을 했을 뿐이었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안배가 물론 치밀했다고 하지만 약간 운도 좋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당신이 가장 많이 마셨고 가장 먼저 마비되어 쓰러지고 그 다음이 서운의 차례가 된다는 것이지. 우리들은 이미 따로이 그에게 한 차례 더 술을 마실 기회를 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되는 것이고 하일랑은 가장 적게 마셨기 때문에 소현동의 비각오호로 하여금 하일랑이 그곳으로 가서 실컷 마시도록 삼가 기다리도록 한 거지.』
군유명은 절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자기의 가슴속을 완전히 휘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얼굴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리고 한참 이후에야 겨우 다시 목이 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동강에게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이후에…그는 또 어떻게 거짓말을 꾸며대서는 내 수하들을 기만하려는 거지?』
홍의여인은 하얗고 깨끗하기 옥과 같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빙그레 웃었다.
『이봐요, 군유명.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군… 좋아, 그것마저도 내가 알려주기로 하지. 당신이 죽은 이후에 동강은 양릉으로 하여금 당신의 시체를 싣고 철위부로 돌아가되 당신의 시체 위에다가 많은 상처자국을 남겨서 당신이 외부에서 원수에게 암산을 당해 죽은 것처럼 만들지. 그리하여 당신 시체가 철위부에 도착하게 된다면 동강은 몸소 당신을 위해서 상복을 입고 피를 뿌리며 당신을 암산한 원수를 찾아내겠다고 맹세를 하지. 그런 연후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의 누이에다가 동강에게 매수되어 그쪽으로 붙은 수하들이 대뜸 계획대로 제의를 하게 되면 동강은 흉수(凶手)를 찾는 중차대한 인무를 지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한 당신의 보좌(寶座)에 앉게 되어서는 점차적으로 대권을 계승하게 되지. 물론 흉수는 한평생 찾아볼 수 없을 것이고, 당신도 알다시피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참을성을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사람들의 의지를 잠식하기 때문에 일을 자꾸 끌고 나아가게 된다면 일 년 그리고 십 년 거기다가 다시 이십 년이란 세월… 식으로 내려가게 되었을 적에 당신네 수하들도 틀림없이 그만 맥이 빠지게 될 것이고 맥이 다 빠지게 된다면 일은 모두 다 과거사로 돌리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녀는 교활하고도 야릇하게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양릉이 당신의 시체를 철위부로 운송하게 되었을 적에 그는 물론 사람들에게 당신과 서하 그리고 하일랑 세 사람이 함께 나가서 일을 조사하려고 하다가 액난을 당했다고 말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책임을 깨끗이 벗어 넘길 수 있지. 물론 열풍전장의 강칠을 위시한 모든 아랫사람들이 그가 한 말이 정말이라고 증인이 되어 줄 것이고 동강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당신의 누이 또한 힘껏 양릉을 지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그 누가 나서서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시하지는 못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누구도 이 가운데 얽혀 있는 우여곡절에 주의를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리고 서운과 하일랑의 시체는 당신처럼 운이 좋지 못해 융숭하게 대접도 받지 못하고 수렴도 못한 채 그냥 산 위로 끌려 올라가서는 산 속에 살고 있는 들개들에게 먹이로 제공이 될 걸…』
군유명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이빨 틈 사이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악독하군!』
홍의여인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장래 동강이 당신의 대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적에 당신의 수하들에 대해서도 이미 안배를 한바 있는데 이 안배라는 것은 매우 오래 묵은 방법이긴 하지만 매우 효과가 크기도 하지.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자는 남게 되고 거역하는 자는 죽음뿐이라는 것이지.』
군유명은 냉혹하게 홍의여인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마백수를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동강이 돈을 풀게 된 이후 당신들의 교활한 독기가 죽게 된다면 사냥개가 요리된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은가? 당신들은 동강과 같은 음독(陰毒)한 소인이 틀림없이 약속을 이행하리라고 보증할 수가 있겠는가?』
홍의여인은 교묘하면서도 음탕하게스리 크게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그와 같이 유치하고 천진스러운 이간책으로 우리들 사이를 벌려 놓을 생각은 하지 마시지. 그와 같이 얄팍한 계책은 이 아씨께서 십 년 전에 이미 써 먹을만큼 써 먹었다구요. 당신도 생각해 보라구. 동강이 그렇게 할 정도로 우둔한 사람인가? 우리들이 결코 기름이 다한 등불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들의 입 또한 그가 단번에 모조리 봉쇄할 수는 없을걸. 우리 사이에 그 어느 사람이라도 갑자기 흉사를 하게 된다면 오늘의 일은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물론 당신의 한 떼 수하들 역시 그 가운데 진상을 알아차리게 되겠지. 그 때 동강은 설사 머리가 세 개 달리고 팔이 여섯이나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강호바닥에서 빌어먹을 수가 있을까? 군유명, 당신은 동강이 그토록 큰 모험을 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가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이번 일에 참여한 우리들 각기 역시 귀찮게스리 비밀을 새어나가게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건, 음, 그야말로 서로 경계를 한다고나 할까…』
군유명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당신은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은 나의 몇 간 다른 형제들이 동강에게 매수되었다고 했었는데…내가 떠나기 전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겠소?』
금도일절 마백수가 재빨리 호통을 내질렀다.
『군가야, 자네는 질문이 너무나 많군!』
홍의여인은 마백수를 한 번 흘겨주고는 약간 성이 나서는 입을 열었다.
『마로, 호들갑을 떨지 마시구려. 당신은 한 명의 곧 죽으려 하는 사람이 나서서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고 두려워하는 것이오? 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버들 같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아름다우면서도 악독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에 마로의 사람들이 아니면 바로 나의 사람들인데 그 어느 누구 하나도 말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외다. 군가가 죽기 이전에 우리들은 마땅히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 아니겠소? 또는 마로가 아낙네의 인정이라고 나를 비난할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와 같은 태도는 또한 알려주지 않고 죽이는 것은 가혹하다는 말과 부합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마백수는 한 번 머뭇거리더니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역시 말이 적은 게 비교적 좋을 것 같아서…』
홍의여인은 눈을 부릅뜨고는 쀼루퉁해져서는 입을 열었다.
『나를 가르치겠다는 것인가요?』
마백수는 재빨리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겠소, 금(金)소저. 말씀이 너무 과분하구려, 과분해.』
홍의여인은 냉랭히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군유명에게로 눈을 돌렸다.
『흥,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거느리고 있는 한 떼의 수하들은 전체적으로 모두 괜찮았지요. 동강쪽으로 붙은 사람들은 양릉을 제외하고 겨우 두 사람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은 백반살 뇌조이고 또 다른 사람은 광창현(廣昌縣)에 파견되어 있는 삼안살(三眼煞) 반춘(潘春)이고 기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지.』
양릉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은 마치 자기를 견주어서 욕하는 것과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나머지 얼굴이 시퍼래져서는 떨리는 음성에다가 한스럽기도 하고 성이 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하나 그렇다고 정작 성질대로 화를 낼 수도 없다는 투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금소저… 협조 좀 해주시지요…』
호의여인은 조그맣고 아담하며 분홍색의 혀 끝을 밀어내 윗입술을 한 번 핥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말하지 않기로 하지.』
군유명은 노기에 부릅뜬 눈으로 양릉을 노려보며 피를 뿌리는 듯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양릉, 기다리라구. 내가 만약 죽어 버린다면 악귀가 되어서라도 너를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승에서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저승에 가서 환생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양릉은 별안간 두 눈을 찢어지라 부릅떴다.
그의 얼굴의 오관은 삽시간에 모두 다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는 마치 악귀가 온몸에 붙은 사람처럼 벼락같이 뾰족한 음성으로 울부짖는 듯한 호통소리를 내지르며 군유명에게로 달려들었다.
마치 다년간 억압되어 왔던 울분을 와락 쏟아내려는 사람처럼 그토록 미친사람처럼 몹시 격력하게 손을 쳐들어서는 군유명의 따귀를 철썩철썩 갈기는 것이 아닌가.
그는 손에 그토록 힘을 주고 있었고 또 그토록 사정없이 매서운 손찌검을 했다.
따라서 한차례 카랑카랑하니 살과 살이 마주치는 소리가운데 군유명의 얼굴은 왼쪽으로 흔들렸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으며 순식간에 퍼런 멍이 들고 자흑색으로 물드는가 하면 입으로부터는 피를 뿜는 듯 튀겨냈다.
홍의여인이 싸늘히 호통을 내지르며 오른손을 살짝 내려뜨렸다가 벼락같이 뒤집었다.
그녀가 어떤 수법을 썼는지 똑똑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하자마자 양릉은 어느덧 그녀의 힘에 세 걸음 밖으로 밀려났으며 휘청휘청하니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까지 하게 되었다.
홍의여인은 아름다운 얼굴을 싸늘히 굳히고는 음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살아날 수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해 괴롭히다니, 양가야, 이것 역시 당신이 명성이 떨친 일대 요결이란 말인가?』
양릉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벌벌 떨었고 또한 멍청해져서 한참동안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연후에야 조금 전에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느끼게 된 것 같았고 또한 홍의여인의 칼날같이 뾰족하게 비꼬는 말도 동시에 귓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그로서는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어 사납게 부르짖었다.
『금미(金薇), 설사 당신이 무림에서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고 또한 대녕하(大寧河) 금가(金家)의 소주(少주)라 하더라도 너무 사람을 업신여길 수는 없는 일이오.』
홍의여인은 그 말을 듣자 비단 성을 내거나 화를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방긋 웃었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서더니 요염하고도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말 잘 되었군, 양릉. 당신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래도 남자다운 기개를 조금이나마 보여주었군. 아니 이 아씨와 한바탕 놀아보겠어?』
그녀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감돌며 사라지지 않았는데 세 명의 얼굴이 아주 비슷비슷하게 생긴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사내들이 어느덧 양릉을 에워쌌으며 세 자루의 예리한 송곳이 잔뜩 박혀 있는 낭아봉을 동시에 비스듬히 쳐들었다.
그런가 하면 버즘이 있는 그 친구는 싸늘히 웃더니 요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양씨 친구, 우리 집 소저가 손을 쓰기 전에 이 대녕하에 있는 금가 흑응육익(黑鷹六翼)이 먼저 친구를 상대로 몇 수 겨루어 보도록 하지.』
그렇게 되자 대청안의 분위기는 대뜸 긴박감이 넘치게 되었다.
마치 갑작스럽게 시윗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이었고 언제라도 그 시윗줄이 퉁겨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한켠의 마백수가 재빨리 가운데로 뛰어들며 두 손을 어지럽게 흔들면서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세 분은 당장에 손을 멈추시게. 강적을 눈앞에 두고 아직 처치를 못한 상태인데 한집안 사람끼리 어째서 몇 마디의 말에 충돌을 일으킬 수가 있는가 말일세. 이것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세 분은 물러서시게. 노부가 이 엷은 얼굴로 청하는 바일세.』
금미는 싸늘히 코웃음 치더니 비웃음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흥, 한영(漢英), 자네들은 물러가게.』
버즘이 난 인물은 이름이 한영이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즉시 무기를 거두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두 형제들도 묵묵히 물러섰다.
금미는 마백수에게 넌지시 말했다.
『마로의 체면은 봐준 거예요?』
마백수는 헛웃음을 두 번 흘리며 궁색하게 말했다.
『정말 고맙소이다, 금소저…』
이 때 양릉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한켠에 서 있었으며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이 무렵 그는 그 역시도 조금 전 자기의 건방진 행동에 대해서 심히 후회하고 있는 참이었다.
기실 대녕하 금씨 집안의 위세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였으며 대녕하 일대에서 금가를 들먹이기만 한다면 심지어 세 살 먹은 어린애까지도 놀라 감히 울부짖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금가의 하인이나 종놈들이 밖으로 나와서 눈을 한 번 부릅뜨기만 하더라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인물들은 놀라서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싼다는 말도 있었다.
그쪽에서 금가의 명망은 결코 장안의 철위부에 별로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동강이 금미에 대해서 양보하고 꺼려하는 행동 양릉은 직접 목격한 바가 있었다.
이제 양릉은 자기가 조금 전에는 실성을 한 것인가 아니면 지랄병이 도졌는가 의심할 정도였다.
금미는 곁눈질로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없는 양릉은 한 번 바라보더니 이미 그가 두려움을 느낀 것을 알고는 냉랭히 웃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안절부절 할 것 없수다, 양씨 양반. 이 아씨께서는 당신에게 서운하지 않아. 왜냐하면 당신으로서는 아직 한 번 싸울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지.』
군유명은 양릉이 자기를 배반하고 자기를 팔아넘겼지만 그토록 연약하고 비천하게스리 남들로부터 조소를 받고도 비열하게 꿈쩍 못하는 모습을 대하게 되자 그만 속으로 상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철위부의 인물들은 언제나 모두 다 굳세고 사내다워서 쨍쨍 소리가 날 정도로 화끈한 멋이 있었으며 언제 또 이와 같은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만약에 양릉이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르지 않고 여전히 철위부의 훌륭한 형제로서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이와 같은 수모를 참고 있을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그와 같은 모욕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마백수는 손을 부비며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 금소저, 우리들은 마땅히 최후의 한 가지 일을 처리한 이후 오늘 밤의 유희를 마무리지어야겠구려.』
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로께서 하시죠.』
마백수는 두어 번 기침을 한 이후 군유명을 향해서 엄하고도 혹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군가야, 자네는 좀 더 통쾌하게 죽고 싶나, 아니면 좀 더 괴로움을 당하고 죽고 싶나?』
군유명은 욕지거리를 하며 부풀어 오르는 입을 열고서는 애매모호한 음성으로 입을 열고 말했다.
『늙은 개새끼…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시지!』
마백수는 싸늘히 코웃음 쳤다.
『만약에 자네가 우리들에게 다년간 소장해온 그 비취로 만들어진 환희불(歡喜佛)이 어디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우리들은 자네가 좀 더 적은 고생을 하늘에 보내도록 해주지. 그렇지 않을 때…』
그는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음산하게 말했다.
『아마도 귀하는 꽤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해야 할 걸.』
군유명은 땅바닥을 향해 한 모금의 핏물을 뱉어내고는 힘겹고도 난삽하게 말했다.
『나는 비상상이 정말 그랬다는 것을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군… 이런 일마저도 그녀가 당신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니… 나는 원래 그녀에게만 들려준 이야기인데… 그녀 이외에는 그 누구도 모르지… 나의 누이동생도 마찬가지였지…』
금미는 옆에서 냉소를 띠었다.
『비상상이 정말 변한 것은 사실이지. 그런 일마저도 그녀는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것인데 직접 우리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고 그녀가 동강에게 알려준 것을 동강이 우리들에게 다시 말해 준 것이지.』
마백수는 여전히 귀찮다는 듯 말했다.
『군가야,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 일부러 시간을 늦추지 말아라. 어찌 됐든 간에 자네는 이미 배신을 당했으니 좀 더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빨리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줄이는 게 좋을 거야…』
군유명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무겁고도 느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대호자… 당신들은 이 대량의 황금과 백은을 손에 넣게 되어 있고 무수한 이득을 쥘 수 있는 부동산마저도 손에 넣게 된다고 했는데 그 비취로 만들어진 불상이 제아무리 값이 나간다 하더라도 당신네들이 얻은 만큼의 가치는 없을 걸…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굳이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내는가?』
금미는 코웃음을 치고서는 표독하게 말했다.
『군씨 양반, 더 시치미를 떼지 말아. 그 비취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가치가 결코 그 비취로 만들어진 부처님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등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불상의 배에 박혀 있는 흑찬(黑鑽)에 있는 거지. 그 한 알의 흑찬으로 말하면 천하에서 모두 합쳐봤자 두 알밖에 되지 않는데 한 알은 황제늙은이의 옥관(玉冠)에 붙어 있고 다른 하나는 바로 당신의 손에 들어갔다는 게야. 이 한 알의 흑찬으로 말하면 솔직히 말해서 진정으로 우리들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나서게 된 주된 원인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교활하고도 간드러지게 입을 열었다.
『당신도 부인하지 못할걸. 그 흑찬이야말로 매우 유혹적이지. 그렇지 않아? 우리 이토록 기꺼이 커다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고 또 당신이 죽음을 코앞에 둔 지금도 포기하기가 아쉬워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것이지.』
그리고 금미는 입을 다문 채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재차 말을 이었다.
『그 한 알의 흑찬이 지금 얼마나 값어치가 나가는가를 알고 있는가? 그 흑찬으로 말하면 지금의 재산을 계산하는 방법으로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이지. 나는 다만 당신에게 서쪽지방에 한 분의 가장 부유한 번왕(藩王)이 급히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 댓가는 그의 한 조각 땅이지. 이 한 조각의 토지로 말하면 말을 타고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반드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꼬박 대낮의 시간을 꼬박 허비해야만 도달할 수가 있는 거리지. 그런가 하면 그 한 조각의 광대한 지역 안에는 세 채의 성이 있고 또 하나의 금사(金砂)가 많이 나는 강이 있으며 세 곳의 은광산(銀鑛山)에 한 곳의 수정광산 및 천경(千傾)이나 넘는 고량(高樑)의 밭이 펼쳐져 있지. 이와 같은 점들을 볼 때 우리들이 고생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은가?』
군유명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의 기억으로 오륙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없었는데…』
마백수는 으르렁거리듯 한 마디를 했다.
『군유명, 쓸데없이 시간을 끌지 말고 빨리 말해라. 물건을 자네는 어디다 숨겨 놓았는가? 군유명은 근본적으로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런데 이제 그 누가 있어 그와 같이 놀라운 대가로 사겠다고 나왔는데 동강이 아까워서 당신네들에게 내어 줄까?』
금미는 무거운 눈썹을 치켜올렸다.
『물론 그는 아까워서 내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제안을 한 것이지. 그 때 우리들은 물론 그와 같은 흑찬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며 우리들이 그를 위해서 이번 큰일을 완수해 준다고 약속을 하는 대신 내 놓은 댓가는 결코 우리가 조금 전에 당신에게 알려주었던 것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었지. 그 당시 우리들이 동강에게 요구한 것은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반이었어. 동강은 재삼재사 망설이고 득실을 저울질해 본 끝에서야 가까스로 우리들에게 그 한 알의 흑찬이 지니고 있는 비밀을 알려주고 그 흑찬을 내 놓겠다고 했지. 우리들은 돌아와서 다시 상세히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더욱더 사전에 사고 싶어 하는 물주를 찾아보기도 했지. 당신도 알다시피 그 물건이라는 것이 백만 명의 백만장자들도 반드시 살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지. 그리하여 우리들은 가까스로 응낙을 하게 되었으나 동강은 그 한 알의 흑찬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고 그 가치가 놀랍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참된 사정을 안다고는 할 수 없었지.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말할 때 당신 전체 기업 재산의 반이라면 아무래도 이 한 알의 흑찬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 따라서 이 거래는 매우 공평했다고는 논할 수가 있을 거야… 사정은 바로 이와 같았는데 군씨 양반, 당신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 점이 하나라도 있는가?』
마백수는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군유명, 자네는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지 말게!』
다시 퇫, 하고 한 모금의 핏물을 뱉아낸 군유명은 힘겨웁게 말했다.
『그와 같이 아주 비싼 진귀한 물건을 증여하는 대신 겨우 내가 좀 더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다니 당신들은 나에게 너무나 공평하지 못하고 또 너무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가?』
마백수는 노기등등해서 욕지거리를 했다.
『제미럴, 공평하고 못하고 손해를 보고 못 보고는 군가 자네에 의해서 논해질 성질이 못 되네. 이제 우리들은 결코 공평한 지위에서 흥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지. 노부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알려준 조건 이외에 자네는 따로이 선택할 여지가 없네.』
군유명은 얼굴을 돌려 금미를 바라보았다. 금미 역시 고개를 쳐들고 무쇠를 자르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마로의 말씀이 조금도 틀림이 없다. 군씨 양반, 당신은 죽음의 방시에 있어서 약간의 변경이 있는 이외에 달리 뾰족하게 유별한 방법은 없어!』
피를 흘려서 핏자국으로 얼룩지고 또 부어서 그렇게 멍든 입술을 벌리고 군유명은 일말의 울음보다도 더욱더 보기 흉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와 같은 미소는 얼마나 유감스러우며 또한 얼마나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또 얼마나 슬픈 것인가 말이다.
그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만약에…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금미는 아름다운 눈동자에 살기를 번쩍 띠었다.
그녀가 노기를 머금게 되었을 적에 보기에 또다른 일면의 멋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성을 내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요염했는데 그 아름다움은 한 명의 무당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냉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군씨 양반, 당신의 뼈다귀가 다른 사람보다 여물다고 피화살이 다른 사람보다 질기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그와 같은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마치 한 조각의 오랜 세월에 걸쳐 응고된 얼음조각처럼 금미의 표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떨리게 할 정도로 싸늘했다.
진정 그녀의 온몸에서 그리고 그녀의 혼구멍에서 모두 다 그와 같이 뼈를 에이는 듯한 냉기가 발산되었고 그 냉기가 그녀를 뒤덮고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마저도 뒤덮고 있었다.
따라서 느낌에 있어서는 오래 굳어지고 마비되어 한 가닥의 따뜻한 기운을 지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군유명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매정하게 말했다.
『군유명, 당신은 마존이라 일컬어지면서 두 손에 생혈을 잔뜩 묻혔고 몸에는 수백 수천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신은 용담호혈도 겪어 봤고 도산검림(刀山劍林)에도 뛰어들어 봤을 것이며 커다란 풍랑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장면과도 부딪쳐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위명은 혁혁하고 당신의 성예(聲譽)는 크게 치솟았으며 천하의 무림동문(同源)이며 흑백이조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거의 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한 꺼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평소 제대로 나날을 보내게 되고 재난을 겪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우리의 포로가 되었으며 도마 위의 고기 신세가 된만큼 우리들은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고 마음껏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는 똑바로 군유명을 바라보며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 역시 여전히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극한은 한도가 있다. 우리들은 당신이 뿌리를 치고 무쇠를 달구어서 만든 사람이라고 믿지 않으며 우리들은 또 많은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역시 많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했던 것과 마찬가지이지. 우리들은 우리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별 수 없다고 본다… 당신은 마존이지만 이미 흘러간 과거사가 되고 말았다. 지금으로서는 당신이 어떤 평범한 사람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당신도 대녕하 금가의 소주 홍갈(紅蝎) 금미의 수단 역시 비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회건방의 마로라는 분도 계시니…』
군유명은 차가운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자기 선전을 할 필요는 없겠지, 검미. 나는 벌써 당신을 알고 있소.』
갑자기 봄꽃이 활짝 핀 듯이 활짝 웃음을 띠었다.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조금 전의 뼈를 에이는 듯한 냉기는 모두 씻은 듯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홍갈 검미는 태연하고도 교태롭게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에 관해서 무엇을 안다는 것이지? 어디 말해봐요, 음?』
군유명은 눈을 감고서 괴로운 웃음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소… 얼굴은 복사꽃같이 예쁘지만 마음은 사갈과 같고 악독하며 박정하며 잔혹하고 매정할 뿐만 아니라 이기심에다가 탐욕심마저 강해 바로 그대가 홍갈이라고 이르는 그대로가 아니겠소?』
조금도 성을 내지 않고 금미는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호호호, 제대로 알고 있군요. 나는 사실 그래요. 하지만 마중지존(魔中之尊)이라는 당신에 비하면 아마 나의 사악한 천성은 당신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걸!』
군유명은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겸손해서 하는 말이외다. 홍갈자(紅蝎子)!』
별안간 옆에 있던 마적수가 호통을 내지르며 크게 외쳤다.
『시끄럽다! 지금은 자네가 주둥아리를 놀릴 시기가 아니야, 군유명. 내세에서 자네는 다시 때를 찾아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을 적에 언변을 갖추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자네는 말을 할 텐가, 말하지 않을 텐가?』
금미 역시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그쳤다.
『만약에 당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군씨 양반 상관이 없지. 하지만 당신이 후회하게 되었을 적에 다시 말하려고 해도 그 때는 아마 시기를 놓치게 된 셈일걸. 나는 당신이 틀림없이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을 보장하지.』
군유명은 약간 의심스러운 빛을 띠우고 망연히 물었다.
『틀림없이 후회를 하겠는가? 틀림없이 하겠느냔 말이오.』
홍강 금미는 손으로 귀밑부리의 옥산화를 한 번 바로잡아 주고는 냉랭히 응수했다.
『틀림없을걸.』
군유명은 길게 숨을 내쉬고서는 무겁고도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 좋소. 내 대답을 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