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아마 이 얼굴일 듯하다. 물론 ‘반듯하고, 날카롭게, 잘생긴’이라는 수식어가 그 앞에 붙겠지만 말이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속 왕눈이의 실사판으로 유명세를 타고 최근 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마인’(극본 백미경, 연출 이나정)을 통해 ‘국민 욕받이’가 된, 배우 이현욱의 이야기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비중에 상관없이 매 작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현욱은 ‘마인’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 재벌들의 그저 그런 이야기 정도로 치부됐던 ‘마인’은 한지용(이현욱) 사망 사건이 벌어지면서 흥미진진한 추리극으로 변모했다.
‘마인’에서 이현욱이 연기한 한지용은 굴지의 재벌 효원가 구성원 중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인물. 국민 배우 서희수(이보영)와 외국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고, 친모를 잃은 제 아들까지 품어준 희수와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이는 한지용이 추구하는 표면적 모습에 불과했다. 그는 서희수 몰래 아들의 생모 이혜진(옥자연)을 집으로 들였고, 제 아들이 두 엄마로부터 완벽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길 바랐다. 비뚤어진 속내는 현금 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 불법 격투기장을 찾아 피 튀기는 싸움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가학적 취미로 드러났다. 그럼 그렇지, 이현욱이 ‘그저 그렇게 흔한, 로맨티시스트’일 리 없을 거라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팬들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대중에게 이현욱의 존재감을 확실히 인식시킨 작품은 역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이하 ‘타지옥’)일 듯하다. 웹툰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이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수의 ‘타지옥’ 원작 팬들은 ‘타찢남’(‘타지옥’을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현욱을 원작 속 캐릭터 왕눈이로 적극 추천했다. 그가 302호 유기혁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과 이후 공개된 극중 모습은 웹툰의 비주얼을 고스란히 3D로 옮긴 듯해 원작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유기혁이 2회 만에 죽음을 맞이하는 반전이 벌어져 시청자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은 아쉬웠지만 '타지옥'은 이현욱의 경력을 고공상승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확실히 했다. 짧은 순간에도 빛난 존재감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이현욱을 주연급 배우 반열에 등극시켰다.
이현욱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랜 무명시절을 보낸 재야의 고수였다. 그의 저력은 2010년 단편영화 ‘가시심장’으로 데뷔한 이후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져온 연기력에 있다. 특히 ‘타지옥’으로 관심을 모은 후에도 그는 쉼 없는 작품 활동으로 매번 다음을 기대케 했다. 다이아몬드는 어디에서도 빛나고, ‘본업’을 잘하면 언제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그가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2021년은 이현욱의 배우 인생에 있어 최고의 한 해가 아닐까 싶다. ‘마인’에 앞서 방송된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통해 연초부터 시청자와 만났기 때문이다. 극 중 뛰어난 머리를 십 분 살려 브랜드를 성장시킨 엘리트 팀장 이재신을 연기한 그는 사랑하는 여자(원진아)와 제게 부와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여자(이주빈)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놓지 못하는 얄미운 면모로 정말이지 매를 벌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모든 걸 알고도 그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는 원진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 사연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처연한 눈빛을 보내는 이현욱의 비주얼에 무장해제되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며 설득당했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핑계로 친구의 배경에 기대 안주하려는, 아주 ' 나아쁜 남자'였다는 건 자명하지만, 종국엔 각성하고 ‘나’를 찾은 이재신의 결말은 박수를 받았다.
그의 최근작들을 살펴보면 드라마 ‘써치’ ‘모범형사’, 영화 ‘살아있다’ 등 장르물이 주를 이룬다. 이 배경에는 앞서 짚었던 그의 얼굴에 담긴 서늘함이 있다. 정확히는 바탕이 되는 연기력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에 있다.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만 알고 보니 착한 사람, 착한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무서운 비밀을 간직한 인물, 어느 캐릭터 하나 어색함 없이 소화하는 '천생 배우'다.
어머니 친구 아들이 보조출연으로 TV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가만히 서 있어도 찬바람을 끌어올 듯한 이현욱의 외모와는 상반된 연기를 시작한 엉뚱한 이유, 그래서 들여다본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작품을 통해 만났던 이현욱과는 180도 다른 그가 살고 있었다.
특히 ‘마인’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한지용에 대한 시청자의 원성이 높아지자 이현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죄송합니다. 외출금지” “감독님이 예언하신 대로 전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야호”라고 적어 웃음을 선사했다. 극중 한지용의 죽음이 밝혀진 이후에는 “저 죽었는데 왜 자꾸 욕해요. 욕한 김에 내일도 봐주세요”라는 반응으로 재미와 드라마 홍보 효과를 동시에 누렸다. 종영 후에는 “과분한 관심과 사랑과 욕을 먹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으로(쓰레기 아닌) 만나요”라는 재치 있는 종영 인사와 함께 “이제 욕은 그만해 주세요, 저희 어머니 인스타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드라마 속 빌런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매력으로 또 한번 빠져들게 만드는 마성이 그곳에 있었다.
이보다 더 나쁜 인물일 수 없는 캐릭터를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히 소화하는 연기력. 악역을 연기하면 길에서 소금을 맞았다던 옛날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온라인 세상이 발달한 지금은 소금과 등짝 스매싱이 캐릭터를 향한 악플로 변모했다. 어쩌면 평생에 들어야 할 나쁜 말을 올해 반 이상은 듣지 않았을까 싶은 이현욱이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나쁜)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든다.
출처 - 아이즈 https://www.ize.co.kr/articleView.html?no=202106301032721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