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징(亡徵)
나라가 망할 징조를 뜻하는 말이다.
亡 : 망할 망(亠/1)
徵 : 부를 징(彳/12)
출전 : 한비자(韓非子) 망징편(亡徵篇)
망할 징조, 망조(亡兆)와 비슷한 말이다. 나라가 망하려면 47가지의 징조가 나타난다고 한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의 한비자(韓非子) 망징(亡徵)편에 나오는 말이다. 2300년 전 전제군주시대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그 중에는 오늘날 지도자가 유념해야 할 경구가 적지 않다.
簡法禁而務謀慮, 荒封內而恃交援者, 可亡也.
법령을 완비하지 않고 지모와 꾀로서 일을 처리하거나 나라를 황폐한 채로 버려두고 동맹국의 도움만 믿고 있으면 망할 수 있다.
群臣為學, 門子好辯, 商賈外積, 小民內困者, 可亡也.
신하들은 공리공담을 쫓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을 일삼으며 상인들은 그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할 수 있다.
緩心而無成, 柔茹而寡斷, 好惡無決而無所定立者, 可亡也.
군주의 성격이 아둔하고, 일을 처리한 적이 별로 없어 의지가 유약하고 결단력이 미약하며 기호가 분명치 않고 남에게 의지하여 자립정신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할 수 있다.
好以智矯法, 時以行雜公, 法禁變易, 號令數下者, 可亡也.
군주가 작은 지혜로 법률을 왜곡하며 사사로운 일을 공적인 일처럼 처리하고, 법령을 함부로 변경하면서 수시로 호령을 내리면 그 나라는 망할 수 있다.
중국 전국시대 때 조나라의 염파장군은 장평에서 진나라와 싸우면서 철저하게 수비작전을 펼쳐 막강한 진나라의 군대를 막아내고 있었다.
백전노장인 염파장군이 지키고 있는 한 승리하기 힘들다고 느낀 진의 수뇌부에서 많은 돈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이간질하는 말을 퍼트리게 했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군이 되는 것뿐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쉽다. 그는 앞으로 진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조나라 왕은 이미 염파의 군대에 죽은 자나 달아나는 자가 많고 싸움에서 여러 번 졌는데도 보루를 튼튼히 할 뿐 대담하게 싸우지 않음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나라 첩자들이 퍼뜨린 말을 듣자 염파 대신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조괄은 진의 명장 백기에게 처참하게 깨어져 45만 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 조나라 국운의 밑바닥까지 흔들리는 상태가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장군이 자기 아들 조괄을 평하기를 "병법의 이론으로는 내 아들을 당할 자가 없다. 그러나 내 아들은 이론은 청산유수이지만 전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변화막심한가를 모른다."
큰 책임을 맡는 장군이 되면 그 군대는 망한다고 했다. 자식에 대해 악담을 한 것 같지만 입은 비상하게 발달하였으나 신중하지 못하고 공명심에 불타는 아들에 대해 경계를 한 것이다.
한비자는 망징에서 "자기 나라의 힘은 생각지 않고 이웃나라를 경시하며 큰 나라와 교류에서 언제나 이익이 있는 일만 생각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다.
사마천도 한비자와 비슷한 말을 했다.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에서 "나라가 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게 되고, 어지럽히는 신하는 귀하게 여기게 된다"고 하였다.
모든 일은 조짐이 있다는 의미로서 한비는 말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벌레를 통해서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도 반드시 틈을 통해서이다. 비록 나무에 좀벌레가 있더라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을 것이고, 벽에 틈이 생겼다 하더라도 큰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木之折也必通蠹, 牆之壞也必通隙. 然木雖두, 無疾風不折, 牆雖隙, 無大雨不壞)."
어떤 일이든 징조가 보이다가 결국 결정적일 때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비는 나라가 망하는 조짐을 마흔일곱 가지로 나누어 열거하면서 군주와 신하, 경제나 군사, 외교,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나타나는 조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즉 한비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조짐으로 보았다. 나라는 작은데 신하의 영지는 크거나, 임금의 권세는 가벼운데 신하의 세도가 심하거나, 법령을 완비하지 않고 지모와 꾀로써 일을 처리하거나 나라를 황폐한 채로 버려두고 동맹국의 도움만 믿고 있는 경우, 신하들이 헛된 담론이나 일삼고 문객들은 갑론을박이나 일삼으며 상인들이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아 백성들을 곤궁하게 할 경우,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을 꾸미는 등 호사스러운 생활을 할 경우, 사회 전반에 귀신을 섬기고 점괘를 믿으며 제사나 좋아하는 경우 등등이다.
이런 몇 가지 사례들을 보면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도 별로 다를 바 없다. 물론 이러한 망할 징조는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의 경우에도 여지없이 입증된다. 왕이 되자 상아 젓가락을 만들고 주지육림에 빠지면서 은나라의 패망은 예견됐던 것이다.
그런데 한비가 말하는 망징(亡徵)의 개념은 반드시 망한다는 선언적 의미가 아니고 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한비의 말은 벌레 먹은 나무와 틈이 생긴 벽일지라도 강한 바람과 큰비를 이겨내도록 빨리 조처를 취해야만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명군(明君)의 자질이라는 것이다.
◼ 한비자(韓非子) 망징편(亡徵篇)
이 글은 한비자가 저술한 것으로, 임금을 중심으로 왕족과 측근, 중신(重臣) 등 상류계급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 전국시대 말기의 사회 혼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비자의 망징편은 글자 뜻 그대로,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말하고 있다. 한비자는 여기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징후로 볼 수 있는 47가지 사례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한비자는 47가지 망국의 징후들을 제대로 포착하여 국가를 개혁하지 않는 한, 그 나라가 멸망의 길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했다. 강력한 왕권과 법치의 전통을 세운 진나라만이 살아남고, 그외 전국시대의 제후국들이 모두 멸망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보면, 한비자의 예견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47가지 징표
一
凡人主之國小而家大, 權輕而臣重者, 可亡也.
대개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는 작은데 대부(大夫)들이 차지한 영토는 크며, 임금의 권위는 가볍고 대신들의 권력이 무거우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
簡法禁而務謀慮, 荒封內而恃交援者, 可亡也.
법령과 금법(禁法)을 가볍게 여기고 모략과 꾀에만 힘쓰고, 나라 안의 정치는 황폐하게 만들고 나라 밖의 외교와 원조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
群臣為學, 門子好辯, 商賈外積, 小民內困者, 可亡也.
여러 신하들이 쓸모없는 학문만을 익히고 귀족의 자식들은 변설을 즐기며, 장사꾼들은 재화를 나라 밖으로 빼돌려 쌓아놓고 백성들은 나라 안에서 곤궁하게 지내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
好宮室臺榭陂池, 事車服器玩, 好罷露百姓, 煎靡貨財者, 可亡也.
임금이 화려한 궁전과 높은 누각 및 정원의 연못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호사스러운 수레와 의복 및 기구나 노리개 등의 사치를 즐겨, 백성을 괴롭히고 재물을 함부로 낭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五
用時日, 事鬼神, 信卜筮而好祭祀者, 可亡也.
임금이 때와 날을 받아 귀신을 섬기며, 복서(卜筮; 점술)를 믿고, 제사 지내는 일을 좋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六
聽以爵不以眾言參驗, 用一人為門戶者, 可亡也.
임금이 신하들의 의견을 들을 때, 많은 벼슬아치들의 말을 증거로 참고하여 알아보지도 않고 오직 한 사람만을 밖으로 내보내 정보를 얻는 창구로 삼는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七
官職可以重求, 爵祿可以貨得者, 可亡也.
나라의 관직이 몇 사람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고, 벼슬과 봉록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八
緩心而無成, 柔茹而寡斷, 好惡無決而無所定立者, 可亡也.
임금이 게으르고 무엇이나 이루지 못하고, 유약하여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옳은 일과 잘못된 일을 결정짓지 못해 스스로 확고하게 설 수 없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九
饕貪而無厭, 近利而好得者, 可亡也.
임금이 탐욕스러워 만족하지 못하고, 이익만을 가까이하고 좋아한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
喜淫刑而不周於法, 好辯說而不求其用, 濫於文麗而不顧其功者, 可亡也.
임금이 잔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을 좋아해 법령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변설을 즐겨 그 실용(實用)에 힘쓰지 않으며, 아름답게 꾸민 글에 빠져 그 공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一
淺薄而易見, 漏泄而無藏, 不能周密而通群臣之語者, 可亡也.
임금의 사람됨이 천박해 속마음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고, 자신의 계획을 남에게 누설하기를 좋아해 조금도 감추지 않고, 여러 신하의 의견과 말을 쓸데없이 이리저리 옮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二
很剛而不和, 愎諫而好勝, 不顧社稷而輕為自信者, 可亡也.
임금의 성품이 너무 강해 신하들과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諫言)을 물리치고 신하들에게 이기는 일을 즐기며, 나라의 이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자신의 믿음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三
恃交援而簡近鄰, 怙強大之救而侮所迫之國者, 可亡也.
임금이 다른 나라와의 외교나 원조만 믿고 이웃 나라를 얕보며, 강대국의 도움에 의지하여 가까운 이웃 나라를 멸시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四
羈旅僑士, 重帑在外, 上間謀計, 下與民事者, 可亡也.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처자식과 재산은 나라 밖에 두며, 위로는 임금의 모사(謀事)와 계략(計略)에 참여하고 아래로는 백성 다스리는 일에 관계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五
民信其相, 下不能其上, 主愛信之而弗能廢者, 可亡也.
백성들은 재상을 믿지 않고, 신하들은 임금에게 충성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임금이 총애하고 신뢰해 내쫓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六
境內之傑不事, 而求封外之士, 不以功伐課試, 而好以各問舉錯, 羈旅起貴以陵故常者, 可亡也.
임금이 나라 안의 뛰어난 선비를 중용하지 않고 나라 밖의 사람에게 관직와 봉토(封土)를 주며, 공로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명성만을 좇아 진퇴를 결정하며, 다른 나라에서 데려온 사람만을 믿고 그 지위를 높게 하여 나라 안의 신하들보다 귀하게 만들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七
輕其適正, 庶子稱衡, 太子未定而主即世者, 可亡也.
임금이 왕위를 정당하게 승계할 적자(適者)를 가볍게 여기고 서자(庶子)를 대등하게 대접하고, 태자(太子)가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임금이 죽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八
大心而無悔, 國亂而自多, 不料境內之資而易其鄰敵者, 可亡也.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나라는 혼란스러운데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며, 나라의 재력은 살펴보지도 않고 이웃의 적을 가볍게 여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十九
國小而不處卑, 力少而不畏強, 無禮而侮大鄰, 貪愎而拙交者, 可亡也.
나라가 작으면서도 큰 나라에 대해 겸손하지 않고, 힘은 약하면서도 강한 나라를 겁내지 않으며, 무례하게도 이웃의 큰 나라를 업신여기고, 탐욕만을 추구하고 외교에 졸렬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
太子已置, 而娶於強敵以為后妻, 則太子危, 如是, 則群臣易慮者, 可亡也
태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도 임금이 강성한 적국에서 후처(後妻)를 맞아들여 정부인으로 삼으면 태자의 자리는 위태로워지고, 신하들은 마음을 바꾸어 정부인 쪽으로 쏠릴 것이니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一
怯懾而弱守, 蚤見而心柔懦, 知有謂可, 斷而弗敢行者, 可亡也.
임금이 겁이 많아 자기 신념대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지레짐작은 재빨리 하면서도 마음이 유약하여 정작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二
出君在外而國更置, 質太子未反而君易子, 如是則國摧. 國摧者, 可亡也.
임금이 일이 있어 다른 나라에 나가 있는데 신하들이 왕위를 너무 오래 비워두면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새로운 임금을 세우거나, 외국에 인질로 가 있는 태자가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임금이 다른 아들로 태자를 정하면 민심은 흔들린다. 나라 안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三
挫辱大臣而狎其身, 刑戮小民而逆其使, 懷怒思恥而專習則賊生, 賊生者, 可亡也.
임금이 대신들을 가볍게 대우하거나 욕을 보여 원한을 품게 하고 또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형벌을 가하고 일을 시켜, 그 원한과 수치를 잊지 않고 있는데도 그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 가까이에 둔다면 역적이 생긴다. 역적이 일어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四
大臣兩重, 父兄眾強, 內黨外援以爭事勢者, 可亡也.
세력 있는 두 대신이 권력다툼을 하고 임금의 형제들이 세력이 강해 나라 안에 당파가 생겨나고, 또한 나라 밖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서로 세력을 다투는 일이 생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五
婢妾之言聽, 愛玩之智用, 外內悲惋而數行不法者, 可亡也.
임금이 젊은 시녀(侍女)나 아름다운 후궁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총애하는 신하나 농간하는 측근의 지모(智謀)를 써서, 조정 안팎의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데도,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듭 불법을 저지르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六
簡侮大臣, 無禮父兄, 勞苦百姓, 殺戮不辜者, 可亡也.
임금이 원로 대신을 업신여기고, 왕실의 형제나 친척들에게 무례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며,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잡아 죽이는 일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七
好以智矯法, 時以行雜公, 法禁變易, 號令數下者, 可亡也.
임금이 조그마한 술수로 법을 어긋나게 만들고, 사사로운 일로 공사(公事)를 그르치게 하며, 법률과 금령을 쉽게 바꾸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명령을 내려 백성들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八
無地固, 城郭惡, 無畜積, 財物寡, 無守戰之備而輕攻伐者, 可亡也.
국경에 튼튼한 요새를 쌓지 않고 성곽은 허술하며, 군비는 축적되어 있지 않고 물자는 부족하며 방위태세도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가볍게 적을 공격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二十九
種類不壽, 主數即世, 嬰兒為君, 大臣專制, 樹羈旅以為黨, 數割地以待交者, 可亡也.
임금의 일족이 장수하지 못하여 즉위하자마자 잇따라 죽고, 어린 임금이 즉위하면 대신이 권력을 잡고 휘두른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도 벼슬을 주어 당파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나라의 영토를 떼어 외교의 담보로 삼아 원조를 기대한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
太子尊顯, 徒屬眾強, 多大國之交, 而威勢蚤具者, 可亡也.
임금의 자리와 권력을 물려받을 태자가 존경받고 세상에 알려져,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세력이 커지고 강대한 나라들과 접촉과 교섭이 빈번하여, 임금을 능가하는 위세가 일찍이 갖추어지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一
變褊而心急, 輕疾而易動發, 心悁忿而不訾前後者, 可亡也.
임금이 소심하고 성급하여 아무 일에나 쉽게 흔들리며, 상황에 대한 이해득실을 헤아리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二
主多怒而好用兵, 簡本教而輕戰攻者, 可亡也.
임금이 쉽게 화를 내고, 군사를 일으키는 일을 즐겨 농사나 군사를 그르치면서, 쉽사리 적국을 공격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三
貴臣相妒, 大臣隆盛, 外藉敵國, 內困百姓, 以攻怨讎, 而人主弗誅者, 可亡也.
임금의 측근인 고관 대신들이 서로 시기하여 싸우고, 대신들의 세력이 융성하여 밖으로는 적국의 힘을 빌리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괴롭히며, 사사로운 원한으로 자신들의 원수를 공격하는데도, 이를 임금이 내버려둔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三十四
君不肖而側室賢, 太子輕而庶子伉, 官吏弱而人民桀, 如此則國躁. 國躁者, 可亡也.
임금은 어리석은데 그 측근인 왕실의 친척이나 형제는 현명하고, 태자의 세력이 약해 서자가 이를 업신여겨 대항하고, 관리의 힘이 약하면 백성들은 오만해져 나라 안은 혼란스러워진다. 민심이 흔들리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그 나라는 마침내 망한다.
三十五
藏恕而弗發, 懸罪而弗誅, 使群臣陰贈而愈憂懼, 而久未可知者, 可亡也.
임금이 자신의 분노를 가슴에만 담고 있고 형벌을 내려야 할 때에도 죄목을 들출 뿐 처벌을 하지 않으면, 신하들은 겉으로 아무 말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임금을 미워하고 나라를 걱정하게 된다. 또한 죄가 있는 신하를 처벌하지 않으면 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게 되므로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六
出軍命將太重, 邊地任守太尊, 專制擅命, 徑為而無所請者, 可亡也.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너무 강력한 권한을 주거나 국경을 수비하는 책임자에게 너무 높은 지위를 주면, 법을 남용하여 제멋대로 명령을 내리거나 일을 처리할 때도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전횡을 일삼게 되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七
后妻淫亂, 主母畜穢, 外內混通, 男女無別, 是謂兩主. 兩主者, 可亡也.
왕후가 음란하고, 임금의 모후(母后)가 추한 행동을 거듭하면, 조정 신하들이 궁전의 내실(內室)과 함부로 정을 통하게 되고 남녀의 유별함이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에 임금의 모후와 왕후가 서로 대립하여 파당을 만들게 되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三十八
后妻賤而婢妾貴, 太子卑而庶子尊, 相室輕而典謁重, 如此則內外乖. 內外乖者, 可亡也.
임금이 왕후를 함부로 대하고 시녀나 후궁만을 총애하여 태자보다 서자의 권위가 높아지면, 나라의 질서가 무너진다. 재상의 권위가 가벼운 반면 관직이 낮은 신하들이 임금의 총애를 받아 권세가 막강해지면, 조정의 안과 밖은 서로 시기하여 다투게 된다. 조정의 안팎이 서로 다투어 평화롭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三十九
大臣甚貴, 偏黨眾強, 壅塞主斷而重擅國者, 可亡也.
대신의 자리가 지나치게 높고 귀하게 되면, 그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지지자가 많이 생겨나 무리를 만들어 강해진다. 그들이 임금의 판단을 가로막고 나라의 권력을 제멋대로 행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
私門之官用, 馬府之世絀, 鄉曲之善舉者, 官職之勞廢, 貴私行而賤公功者, 可亡也.
권문세가의 자제들은 관직에 중용되는 반면,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의 자식들은 배척당하고, 지방의 작은 고을에서 행한 착한 일 따위는 높이 드러나는 반면, 관리의 공로는 무시되고, 개인의 행위는 귀하게 여기는 반면 나라에 대한 공로를 천하게 여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一
公家虛而大臣實, 正戶貧而寄寓富, 耕戰之士困, 末作之民利者, 可亡也.
임금과 나라의 창고는 텅 비었는데 대신(大臣)의 창고가 가득하고, 조상 대대로 뿌리박고 사는 사람은 가난한 반면 다른 나라에서 옮겨와 임시로 사는 사람은 넉넉하고, 평소 논밭을 갈다가 전쟁이 나면 목숨 걸고 나가 싸우는 선비는 곤궁한 반면 상공업(商工業)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이익을 얻는다면 그 나라는 곧 망한다.
四十二
見大利而不趨, 聞禍端而不備, 淺薄於爭守之事, 而務以仁義自飾者, 可亡也.
임금이 큰 이로움을 보고서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재난의 징조를 듣고서도 대비하지 않고, 나라의 전쟁과 수비하는 일을 천박하게 여겨 인의(仁義)의 헛된 명분만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자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三
不為人主之孝, 而慕瓜夫之孝, 不顧社稷之利, 而聽主母之令, 女子用國, 刑餘用事者, 可亡也.
임금이 자신은 효행(孝行)을 하지 않으면서 필부(匹夫)의 효행만 흠모하고, 나라의 이익은 돌보지 않고 모후(母后; 太后)의 명령만을 좇고, 왕후나 후궁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환관(宦官)들이 나랏일을 좌우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四
辭辯而不法, 心智而無術, 主多能而不以法度從事者, 可亡也.
임금이 말과 논리에 능숙한 반면 이치에는 어긋나고, 마음은 지혜롭지만 술수(術數)에 익숙하지 않고, 다재다능한 반면 법도에 따라 일을 다루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五
親臣進而故人退, 不肖用事而賢良伏, 無功貴而勞苦賤. 如是則下怨, 下怨者, 可亡也.
새로 조정에 나온 신하가 높은 자리에 오른 반면 옛 신하들은 밀려나고, 어리석은 사람이 나랏일에 중용되는 반면 어진 선비는 드러나지 않고, 공적이 없는 사람은 귀하게 되는 반면 고생해 공로를 세운 사람은 천한 대우를 받는다. 이 때문에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고관대작을 원망하게 된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원망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六
父兄大臣祿秩過功, 章服侵等, 宮室供養太侈, 而人主弗禁, 則臣心無窮. 臣心無窮者, 可亡也.
왕실의 친인척과 대신들의 봉록이 실제 공로보다 높고 후하거나, 신분에 따른 복식(服飾)이 그 등급을 침범할 정도로 화려하거나, 궁궐과 가옥 및 음식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데도 임금이 이를 금하지 않으면, 신하들의 탐욕은 멈출 줄을 모르게 된다. 신하들의 탐욕이 멈출 줄 모르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四十七
公壻公孫與民同門, 暴章其鄰者, 可亡也.
왕실의 사위나 자손들이 백성들과 함께 한 마을에 살면서, 그 이웃 백성들에게 오만하게 굴고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한비자는 여러 가지 예를 들고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亡徵者, 非曰必亡, 言其可亡也.
원래 나라가 멸망하는 징조라는 것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멸망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夫兩堯不能相王, 兩桀不能相亡. 亡王之機, 必其治亂, 其強弱相踦奇者也.
요(堯) 임금이 둘이 있다 해도 다 같이 왕이 될 수는 없으며, 걸(桀)이 둘이 있다 해도 다 같이 멸망할 수는 없다. 왕이 될 수 있는 운명은 치란강약(治亂强弱)이 어느 한편에 기우는 데서 발생한다.
木之折也必道蠹, 牆之壞也必道隙.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그 속에서 벌레가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며,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然木雖蠹, 無疾風不折; 牆雖隙, 無大雨不壞.
그러나 수목에 벌레가 파고든다 할지라도 강풍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을 것이며, 담장에 틈새가 있다 하더라도 폭우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萬乘之主, 有能服術行法以為亡徵之君風雨者, 其兼天下不難矣.
그래서 만승의 대국의 군주는 통치술을 지켜 법을 행하고, 멸망의 징조가 있는 나라를 벌레가 좀먹는 나무나 틈새 난 담장을 때리는 폭풍우가 되어 쳐들어가면 그 나라를 쉽게 취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일을 쉽게 이룩한다.
각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이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다. 한비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인류역사 초기에 해당하는데도, 그 뒤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가 된 상황이 많아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다만 이러한 한비자의 경고는 어디까지 군주를 대하는 입장에서 서술했으니, 군주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전부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난세 중의 난세를 살다 간 사나이다. 오히려 치세에 태어났으면 그의 사상은 묻혔을 것이다.
일례로 30번째 항목에서 왕세자가 너무 잘났으면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같은 사태가 터진다고 충고하지만,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그야말로 사극에나 나올 법한 옛날 이야기다.
여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망한다는 말 또한 여성의 정치 참여가 여왕, 수렴청정 등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금지된 전·근대 사회에서만 통한다. 전·근대 국가에서 여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권력 체계가 흔들리다 못해 막장이 됐다는 뜻이지만, 현대 국가에서는 충분히 합법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대에 와서는 성별을 떠나서 정당한 군주가 엄연히 있는데 제3자가 당연하다는 듯 개입하는 상황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몇 가지 항목만 추려서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덧붙여 읽다 보면 한비자의 음양가(5), 유교(41·43·44), 유세객(16·29·42)에 대한 비판적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비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러저러한 47가지 징조가 보인다고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징조가 내게 있다면 빨리 고칠 것이고 반대로 남에게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때려잡아라.' 그야말로 동양판 군주론이라고 볼 수 있다.
◼ 국가 멸망과 원인
망해가는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요인과 특징들. 구 표제어는 "국가 막장·멸망 테크"로, 여기서 '테크'는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테크 트리의 준말이다. 이는 '망국의 징조'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며, 해당 단어로도 이 문서로 넘어올 수 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문명의 붕괴》의 이스터 섬 및 그린란드 같은 환경 변화에 따른 문명 붕괴 사례나 로마 제국 중기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에서처럼 경제 및 사회 구조에 의한 로마의 위기처럼, 국가의 위기는 정치가 아닌 사회 구조, 환경, 경제 같은 다른 요인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역사상 망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요인들 간에 서로 인과관계를 맺거나 하나의 사태로 동시다발하는 경향이 짙고, 전형적인 때는 의외로 드물다. 이 문제를 확장하면 끝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뭔가'라는 물음으로 귀결하는데, 이건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이론에 맞춘 주장을 제시했지만 멸망한 사례도 많으니 정설은 없다. '위기 → 극복실패 → 붕괴'라는 구조 외의 구체적인 것은 하나로 집어 말할 수가 없다.
기반이 막강하거나 아직 국운이 다하지 않은 상태라면 망국의 징조가 하나둘 나타나더라도, 위상만 급격히 떨어질 뿐 망하지는 않는다. 백제가 아신왕 때 국가 멸망 징조의 상당수를 겪었음에도 살아남은 것과 몰락과 중흥을 반복한 동로마 제국이 그 예다. 하지만 그후에는 나라가 예전의 위상을 되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데, 정말 먼치킨인 국가지도자가 나타나 나라를 간신히 반석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전성기만큼의 국력을 두 번 다시 못 찾는 경우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흔한 일이다. 12세기 중흥기와 9세기 초 아바스 왕조의 영토를 비교하면 감이 올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 간디는 국가 멸망의 징후 7가지를 제시했다.
인류 사회에서 모든 악덕(폭력)은 다음의 되풀이되는 일곱 가지 실수들에서 나타난다.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믿음, 그리고 원칙 없는 정치" 등이다.
간디가 제시한 7가지 요소는 국가 멸망의 징조라기보다는, 보편적인 만악의 근원에 더욱 가깝다.
조지프 테인터(Joseph A. Tainter)
조지프 테인터는 자신의 저서인 '문명의 붕괴'에서 한 국가가 멸망하는 것에 대하여 순환 공식을 설명했는데,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이러한 정의는 기본적으로 전제군주제 체제라는 전제가 있다.
테인터는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전제로서,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투자 대비 한계수익은 점차 줄어든다는 경제이론에 근거를 둔다. 즉 국가의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투자에 비해 얻는 이익은 점점 줄어든다.
농업을 예로 든다면 복잡성이 낮은 사회는 중심지 인근의 비옥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인구와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그 사회는 기존에는 경작하지 않았던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관개작업에 착수하거나, 어쩌면 중심지와 먼 거리에 있는 토지를 개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땅은 최초 경작했던 비옥한 땅보다는 경작은 수고로운데 수익이 적거나, 혹은 동일한 수익을 내기 위해서 들이는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관개 사업은 기본적으로 대량의 노동력이 소모되며, 수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동력이나 행정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개간할 토지가 없다면 노동집약적인 농업을 밟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단위면적 당 생산량은 증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들이는 노동력마다 받을 수 있는 수익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드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농업을 비교해보자.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라면 우리나라가 높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지자면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만약 그 땅이 중심지와 먼 거리에 있는 땅이었다면 운송비가 추가로 소모될 것이다.
광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뒷산 노천광산에서 간단하게 광물을 얻을 수 있지만 이 광물이 고갈되고 나면 깊은 갱도를 파거나, 혹은 먼 거리에 있는 광산에서 광물 채취할 수 밖에 없다. 이 광물의 생산, 운송 과정에서는 최초 노천광산에서 광물을 채취할 때보다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대부분의 산업, 경제분야에서 적용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성이 커질 수록 투자 대비 효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어느 지점을 지나면 투자보다 수익이 적은 경우도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기술 발전이 한계수익률 저하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지만, 기술발전 자체에 대한 한계수익도 점점 감소한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 근래의 정보화혁명급의 기술발전이 아니라면, 전문화가 진행되다보면 기술의 발전도 특정 전문 분야의 효율성 개선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기술발전에 투자한 비용 대시 효율은 결국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복잡성이 증가하며 팽창해 나가던 사회는 어느 시점부터는 복잡성 증가가 정체되기 시작하고 아래와 같은 문제와 마주칠 수 밖에 없다.
1. 언젠가 강력한 경쟁자나 야만족들을 만난다.
일단은 그 경쟁자나 야만족들을 거꾸러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성공해도 언젠가 또 다시 강력한 경쟁자나 야만족을 만난다. 그들과의 투쟁은 재정난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계 수익률이 어느 만큼 버텨준다면 이 부담은 아직 견딜 만하지만, 중심지와 거리가 너무 먼 땅의 통치를 포기한다와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는 자원을 이용하거나 개발에서 나오는 부담으로 한계 수익률이 내려갈 때 이는 막을 수 없는 파국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몸이 면역 체계가 셀 때에는 여러 세균과 공존하지만, 아닐 때는 세균이 몸을 잠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14, 15세기까지 상대한 세르비아나 불가리아, 헝가리, 알바니아, 비잔틴 제국, 백양 왕조 등은 나름대로 명군이 통치한 경우도 있었지만 영토와 인구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 차례차례 정복당하거나 다시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6세기에 신성로마제국과 사파비 제국이라는 강대국이 등장하면서 부터 오스만 제국은 성과는 없으면서 비용만 많이 나가는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2. 중심지와 거리가 너무 먼 땅의 통치를 포기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물자 수송과 통신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러면 언젠가 한계 수익률을 보장할 팽창 정책을 포기하는 순간이 온다. 토이토부르크 전투 뒤의 로마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후 로마는 관리가 어렵고 수익률도 낮은 게르마니아를 포기했다.
마케도니아나 몽골 제국이 행정력을 생각하지 않고 땅을 무작정 늘렸다가 분열도 했다. 이것은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는 자원을 이용하거나 개발을 통해 타개해 나갈 수 있지만 이것도 언젠가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3.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는 자원을 이용하거나 개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복자는 정복지의 행정, 주둔, 방어, 개발에 드는 비용을 써야만 한다. 당분간은 투자보다 수익이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물자 교류와 개발로 수익이 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예기치 않은 사태를 기폭제로 유지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는 날이 오고 만다.
트라야누스가 대규모 건설 사업을 추진한 것이 예시이다. 5현제 시대는 로마의 부흥이 절정에 달했지만, 수익이 한계에 달해 이후의 몰락을 예고한 시기이기도 하다.
4. 예기치 않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관료 조직이 설치된다.
한동안은 이 체제의 힘을 통해 위기를 타개해 나가지만, 위기가 사라진 뒤에도 그런 조직은 쉽사리 없어지거나 원점으로 복구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다. 이는 또 다시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는 자원을 이용하거나 개발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시대의 비변사가 아주 훌륭한 예시인데, 당초엔 여진, 왜구등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그때 그때 설치했다가 상황이 종료되면 해체하는 일종의 국방을 위한 Task Force 같은 기관이었지만, 을묘왜변을 거치며 상설기구가 된 뒤,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왜란이 모두 끝나도 남은 채 위기관리기관으로서의 집중한 권력을 흥선 대원군 시기까지 놓지 않았다.
1번은 2번으로 잡고, 2번은 3번으로 잡고, 1·2·3번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생기는 비상 사태는 4번을 통해서 해결한다. 그러나 4번마저도 끝내 안 먹히거나 오히려 역효과로 이어질 때, 이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결과는 드디어 1가지 만성 불치병을 제국 체제에 가져다 주게 되는데, 그게 재정난이라는 괴물이다. 끝내 그 국가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
(1) 붕괴
재정난으로 말미암아 과세가 증가하고, 이는 민중의 대대적인 봉기나 지방 공동체 단위의 분열을 가져온다.
(2) 흡수
다른 체제에 흡수 당하여 그 체제의 한계 수익률을 올려주는 먹이가 된다. 1번과 같이 오는 경우도 많다.
(3) 극복
체제 개혁을 통해 국가의 역량을 좀 더 효율적으로 쥐어 짜서 위기 극복.
생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이렇게 망했다. 기억하고 조심할 일이다.
3번의 좋은 경우인 로마 제국에 대해 다소 이상한 견해가 있다. 여러 차례 닥쳐온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번영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극복마다 영토 자체는 감소했다는 점을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견해다. 로마 제국의 각 시대에 대한 모든 성취에 유독 5현제 시대의 로마 제국만, 그것도 영토만 주 고려로 삼아 비교하는 생각은 적절하지도, 공평하지도 못하다.
서로마를 멸망시킨 4세기의 위기를 극복한 동로마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뤘고, 유스티니아누스 때의 재정복 때 갈리아나 이베리아는 회복하지 못했다지만 그 전에 로마가 2~3세기 때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서 거기까지 올라온 건 간과한 견해다.
고토 회복전쟁 직후 닥쳐온 역병과 성상파괴령등의 내부 분열,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인한 7세기의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고 9세기에 이르러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사실 이 시기의 영토는 395년 당시의 동로마 제국 영토의 95%에 달하며 인구나 군사력의 지표로 보면 오히려 그 이상이다.
11세기 말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배 이후 처했던 존망의 위기에서도 회복하여 콤니노스조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영토적 지표로 보면 소아시아 내륙은 영영 상실했다지만 경제나 안보, 사회구조적 진보 면에선 큰 성취를 이루었다.
즉, 로마 제국이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체제 개혁을 통한 국가 역량 증대의 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을 우선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았던 유산이 워낙 충실했어도 대부분의 제국은 한 번 하락세에 접어들면 두 번 다시 일어나기 힘들었다. 4번이나 중흥했던 로마가 대단한 것이다.
여담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많이 이루어졌던 식민지 지배가 사라진 것은 이것에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위 3번 단계에서 수익이 비용보다 낮아지면서 자발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 亡(망할 망, 없을 무)은 ❶회의문자로 兦(망)이 본자(本字),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망하고 도망해 와서 숨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망하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亡자는 '망하다'나 '도망가다', '잃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亡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관계가 없다. 亡자의 갑골문을 보면 칼날 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칼날이 부러졌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칼날이 부러졌다는 것은 적과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亡자는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에서 '멸망하다'나 '도망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亡자에는 '죽다'나 '잃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亡(망, 무)은 ①망하다, 멸망하다, 멸망시키다 ②도망하다, 달아나다 ③잃다, 없어지다 ④없애다 ⑤죽다 ⑥잊다 ⑦업신여기다, 경멸하다 ⑧죽은, 고인(故人)이 된 그리고 없을 무의 경우는 ⓐ없다(무) ⓑ가난하다(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이룰 성(成), 있을 유(有),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죽은 아버지를 망부(亡父), 망명해 온 사람을 망객(亡客), 아주 주책없는 사람의 낮은 말을 망골(亡骨), 패가망신할 못된 짓을 망덕(亡德), 죽은 며느리나 죽은 아내를 망부(亡婦), 망할 징조를 망조(亡兆), 죽은 뒤를 망후(亡後), 망할 조짐을 망괘(亡掛), 집안이 결딴남을 망가(亡家), 망하여 없어진 나라를 망국(亡國), 있는 것을 아주 없애 버림을 망살(亡殺), 사람의 목숨이 끊어져 죽는 때를 망종(亡終),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일을 망축(亡祝), 무례한 언동을 망상(亡狀), 죽은 사람의 혼을 망혼(亡魂), 장사葬事를 치르는 동안에 죽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망인(亡人), 손아래 사람의 죽은 날을 망일(亡日), 죽은 아이를 망아(亡兒),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망신(亡身),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망령(亡靈), 자기 나라의 정치적 탄압 따위를 피하여 남의 나라로 몸을 옮김을 망명(亡命), 피하여 달아남이나 쫓기어 달아남을 도망(逃亡), 망하여 없어짐을 멸망(滅亡), 꺼져 없어짐을 소망(消亡), 잘 되어 일어남과 못 되어 없어짐을 흥망(興亡), 잃어 버림이나 망하여 없어짐을 상망(喪亡), 싸움에 져서 망함을 패망(敗亡), 쇠퇴하여 멸망함을 쇠망(衰亡), 위태로워 망하려 함을 위망(危亡), 사냥이나 주색의 즐거움에 빠짐을 황망(荒亡),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 또는 이미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망양보뢰(亡羊補牢),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일컫는 말을 망양지탄(亡羊之歎),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죽을 죄를 저지른 사람이 몸을 감추어 멀리 도망함을 일컫는 말을 망명도주(亡命逃走), 물건을 얻거나 잃거나 함에 있어 그 이해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의 말을 망극득모(亡戟得矛),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순망치한(脣亡齒寒),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일컫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를 잃어버리는 것 또는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망양(讀書亡羊) 등에 쓰인다.
▶️ 徵(부를 징)은 ❶회의문자로 徴(징)의 본자(本字), 征(징)은 간자(簡字)이다. 微(미; 미천하다)의 생략형(省略形)에서 几(안석궤几; 책상)部를 뺀 글자와 壬(임; 착한 일)으로 이루어졌다.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그 행실이 바르면 임금이 부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徵자는 '부르다'나 '징집하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徵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王(임금 왕)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徵자는 전쟁에 필요한 인력을 왕명으로 동원하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徵자에 쓰인 王자는 '왕명'을 뜻하고 攵자는 무력을 써서라도 '따르도록 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가다'라는 뜻의 彳자까지 있으니 徵자는 왕명에 따라 징집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徵자에 '밝히다'나 '증명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징집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徵(징)은 ①부르다 ②징집(徵集)하다 ③소집(召集)하다 ④구(求)하다, 모집(募集)하다 ⑤거두다, 징수(徵收)하다 ⑥징계(懲戒)하다 ⑦밝히다 ⑧증명(證明)하다, 검증(檢證)하다 ⑨이루다 ⑩조짐(兆朕), 징조 ⑪현상(現狀) ⑫효험(效驗) 그리고 ⓐ음률(音律)의 이름(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를 소(召), 읊을 음(吟), 부를 호(呼), 부를 창(唱), 부를 환(喚), 부를 초(招), 거둘 수(收), 부를 빙(聘)이다. 용례로는 나라에서 세금이나 그밖의 돈이나 물건을 거둬 들임을 징수(徵收), 남으로부터 물건을 강제적으로 거두어 들임을 징발(徵發), 어떤 일이 일어날 조짐을 징후(徵候), 어떤 일이 생길 기미가 미리 보이는 조짐을 징조(徵兆), 일정한 사물이 공통으로 지니는 필연적인 성질을 징표(徵表), 물건을 거두어 모으는 것을 징집(徵集), 돈이나 곡식 따위를 내놓으라고 요구함을 징구(徵求), 법에 의거하여 해당자를 군대에 복무시키기 위하여 모음을 징병(徵兵), 증명이나 증거가 되는 것을 징증(徵證), 물품이나 사람을 징발하거나 요구함을 징간(徵干), 세금이나 물품 따위의 징수를 촉촉함을 징독(徵督),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화하는 것 또는 그와 같이 나타나지는 것을 상징(象徵), 다른 것에 비겨서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을 특징(特徵), 뒷날에 추가하여 징수함을 추징(追徵), 겉으로 드러나는 표를 표징(表徵), 어떤 것과 다른 것을 드러내 보이는 뚜렷한 점을 표징(標徵), 명백한 증거를 명징(明徵), 빚이나 구실을 억지로 물리어 받음을 횡징(橫徵), 조세를 거두기 시작함을 개징(開徵), 세금을 규정보다 더 징수함을 과징(過徵), 몇 사람으로 나누어 거두어 들임을 분징(分徵), 어떤 일이 생길 기미가 미리 보이는 조짐을 예징(例徵), 한 사람을 징계하여 백 사람을 권면함을 일컫는 말을 징일여백(徵一厲百), 늘 일정하게 여기어 오는 상징적인 뜻을 이르는 말을 고정상징(固定象徵), 피부면에 물건이 스칠 때 이를 느끼고 동시에 어느 부분에 스쳤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국소징험(局所徵驗), 세금이나 빚을 받아 낼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지징무처(指徵無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