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카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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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의 감추어진 생활은 모든 사람이 삶의 가장 일상적인 길에서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자렛 성가정은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학교, 곧 복음의 학교입니다. ...... 첫째는 침묵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정신을 위하여 불가결하고도 놀라운 환경인 침묵을 중시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 다음으로는 가정생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나자렛에서 가정생활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지니는 사랑의 친교, 간소하고도 소박한 아름다움, 그리고 성스럽고도 침해할 수 없는 특성들을 배워야 합니다. 끝으로는 노동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목수의 아들'의 나자렛 집에서, 우리는 인간 노동의 준엄하고도 구원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찬미하고자 하며 ...... 결론적으로 여기 나자렛에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노동자에게 인사를 보내고, 노동자들의 위대한 모범이시요 그들의 신적인 형제이신 분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바오로 6세 강론 중에서)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찾은 일은 예수님의 나자렛 생활에 대해서 복음이 침묵을 깬 유일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들의 사명에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신비를 엿볼 수 있게 하신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마리아와 요셉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으나 신앙으로 받아들였으며,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상생활의 침묵 속에 묻혀 지내는 동안 줄곧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 51).
* 가톨릭 교회교리서 533-53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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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일정을 마치고 영국 런던을 지나왔다.
쉐퍼드 부쉬 마켓 앞을 지날 때 해가 중천임에도 누워 잠을 자는 노숙자를 보며
예전 밴쿠버에 유학온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영어도 잘하는데 왜 저러고 있지?'
영어연수를 온 그 친구는 6개월 뒤에 돌아가야하는데
늘지않는 영어, 생각나지 않는 한국어 단어 앞에서
자신에게 실망하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그가 노숙자로 지낸다고 말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비단 그 말을 몰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그 뜻을 몰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되지않는 상황은 알아듣기 힘들다.
오늘 예수님의 부모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예수님 곁을 떠났던 군중들을 기억한다면
알아듣지못해 스승에게서 도망쳤던 제자들을 기억한다면,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루카2,51)하신 성모님은
신앙 안에서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을 맺은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이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여전히 전쟁의 위협은 남아있는 우리 땅이다.
얼마전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종전협정으로 이끌려했었던 시도도 있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다른 뜻으로 말하고 있다.
북한의 언어와 남한의 언어가 통일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신 성모님께
이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전구해달라고 청원한다.
쏟아놓은 말은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훨씬 더 많은 언어가 오염된 세상을 마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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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평화정착을 위해 마음담습니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