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을 볼 때 가끔 그 '혼자'라는 점에 주목한다. 누군가와 함께 등하교하든 혼자 등하교하든, 누구나 혼자로서 존재한다. 홀로 와서 홀로 살다(옆에 친구가 있어도, 가족을 이루어도 단독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홀로 사라지는 외로운 개체라는 점에서 모두 안쓰럽다. 그래서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 연민의 관점으로 서로를 본다면 학교 폭력이 조금은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 아침에 교실을 돌다가 소현이의 필통에 귀여운 아기 사진이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본인 어릴 적이냐고 물으니 학원 선생님 어릴 때 사진이라고 한다(학원 선생님의 아기 사진인 것 아니냐고 여러 번 물었으나 학원 선생님이라고 함). (??) ㅋㅋ
- 기말고사 이후 학급별 토너먼트 시합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반이 체육을 잘하는 편인지 물으니 다들 조용하다. 기대하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ㅋㅋ 그럼 누가 체육을 잘하는지 물었더니 재웅이 말로 현길이가 제일 잘한다고 한다. 그럼 현길이만 보면 우리 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겠네 했더니 웃는다. 왜 웃지... 우스운 수준이라는 건가...
- 학교 폭력에 연루가 되는 사유로 웃음이 있을 수도 있다. 웃음은 보통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만, 전혀 웃기지 않는 상황(기분이 안 좋은 상황)인데 옆에서 웃고 있으면 그게 안 그래도 나쁜 기분을 더 나빠지게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 11반에서는 마이크를 돌리다 보면 지뢰밭(연달아 엎어져 있음)을 만난다. 오늘은 5명 중 2명은 그래도 깨어 있었다! 비록 민준이가 한참 마이크를 들고 있다 겨우 입을 떼기도 하고 종우는 두 개 중 한 개만 말하였으나 무언가 했다는 점에서 대견해 보인다. H, D, T는 분명 준비 차원에서 내가 깨워두었는데 마이크 주려고 보니 다시 엎어져 있어서 다시 깨워야 했다.
p.s.
<자는 학생 깨우는 건에 대하여>
작년에 어떤 선생님께서 자는 학생을 깨우다 그 학생에게 봉변을 당해서(그 학생이 선생님을 밀쳐서 넘어지심) 교감 선생님께서는 자는 학생 깨우지 말라고 전체 메시지를 보내셨다(이 사태에서 내려야 할 결론이 그것인지는 모르겠음). 그런데 오늘은 자는 학생을 관리하라고 메시지를 주셨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 열정적으로 깨우는 편이었으나 자는 학생을 깨워봤자 결국 또 엎어지는 것을 본다. 자는 학생은 단순히 졸린 것일 수도 있지만 학습에 대한 무력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는 학생을 깨워도 그가 다시 엎어지는 것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교사는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
p.s.2.
그러고 보니 그동안 여러 차례 깨운 역사가 있는데 밀친 학생이 없어 다행인 걸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나의 안전을 위해 깨우지 말아야 하는 걸까?
- 슈퍼맨이 된다면 서진이는 맨몸으로 날아보고 싶다, 혜리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동감이다. 준성이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재원이는 달을 맨눈으로 보면 시적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으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광물자원의 집합으로 보이는 등 서정성이 떨어지므로 굳이 슈퍼맨의 초능력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오모나. ㅋㅋ 아... 자세히 보면 아름답지 않은가?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봐야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관점인가 궁금해진다.
- 통일 시대의 국어 관련 북한말 초성 퀴즈 영상을 보는데 은율이가 제법 많이 맞추는 것을 들었다. 순발력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체육복 가디건을 가지고 머리통을 꽁꽁 감싸서 얼굴만 보이게 하고 거울을 한참 보더니 지금 자기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 같냐고 물어보았다.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고 해주었다. ㅋㅋ 히잡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은율이. 오늘의 빵 터짐. ㅋㅋ
- 13반에서는 가진이가 발표하러 나오다가 엎어질 뻔해서 본인도 옆 학생도 빵 터졌다. 그 동작은 코믹하였지만 사실 잘못 엎어졌으면(날카로운 모서리에 찧거나 발목을 접질리는 등) 다칠 수도 있었는데 그만하기 다행이다. 주변에 가방이나 실내화, 떨어진 물건 등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살핀 후 살포시 발을 딛는 것이 좋겠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음마를 잘하자.
- 우리 반에 다른 반 학생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지난 학급 회의에서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제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들어왔다고 하여 오늘 남는 시간에 학급 회의를 하였다. 우리 반에 다른 반 학생이 들어올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윤서가 반 분위기를 흐린다고 말하였다. 반 분위기를 흐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물었다. 기분이 나빠지는지, 물건을 훔치거나 낙서를 하거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등. 물어보니 윤서는 그냥 의견 내리겠다고 하였다. (??) 해나는 다른 반 학생이 들어와서 우리 반이 놀이터처럼 된다고 하였다. 놀이터 같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 되는 건지 물었다. '뛰어다닌다'고 한다. 와... 중3인데 뛴다고? 유치원인 줄...
학급 회장은 모두를 엎드리게 하고 손 드는 식으로 학급 규칙 변경에 대한 찬성 의견을 확인했다(그 와중에 꼭 엎드리지 않고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학생들이 있다. 정훈이라든가... 해나라든가..). 학급 회의 결과 이전처럼 다른 반 학생 출입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그 결론에 대해 학급 회장이 상당히 아쉬워하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그가 회의를 원했던 것 같다). 다만 '뛴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혹시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에게 알리고, 그 때는 벌점을 부여한다고 말하였다.
- 지우개가 떨어져있다. 민석이에게 그의 지우개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단호하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왜 저렇게 비장하지... 지우개 주인을 찾으니 옆 자리 J가 자기 것이라고 손을 든다. J는 정형외과 진료를 보고 5교시에 등교하여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데 지우개를 먹으려고 하였다. 어떡해... 병원 잘못 갔나봐...
- 뒷자리 청소 담당 H에게 어떤 부분 잘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오늘 끝나고 보니 그가 잘 해 주고 갔다. 고마워라.
오늘도 학교 다니느라 수고 많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