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학생회카페..전북이용찬(4년대표)글
가급적이면 타 지역 학우님들을 자극하는 글은 피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그리고 행사를 진행하며 "우리가 정말 문화교양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이 맞는가?" 수도 없이 자문해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몇 자 적어봅니다. 일부는 어쩌면 그리도 이기적일까? 하는 분들도 많았고 눈물 나도록 정말 고마웠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행사장 도우미가 되었다가 한 컷이라도 기록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수 없이 반복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예외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행사 준비까지 불과 10여 명의 재학생들이 거의 모든 준비를 끝냈고 행사 당일에는 재학생과 졸업생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여야 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여학생들은 남편을 남학생들은 부인들이 이번 행사에 동원되어야 했을 만큼 우리의 상황은 절박했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반응은 문화적 소양에는 함량 미달의 반응들을 연속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음식이 모자란 다부터 테이블이 마음에 안 든다, 당신들 이정도 밖에 안 돼요?......., 도대체 같은 학우인지, 아니면 우리를 음식점 점원으로 보는 것인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도 저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를 힘들게 했었습니다. 특히 잠깐 동안 빗방울이 흩뿌렸을 때의 반응은 오랫동안 남을 듯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비옷도 준비 안했지?" 하며 경멸하듯 무섭게 노려보던 학우님들의 모습에서는 모두가 얼굴들까지 하얗게 질리게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비였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준비하고 대접하며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피나는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우님들의 태도와 말씀들은 마치 우리가 준비한 문화제가 죽을 쑤기 바라는 듯 했습니다. 더는 우리 전북 학우들을 하인 다루듯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다 참을 수 있었는지 참으로 대견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이제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겠지요. 참으로 격동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슬기로웠고 몸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노력이 일부 학우들에게는 여전히 함량미달로 보일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편차는 있어도 우리의 노력을 더 좋게 보아주는 이들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전북지역 최경식 학우님을 비롯한 모든 학우님들과 동문 선배님들께 정말 수고하셨다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盡人事待天命이라고 우리가 최선을 다했으니 평가는 하늘에 맡겨야겠지요.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전북최경식 학생회장 댓글~~~~~
문화제 행사 뿐아니라 누구든지 손님이 주인으로 주인이 손님으로 바뀔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이번 문화제는 쪽박을 대박으로 바꾼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쪽박차고 쫒겨났다가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습니까? 쪽박은 누구나 찰수 있지만 대박은 아무나 터뜨리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대박을 터뜨릴수 있는 기회를 준 문화교양학과 전국 학우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학우분들께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해서 미안합니다. 내년부터는 우리가 손님이 이 되는군요. ㅎㅎㅎ |
▼
▼
▼
서울학생회장 이춘매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는것이...제가 사랑하는 우리 서울학우들에게 누가되면 어쩌나.. 서울학생회장으로서 4일째 가슴앓이로 아파하며 저 두 학우에게 좀 더 성숙한 행동을 보여줄 것을 호소하며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조금 더 성숙된 마음으로 포용하려 여지껏 불합리한것도 참아왔고 학우들이 불편했어도 좋은 추억 만들어 왔으면 나름 잘되어진 행사고 서로 박수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싶었고 나무보다는 넓은 숲을 보기위해 그저 상처난 글만 내려달라고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는 고목이 었습니다.
올 문화제 준비과정에서 열악한 장소때문에 전대미문의 사건이 생기며 잡음속에 시작되었지만 전북측의 개최로 재결정이 된 후부터 문화제가 끝난후 월요일 낮까지 저는 문화교양학과 전국 수석이자 가장 큰 지역인 서울회장으로 최선을 다해 협조하며 문화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쁘게 동참했습니다.
열악한 장소야 어쩔수 없었지만, 전국문화제로는 처음 시도했던 야외행사의 특성을 살려서 잘 치러졌다고 나름 생각했기에 전북임원중 어느분하고는 악수로 그리고 어느분하고는 감동의 눈물로 포옹하며 “적은 인원으로 대행사를 치르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냐”며 따스한 마음을 나누었고, 전북최경식회장에게도 수차례에 걸쳐서 정말 수고하셨고 잘해내셨다고 인사를 건넸고 문자도 보냈지만 저를 포함한 전국문화교양학과 지역회장들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고맙다는 인사도 문자도 공식적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상경하자마자 서울학생회카페와 전국문화교양학과카페에 문화제참가한 학우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전북의 고생하신 동문선배님과 최경식회장 그리고 문화교양학과전국회장들에게 야외특성 잘살려서 전북학우들의 정말 고생많이 하심이 느껴졌다며 그동안 수고들 하셨으니 맘편히 쉬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전국문화제 불꽃의 여운이 아직 가시기도 전, 월요일의 출석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전국문화제를 잘 치러낸 전북카페를 구경하기 위해 기웃거리던중,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서울학우들을 지칭한 위의 글이 미소를 머금고 사진을 구경하던 저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아프게 때렸습니다. 밤10시30분...최경식회장에게 전화해도 받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날 출석수업시간에도 온통 내 사랑하는 서울학우들에게 상처를 주고있는 글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할수없었고 귀가후 밤늦은 시간에 다시 전북최경식회장에게 전화를 해서야 겨우 통화를 할수있었는데 “고생하며 멋지게 문화제 잘 치렀는데 왜 또 그러느냐고...서울회장 으로 기분이 좋지않으니 이용찬학우의 이글과 약3시간 진행중 딱 한장올려진...우스꽝스러운 제사진을 좀 내려주라고 하라”며 그날의 상황설명을 최회장에게 자세히 설명 했습니다. 저는 이용찬학우는 그렇다치고 최경식회장은 전북을 대표하는 회장으로서 이용찬학우를 말리기 는커녕 거기다가 한술더 떠서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남기는것을 보며 심히 안타깝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그래도 한지역의회장인데..당연히 미안하다며 그렇게 해주리라 믿으며 통화했더니.. 대화중 전화를 뚝~끊어버립니다. 다시했더니...통화하고 싶지않습니다...하며 또 끊습니다. 또 걸었더니 전화기를 꺼놓았습니다. 이용찬씨 폰번호좀 주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직 며칠째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이용찬학우 전화번호를 몰라서 이용찬학우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정말 정중하게...손톱만큼도 거슬리지않게...그날의 상황 설명과 문화제를 잘 치렀는데 궅이 왜 그러느냐..저 글과 보기거북한 제사진도 내려주시라고 정말 정중하게 부탁을 거듭했습니다. 조금전 전북카페 가보니..둘다 버젓이 그대로 있고..조회수는 사정없이 올라가 있습니다.
올린대표와 맞장구치는 회장은 또 그렇다쳐도 다른학우들도 이상황에 같은 생각인가요? 힘들게 수고해서 만든 문화제를 왜 좀더 아름답게 유종의미를 거둘수있도록 충고를 하는 사람이 없나요? 아니면 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던가요? 설마 저 두학우가 하는 행동이 분명 옳지않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학우도 분명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날의 상황이란...이렇습니다. 일손이 모자란 전북과 많은인원의 서울..양측의 편리를 위해 미리서 방갯수만 주면 우리가 알아서 배정하기로 했고 약160명의 학우들이 기분좋게 숙소해 도착해 제가 묵을 방을 입실하자 찜통 그 자체여서 땀이 비오듯 했으며 화장실 문은 반쯤 떨어져서 기울어 있었고 세면대도 흔들거리며 위험한 상태였으며 그 흔한 두루마리 휴지 하나 없었지만 웬 남자의 트렁크팬티는 덩그마니 뒤집힌채 걸려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전북임원에게 세번이나 가서 휴지를 요청해 보았지만 앞쪽에 가져다놨다고만...휴지는 없었고...결국, 우리 임원이 다시 가서 가지고 와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으며 모두 들뜬마음으로 주황색으로 갈아입은 서울학우들은 식당으로 향했는데... 저도 저녁을 먹지못했지만..나중에는 반찬이 한가지밖에 없어서 많은 학우들이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식당 입구는 질퍽거렸으며 음식물 찌꺼기가 범벅이 되어 뒹굴었고 식당내의 음료수대는 고장이었으며...
제가 알기로 그날 참가학우 중 약70명정도가 식사를 제대로 못한걸로 전국회장들회의석에서 전해졌고 그 다음날은 각지역 집행부임원5명씩은 학우들 먹여야하니 아침을 거르게하고 남으면 나중에 먹으라고 급하게 조치를 했습니다.
그후...개막행사는 이미 시작되었는데...행사장으로 나온 서울학우들이 맨좌측 서울좌석 깃발이 꽂힌 자리에 앉기 시작했더니 약60명은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서울학우들이 옆의 경기지역자리까지 차지하자 경기학우들도 항의를 했습니다. 저는 서울학우들을 서서 기다리게 하고 최경식회장에게 세번이나 찾아가서 어찌해야하냐고 물었더니 식당식사가 완전히 끝나면 식탁과의자를 들고나와서 앉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밥도 못먹었다는 학우들에게 조금있다가 맛있는음식 나오면 드시라고 다독거리며... 식사시간끝나면 식탁과의자를 내올것이라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달랬습니다. 결국 우리 서울의 평균연령 50대중반인 여학생들이 식당에서 그 무거운 식탁과 의자를 낑낑 거리며 손수날라다가 맨 구석자리로 한줄을 더 만들어서야 자리에 앉을수 있었습니다. 저는 회장단입장과 2부~주제별경연대회~진행로 준비해야했기에 울 학우들을 챙기지도 못했던 상황입니다.
2부 행사 진행자...처음에 저에게 진행을 맡아서 해주십사 하고 최경식회장의 정중한 요청을 받아서 박원대전국회장과 의논한결과 전국수석이고 서울회장이니 진행맡기로 승낙은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않고 전북학우가 맡아서 하는것이 나을것같아서 다시 최경식회장에게 반환했지만 며칠뒤 임원회의에서도 그렇게 결정했노라며 다시 정중한 부탁을 해왔고 재차 임원 들이 동의한거냐고 확인후 맡은거였습니다. 무대에 올라가서 첫 강원지역경연팀의 공연이 시작하자 그렇게도 7개월간 우려했던 비가 쏟아 지기 시작했고 진행하려던 테이블위의 대본이 비에 젖어버리고 말았으며 무대위에서 내려다본 행사장은 이미 술렁대기시작했습니다. 일부는 현관으로 피해들어가기 시작했고 우산을 준비한 학우들은 다행이지만 그렇지못한 학우들은...주관측에서는 그즈음 계속되는 비를 무시하고 그 흔한 일회용 비옷하나 장만해 놓지않았습니다. 진행자였던 저도 너무도 당황스러웠으며 대본도 젖은상태에서 즉석 멘트로,
“여러분~비를 좀 맞으면 어떻습니까? 이행사를 위해서 전북학우들은 지난 1년간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저도 아침에 미용실에 가서 2만원주고 머리드라이를 하고 왔지만 비...흠뻑 맞겠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여러분들도 자리뜨지 마시고 끝까지 함께하는 문화교양인이 되셨음 합니다.”하고 멘트를 했습니다.
그런후에 조금 진정이 되었고 다행히 세번째팀 공연후 비는 우리모두의 간절한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멈췄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고 감사했니다. 전북학우들이 가슴 졸였을 것도 안타까웠고, 우리 학우들이 비를 맞지 않고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하늘을 수없이 쳐다보며 저는 2부 행사를 마쳤고 비가 멈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대를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문화제 준비기간중 열악한 장소때문에 전국회장단들이 6번이나 지역을 돌며 비상회의를 했을때 수련원현지답사를 했던 저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졸업생들의 졸업사진을 찍는일도 언제부턴가는 문화제행사의 일부가 되었는데 도대체 나무다운 나무 한그루가 보이지 않고 썰렁한 운동장뿐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지역에서 참가한 60명의 4학년 학우들도 걱정되었지만 전국에서 참가한 졸업예정자 들이 실망할것이 심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조심스레 서울동문선배님들께 졸업사진촬영을 위한 "포토죤"부탁을 드렸고 사랑하는 울 동문선배님들..너무도 감사하게 단3초도 걸리지않은 대답은..우리 문화교양 학과의 후배들을 위해서인데 서울동문회에서 적극 협조해서 만들어주시겠다고..동문선배님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날 방송대본교에 가셔서 촬영하고 계셨고 약40만원들여서 사흘간 꼬박 만들어 협찬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꽃다발도 전북에서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못하겠다고 해서 서울학생회에서 모두 준비해간 꽃다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부터 전국졸업예정학우들은 들뜬 표정으로...이 학사복을 입을려고 수십년을 기다렸다..며 행복하게 그 포토죤앞에서 서울학생회에서 준비했던 꽃다발을 번갈아들고 예쁘게 사진을 찍을수있었고 상경후 카페마다 올라있는..수십년을 기다렸다가 학사복을 입은 학우들 사진을 보며 동문선배님들도 제 마음도 한없이 뿌듯하고 행복했으며 빛나는 전국문화제 행사를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작전부터 워낙 시끄러웠기에 서울에서 적당한 인원만 참석할까 생각도 생각했지만 전국의 행사인데 그래도 협조 잘해서 잘 치러내야한다며 작년보다 60여명이 더 많은 약160명을 버스 4대에 나눠 인솔하고...전주가는길 내내 폭우로 걱정되긴 했지만...즐거운 마음으로 전주를 향해가면서 버스마다 찾아가서 혹여 조금 장소가 미흡하더라도 배낭여행도 하려니와 학생이니 하룻밤 좀 불편하면 어떻냐고 이해하시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돌아오늘 버스4대를 모두 올라가서 처음 야외행사로 치러진 너무 멋진 문화제에 함께해줘서 감사하고 불편했던것은 이해하고 좋은것만 추억하는 서울학우들이 되시라고 인삿말을 했으며 불꽃의 여운을 가슴에 꼬옥 담아서 서울로 돌아왔었습니다.
여러분~그날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우리서울학우들이 조금 투덜거릴수는 충분히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많은인원이 모두 예수님이고 부처님은 아니잖아요? 학생들의 참가비를 거둬서 치르는 행사인데 당연히 주관측의 무성으로 빚어진 상황들에 가령 누가 불만을 표시했다 하더라도 되레 주관측에서 미비했던점을 돌이켜보며..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시원찮을 상황의연속이었지만 우리 학우들..돌아와서도 누구하나 싫은소리 하지않고 넘 좋았던 추억이 되었다고 저한테 수고했고 감사하다고 격려문자도 쇄도했습니다.
서울학우들이 문화적소양이 함량 미달이라구요? 저렇게 이해불가 언행을 보여온 최경식회장과 이용찬대표는 어떻습니까? 문화적소양이 함량 초과입니까?
서울학생회에서는1년에 여러차례 큰 행사를 치르기때문에 행사하나를 성공적으로 하기까지는 임원들이 얼마나 수고하는지...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기에..힘찬 박수도 쳐드렸고...최선을 다해 제가 할수있는 부분은 협조하며 조금이나마 힘이되어 주기위해 수석으로서 서울회장으로서 노력했습니다.
학우여러분~그 결과는 바로 저렇습니다. 아무리 학우들이 칭찬을 해도 혹여 미비한 부분이 뭐였나? 돌이켜보며 짚어봐야 할건데...저런 글에 회장의 역할은 말리고 다독거리고 봉합해서...그동안 학우들이 죽어라 고생한 보람을 보상 받으며 만족해야 하고...우리모두 미비한점을 가슴에 뭍고 박수쳐줄때 좀더 겸손하게 머리숙여야 더욱 빛이날건데... 쪽박으로 쫒겨났다가 대박났니~내년엔 우리도 손님이니~라고 맞장구 치며 비아냥거립니다. 참고로 내년 전국문화제는 서울에서 개최하는데 학생회장이 정식으로 발표문도 써 올리기전 입니다. 기적이나 대박은 바로,
저런 특이한 성품의 두분을 선봉장으로 그 큰행사를 치러내기까지는 전북학우들이 얼마나 고생 하며 해낸 결과일까?...바로 그것이 바로 기적~! 이고 대박~! 인거 같습니다.
그렇게 정중하게 장편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서 문화제 잘 해냈으니 좋은마무리 하자고.. 글과 사진을 내려주라 부탁해도 요지부동으로 무시를 해버리는 태도를 보며..지금5시가 넘는 이 새벽 까지 잠못이루며 4년간 학생회임원으로서..또..서울학생회장을 하면서 이순간 가장 부끄러운 글을 지금 쓰고있는 제 심정은 그누가 매를 때려도 달게 받을 각오로 쓰고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황이 전개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전북학생회의 집행부 두임원때문에 발단 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정말 아름답게 문화제를 마무리해 두고두고 음미하면서 기뻐했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씁쓸해하실 학우님들도 계실겁니다. 저도 많이 많이 가슴이 아프고 참아낼려고 애를 써봤지만 대화가 통하지않고 교양이 통하지 않은 사람과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서울학우들에게 이글을 씁니다만 문화교양학과 수석부회장으로서 혹여 이글을 읽게되실 전국학우님들께도...부끄럽기도 죄송하기도 합니다.
서울학생회장 이춘매 올림. |
이하 댓글,
이춘매(09 제9대학생회장) 12.08.30. 05:54
박성자(09서울) 12.09.01. 01:57
첫댓글 사람이 많이 보이다 보면 각자의 개성과 취미와 그리고 취향이 서로 충돌을 할때가 있다
마더테레샤 수녀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