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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입(六入)의 원통(圓通)공부
❙ 원문
阿那律陀即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我初出家常樂睡眠, 如來訶我為畜生類. 我聞佛訶啼泣自責, 七日不眠失其雙目. 世尊示我樂見照明金剛三昧, 我不因眼觀見十方. 精眞洞然如觀掌果, 如來印我成阿羅漢. 佛問圓通, 如我所證, 旋見循元斯為第一.」
周利槃特迦即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我闕誦持無多聞性, 最初値佛聞法出家. 憶持如來一句伽陀, 於一百日得前遺後 得後遺前. 佛愍我愚教我安居調出入息. 我時觀息微細窮盡, 生住異滅諸行剎那, 其心豁然得大無礙. 乃至漏盡成阿羅漢, 住佛座下印成無學. 佛問圓通, 如我所證, 返息循空斯為第一.」
憍梵鉢提即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我有口業, 於過去劫輕弄沙門, 世世生生有牛呞病. 如來示我一味清淨心地法門. 我得滅心入三摩地, 觀味之知非體非物, 應念得超世間諸漏, 內脫身心外遺世界, 遠離三有如鳥出籠. 離垢銷塵法眼清淨成阿羅漢, 如來親印登無學道. 佛問圓通, 如我所證, 還味旋知 斯為第一.」
畢陵伽婆蹉即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我初發心從佛入道, 數聞如來說諸世間不可樂事. 乞食城中心思法門, 不覺路中毒刺傷足, 舉身疼痛. 我念有知, 知此深痛雖覺覺痛, 覺清淨心無痛痛覺. 我又思惟如是一身寧有雙覺? 攝念未久身心忽空, 三七日中諸漏虛盡成阿羅漢, 得親印記發明無學. 佛問圓通, 如我所證, 純覺遺身 斯為第一.」
須菩提即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我曠劫來心得無礙, 自憶受生如恒河沙. 初在母胎即知空寂, 如是乃至十方成空, 亦令衆生證得空性. 蒙如來發性覺眞空, 空性圓明得阿羅漢, 頓入如來寶明空海, 同佛知見印成無學. 解脫性空我為無上. 佛問圓通, 如我所證, 諸相入非非所非盡, 旋法歸無 斯為第一.」
아나율타즉종좌기, 정례불족이백불언: 「아초출가상락수면, 여래가아위축생류. 아문불가제읍자책, 칠일불면실기쌍목. 세존시아낙견조명금강삼매, 아불인안관견시방. 정진통연여관장과, 여래인아성아라한. 불문원통, 여아소증, 선견순원사위제일.」
주리반특가즉종좌기, 정례불족이백불언: 「아궐송지무다문성, 최초치불문법출가. 억지여래일구가타, 어일백일득전유후 득후유전. 불민아우교아안거조출입식. 아시관식미세궁진, 생주이멸제행찰나, 기심활연득대무애. 내지누진성아라한, 주불좌하인성무학. 불문원통, 여아소증, 반식순공사위제일.」
교범발제즉종좌기, 정례불족이백불언: 「아유구업, 어과거겁경롱사문, 세세생생유우시병. 여래시아일미청정심지법문. 아득멸심입삼마지, 관미지지비체비물, 응념득초세간제루, 내탈신심외유세계, 원리삼유여조출롱. 이구소진법안청정성아라한, 여래친인등무학도. 불문원통, 여아소증, 환미선지 사위제일.」
필릉가파차즉종좌기, 정례불족이백불언: 「아초발심종불입도, 삭문여래설제세간불가락사. 걸식성중심사법문, 불각로중독자상족, 거신동통. 아념유지, 지차심통수각각통, 각청정심무통통각. 아우사유여시일신영유쌍각? 섭념미구신심홀공, 삼칠일중제루허진성아라한, 득친인기발명무학. 불문원통, 여아소증, 순각유신 사위제일.」
수보리즉종좌기, 정례불족이백불언: 「아광겁래심득무애, 자억수생여항하사. 초재모태즉지공적, 여시내지시방성공, 아령중생증득공성. 몽여래발성각진공, 공성원명득아라한, 돈입여래보명공해, 동불지견인성무학. 해탈성공아위무상. 불문원통, 여아소증, 제상입비비소비진, 선법귀무 사위제일.」
❙ 해설
아나율타(阿那律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처음 출가하여 항상 잠자기를 좋아하였는데, 여래께서 제가 축생의 무리가 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고 소리 높여 울고 자책하며 칠일동안 잠을 자지 않았더니 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낙견조명(樂見照明) 금강삼매(金剛三昧)를 가르쳐 주셨으며, 저는 눈[眼根]을 쓰지 않고도 시방세계를 봅니다. 순수한 진짜 마음[精眞]이 막힘없이 환하게 열리어 마치 손바닥 위에 있는 과일을 보듯 하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통의 원인을 물으시니, 제가 진리를 깨달아 얻은 바로는 보는 견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주리반특가(周利般特迦)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외우고 기억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많이 듣는 성품이 없는데, 처음 부처님을 만나 법문을 듣고 출가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게송 하나를 기억하고 받아 지니려고 하였으나, 백일 동안 노력하였지만 앞의 것을 외우면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뒤의 것을 외우면 앞의 것을 잊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가 안거(安居)하면서 들숨과 날숨을 잘 살펴보라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그때 호흡이 미세하게 다 없어지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모든 움직임이 찰나간이라는 것을 살펴보고서, 그 마음이 환하게 터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번뇌가 다 사라져 아라한이 되었으며,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더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통의 원인을 물으시니, 제가 진리를 깨달아 얻은 바로는 숨 쉬는 것을 돌이켜 공(空)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교범발제(憍梵鉢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구업(口業)으로 죄를 지었으니, 과거 겁에 사문을 업신여기고 희롱한 탓으로 세세생생에 태어날 때마다 소처럼 되새김하는 병이 있었습니다. 여래께서 저에게 모든 맛이 한 맛으로 청정해지는 일미청정(一味淸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망념을 없애고 삼마지에 들어가, 맛을 아는 작용이 혀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대상에서 생기는 것도 아님을 관찰하고는, 마땅히 한 생각에 세간의 모든 번뇌를 초월하여,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벗어나고 밖으로는 세계를 떠나버려서, 삼계(三界)를 멀리 떠난 것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았습니다. 마음의 때를 여의고 번뇌를 소멸하여 진리의 눈[法眼]이 청정하여 아라한을 이루었으므로, 여래께서 친히 더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의 도(道)에 올랐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통의 원인을 물으시니, 제가 진리를 깨달아 얻은 바로는 맛보는 것을 돌이켜 신령스럽게 아는 것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처음 발심하여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였을 때, 여래께서 '세간에는 즐길 만한 일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성 안에서 걸식하면서 마음속으로 그 법문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길에서 독가시에 발을 찔려 온 몸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하기를 '아는 놈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심한 통증을 알고, 비록 통증을 느낄 줄을 알지만, 깨달아 아는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도 없고 아픔을 느끼는 것도 없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이 한 몸에 어찌 두[能所] 개의 깨달음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한지 오래지 않아 몸과 마음이 갑자기 텅 비면서, 삼칠일 만에 모든 번뇌가 텅 비고 없어져 아라한을 이루었으므로, 부처님께서 친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통의 원인을 물으시니, 제가 진리를 깨달아 얻은 바로는 순수한 깨달음만 있고 몸을 잊어버리는 방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수보리(須菩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오랜 겁 이전부터 이미 마음[意根]에 걸림이 없어서, 항하사만큼 많은 생(生)을 받았음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곧 공적(空寂)한 경계를 알았고,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시방세계까지도 공(空)하여졌으며, 또한 중생들에게 공의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성품[性覺]이 원래 공[眞空]이라는 가르침을 듣고, 공한 성품이 원만하고 분명해져서 아라한이 되어, 그 자리에서 여래의 보배롭고 밝은 공의 바다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아져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해탈성공(解脫性空)은 제가 으뜸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통의 원인을 물으시니, 제가 진리를 깨달아 얻은 바로는 모든 상(相)이 상(相)이 아닌 것으로 들어가서, 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체[能非.主]와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상[所非.客]이 모두 없어져서, 모든 법진(法塵)을 돌이켜 공(空)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 보충
우리 마음[眞心]은 공적영지(空寂靈知)다. 영지의 작용은 육성(六性)이다. 따라서 공적영지, 견성, 문성, 각성, 지성이 마음이다. 내 마음이라는 것이 별도로 독립적으로 있어서 능히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고 알아서는 안 된다. 견성이 벌어지는 것이 내적으로는 견정으로 벌어지고 바깥으로는 색공으로 벌어진다. 견정뿐만 아니라 바깥의 모든 물체도 모두 다 나의 견성에서 나온 것이다. 시각현상을 알아보는 안식도 나의 견성에서 나온 것이다. 벌리면 견정-색공-안식 이고, 거두어들이면 견성 하나 뿐이다. 여섯 개(육성)도 거두어들이면 하나(영지)뿐이고, 영지를 찾아보면 아무 모습이 없으니 공적할 따름이다.
오근(五根) 원통(圓通)
①안근(眼根) : 아나율타(阿那律陀)
②비근(鼻根) : 주리반특가(周利般特迦)
③설근(舌根) : 교범발제(憍梵鉢提)
④신근(身根) :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
⑤의근(意根) : 수보리(須菩提)
안근(眼根) 원통공부
잠자기를 좋아하는 아나율을 꾸짖는 게송이 아함경에 나온다. 돌돌호위매(咄咄胡爲寐) 예끼! 어찌 잠만 자느냐. 나사방합유(螺螄蚌蛤類) 물속의 조개와 소라 무리와 같이, 일수일천년(一睡一千年) 한 번 잠을 자면 천년을 자므로, 불문불명자(不聞佛名字) 부처님 이름을 듣지 못한다.
낙견(樂見)은 보는 것을 돌이켜 색진 경계를 잊고 보는 근원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조명(照明)은 본래 밝은 마음자리에서 비쳐보는 것으로 천안통을 얻는 선정을 말한다. 금강삼매(金剛三昧)는 마음의 눈이 금강처럼 견고하여 절대로 깨지지 않는 안정된 선정(禪定)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눈이 먼 아나율에게 반견(返見)공부 방법을 알려주셨다. 자기 자성(自性)을 돌이켜 보는 반견(返見) 또는 반조(返照) 하는 것을 일러 주셨다. 보는 것은 눈[眼根]이 아니고 마음이다.
비근(鼻根) 원통공부
주리반특가는 호흡을 관찰하는 수식관(隨息觀)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호흡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것으로 무상(無常)이며 공(空)함을 깨달아 원통을 얻었다. 생(生)은 초기(初起), 주(住)는 부단(不斷), 이(異)는 전미(漸微), 멸(滅)은 이단(已斷)이다.
수구섭의신막범(守口攝意身莫犯) 여시행자능득도(如是行者能得道). 입을 지키고 뜻을 바르게 하며 몸으로 계를 범하지 않으면 능히 도를 얻으리라. 법구경에 나오는 주리반특가 존자의 게송이다. 왕사성에 마하반특가(大路)와 주리반특가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영리하여 할머니를 따라 법회에 참석했다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감동해서 출가를 하고 곧 아라한이 되었다. 동생은 우둔하여 세상에서 소외된 아이이며 제 이름도 외우지 못하여 이름표를 옷깃에 달고 다녔다. 형은 동생이 걱정되어 출가시켰다. 어리석은 동생은 출가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계율을 외우지 못해서 도반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부처님께서는 형에게 게송 하나를 주며 동생을 잘 지도하라고 했다. “몸과 입과 생각으로 악을 짓지 말고 세간의 생명을 괴롭히지 말라. 정념으로 욕망과 대상이 공한 줄 관찰하면 무익한 고통은 항상 멀리 떠나리라(身語意業 不造惡 不惱世間諸有情 正念現前欲色空 無益之苦 常遠離)” 이 게송은 글자가 너무 많아 외울 수 없었다. 그래서 글자를 줄여서 외우게 했다. “삼업을 범하지 말고 유정중생을 해치지 말라. 정념으로 공을 관하면 무익한 고통을 면하리라(不造三業 不傷有情 正念觀空 免無益苦)” 그러나 이 게송도 너무 길어서 외우지 못했다. 형은 어쩔 수 없이 동생을 산문 밖으로 내보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반특가의 사정을 듣고 처소로 데리고 왔다. “반특가야. 자신이 어리석음을 아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어리석으면서 지혜롭다 말하는 자는 진짜 어리석은 자이니라.”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줄여 “불진제구(拂塵除垢, 먼지를 떨어버리고 때를 제거하라)”를 외우게 했다. 네 자도 외우지 못하여 두 자로 줄여서 “소추(掃, 비로 쓸어라)”를 외우게 했다. 그러나 앞의 ‘비’를 외우면 뒤의 ‘쓸어라’를 잊어 버렸다. 그래서 ‘추’자 한자만 외우게 했다. 그래서 대중은 ‘추’자만 외운다고 해서 “송추(誦掃, 빗자루) 비구”라고 놀리며 불렀다.
부처님께서는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실천하며 외우라고 하시며 “외출하고 돌아오는 비구들의 발을 씻겨드려라” 하고 대중들은 ‘불진제구’의 법문을 일러 주라고 했다. 그리고 깨끗한 수건을 주며 온 종일 방을 닦으며 외우게 했다. 반특가는 방을 닦다가 문득 천은 더러워지고 닿아서 구멍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더러워지고 변하여 가는 구나”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특가야. 천은 본래 더러운 것이 아니라 먼지에 물들어서 더러워 졌느니라. 모든 것은 항상 변하나니 열심히 수행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도록 하라.”
그리고 아무것도 외우지 말고 고요히 않아서 코끝을 바라보며 호흡을 관찰하며 수식관을 하도록 했다. 어느 날 호흡이 하나가 되고 내외가 명철하며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신 ‘불진제구’의 뜻을 깨우쳤다. “지혜의 빗자루로 번뇌의 먼지를 쓸어버리라. 그리하면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반특가의 혜안이 열린 것을 아시고 차제법문이 있는 날 설법하도록 했다. 대중은 바보가 법문을 한다고 하니 비웃으며 어리둥절했다. 그때 반특가는 법좌에 앉아서 당당하게 법을 설하였다. “수구섭의신막범 여시행자능득도(守口攝意身莫犯 如是行者能得道, 입을 지키고 뜻을 바르게 하며 몸으로 계를 범하지 않으면 능히 도를 얻으리라).”
대중이 모두 감탄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행을 지키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자는 반드시 아라한과를 얻으리라. 마치 물이 쉬지 않고 흐르면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고 나무를 비비면 불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설근(舌根) 원통공부
맛은 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음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맛은 인연(因緣)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고(혀+음식+미각의식), 맛을 아는 것은 여래장 묘진여성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에 집착할 이유가 없으며 텅 빈 공(空)이다.
일미청정 심지법문(一味淸靜 心地法門)이란 한 가지 맛이 나는 음식을 계속 되씹으면서 그 맛을 관(觀)하여 설근(舌根)의 여래장성을 깨닫게 하는 법문이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염불(念佛)을 입으로 계속 외우는 염불수행을 말한다. 입으로 염불을 외우면 혀를 계속 우물거려야 하고 교범발제는 계속 우물거리는 습관이 있으므로, 마치 우물거리듯 쉼 없이 염불수행을 하라는 뜻에서 부처님이 이런 수행을 권하게 된 것 같다.
교범발제는 과거 전생에 아라한인 노승(老僧)이 이가 없이 우물우물 밥 먹는 것을 보고, 노승에게 소 새김질 하듯 밥 먹는다고 놀렸던 적이 있었다. 아라한을 비방하면 지옥에 가므로 그 노승이 곧 참회를 시켜서 지옥에는 가지 않고, 소 새김질하는 과보를 받아 마치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우물거리는 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범발제를 소처럼 되새김질한다고 해서 우시(牛呞)라고 번역한다. 구업(口業)이 참으로 무섭다.
신근(身根) 원통공부
청정심(清淨心)에는 주객이 없으므로 생멸이 없고 생사가 없다. 주[主.能]는 아픔을 느끼는 것이고 객[客.所]은 아픔이다. 염오심(染污心)은 오염된 마음으로, 주관이 객관을 인식하여 항상 생각 감정과 같은 분별심을 일으킨다. 필릉가바차는 가시에 찔리는 순간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客]도 없고 아픔을 느끼는 것[主]도 없음을 알았다. 가시에 찔려서 아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아픔을 통하여 공성(空性)을 깨달았다. 아픔은 조건에 의하여 일어나고 조건에 의하여 사라질 뿐이고 아픔이라는 실체는 없다. 청정심(清淨心)에는 유(有)도 없고 무(無)도 없는 공성(空性)의 자리이다.
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는 덜 고치고 남아 있는 버릇이 있다고 해서 여습(餘習)으로 번역한다. 비록 아라한일지라도 오래된 습기가 남아있다. 사리불의 성내는 진습(瞋習), 필릉가바차의 업신여기는 만습(慢習), 가섭의 놀기 좋아하는 풍류습(風流習) 등이 있다.
부처님의 사제 법문에서 괴로움은 다음과 같다. ①삼고(三苦)에는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가 있다. 고고는 괴로움이 복합적으로 많이 있는 것으로 욕계(欲界)의 괴로움이고, 괴고는 육체적인 괴로움은 벗어나지만 정신적인 괴로움이 남아있는 색계의(色界) 괴로움이고, 행고는 무상하기 때문에 윤회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무색계(無色界)의 괴로움이다. ②팔고(八苦)는 생고(生苦)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거나 살아야 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이 너무 치성하여 조절하지 못하는 괴로움인 오음음고(五陰盛苦)가 있다.
의근(意根) 원통공부
수보리(須菩提)는 과거에 이미 성불한 청룡여래(靑龍如來)이다. 의근(意根)은 잠재의식으로서 생각을 일으키는 뿌리가 된다. 모든 상(相)이 상(相)이 아니라는 것은 공성(空性)의 특징을 밝힌 것이다. 공(空)은 자아(自我)와 자성(自性)을 부정한다. 따라서 무아이며 무자성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적으로만 존재한다.
모든 법(法)은 공하다. ①연생(緣生) 인연으로 생겼다가 인연으로 사라진다. ②무상(無常) 따라서 찰나생 찰나멸 하니까 무상하다. ③무아(無我) 따라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것을 통 털어서 공(空)이라고 한다. 성각진공(性覺眞空) 공성원명(空性圓明)이다. 수보리는 진심이 공적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진심이 영지해서 온갖 작용(삼세육추)을 일으키지만, 진심이 공적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즉, 공적영지를 분명하게 알았다.
제상입비(諸相入非) 비소비진(非所非盡). 금강경에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하고 했다. 모든 상(相)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허망한 것으로서 공적하다. 상(相)은 모든 산하대지와 아상 인상 중생 수자상 같은 것을 다 포함한다. 만약 모든 상(相)이 상(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선법귀무(旋法歸無).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망견(별업망견.동분망견)으로 있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고, 실은 망견만 털어버리면 본래 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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