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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 NCR)
2013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종으로 선출된 지 겨우 1달 뒤, 자신은 지난 400년간의 전통을 깨고 역대 교종처럼 여름휴가를 로마 교외의 교종 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지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그는 바티칸에 남아 여름 내내 계속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2023년 1월 <AP>와 인터뷰에서 “카스텔 간돌포는 어째 좀 궁궐 같다. 그런 분위기다. 6월이면 (교종의) 궁정을 그곳으로 옮기는데, 마치 런던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종의 궁정 사고방식이다. (교종의 궁정은) 유럽에서 마지막 절대 궁정이다”라고 10년 전에 자신이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지내지 않기로 한 것을 언급했다.
(역자 주: 궁정(court)은 왕정식 정부, 통치기구다. 한국인에게는 “조정”(朝廷)이 더 익숙하지만 궁정은 일종의 장소 개념도 포함한다. 궁정, 즉 조정은 임금과 핵심 신하들로 구성한 정부, 또는 국무회의와 같다. 한 예로, 중국의 몽골 왕조인 원나라 같은 경우, 황제와 조정은 수도인 북경에 있지만 여름에는 더운 북경을 떠나 북쪽 몽골 본토에 있는 상도로 옮겨 지냈다. 즉 왕 혼자만 휴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정이 함께 움직인다.)
그는 교종직은 “모든 궁정의 외양을 제거하고, 진정 사목적 봉사라 할 것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10년 전 교종으로 선출될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였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이미 대주교의 궁전을 벗어나 살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스스로 밥을 해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가 교종으로 선출된 날 밤,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그저 흰색 성직자 통상복을 입고 있었고, 전통에 따라 벨벳 모제타(팔꿈치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 걸치기를 거부했다. (모제타 이미지 보기) 그는 새 교종의 빨간 신발도 신지 않았고 가슴에는 금으로 된 교종 십자가도 걸치지 않았다. 호주 브리즈번의 마크 콜리지 대주교는 그 모습을 회상하며 당시 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고 했다.
그는 교종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에 교종청 국무원에서 교종 궁정의 일원으로 근무했다. 그런 그에게 프란치스코 교종의 모습은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나타난 프란치스코 교종은 새 교종을 맞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한 뒤 그들에게 첫 교종 강복을 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종 즉위 10주년을 앞두고 <NCR>과 한 인터뷰에서 “이것은 보통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보여주기 쇼가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그가 교종 궁정의 아주 강력한 절차들로부터 자신을 해방해 온 방식이다.”
콜리지 대주교는 지난 10년간의 변화들은 그저 겉의 화장만 바꾼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교종 군주정의 해체”로서, 가톨릭의 세계 지도자가 가톨릭을 “수직적 교회에서 공동합의적 교회로”, “힘 있는 교회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교회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봐 온 지난 10년의 이 패러다임 전환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보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202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회 60주년 기념미사를 집전한 뒤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성 베드로 대성전을 떠나고 있다. (사진 출처 = NCR)
복음을 설교하는 새 절차들
2022년 10월 11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개회 60주년 기념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밖으로 향하는 선교를 “재점화”한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영국 더럼 대학 가톨릭 사회사상과 실천학 교수인 애나 롤랜즈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10년은 “우리에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어떤 핵심 가르침들을 되돌아보게” 했을 뿐 아니라 “그 가르침을 교회의 실천 속에 박아 넣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롤랜즈에 따르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쳤듯, 교회는 그저 군주정 기관이나 수직적 조직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체 교회의 중요성을 높였다.
그녀는 “우리가 진짜로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본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하고 있으며 그 절차로 드러나게 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NCR>에 말했다.
로마의 교종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탈리아 신학자 안드레아 그릴로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가톨릭 전통에 역동적 측면을 복원하고 가톨릭을 보는 19세기식 모델을 극복한 것은 지난 10년 프란치스코 교종이 수행한 교종직의 가장 큰 공헌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례, 가정생활, 그리고 권위 문제들과 같은 많은 핵심 영역에서 교회 개혁을 막고 있던 것들을 “해제”했다고 <NCR>에 말했다.
롤랜즈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금까지 해 온 주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신학적 가르침을 취하고, “이 가르침들을 접근 가능하고 의미 있는 절차들로 구체화한, 즉 그 가르침과 절차들을 되찾음으로써, 그런 것이 교회라는 기관의 실천 관행이 되도록 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프란치스코 교종과 다른 많은 이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수용이라는 점에서는 그런 일이 한번도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대교구의 로베르토 곤살레스 대주교도 여기에 동의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실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교종이다.”
곤살레스 대주교는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실행의) 불을 붙이기 시작했고, 베네딕토 16세가 여러 신학 저술을 통해 그 중요성을 더 강조했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신의 말과 행위, 그리고 절차들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실행하는 모범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관측통이 보기에, 프란치스코 교종이 해 온 개혁 절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두 가지는 그가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에 초점을 두고 (이를 공의회의 개혁 정신을 실행하는 도구로 쓰는) 것과 그가 교종청 조직을 개편하면서 교종청의 최고지도부 상당수를 평신도 남성, 여성이 맡도록 하고 교종청 부서들이 복음화를 우선하도록 재조직한 것이다.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교종청의 핵심 조직을 전면 개편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종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2022년 3월 발표했고 그해 6월에 발효했다.
교종청 경신성사부 장관 아서 로시 추기경은 2013년의 콘클라베(Conclave, 교종 선거)에 앞서 추기경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추기경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다른 모든 의견보다, 베르골료 추기경이 우리는 이제 안으로 향하기를 멈추고 교회는 선교라는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귀들을 모았다.”
로시 추기경은 <NCR>과 인터뷰에서 “그는 움직이기를 멈추는 교회는 자신의 본질을 잃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로시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새 교종령은 로마 교종청을 개혁할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 있는 교구청 조직의 개편도 또한 요구한다며, 교회의 조직 전반의 핵심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선교적이 될까?”
콜리지 대주교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재위 9년 만에 내놓은 교종령에 따른 개혁은 교종청 기관들은 교종은 물론 전 세계 주교들을 위해 – 주교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 봉사한다고 명시하고, 공동 책임의 중요성을, 평신도와의 공동 책임도 포함해, 높였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 교종령의 개혁으로 모든 것이 마술처럼 풀리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문화를 전환하기 위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시도”라고 인정한다.
“이것을 철저히 수행한다면, 바티칸의 문화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 문화도 전환하기에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시도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2017년 12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마더 데레사의 집을 방문할 때 사람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NCR)
공동합의성이 무대 중심에 서다
1965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날 때, 바오로 6세 교종은 주교시노드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전 세계 주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로마에 모여 교회 생활에 중요한 특정 주제를 토의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모임을 교회의 구성원 모두를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하나의 절차이자 중요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콜리지 대주교는 시노달리타스가 “함께 걷기”라는 뜻인데, “주교들 일부가, 시간 일부에 모이는 것에서 주교들 모두, 그리고 실제로는 교회의 모두가, 시간 내내”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속죄와 그리스도인 자비의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카타리나 클루이트만 수녀는 “공동합의성은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종이 해낸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듯하다”고 말한다.
클루이트만 수녀는 2018년에 독일 수도회장상협의회 회장이 됐다. 그녀는 공동합의성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가장 큰 문제, 즉 성직자에게 당하는 성 학대 문제와 교회가 윤리적 신뢰를 잃어버린 지금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자기 메시지를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문제에 대응하는 해답이라고 설명한다.
“성 학대는 늘 권력 오용 문제다.” 그녀는 <NCR>에 “그리고 소통은 그 권력에 맞서 싸우는 최선의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교회가 공동합의성을 가지고 중요 문제들에 관해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혼인과 가정생활에 관한 시노드, 청년에 관한 시노드, 그리고 남미 아마존 지역, 환경에 관한 시노드를 열었다. “하지만 그 주제들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작동하는 방식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시노드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도입해, 한때는 교회 생활에서 금기로 여기던 주제들을 토의하고 있다.
세네갈 카스트르의 원죄 없으신 성모 수녀회의 안네-베아트리스 파예 수녀는 클루이트만 수녀의 관찰에 동의한다. 그녀는 공동합의성으로 하여 대중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되고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종직은 밑으로부터, 주변부에 대한 관심에서 보는 눈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NCR>에 “그는 우리가 복음의 원래 새로움을 사실상 재발견하도록 초대하며, 그리하여 예수님의 사랑이 전 세계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
그녀는 “다행인 것은, 교회가 서로서로 귀를 기울이는 선익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우리가 서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 조건을 인식하면서 (대화하는)”이라고 덧붙였다.
로시 추기경은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문을 닫고 있는데, 공동합의성은 서로 귀를 기울이자고 초대함으로써 교회가 “현실과의, 사람들과의 접촉을 잃지” 않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공동합의성은 교회로 하여금 “편집증의 도구가 아니라 개심의 도구”가 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심(metanoia)는 열어젖히는 것이고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고, 타인에게로 가는 것이다.” “편집증(paranoia)는 집착하는 것이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고 우리가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상태다.”
애나 롤랜즈 교수가 2022년 10월 27일 바티칸에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에 관한 주교 시노드의 대륙별 단계에 관한 문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NCR)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인 교종
남미 주교들이 2007년에 브라질 아파레시다에서 모였을 때, 당시 추기경이던 베르골료는 그 모임이 낸 최종문서(아파레시다 문서)의 초안 책임자였다. 그때 남미 주교들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시대의 획기적 변화를 겪으며 살고 있다. 이 변화는 문화적 면에서 가장 크다.”
당시 그들은 (사회가) 개개인의 자기 본위를 최고로 친다고 개탄하면서, 시장 경제와 기술이 하느님과의 관계 대신에 인간관계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푸에르토리코의 곤살레스 대주교도 이 아파레시다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마음과 사명에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신학자인 에밀세 쿠다는 교종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의 공동 총무다. 그는 “출구가 없는 함정에 빠진 이 세상에서.... 세상의 끝에서 온 한 종교 지도자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이들에게 걸어 나가 존재적 경계를 넘어설 동기를 주는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쿠다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를 자신의 벽 너머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신학자인 롤랜즈가 보기에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과거 10년간 해 왔고 또 앞으로 할 것 같은 일을 – 그가 열어 온 여러 시노드에서 그의 여행들, 또는 누가 건드리면 발작하는 문화전쟁 문제들과 관련된 긴장을 그가 처리해 나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까지-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그가 만남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절차들을 시작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가 서로 고립돼 있고 서로 떨어져 있으며, 이와 동시에 늘 화난 상태의 세대라고 믿는다.” 그녀는 <NCR>에 “그리고 그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는 만남이며 이것은 중재되는 일 없이 바로 서로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며 소규모로 해야 하는 것이며 점차 규모를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이것에 엄청나게 반발했다. 호주의 고 조지 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종직 수행은 “재앙”이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시노드 절차는 “독약 같은 악몽”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끄덕도 안 하는 듯, “비판하는 것은 인권이다”라고 응답했다.
롤랜즈는 “그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그는 모든 갈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교회는 영적으로 건강한 방식으로 갈등을 식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 수십 년간 교회 안에서 그토록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던 가톨릭 문화전쟁에 그다지 신심을 소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그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별 관심이 없다.” 롤랜즈는 그런 문제는 "불안해 하는 세대의 질문"이라고 지적한다. 대신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라고 묻는 데 더 관심이 많다.
불안과 비판에 관해 말하자면, 로시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개혁하는 교종”이며, 역사를 통틀어 “개혁하는 교종들은 늘 최전선에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바꾸는 것은 진짜로 힘든 과제”라고 인정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안정을 좋아한다.”
하지만 로시 추기경은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면하게 놓아 둘 생각은 없다.
“당신이 베드로(즉, 베드로좌에 앉은 이, 교종)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당신이 생각하는 가톨릭 신앙에 뭔가 크게 문제가 있다. 교종은 보편 사목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께 선택됐다. 그는 교회의 신뢰를 지니고 있다. 모든 추기경이 (교종 선거를 통해) 바란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서약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콜리지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올바르며 그가 성공할 것인지에 중요한 것은 “그가 겁이 없으며 자유롭다”는 점이라고 믿는다.
“교회 안에는 공포에 아주 찌들어 쭈그러든 사람이 매우 많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는 성령께서 결정하시며 또 그분께 맡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이 개인적으로 보이는 증
거와 새 절차들을 겪으면서, 콜리지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가톨릭교회가 나아가는 새 항로를 열어 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미래를 겁내지 않는다. 두려움 너머로 움직임의 감각이며,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아주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지각이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되라고 부르는 종류의 그런 교회가 되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화만 내고, 부적합하며, 움츠러드는 교회가 되느냐다.”
“각 세대는 나름으로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사도적 전승을 소유하고 수선해야 한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한 묶음이 아니고, 각 세대가 그 전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복음의 광휘와 예수의 진리를 보여 줘야 하는 그 절차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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