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때가 다가오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시험 어려워요?"
그러면 나는 답해준다.
"그 질문이 제일 어려워."
누가 푸느냐에 따라 다르므로 어려운 질문이다.
p.s.
올해는 바꿔볼까.
"어렵다고 하는 학생이 많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또는
"쉽다고 하는 학생이 많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또는
"어려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또는
"쉬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 지난 주에 혜라가 보라색 간식을 주었는데 오늘은 동생 혜리가 연두색 간식을 주었다. 서로 색깔도 어쩐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 헤헤. :)♡
p.s.
오늘 도서관에서 '퍼플 젤리'로 시작하는 책을 빌릴 예정인 것이 떠오르네. 그건 어떤 맛일까.
- 교무실에는 밑줄 그어진 빨간색 '기말고사 출제 관련 학생 출입 금지' 문구가 여러 행 반복되어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이 디자인이 상당히 효과적인(+아름다운)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옆의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하였으나 선생님은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그 종이를 아예 보지 않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다. 엄... 잘 듣지도 않고 잘 보지도 않고...
- 수업 시작 무렵에 소현이 자리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요새 잘 보이는 검은 벌레(오늘 점심 때 한 선생님께 여쭈어 보고 알게 된 바로는 'Love Bug'라고 한다... 생김새와 다르게 사랑스러운 이름이네...)가 그의 자리에 출몰하여 소현이가 매우 난감해 했다. 그렇게 학생들이 벌레보다 더 난리를 칠 때면 나는 늘 벌레보다 자기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상기하라고, 얼른 그냥 잡으라고 하곤 한다(물론 벌레가 매우 싫은 심정은 나도 잘 알겠지만). 그는 용감하게 책상 다리로 찍어 눌렀다. ㅋㅋ 그래, 할 수 있다니까.
p.s.
지난 번에는 그 벌레가 소현이 국에 출몰했는데 왜 그건 자꾸 소현이에게 가까이 나타나는 걸까.
오늘은 현길이의 케이크 위에 나타났다고 한다. 까만 초콜릿 조각 사이에 있는 것을 용케 발견했나 보다(이 시점에서 까만 초콜릿과 그 형태가 분간이 잘 안 되는 관계로 급식 때 벌레를 초콜릿인 줄 알고 먹은 학생이나 선생님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13반에서의 수업이 흥미로울 때가 많다. 일단 자는 학생이 별로 없다. 오늘 모든 학생이 출석하지는 않았으나 출석한 학생들은 한 명도 엎드리지 않았다. 오늘은 '통일 시대의 국어' 관련 영상을 보았다. 인상깊은 부분이나 새롭게 알게 된 것, 더 알고 싶은 것 등을 메모하며 보고 발표하였다.
기성이가 랜덤 발표자로 뽑혀 먼저 발표하게 되었다. 그는 한참 마이크를 쥐고 있다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인상깊다'는 것은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이다.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지 다시 물어보니 좀 있다가 발표를 하였다. 다행히 영상을 본 모양이다.
태혁이가 영상에서 북한말을 '북한 사투리'로 인식함으로써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 남한의 사투리도 공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데 '북한 사투리'라고 부른다고 더 친숙하게 여겨질지 의문이 든다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호준이는 남북 관계에 요새 긴장이 고조되는 점을 짚으며 상당히 우려된다고 하여 공감되었다.
남북 평화 통일과 언어의 이질화 극복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학생들에게 남북 언어의 이질화 극복 방안을 물었다. 많은 학생들이 '문화 교류(교육, SNS, 축구, 관광 등)를 통한 친밀감 강화'를 이야기하였다. 교육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북한 말을 다루고 배우자(태혁, 희수), 차이나타운처럼 북한 거리를 조성하자(예지), 미디어에서 북한 영상을 틀어주고 우리 말과 다른 부분에는 밑줄 등으로 표시해 두자(가진) 등의 구체적 제안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와 재미있었고 집중해서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의견이 많이 나왔으므로 요약 훈련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의견 중에 공통적인 부분을 추려서 요약해 보라고 했더니 여러 학생들이 핵심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뼈대를 추려 자기 말로 잘 요약해 주었다. ppt로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학생 선생님 활동에서도 슬라이드를 읽기만 하지 않고 자기 말로 보충 설명하거나 요약하려는 시도가 보여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반이다.
p.s.
13반에서의 수업은 새로운 그림이 있는지 칠판 구경부터 시작한다. 오늘은 새로운 그림이 없고 지난 번 그림 중에 '숙제빵'이 눈에 들어온다. 숙제빵이라는 신조어라도 나왔는지 검색을 해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생일빵이라는 단어는 생일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숙제빵도 생일빵처럼 폭력과 관련된 걸까? 숙제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숙제를 발로 빵 차버리고 싶다는 뜻일까? 숙제가 폭력적이라는 뜻이거나 숙제를 발로 차버리고 싶다는 뜻이라면 그것도 공감된다. 학생 때 선생님이 숙제를 내 주시면 그 때 너무 싫었다. 교사가 된 지금도 그 때 감정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평가 예고 등 해야 할 일을 안내할 때는 굳이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ㅋ ㅋ
- 계단참에 서서 형광등 버튼을 누르는 예지를 보았다. 불을 한 번 껐다가 켠다. 뭐하는 건지 물어보니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ㅋㅋㅋ(오늘의 빵 터짐)
- 급식 도우미 A가 국을 주다가 B의 급식판 아래 조금 국물이 흐른 모양인데 휴지로 닦아 주는 것을 보았다. 자상하네...
- 청소 후 쓰레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아니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 오늘도 여러 빛깔과 모양으로 나의 하루를 채색하고 조각해 주는 너희들. 퇴직하면 과연 누가 이렇게 다채롭고 흥미롭게 나의 하루를 빛내줄까.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지.
오늘도 학교 다니느라 수고 많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