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서울 암사동 유적지에서 만난 박광수씨는 "수 십 년 만에 음반 발표하고 인터뷰까지 하니
감개무량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노령이 믿기지 않는 다부진 체격이다.
동행한 제작자 김재욱씨는 "그간 박 선생님께 성인가요 음반을
내자는 제안은 많았으나 블루스 음악에 대한 고집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며
이번 음반제작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박씨의 파란만장한 사연보따리를 풀어보자.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그에게 사업가이면서 UN군 정보국에도
근무했던 아버지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어린 그에게 당구 치는 법, 여자 고르는 법, 심지어는 성교육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개방적인 성품이었다. 자연 미국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tatic.ebs.co.kr%2Fspace%2Fprogram%2F2011%2Fp1459%2Fthumb_img_0405.jpg)
블루스를 노래하는 유일한 가수였던 박씨가 흑인병사들에게 인기가 대단하자 서울서 온 쇼 단장이 3배의 개런티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전국의 클럽을 돌던 패키지 쇼 가수가 된 그는 1년 후 한국흥행에 픽업되어
빅쇼 무대로 진출했다. "그때 황정태PD의 눈에 들어 TBC <쇼쇼쇼>에 출연했습니다.
발을 바닥에 비비고, 상체는 엇박자로 따로 노는 소울 춤을 추며 노래했는데 반응이 좋았지요."
이후 1968년 영사운드, 1970년 김상희 스페셜 쇼, 1971년 록그룹 '비 블루'와 영 에이스를 거치면서
실력 있는 노래꾼으로 성장했다. 소문을 들은 신중현이 찾아와 팀 결성을 제안했다.
그가 최고의 그룹으로 평가받는 신중현 밴드 '더 맨'의 리드보컬이 될 때까지의 일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tatic.ebs.co.kr%2Fspace%2Fprogram%2F2011%2Fp1459%2Fthumb_img_0432.jpg)
신중현과 첫 음반 녹음이 한 창이던 1972년 10월 17일 군사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신정권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첫 음반 <장현과 더 맨>이 탄생했다.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된 명반이다.
"이 노래는 원래 신중현씨가 통기타로 만든 곡인데 처음 노래한 무대는 청평 페스티벌입니다. "반응이 대단했죠.
저는 <잔디>가 더 애착이 갑니다. 그 노래 때문에 대마초 사건 때 엄청 당했지만요".
" 대마초의 경상도 은어인 <잔디>는 묵직한 보컬과 남성적인 분위기로 주목 받았다.
![가수 박광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ytimg.com%2Fvi%2FasW8SDGIJmc%2Fmaxresdefault.jpg)
-신중현과 더맨시절 발표한 박광수의 첫 독집엘범-
문제는 역시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리더 신중현이 '박 대통령의 노래를 만들라'는 청와대 전화청탁을 거절한 후
멤버 모두 통제와 장발단속으로 시달렸다. 항의 표시로 박씨는 삭발을 하고 MBC 쇼프로에 출연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장면을 현란한 조명으로 조롱하며 감행한 18분에 걸친 <아름다운 강산> 연주는
일종의 음악 시위였다. 이후 이 음반은 퇴폐로 몰려 금지되었다.
![박광수 잔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https://t1.daumcdn.net/cfile/blog/24225F3754D8B47111)
Side A
1. 마른 잎 0:00
2. 이제 그만 떠나주오 3:58
3. 그 어디에 8:20
4. 벌레소리 13:11
5. 바닷가 15:40
Side B(클릭/재생)
1. 빗속의 여인 0:00
2. 왜 4:40
3. 나뭇잎이 떨어져서 8:30
4. 잔디 13:14
![서오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75CD93351FF34311D)
_신중현 선생께서 박광수님과 같이 가셨다던 은평구 소재 서오릉 전경,
이곳에서 박광수 님이 잔디를 보고 감탄하자 즉석에서 신 선생님이 곡을 지으셨다고 함-
은평구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나에겐 친근한 왕릉이며
초등학교때 소풍의 단골 유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