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국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을 나타내는) 한자 바로 뒤에 붙는, [ ]안의 글자 : 한국식 한자 발음
▣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 아니다
우선 무궁화라는 이름 자체가 ‘무쿠게(むくげ, ムクゲ)’, 곧 ‘팽창’을 뜻하는 일본식(왜식[倭式]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한자어(한자말 – 옮긴이)다.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처럼 순수 우리말 이름이 없는 꽃이다. 이 사실부터가 무궁화는 한민족(배달민족 – 옮긴이) 고유의 나라꽃이 아니라, 영락없는 외래종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무궁화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경희대 법학대학원 ‘강효백(姜孝伯)’ 교수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한국의 무궁화는 115종에 달하는 국내 품종과, 104종의 외래종(일본 도입 53종 – 지은이의 주석) 등 총 219종이 있다. 1990년 기준 70종이던 국내 품종이 45종 늘어났고, 63종이던 외래종이 41종 증가했다.
그러나 산림청, 농촌진흥청, 한국무궁화연구회 등이 스스로 확인하고 있듯, 한국 무궁화 품종 대다수는 주로 일본 무궁화를 도입/복제하거나, 종간(種間. 종과 종 사이 – 옮긴이) 교배한 것이 대다수다. 국내 품종의 원산지, 재배 시기, 육성 경위가 명확하게 표기된 것은 단 한 종류도 없다. 일본 등 해외(국외/나라 밖 – 옮긴이)에서 도입한 품종만 있지, 해외로 수출한 무궁화 품종은 전혀(한 개도 - 옮긴이) 없다. (무궁화가 – 옮긴이) 우리나라 꽃이 아닌 까닭이다.
그렇다면 무궁화는 어느 곳이 원산지고, 우리나라에도 자생지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의 이야기들은 상당수 경희대 강효백 교수의 연구 자료를 근거로 몇 가지 조사를 덧붙인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강 교수는 무궁화가 왜구(倭寇)의 꽃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의 연구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주장하지 않겠노라고 누차(屢次. 여러 차례에 걸쳐 – 옮긴이) 강조해왔다.
우선 세계 유수의(有數의. 몇몇을 손꼽을 만큼 두드러지거나 훌륭한 – 옮긴이) 식물 사이트(순수한 배달말이자, 새로운 배달말로는 ‘누리집’ - 옮긴이)와 연구기관의 보고서는 무궁화의 원산지와 자생지를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 남부로 적시하고 있다. 한국은 (원산지나 자생지가 아니라 – 옮긴이) ‘재배 가능 지역’에 속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지원으로 펴낸 중국 식물지 역시 중국 동남부 지역인 안후이(安徽[안휘 – 옮긴이]), 광둥(廣東[광동 – 옮긴이]), 광시(廣西[광서. 다른 이름은 ‘광서장족자치구’ - 옮긴이]), 장쑤(江蘇[강소 – 옮긴이]), 쓰촨(四川[사천 – 옮긴이]), 윈난(雲南[운남 – 옮긴이]), 저장(浙江[절강 – 옮긴이]), 타이완(대만 – 옮긴이)으로 보고 있다(한마디로, 하버드대학교는 무궁화의 원산지를 ‘남중국’인 화중[華中] 지방이나 화남[華南]지방이나 대만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 옮긴이).
미국의 미주리 식물원(missouri botanical garden)도 중국과 인도(바라트/바랏 – 옮긴이)에 걸친 지역으로 보고 있다.
그 밖에 그리스(올바른 이름은 ‘헬라스’ – 옮긴이)의 자연 식물 문화원 칼리에게리아(kalliergeia)는 남중국으로 적고 있고, 인도의 ‘생물 다양성 사이트(indiabiodiversity.org)’도 중국을 원산지로, 인도는 재배지라고 알려준다.
이처럼 거의 모든 세계 식물학계가 공인하고 있는 무궁화의 원산지는 중국 남부 혹은 남동부다. 인도 원산지설은 소수 주장이다. 위에서 보았듯, 인도의 식물다양성위원회조차도 인도는 무궁화의 재배지일 뿐, 중국 남부를 원산지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바라트의 무궁화는 오래 전, 화중 지방이나 화남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장사를 하러 바라트로 갔을 때 – 또는 전쟁이나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나 바라트로 갔을 때 -, 그들이 씨앗이나 식물을 가져가 심었기 때문에 싹이 트고 자란 것일까?
나는 남아시아에도 백제/남부여의 담로가 있었다는 학설을 알기 때문에, 우선 백제인을 그런 일을 한 사람들 가운데 맨 첫 번째에 두고, 그 다음으로는 북송/남송이나 명나라의 ‘한족[漢族]’을 두 번째 후보로 선정한다.
만약 둘 다 아니라면, 먼저 화중 지방/화남 지방에서 동남아시아로 무궁화가 퍼졌고, 그 뒤 남아시아 장사꾼이나 이민자들이 동남아시아로 왔을 때, 무궁화를 보고 반해 그 씨앗이나 식물을 가져가서 자기 나라에 심었는데, 마침 그곳의 기후와 흙이 무궁화에게 딱 맞았기 때문에, 무궁화가 바라트를 비롯한 남아시아에도 퍼지게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어느 설이 옳은지는 역사학자와 식물학자들이 함께 노력해서 밝혀내야 할 것이다 - 옮긴이)
그럼 기타(其他. 그[其] 밖의 또 다른[他] - 옮긴이) 지역의 무궁화는? 일본과 동남아, 하와이 등의 무궁화는 이전에 재배되어 토착화된 것이고,
(이 세 지역의 무궁화에 대해서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일본”, 그러니까 왜[倭]열도의 “무궁화”는 절강성으로 진출한 해상신라[석(昔)씨족] 사람들이 그곳에 있던 무궁화의 씨앗을 가져와 경상북도에 있는 본국과, 왜 열도의 식민지에 나눠서 심었는데, 날씨와 기후 때문에 본국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렸고, 따뜻하고 물이 많으며 햇볕도 잘 내려쬐는 왜국의 식민지에서는 잘 적응해서 왜 열도 곳곳으로 퍼졌을 가능성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필리핀이나 절강성이나 복건성이나 대만이나 광동성/광서성에서 살던 말레이 몽골 계통 원주민이, 대만과 유구[琉球]를 징검다리 삼아 왜 열도인 규슈/혼슈/시고쿠로 올라왔고, 그들이 박창범 교수나 『 삼국지(三國志) 』 를 쓴 진수나 『 구당서 』 / 『 신당서 』 를 쓴 사관들이 설명하는, 서기 8세기 이후의 ‘일본인’과는 구분되는 ‘왜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무궁화 씨앗을 가져와서 왜 열도에 퍼뜨렸을 가능성이다.
세 번째로는, 석씨족보다는 뒤늦게 해외 담로를 만든 백제와 남부여가, 담로가 세워진 대만/절강성/강소성/광동성/광서성에서 무궁화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 씨앗을 가져가서 본국과 왜 열도의 식민지에 심었는데, 석씨족이 겪은 일과 마찬가지로, 본국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왜 열도의 담로에서만 잘 자라 왜 열도 곳곳으로 퍼졌을 가능성이다.
일단은 이 세 가지 가능성을 다 적어둔다.
그리고 “동남아”의 “무궁화”는 그 지역과 가까우며, 원래는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과 비슷한 민족인 말레이 몽골 계통 민족들이 살던 땅인 사천성/운남성/광서성/광동성에서 건너간 것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한족[漢族]’이 고향이자 요람인 화북 지방을 벗어나 사방으로 팽창하고 다른 민족들의 나라를 침략/정복/점령하면서, 화중/화남 지방의 원주민들이 ‘한족’들을 피해 남쪽이나 서남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이 가져온 식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설령 전쟁이나 피난이 아니라도, 가까운 곳과 교역하게 되면 그곳의 식물이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끝으로, “하와이”의 “토착화”한 무궁화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곳 원주민들이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오래전에 대만을 떠나 오세아니아로 간 폴리네시아인들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나는 이 사실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다], ‘고향’인 대만의 식물들 가운데 하나인 무궁화를 가져가서 심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배로 많은 식물들을 가져와서 심었고, 그 식물들 가운데 하나가 무궁화였으며, 무궁화가 따뜻하고 물이 많은 하와이에서 잘 적응해 퍼졌기 때문에, 하와이의 “토착”식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옮긴이)
한반도의 남한 지역(한국 – 옮긴이)과 미주(美洲. ‘아메리카’로 불리는 거북섬 – 옮긴이) 및 유럽은 자생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재배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학설과 어긋나게, 서울대학교 원예학과 교수와 원예학회 회장을 지낸 유달영과 그 제자들만 유독 ‘한반도 원산지 설’을 주장해 왔다. 그것도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 통치 시절에 강조됐다.
유달영이 박정희가 만든 관변단체 ‘국민 재건 운동본부’의 본부장을 맡아 소위(所謂. 이른바 – 옮긴이) ‘새마을운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농촌 계몽활동과 무궁화 심기 운동에 열심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그가 왜 한반도 원산지 설을 고집했는지 그 배경이 능히 짐작이 간다.
박정희는 유독 무궁화에 집착했다. 그래서 그의 두 딸 이름인 ‘근혜(槿惠)’와 ‘근영(槿令)’ 모두 무궁화를 뜻하는 ‘근화(槿花)’에서 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군인이었던 그가 어울리지도 않게 왜 이리 무궁화에 집착했을까? 그 이유(까닭 – 옮긴이)는 조금 있다 살펴보도록 하자.
무궁화 품종에는 ‘근형(槿亨)’ 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일본의 ‘시치사이(七彩[칠채])’와 개량한 단심을 교배한 품종으로,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4년부터 본격 보급되었다.
사정을 모르고 보면, 마치 근혜와 근영의 동생으로 세 자매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근형’을 새 품종의 이름으로 붙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도 박근혜 정권 시절에 말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에 내놓은 품종에는 ‘근형’과 배가 다른 형제인 ‘한결’이라는 것도 있다. ‘근형’과 ‘한결’은 부모가 같지만, ‘근형’은 홍색 시치사이를 대목(뿌리가 있는 줄기 – 지은이의 주석)으로 하여, 여기에 백색 개량단심을 접수([뿌리는 없고] 눈이 있는 줄기를 접붙임 – 지은이의 주석)한 것이고, 반면 ‘한결’은 백무궁화 개량단심 대목에다가 홍색 시치사이를 접수했다.
따라서, 근형은 붉은색 바탕의 방사상으로 퍼진 욱광선(旭光線)이 선명한 욱일기(다른 이름은 ‘왜국 전범기’ – 옮긴이) 모양인 반면, 한결은 흰 바탕에 빨간 일장(日章. 해 모양인 표지 – 옮긴이)이 선연한 일장기 모습이다(이렇게 왜국 전범기/일장기와 비슷하게 생긴 꽃이, 도대체 어떻게 “3.1 운동[3.1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정통성을 찾는 나라인 한국의 ‘나라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이런 식으로 무궁화를 개량한 게 과연 ‘우연’인가? 일부러 이렇게 한 게 아니고? - 옮긴이).
(그동안 한국의 – 옮긴이) 식물학계는 무궁화가 한반도(코리아[Corea] 반도 – 옮긴이)에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박정희가 내세우는 꽃이었으므로 다들 침묵하면서 논의를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종일(從日. 왜국[日]을 좇음[從] → 왜국을 [종처럼] 따름 = 이완용을 비롯한, 배달민족을 배신하고 왜국에 충성한 자들의 성향을 일컫는 말이며, ‘친일’보다 더 정확한 말이다 : 옮긴이)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에 영합한 소수 어용 관변학자들이 ‘한국 무궁화 원산지설’을 날조해 유포한 측면이 많다.
유달영과 그의 제자 ‘염도의(廉道義)’가 쓴 책인 『 나라꽃 무궁화 』 (‘학원사’ 펴냄, 서기 1987년 – 지은이의 주석)는 무궁화가 옛날에 참 많았는데, 지각변동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이 원래는 하나였으나, 지각변동으로 중국은 부용과 하와이 무궁화로, 한국은 무궁화 자생지로 서로 나누어졌다.’고 하면서 ‘무궁화는 한반도만 자생지’라고 강조한다. 무궁화가 무슨 공룡도 아니고, 참으로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 단기 4356년 음력 11월 8일에,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