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역사,문화 탐방 둘레길--제3길--홍길동길
(홍길동생가전경)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서자 출신 홍길동
탐관오리의 주지육림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골고루 분배 해주었던 의적 홍길동,
(홍길동생가내부사진)
의적 홍길동!
장성군의 혼불이 되다.
장성군에서 의적 홍길동 성역화 사업이 한창이다.
그동안 홍길동은 허균의 소설속의 인물로만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홍길동이 다양한 입증 방법을 통해 실존 인물로 살아 돌아 왔다.
(홍길동박물관)
당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굴곡을 풀어 헤쳐 주었던 의적 홍길동을 우리는 장성군 홍길동 마을을 통해 다시한번 조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메스컴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관대작들의 부정.부패 기사를 보고 있으면
당시 시대상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얼마나 부정부패가 심했으면 홍길동이란 인물이 등장 했겠는가.?
당시 시대의 아픔을 함께 ...
결국 일본 오끼나와로 흘러들어 영웅대접을 받으며 생을 마친 홍길동을 더듬이질 해보자.
이 길은 홍길동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으로..
하서 신도비를 뒤로 하고 5분정도 걸어가면 사거리 길이 나온다.
직진길은 상무대 훈련장으로 진입하는 길로 막혀있고 좌측길은 옛관동 예비군훈련장 가는 길로 기삼연 의병장이 호남창의회맹소를 창설하여 의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또한 이곳에는 숨겨진 역사가 있는곳이다.
백마장군 기삼연 의병장이 호남창의회맹소를 설치해 최초로 호남의병장들의 연합체를 형성해 일본군과 싸웠던 수련산이 있고 산 속에 석수암이라는 암자터는 당시 의병장들의 본부가 있고 바로 아래 백마강이란 계곡은 의병들의 움막터가 있었으며 산 제일 하부에는 지금은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해 있는 의병들의 훈련장이 있다.
이곳에서 수많은 의병들(대략2~3,000명)이 훈련 하면서 소.돼지를 잡아 마을주민(맥동.관동마을)들과 함께 먹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비록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이곳 수련산 석수암도 하루 빨리 복원 개발해서 후손들의 민족혼의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해 가다보면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언덕길 정상 에 다달으면 왼쪽으로 행주기씨 제각이 보인다.
그 제각 뒤로 작은 오솔길이 있는데 한참 가면 묘소 하나가 나온다 이 묘소가 의병장 기삼연 선생의 묘소이다.
조국의 국권 침탈에 맞서 의연히 일어나 초개 같이 목숨을 바친 의병장 기삼연, 그 죽음이 헛되지 않토록 후손들이 그분의 업적을 이어 받아야 함에도 아직은 초라한 모습에 쓸슬히 초야에 묻혀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음은 하남마을에 도착해 마을 초입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청백리의 산실인 박수량 선생의 청백당(부조묘)이 나온다.
오래된 부조묘는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지붕이나 벽은 군데 군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곳 건물 상태를 보면 살아서도 청백리 사후에도 청백리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다.
거처할 마땅한 집이 없을 정도의 남루한 삶을 살았던 박수량 선생 그래서 명종 임금이 그의 청백함에 감탄해서 직접 99칸의 집을 하사할 정도로 청백리의 표본이었던 박수량선생이다.
그러나 99칸 청백당은 없다.
청백당 자리도 어디인지 자세히 모른다.
현재 허름한 부조묘와 부조묘 입구에 청백당이란 현판만 고작 존재 할 뿐이다.
그래서 청백당에 들러 보고 진정한 의미의 청백리란 무엇인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청백한 삶이 가능 할것인가.?
한번 되새기는 장으로 만들어 보자
청백리 박수량 선생의 생애는 문화,역사 둘레길 4길 청백리길에서 자세히 언급 하기로 하고 기삼연 선생의 생가터로 가보기로 하자.
청백당에서 10여미터 떨어진곳에 기삼연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이 생가터는 얼마전 끼지만 해도 건물이 있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가 되어버려 철거 후 지금은 대나무 숲으로 변해있다.
조국을 위해 몸바친 애국열사에 대한 예우가 너무 허술한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남마을 나와 500여 미터를 가면 홍길동 테마파크가 나온다.
이곳이 홍길동 생가터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장성군에서는 대단위 개발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풋살경기장.산채내부.산채성 망루)
200명 정원의 청소년 야영장. 풋살 경기장. 어떤 공연도 가능한 스탠드형 경기장. 당시 생활을 재현해 만든 산채. 넓은 공원. 그리고 홍길동에 관련된 생가. 박물관등 청소년들의 호연지기를 충분히 함양 시키고 남을 여러 가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완공된 박수량 선생의 99칸 한옥집을 재현해 만든 한옥형 펜션이 있다.
앞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실비를 받고 한옥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 중에 있으며
진정한 청백리가 무엇인지 체험 해보는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다.
(홍길동야영장안내도)
또한 장성군 에서 청소년 단체, 가족단위 여행객을 대상으로 야영장을 운영하고 있다.
(홍길동야영장)
이 야영장은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며 텐트도 실비만 받고 대여 해준다.
이곳은 방부목을 이용해 바닥이 정리되어 있고 각각이 전기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겨울에도 전기장판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하루밤 묵어 가는 것이 가능 하다.
특히 화장실과 세면실 그리고 주방 시설도 이용에 불편이 없을 만큼 깨끗하게 완비 되어 있다.
홍길동 생가터를 가보자 그곳에는홍길동이 어릴때 먹었다는 길동샘이 있고 복원된 홍길동 생가도 있다. 생가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홍길동이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동상이 있다. 홍길동이 무엇을 말하고자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밖에도 홍길동 생가에는 여러가지 놀이 시설이 있으며 박물관도 마련되여 있다.
홍길동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무엇을 남기고 있나.?
홍길동의 역사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구간설명>
하서신도비-맥동삼거리-수련산-기삼연묘소-하남 박수량부조묘-기삼연생가터-홍길동테파크주차장-야영장-운동장-홍길동산채-홍길동생가-길동샘-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