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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86]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회건축가 우대성
매일경제 2021.05.28
[효효 아키텍트-86] 건축가 우대성은 현대 주택이 잃어버린 처마에 몰입해 있다. 아파트와 주택의 차이는 외부 공간이다. 처마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반외부 공간이다. 시선은 상반된 욕구를 지닌다.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며 외부에서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양가적 측면의 시선은 처마가 있어야 가능하다. 큰 처마 밑에 비어 있는 공간의 존재로 삶의 행태가 달라진다. 이 공간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서양식 건물의 차양인 루버와는 기능이 확연히 다르다. 도심 주택 건축에서 건축가나 건축주에게 처마는 건축법상 불리하다.
지난 3월 개관한 부산 서구 암남동 알로이시오기지1968에는 이러한 우대성 스타일의 지붕과 처마가 주인공인 건물, 일명 '대청마루'가 있다. 대청마루는 현대식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다. 서원에서 밖으로 향하는 원심적(遠心的) 경관구조(景觀構造)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성장하기를 원하는 건축가의 바람이기도 하다.
▲ 알로이시오기지1968-대청마루 / 사진=윤준환
건축가 우대성 편을 2019년 효효아키텍트(3)에서 다뤘으나 인터뷰는 없었다. 필자의 개인적 모티프와 자료를 통한 접근이었다. 그를 2시간여 동안 만났다. 건축사 사무소 오퍼스는 지역 전통이나 맥락과는 상관없는 계획적인 부도심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자리하고 있다. 자주 이사 다니지 않아 좋다고 한다.
하나의 사무 공간을 인테리어 회사와 공유한다. 두 개 회사, 1998년 창립 이래 파트너 세 명이 각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업 리스크를 줄이면서 건축 내부 공간을 밀도 있게 다룰 수 있다. 설계 사무소는 건물 준공 사진을 찍으면서 임무가 종료되지만, 인테리어와 시공을 겸하면 하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공 후 발생할 문제를 미리 고민하며 설계에 반영한다. 외국은 도시 계획, 건축 설계, 인테리어를 한 회사에서 수행한다.
경남 산청군 출신인 우대성은 청소년 시기를 경남 진주에서 보내고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대학에서 건축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폭파공학을 건축학과에서 가르치는 줄 알았다. 작업실에서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전공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4학년 때 건축 잡지 '공간'에 제안한 작품이 대상을 받으며 운명적으로 건축가 길에 들어서게 됐다. 대학원에서 근대건축을 공부하며 전문가 집단 활동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 감각과 이야기가 있는 대체 불가능한 기존 건축물은 '보존'이 최고의 가치임을 알게 됐다.
3년간 해군 시설 장교로 복무했다.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건물 구조, 내역, 감리를 몸으로 익혔다. 전역 후 아뜰리에나 대형 건축사무소 도제를 거치지 않고 건축사무소 오퍼스를 창업했다. 2000년 국제 공모 방식으로 서울 상암동 천년의 문(Millennium Gate) 프로젝트에 당선됐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됐고, 11년간 소송 끝에 최종 승소했다. 기존 건축사무소의 스승이나 선배도 없고, 학교 건물 등 관급 프로젝트를 수주한 적도 없어 이해관계 없는 자유로움이 생겼다. 협회 등 공적인 일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러한 자유로움으로 건축이 들어설 땅, 터를 읽는 법을 체득했다. 학교에서는 건축가 자신의 디자인이 중심이라고 배웠으나 땅 주변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한 후 건축을 앉혀야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임을 알았다. 건축은 주변 거주자들이 맞닥뜨리고 보고 느낄 수밖에 없기에 기본적으로 공공재다.
부산 서구 암남동 수국마을(2013)은 "이 집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는 수녀회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건축 설계업에 종사한 지 20여 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1965년 알로이시오 슈월쓰 몬시뇰(1930~1992)이 창립한 마리아 수녀회가 50여 년간 가난한 아이들을 돌본 시설이었다.
건축보다 삶의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건물이 건물로 끝나지 않음이 보였다. 하나의 건물은 공간적으로 다른 건물과 연결되고, 시간적으로는 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을 관통한다. 해법을 찾아야 했으나 일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교육받은 대로, 또는 다른 이의 것을 빌려와 적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 하나에 아이들 15~20명과 '엄마 수녀'가 함께 생활하는 100명이 사는 집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보였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홀로 서야 한다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산다. 가족적인 삶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육'에서 '자립'으로 개념을 바꾸는 '개혁'이 필요했다.
큰 건물 대신 주택 8채가 모인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심고 집 이름을 붙였다(훗날 아이들이 돌아올 이정표다). 집마다 공동 생활비로 한 달을 산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일상을 논의한다. 입주한 지 수 개월 만에 매실나무 집 아이들은 생활비를 아껴 주변 독거노인을 돕는 삶까지 실천했다. 공간을 바꾸니 삶이 달라졌다.
▲ 수국마을 / 사진= 윤준환
수녀회와는 처음에 후원자로, 수녀회가 돌보는 아이들의 대부(代父)로 관계를 맺었다. 수국마을과 함께 수녀회 수녀원 리모델링(2011~2012) 작업이 있었다. 수도회 소속 사제인 형님의 삶을 봐온 것도 있다 보니 '수도자의 집'이 어떤 건축이어야 하는가, 집이 쓰임에 충실한가에 대해 생각해왔다. 당시 스스로 건축가로서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서 집을 기획하는 단계에 개입했다.
건축 형태와 디자인 이전 단계의 고민들, 왜. 꼭 지어야 하는지 등 서서 보는 자리가 달라지니 대상과 생각이라는 풍경이 다르게 들어왔다. 사용자들은 제안은 하지 못하지만 판단은 한다. 건축적 훈련과 사용자들 삶의 방식이 결합돼야 한다. 생각·공감·검증하는 시간이 설계와 시공보다 더 걸린다. 어떻게 쓰이는지 피드백도 한다. 리모델링은 언젠가는 누가 잘 고쳐 쓸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건축가의 지론이다.
가회동성당(2014) 땅에 대한 첫 느낌은 너무 무거웠다. 경사지가 가진 한계, 건축가에게 '지독한 곳'인 북촌 일대는 최초 선교사 주문모(周文謨·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해 1795년 4월 5일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한국 가톨릭 성지다. 건물을 사용하는 대상도, 복합적이고 건물을 운영하는 성당 측 태도도 중요했다.
가회동성당 건축의 성공 요인은 두 가지 전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주임 사제가 대학 시절 건축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다. 사제는 건축가의 제안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신자들을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부족한 재정은 신자가 기증한 한옥을 매각해 보탰다.
▲ 가회동 성당 / 사진 = 윤준환
성당이 들어설 주변은 오밀조밀한 낮은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건물 사용자는 신자, 순례자, 관광객이다. 건축주(사제)는 한옥에 거부감이 없었다. 건축주들이 한옥을 왜 선호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도 얻지 못하고 있다. 고전(클래식)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건축적 해법으로만 보면, 가로 대응 전면에 단층 한옥은 건폐율, 용적률 면에서 불리하나 주변 건물에 비해 큰 성당의 볼륨을 희석시킨다. 건물을 중정과 'ㄷ' 자로 쪼갰다. 프로그램의 3분의 2를 땅에 묻었다. 건물보다는 다섯 개의 마당을 먼저 고려했다. 성당은 왜 다 똑같지 하는 의문이 한옥과 성당 평면도를 살짝 찌그러뜨려 놓았다.
성당은 공공 건물이면서 사적 공간이다. 세 부류의 방문객을 위해 별도로 출입구를 냈다. 미사 중에 관광객이 들어오면 번잡스럽다. 성당 입구가 제일 안쪽에 있고 외부인은 건물 입구 쪽에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안내된다.
한옥을 설계 작업으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우대성은 대학 시절부터 한옥을 현대 건축물의 여러 프로토타입 중 하나로 이해한다. 현대와 결합하는 '복합 한옥'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한옥 사용자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한옥형 창호를 조달할 수 있었고, 한옥에 딸린 난간은 심의 때 통과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했다.
방문객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옥상에는 가회동 풍광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하늘마당이 열려 있다. 건축주의 결단으로 외부에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을 들였다.
주요 재료는 나무와 돌로 구성했다. 바닥 돌은 색감과 물성만으로, 외피 돌은 부착하지 않고 지지대에 걸어 자연적인 공간을 표현하려 애썼다. 인간의 수명을 넘어서는 시간의 흔적이나 풍화(aging)와도 어울리도록 했다. 모서리의 돌은 둥글게 깎았다. 시선이 동시에 머무는 재료와 공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애매모호하게(equivocal) 의도했다.
그의 이러한 경계 흐리기, 내부와 외부 공간의 상호 간섭은 이후 한옥 처마 개념을 차용해 확장한 건축으로 이어진다. 처마는 길 가는 나그네가 강한 햇빛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내 몫 내어주기' 공간이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녀회 부산 본원, 일명 '하얀 집'(리모델링·2016)은 15년이나 묵은 프로젝트였다. 건축가가 부산 본원을 찾은 날 나온 이야기, '저 성당을 좀 새로 지어야 하는데…'에서 시작됐다. 수녀회에 건축적 제안은 많았으나 대부분 수도자의 삶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건축적 지표에 따른 것이었다.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원 / 사진 = 윤준환
건축가는 건축을 설계하기 이전에 삶을 관찰해서 읽고 발견하는 데 집중했다. 수도자의 일상, 일년의 주기, 평생의 평균적이고 회귀적인 삶이 보였다. 수도원 건축에는 수녀원의 회한과 삶, 집단의 기억과 지혜가 담겨 있다. 그 기억은 구성원 모두를 엮는 연결 고리이며 수녀회의 정체성을 만든다.
세상에 지어지는 대부분의 집은 일대일 또는 일 대 소수, 일 대 다수 대표와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듯, 성당 건립은 사제나 사목 위원 몇몇에게 한정되나 수도회는 사뭇 그 양상이 다르다. 내부에 깊이 들어가면 수도자 일대일은 동등한 관계다. 수도회 창립 정신과 삶의 방식은 온전히 회헌(會憲)에 담긴다. 회헌을 건축으로 치환해 모두의 공감을 얻으려 노력했다. 건축가 우대성은 이러한 과정이 수도자들에게 다른 방식의 피정임을 목격했다.
'알로이시오기지1968'은 1968년부터 50년 동안 운영되다 폐교된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를 고쳐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대지 면적 약 1만4500㎡에 기지 1, 2, 3으로 명명된 3개동과 운동장, 텃밭, 휴게마당, 힐링센터 등으로 구성됐다. 건축주인 수녀회가 주문한 내용은 기능이 소멸한 학교를 '쓰임'과 '작동'을 기다리는 곳으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고민과 설계에 7년이 걸렸다. 공사는 1년6개월이 소요됐다. 부산시교육청이 재정을 지원했다.
망망대해의 피난처이자 전진기지처럼 빠른 세상의 변화에도 버팀목 같은 장소인 곳이 기지(基地, basecamp)다. 기지는 사회적 약자, 장애인, 특히 가난한 이 등 모든 이웃에게 개방돼 있다. 도심 내 버려진 곳을 활용해 교육이라는 말도 쓰지 말자는 취지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통합방과후 학교를 염두에 뒀다.
종전에 실습실 중앙 복도였던 곳이 빨간 탄성고무가 깔린 경사로로 변해 휠체어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프로그램 이수자에게는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기지 사용권' 쿠폰을 준다.
기지는 스스로의 생각을 키우고 삶의 기본기를 익히며 잃어버린 감각을 열어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공동체, 시민 의식을 키운다. 현대인은 오감을 잃어버렸다. 때때로 감각이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 한 끼 식사가 되는 건강한 빵 굽는 냄새, '빵 굽는 수녀님' 브랜드 빵은 노숙인들과도 나눈다. 시금치 된장국 냄새가 가득한 집 주방과도 같은 모두의 식당, 오케스트라 연주가 울리는 알로이시오 홀, 2층에는 발 씻는 곳도 있다.
▲ 알로이시오기지1968-침묵의방 / 사진 = 건축사 사무소 오퍼스 제공
감각의 정점에는 침묵이 있다. 창 너머로는 부산 앞바다가 보인다. 우대성은 설명 없이도 건축 자체가 주는 힘, 공간이 말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현대인은 잉여공간을 잃어버렸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은 이어진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열려 있다. 소음을 차단하는 곳은 침묵의 방, 음악 활동실, 녹음실 세 곳뿐이다. 건축가의 제안을 수도회는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는가라는 식별을 구하는 기도와 수도회 규칙에 따른 전원합의에 이르러야 했다.
우대성은 미래 사회 변화의 요인을 읽고 대응책을 세운다. 최근 수년간 가톨릭 서울교구 신축 성당은 1~2개에 머문다. 성당은 도심에 위치하며 꽤 큰 공간을 가진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서 상황에서 등록 신자 중 10%만이 미사에 참여했다. 신자 대부분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종교가 감당한 선한 기능이 축소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온갖 부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건
축가는 이러한 상황에 놓인 도심 성당 공간을 활용한 사회건축에 관심을 돌린다. 성당 사용자는 아이들 비율이 줄고 가족, 여성, 이주 노동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사용자가 달라지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편안함과 집이 줄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공간적으로는 서울 북촌 안동교회에서 보듯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납골 벽은 가능하다고 본다.
프리츠커 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만든 사나(SANAA) 건축의 특징은 '투명성'과 '개방성', 두께의 상실, 가벼움, 백색, 주변 환경과의 소통과 공존이다.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흐리기 또한 특징이다. 언뜻 보기에 우대성 건축은 사나와 공통점을 지닌 듯 보이나 사나는 건축이 주인공이고 우대성은 단연코 인간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인공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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