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로커스
이 성 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10.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wqVl%26fldid%3D4Vre%26dataid%3D1110%26fileid%3D1%26regdt%3D%26disk%3D27%26grpcode%3Ddufekf1228%26dncnt%3DN%26.jpg)
좋은 것은 빛날 때에 버려라.
그리고 땅 속에서 새로워져라.
어느 벌 어떤 나비가
다음 해까지
생을 기약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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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다리도 샘을 내던 그대
맵시
자랑과 교만 넘쳐 사뭇
거룩했다.
숱한 질투와 시기
속에서
많은 花草 고개 숙여 눈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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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하면 잔치는 끝난 것.
그대 돌보던 이 떨쳐 가버리고
곱던 얼굴 발아래 떨어져 뒹굴 때
가녀린 弔問 인사 들려오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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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찬란한 太陽과
헤어져라.
영원은 죽음과 함께 오는 것
유월의 바람이 들판 채우기 전
舞蹈의 몸짓 풀고 夜會服을 거두어라.
(2)
뻐꾹채
이성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19.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wqVl%26fldid%3D4Vre%26dataid%3D1110%26fileid%3D5%26regdt%3D%26disk%3D13%26grpcode%3Ddufekf1228%26dncnt%3DN%26.jpg)
뻐꾸기 울며 날아
봄 손님 떠나고
분주한 숲 살림에
쏟아지는 초여름 볕
잎깔나무 덤불 속에
민머리 장끼, 알 숨기고
물 먹은 못자리마다
새털 구름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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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에 수북한
자홍색 털방울들
더운 흙 제치고
화장솔 들고나와 몸치장하네
(3) 참나리
이성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2.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wqVl%26fldid%3D4Vre%26dataid%3D1110%26fileid%3D7%26regdt%3D%26disk%3D11%26grpcode%3Ddufekf1228%26dncnt%3DN%26.gif)
목놓아 부르다 잠이 깨었지.
먼 하늘은 속절없이 노란데
그리움 소복이 가슴에 쌓여
동무 어깨
기대어 흐느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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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아래로 살구 가지 푸르고
개울 건너 버들개지 노래부를때
바람 밟고 가는 나뭇잎 소리에
행여
기다리다 고개만 떨구었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24.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wqVl%26fldid%3D4Vre%26dataid%3D1110%26fileid%3D9%26regdt%3D%26disk%3D25%26grpcode%3Ddufekf1228%26dncnt%3DN%26.jpg)
열 여섯 여름 맞아 고운
옷고름
푸른 눈물 아롱져 옥버선
물들고
님이 남기고 간 붉은 옛
이야기
까만 구슬 되어 두 뺨에 맺혔네.
(꽃에 대한 사연과 해설)
(1) 크로커스
크로커스를 처음 접한 것은 어린 시절 식물도감에서였다. 강렬하면서도 품위 있는 노란 색 꽃망울이 눈을
매혹했다. 그리고 남산 식물원에서 실물과 조우했다. 크로커스는 붓꽃과의 구근식물이다. 튤립과 다알리아 등이 봄에 알뿌리를 심어서 꽃을 보는
반면에 크로커스는 초겨울에 심어 봄에 꽃을 피운다. 크로커스 변이종 중, 가을에 꽃을 보는 것을 '샤프란'이라고 한다. 크로커스 꽃 색깔은
다양하나 보통 노란색을 많이 키운다. 종 모양의 꽃이 활 모양의 늘씬한 잎 위에서 뽐내듯이 피어난다.
크로커스 꽃은 흠잡을 데 없이 참하다. 밀랍으로 만든 꽃처럼 윤기가 흐르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모양새로,
튤립보다 단정하고 다알리아보다 강렬하며 수선화보다 청초하고 장미보다 위엄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꽃이다. 영국의 기사 같고 트로이 영화에서
연기한 브래드 피트 같다. 군더더기가 없고 말쑥한 모습이 영락없는 꽃미남이다. 신이 창조한 꽃의 궁극적 화신이라 할 만하다.
크로커스는 봄의 쇠락과 함께 그 생명을 같이한다. 크로커스가 속절없이 툭툭 발 앞에 떨어지면
계절의 여왕 유월은 이미 황금빛 보리 이삭과 종다리를 데리고 성큼 다가온 것이다. 구근식물은 꽃이 지고 난 후 알뿌리를 캐내어 갈무리해야 한다.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었다가 겨울철이 돌아오면 영하의 날씨에 땅에 파묻어 놓아야 그 다음해에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만일 알뿌리를 캐지
않고 그냥 화단에 두었다가는 낭패를 본다. 어쩌다가 그 다음 해에 꽃을 피우더라도 시들시들 마르다가 곧 죽어버린다. 땅 속에 생명을 다한 묵은
뿌리가 생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을 파헤쳐 묵은 뿌리는 버리고 싱싱한 알뿌리를 잘 갈무리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꽃말은 '청춘의 기쁨'이다. '미남','청춘'같은 말은 오래 가지 못하고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커스도 절세의 미남이었다가 질투와 반목 때문에 살해당했다. 잘 생긴 외모로 뭇 화초들을 울린 죄값인지, 크로커스는 긴
시간동안 그늘과 암흑 속에서 고통을 당해야 한다. 잘생긴 것도 죄라면 죄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크로커스를 시기할 수는 없다. 그의 아름다움은
기나긴 침묵의 성찰과 암흑 속에서의 시련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2)
뻐꾹채
뻐꾹 뻐꾹 / 봄이 가네 / 뻐꾸기 소리 / 잘가란 인사 / 복사꽃이 / 떨어지네 … 초등학교 2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전래 민요 <여름>에 나오는 가사이다. 어린 나이에 가졌던 고운 정서도 세파에서 잃어버리고 뻐꾹새 소리도 귀에 감감한 현실,
도시에서 맞이하는 여름의 인사는 어떤 모습일까 ? 대체로 우리의 여름은 음력 4월 보름께부터 찾아온다. 곡우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고 비로소 사람들은 여름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연을 장식했던 초봄의 꽃들은 벌 나비가 허락한 결실을 고이 간직하고 그 자리를 여름 꽃에게
내어 준 후 떠난다. 소박하고 연한 색의 봄꽃과는 달리,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피는 꽃들은 정열적이고 화려하다. 그리고 꽃대를 번갈아 바꾸어
가며 오래도록 피워댄다. 원추리, 골무꽃, 물레나물, 솔나리, 꿩의 다리, 비비추, 기린초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흔한 종류 중 하나가 바로 ‘뻐꾹채’이다. 학명으로 “흑해의 큰 꽃”이라고 하나
예전부터 우리 땅을 지켜왔던 고유종으로, 전국 산기슭과 들판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흡사 엉겅퀴처럼 생겼으나 꽃망울이 더 크고 잘생겼다.
‘뻐꾹채’라는 이름은 뻐꾹새가 울음 우는 때에 피는 꽃이라서, 또는 뻐꾹새의 앞 가슴털을 닮았다고 해서, 혹은 붉은 꽃송이가 뻐꾸기의 벌린 붉은
입과 같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멍구지’ 또는 ‘고려엉겅퀴’라고도 한다. 수년 전에 어버이 날 등에 사용되는 외래종
카네이션을 이 꽃으로 대체하자고 하는 논의가 있기도 했는데, 그만큼 꽃이 카네이션만큼 화려하고 소담스럽다. 이름에서 나물 채(菜)가 들어있듯이
옛날에는 이 꽃을 데쳐서 나물로도 먹고 찹쌀 옷을 입혀서 튀겨먹기도 했다. 여름의 전령사 뻐꾸기와 함께 찾아온 이 꽃을 보면서 이번 여름은
‘뻐꾹채’만큼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의 정열을 기약해 본다.
(3)
참나리
도라지 꽃은 보랏빛 / 언니가 좋아하던 꽃 / 나-리 꽃은 빨간빛 / 내가 좋-아 하는 꽃 / 언니는
보랏빛 저고리 / 나는 다홍치마 / 나들이옷 갈아입고 / 외할머니댁에 갈 때면 / 고-갯길에 쉬면서 / 따-서 따서 들던 꽃 / 언니는 언제나
도라지꽃 / 나는 언제나 나리꽃
강소천 시, 정세문 곡의 동요 <도라지꽃 나리꽃>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레코드점 동요 CD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이 곡을 발견하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에
기뻤다.
여름을 맞이하는 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리꽃이다. 주황색 혹은 주홍색의 선명한 여섯 꽃잎은
그 빛깔만으로도 강렬한 여름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리는 우리 산천 온 땅에 넘치듯 피고 진다. 봄에는 개나리, 여름에는 참나리, 가을에는
솔나리… 전 세계적으로 온대 지방에 두루 피어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 프랑스 국화도 나리꽃이다.
화려하고 큰 '백합'은 우리 순 이름으로 '나팔나리'라 한다. '백합(百合)'이란 이름은 알뿌리의
비늘줄기가 수백 겹 붙어있어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화병에 두어 송이 꽂아도 소담스레 보이는 백합은 '여름 꽃의 귀족'으로 호평 받기는 하나
서양에서 들여온 꽃이라 우리 정서에는 아직 낯설어 보인다. 희고 소담스럽다가도 다음날 지저분하게 시들고 마는 모양새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우리 꽃 나리꽃은 백합에 비해 귀티 나지는 않지만 웬만큼 천하고 보아줄 만큼 요염하다.
백합이 '소공녀'라면 나리꽃은 '시골소녀'이다. 초여름 모내는 터에 새참 들고 가는 길에 윗말 총각
마주치곤 햇볕에 새까매진 얼굴 붉히는 영락없는 촌 아가씨의 모습이다. 나리꽃은 첫사랑에 애달파하다 속내 검게 태우는 소녀의 행색을 떠올린다.
짝사랑은 십대 소년 소녀 시절 겪어봄직한 성숙의 아픔이다. 풋풋하고 유치하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인 첫사랑의 표상을 나는 나리꽃의
천진한 모습에서 발견하곤 한다. 진주황빛 올린 머리에 주근깨 투성이 얼굴을 살랑살랑 흔들며 소담스레 피어있는 나리꽃을 보면서 설익은 10대
시절의 풋사랑을 생각해 본다. (*)
첫댓글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詩語로 승화되었네요. 닮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