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나는 가슴 뿌듯해졌다.
다시 한번 손에 든 통장을 펴서 내용을 확인했다.
잔액란에 ₩50,000 선명하게 찍혀있다.
방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날은 비릿한 냄새가
아닌 향긋한 냄새를 실어왔고, 수양버들 가로수들사이로
하늘은 파랗게 맑았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시작한 저금은 아니었었다.
중학생시절부터 받기 시작했던 월단위 용돈.
늘 모자랐는데... 재수시절 괜스레 창피해서 나다니기도
싫고, 그때까진 담배도 안 배운 데다가, 좋아하던 영화도
시들해져서 입맛 없을 때 사 먹는 점심 라면과 종합학원
오가는 버스비 외엔 돈 쓸 곳이 없다 보니 자연 용돈이 남았다.
매월 만원. 그 당시 물가라고는 다방 커피값이
130원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남는 용돈을 집 가까이 농협에 저금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지만,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많아져가자 생각도 따라서 많아지고 하고 싶은 일도
덩달아 많아졌다.
여행도 하고 싶고, 영화도 원 없이 보고 싶고...
먼저 대학 간 친구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살까?
혹 대학이라도 붙으면 공납금에 보태라고 내놓아볼까?
엄마가 고맙다며 좋아하실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상상의 부피가 커졌고, 그 부피만큼
행복도 따라 커졌다.
일차 목표액 오만 원이 모이고 며칠 지난날.
부산에 살던 외사촌 형이 군 입대 인사차 집에 들렀다.
멀리 떨어져 살긴 했지만 여름방학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찾아갔던 외삼촌댁. 외삼촌댁에 들리면 두 살 위인
형은 나를 끔찍이 챙겼고, 그만큼 나도 그 형을 따랐다.
광안리 해수욕장을 필두로 태종대, 금강원, 용두산공원,
범어사, 다대포와 해운대 해수욕장, 어린이 과학관...
부산의 수많은 명소들을 그 형 따라 가보았다.
형은 모르는 길이 없었고 부리부리한 인상에 우격다짐도
잘하는지라 형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형을 배웅하겠다고 따라나섰다.
동대구역에 이르니 출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 당구장이 이렇게 생겼구나...'
형을 따라 처음 들어가 본 당구장.
형과 당구장 지킴이의 내기 당구가 벌어졌고, 200점을
놓고 친 형이 세 판을 내리 이기자 껄렁해 보이던
지킴이는 손을 들었다.
"젊은 넘이 디기 짭네... 쩝~"
그래도 시간이 2시간가량 남았다.
"술이나 한잔 마시자~"
이끄는 형을 따라 근처에 보이는 지하 술집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비슷한 곳이었던 것 같다.
룸으로 안내되었고 형은 여러 번 와본 것처럼 척척
주문을 하고 곧이어 술과 안주를 들고 여자 둘이 들어왔다.
내 나이 스무 살. 그때까지 내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딴 세상. 말로만 듣던 어른들의 세상.
호기심과 두려움... 반반이었다.
다가앉으려는 여자를 주먹하나 들어갈 만큼 떼어놓고,
못 마시는 맥주도 어른인 척 폼 잡으며 몇 잔을 마셨다.
이럴 땐 영화 봐둔 것도 쓸모가 있네... 혼자 생각하면서.
"계산서 가꼬와~"
스물두 살의 형이 말하자 금세 계산서가 대령을 했다.
계산서를 보던 형,
"뭐가 이래 비싸? 군에 가는 넘 바가지 씨울라카나?"
목소리를 키우더니,
"지배인 불러와~"
일이 커지고 있었다. 내 가슴은 쫄아들어가고.
문 앞에 양복 말끔하게 차려입은, 덩치가 엄청 좋은...
그러나 인상은 엄청 험상궂은 아저씨가 다가섰다.
"불렀습니까. 손님?"
"니가 지배인이야?"
"예."
"여 술값이 와이래 비싸~ 오징어 한 마리 꿉어놓고
군대 가는 넘 바가지 씌울 일 있나!"
그 덩치와 인상을 보고도 형은 질리지도 않은가 보다.
"계산 맞는데예?"
"이만 원 밖에 엄따. 받을래 말래?" 형이 밀어붙이고...
"허~ 그래는 못하지예~" 지배인이 인상 쓰며 맞받았다.
"그라마 할 수 없네. 나 차시간 다 돼서 가봐야 된다.
나중에 군 봉급날 받으로 온나~"
형은 숫제 배짱이다.
일촉즉발.
아슬아슬한 대치상태에 내 간은 더 오그라들고...
"육만 원만 주고 가소. 군에 간다는데... 그 정도는
내가 기마이 쓰지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 지배인도 화를 꾹 눌러 참으며
흥정을 내밀어 본다.
"돈 없다 안 카나~ 이만 원만 받아라~"
으... 저 똥고집.
우리 어무이, 형에겐 고모가 챙겨준 용돈도 있으면서.
시계를 보니 기차 시간 십분 전이다.
"히야 시간 늦겠다. 고마 가라~"
이래저래 속 탄 내가 나섰다. 앞뒤 잴 틈이 없다.
"니 우짤라꼬?"
"내 만원만 주고 히야는 빨리 가라~ 내가 해결하께..."
형이 못 이기는 척 서둘러 떠나갔다.
"히야~ 군에 가거든 몸조심이나 해라~"
형은 가고 나는 범의 소굴에 홀로 남았다.
벗을 값나가는 옷도 없고... 돈이라고는 만원 밖에 없다.
이미 내가 나설 때 통장을 깨기로 결심했던 터라
통장을 깨서 갚으면 되는데...
내 말을 믿어 줄까...?
사람의 말을 믿어주는 곳이 아니라던데...
"지배인님요..."
"예. 자 인자 우짤 거요? 형이 군에 가긴 가능교?"
그 분 인상 한번 고약하다.
"난 재수생이고 돈이라곤 형한테 받은 만원 밖에 없어요."
"그래서?" 수치지 말라는 표정.
"내를 믿고 보내주면 내일 오전까지 나머지 오만 원
갖다 드릴께요."
"그걸 우에 믿노? 학생 같으마 그 말 믿겠나?"
그 와중에 학생? 고맙다. 재수생인데... ㅎ
나도 계속 그것이 고민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날 믿을까?
내 대신 목숨을 걸고 사흘을 기다려 줄 국민학교 책에
나오던 그런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를 어쩐다...?
"내 눈을 믿어 보이소. 맡길 건 이것밖에 없네예."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건넸다.
험상궂은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보던 지배인,
"허~ 처음 맡아보는 물건인데 내 함 맡아보지. 허허~"
주점을 나오니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다음 날, 농협 문이 열리자마자 통장을 털고 해약을 했다.
오만 원...
그 돈으로 꿈꾸던 많은 행복들이 같이 해약되었지만
그나마 모아둔 게 있어서 다행이다 스스로를 달랬다.
주점을 나서니 이제 다시 세상이 밝아졌고, 뒤에서
들려오던 지배인과 아가씨 누나들의 목소리.
"자네는 앞으로 이런데 다니지 마라~" 선의로 들렸다.
"우리 팁은 안 주나~" 장난으로 들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은 만들지 않았고
룸쌀롱 근처엔 얼씬도 안 했다.
이 추억을 같이 나눌 그 형은 오래전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몇 번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잘 키워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사랑하던 아내와 자식을 남겨둔 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형~ 내가 대신 갚은 술값으로 형이 나에게 주었던
그 많던 추억들 갈음해도 될까요~?'
첫댓글 수무살에 룸살롱?첫걸음의 댓가가 컷습니다.
두살 위인 사촌형이지만 많이 어른스러웠나 봅니다.
일처리는 잘 했지만 저축금 오만원이 날라가 버렸군요
안경을 맡기다니? 뱃장도 좋았나 봅니다 ㅎ
좋은추억? 경험이였네요
일찍 세상을떠난 형이 안됐어요
짧은 세월 사는 데도 온갖 경험을
다하며 삽니다. ㅎㅎ
제 기억에 그 당시 서울에서 자장면이
500~600원이었고
떡라면값이 350원이었어요.
그냥 라면은 250원이었고요.
5만원이면 쾌 큰 돈인데 몽땅 술집에~
아깝네요. ㅠ
수 십년 지난 지금 추억이 되었으니
갈음할까요?^^
ㅎㅎ 그렇게라도 래야지요.
그때 물가와 너무 차이가 나니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영화 속에 한 장면 같네예.
끼 같기도한 낭만~ 그때는 그랬지...
하나하나 세상을 배우던 시절이었지요.
안 배워도 되는 것들까지도요. ㅎㅎ
인생이야기 한토막이 너무 재미가 있어 한달음에 읽었어요.
끼도 있고 머리 회전도 빠른 햇총각 시절의 이바구가 마냥
달콤합니다
ㅎㅎ 재밌게 웃으시며 읽으시라고
올렸습니다. ㅎ
큰냐니 댓글에 햇총각이란 말에 웃었지요.
숫총각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햇총각은 처음
들어요.ㅎㅎ
근데 그 형은 이만원밖에 없으면서 룸쌀롱에 간거야요?
동생앞에서 개폼 잡은건가?
ㅎㅎ 햇총각. 햅쌀처럼 듣기 좋습니다.
이곳저곳 친척들 집을 돌았으니
아마 주머니가 두둑했을 겁니다.
다 주기는 아깝고 뻣대본 건데..
제가 곁에 있다가 유탄을 맞은
꼴이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