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기견과 디스토피아
민병식
출근하는 길, 건물 로비 앞에서 왠 강아지 두마리가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반색을 하며 내게 달려든다. 길을 지나가다가 주인과 산책하는 보통의 강아지들을 비롯하여 대개는 아는 체를 해도 경계를 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 들은 일면식도 없는 내게 달려와 앞발을 들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엄청 치댄다. 목줄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현관문을 열어야 들어갈텐데 이 녀석 들이 틈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따돌린 후에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한 녀석이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
계속멍멍 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사라진다. 알고보니 넓은 마당과 잔디가 있는 뒷 건물에 자신 들의 터를 잡았다. 개구멍을 통해 우리 건물 쪽으로 온 것이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분께 물어보니 자신도 모르는 개란다. 하루전에 갑자기 뜰로 들어와 안나가고 자리를 잡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것으로 봐서 혹시 누가 잃어버린건 아닌가 해서 놔두었다가 여기 저기 변을보고 짖는 소리때문에 시끄러워 유기견 보호센터에 신고를 했고 곧 데려간다고 한다.
이제 갓 3, 4개월 되었을까. 천방지축 날 뛰지만 사람을 그리 좋아하는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 키우던 아이 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번뜩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회사 뒷쪽에는 높은 산이 있고 가든 같은 음식점들과 아주 긴 산책 코스가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키우기 불편한 누군가 차에 태운뒤 그냥 던져 버리고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들 상태로 봤을 때 유기된지 오래된 것같지는 않고 들개는 더더욱 아니다.먹을 것을 숲 속에 놓아두고 아이 들이 한 눈 파는 사이를 틈타 얼마든지
버리고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 들에게 가봤더니 펜스로 둘러진 농구장 안에 넣어놓았는데 물도 먹을 것도 없다.
'배가 고플텐데 ᆢ'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가 무겁다. 직원 몇몇과 함께 근처 편의점에 갔더니 아이들을 위한 것이 개껌 밖에 없다. 이도 간지러울테니 씹을 것도 필요하고 요기도 되겠다 싶어 마지막 남은 개껌 한 봉지를 사서 나누어준다. 보통의 개일 경우 한참을 먹는 개껌을 순식 간에 먹어치운다. 분명히 몇 끼를 굶었음에 틀림없다. 배고프다고 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음 날, 오전 이녀 석들이 또 우리 회사 앞 데크에서 뛰어 놀고 있다. 천진 난만하고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노는 모습을 보니 잠시나마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침도 못먹었을텐데 ᆢ바나나를 조금 잘라주니 게걸스럽게 먹는다. 하나라도 서로 먹겠다고 아웅다웅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지금 받아먹지 못하면 기회가 없다는 듯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오후부터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 어제 관리인 말대로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데려갔을 것이다. 노령견도 아니고 이제 갓 삶을 시작하려는 나이, 덩치가 순식간에 커지는 탓에 실내견으로는 어려워도 시골이나 교외에서 마당견으로 살면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 아이들이 입앙되지 않으면 안락사로 삶을 마무리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아마 믹스견이어서 입양될 확률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던 강아지 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안되었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쩌면 나 또한 힘없는 아이 들을 보고도 불쌍하다는동정과 약간의 먹을 것은 던져주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으로 무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유기는 꼭 사람과 동물사이에서
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미움과 폭력, 속임수 등으로 신뢰를 버리고 인간다움을 버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인간성의 유기를 생산하고 있지 않나.
아름다운 세상은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 유기견 센터에 봉사를 가는 사람, 순종이든 잡종이든 버려진 강아지의 생명을 존중하고 키우는 사람,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병들었다고 내치지 않는 사람, 이런 연민과 사랑의 마음들이 모여 강자가 약자를 유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유기하지 않는 공존의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인간으로써 당연히 해야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놀라운 것으로 치부되는, 인간다움이 점점 줄어드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