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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谷思想의 理解-敎育思想을 中心으로
율곡의 생애
율곡은 중종 31년(1536) 음력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지금은 강릉시 죽헌동)의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현룡, 이름은 11세 때 珥로 개명함, 자는 숙헌, 호는 율곡․석담․우제이다.
3세때 글을 알았으며 한시를 지었다. 4세 때에는《사략》을 배우다가 향선생의 그릇 가르치는 구두를 지적하여 정정했다. 5세 때에는 어머니의 병이 극심하자 외조부 사당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또 큰 비가 내려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크게 걱정하였다. 6세 떼에 서울 수진방(지금의 수송동과 청진동)이 아버지 본가로 올라와 10년 살았고, 16때는 삼청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7세 때에는 文理가 통하여 4서를 비롯한 경전들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경지에이르렀다. 그래서 신동이라 일컬어졌다. <진복창전>을 지었다. 8세 때는 부모를 따라 임진강가 지금의 화석정이 있는 파주군 파평면 율곡3리 율곡마을로 옮겼다. 그의 호도 여기서 유래한다.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 시>를 지었다. 9세때에는 《이륜행실도》를 읽다가 9세동거의 대목을 읽고 모든 형재가 부모를 받들고 함께 사는 그림을 그리어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간의 우애를 표현하였다. 10세 때에는 <경포대부>를 지었고, 11세 때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팔뚝을 물어 피를 내어 아버지의 입에 넣어드렸다.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는 소생하게 되었는데 꿈에 신선이 이르기를 이름을 바꾸라 하여 珥로 개명하였다. 13세 때에는 진사 초시에 大科 이상의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16세때 아버지를 따라 출장갔다가 돌아오니 사임당의 부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를 경기도 파주 동문리 자운산 기슭에 장사지내고 3년상을 지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서모 권씨의 횡포로 인해 고통에 시달려 18세 때는 봉은사에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참선을 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채 20세에 하산하여 유학에 전심한다. 이에 앞서 19세에 우계 성혼과 교분을 맺었다. 21세에 한성시에 수석으로 합격한다. 23세때에 5세 아래인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한다. 강릉 외가로 가는 도중 예안의 퇴계 이황(당시 58세)를 만나 담론한다. 이틀은 묵으면서 주경공부와 격물설과 주자의 존양성찰과《성학십도》에 관하여 서로 강론하였다. 강릉에서 돌아와 겨울 별시에서 당시 고시관도 놀란 <천도책>을 지어 장원하였다. 26세 5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합장한 후 3년상을 치룬다. 29세(명종 19, 1564)때 문과에 장원하고, 8월 명경과에 장원 급제한다. 13세 진사 초시부터 아홉 차례의 온갖 시험에 장원하니 구도장원공이라 불렀다. 29세 때 첫 벼슬인 호조좌랑으로 출사했다. 30세에 예조좌랑, 11월에 사간원 정언이 되고 , 31세 때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時務三事를 제시한다. 31세 이조좌랑이 되고 32세까지 기대승과 더불어《대학》의 지선과 명덕에 관하여 당당하고 명쾌한 논변을 전개한다. 33세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간다. 33세에《명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이 해 5월에는 성혼과 지선과 중 또는 안자의 격물치지, 성의정심설에 대하여 논하였다. 34세 떼는 홍문관 교리로서 독서당에서 <동호문답>이라는 글을 지었다. 36세 때에는 벼슬을 버리고 해주로 돌아갔다. 6월에 청주목사로 되어 향약을 지어 주민의 자치능력을 기르고자 하였다. 37세 병으로 사직하고 서울로 올라온다. 38세 되던 해 벼슬에 임명하나 병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39세에 우부승지에 임명되고 <만언봉사>를 지었다. 10월에는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 지방 행정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낡은 정사를 없애고 전적으로 학교를 세우며, 교화를 숭상하고 백성의 근본을 덜어주려고 군정을 닦으며, 착한 일하는 사람은 포상해 주고, 악한 짓하는 사람에게는 깨우쳐 주었다. 40세 홍문관 부제학으로 <성학집요>를 편찬해 올린다. 41세 10월에는 황해도 석담으로 돌아가 청계당을 짓고, 42세에는 일가 친척들을 모아 동거동락하였다. 42세 <격몽요결>을 완성하였다. 43세에 은병정사를 지으니, 여기에 원근의 학도가 모여들었다. 44세에는 <소학집주>.가 이루어졌다. 45세에 <기자실기>를 편찬하고, 조광조의 묘지명을 지었다. 46에는 사헌부 대사헌, 호조판서에 임명되었다. 46세에 경연에 나가 경사제를 설치할 것을 청했다. 47세 이조판서로 이명되고 <인심도실설>, <진시폐소>, <학교모범>을 지어 올리니 모두 왕명이었다. 47세에 형조, 병조판서를 차례로 임명된다. 48세 4월에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48세에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간다.
임종이 거의 가까와 질 무렵 송강 정철이 병문안 왔을 때 사람을 쓰는데 편당을 두지말것을 당부한다. 49세 되던 1월 16일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집안에 모아놓은 재산이 없어 다른 이의 수의들 얻어다 엽습을 해야 했다. 선조는 조회를 3일간 보지 않았으며 인조 2년(1624)에 시호를 文成이라 내리고 숙종 8년에 문묘에 배향하였다. 율곡은 제자들에 의하여 동방의 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1615년(광해군 7)에는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에 율곡을 제사지내기 위하여 자원서원을 세웠다. 자운서원은 6․25때 파괴되었던 것을 1969에 복원한 것이다.
본처인 노씨 부인에게는 손이 없었고, 두 측실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맏아들은 경림으로 율곡의 나이 39세때 낳았고, 둘째 아들은 경정으로 율곡이 44세 때 낳았다. 율곡이 별세하던 해에는 11세, 6세의 어린이들이었다. 딸은 뒷날 신독재 김집의 소실이 되었다.
율곡의 학우에는 성혼이 있었고, 그의 문하에는 조선, 김장생 등이 있었다. <율곡전서>와 <퇴계집>은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져간 것을 계기로 하여, 그들 주자학의 시초를 이루었다.
율곡의 저작내용과 교과서
1. 율곡전서의 편찬과 초기저작
이황의 <성학십도>가 敬사상을 중심으로 한 자기수렴적․주체적․구심적 학문경향을 볼 수 있다면 율곡의 <성학집요>는 퇴계에 의하여 확인된 주체적 진리를 바탕에 깔고, 어떻게 그것을 가정과 인류사회에 확충하여갈 것인가를 주제로 하였다.
처음에 문집과 전집 두 종류가 있었다. 문집은 율곡의 문인 박여룡 등이 성혼과 상의하여 율곡의 사후 27년 후인 1611년(광해군 3)에 편집하였는데 박지화가 뽑은 시집도 약간 들어 있다. 시집 1권, 문집 9권 등 모두 7책으로 해주에서 출판되었으나, 후에 또 박세채가 편찬한 <속집> 4권․<외집> 4권․<별집> 2권을 추가로 편찬하여 1682년(숙종 8)경에 목판으로 간행했다. <전서>는 1744년(영조 20)에 도암 이재(李縡)가 율곡의 5대손인 이진오와 상의하여 원집에 속집․외집․별집을 합편한 외에 <격몽요결>․<성학집요> 가타 <어록>등을 수록하여 <율곡전서>라고 이름하고. 모두 38권으로 편성되었다. 1749년에는 활자로 간행하였다. 그 후 拾遺 6권이 추가로 편찬되었다. <연보>와 <행장>은 38권의 <제가기술잡록>과 함께 율곡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전서의 내용을 크게 분류하면 철학․교육․政經․史傳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철학․교육방면은 <격몽요결>․<학교모범>․<성학집요>․<은병정사 학규>․<은병정사 약속>․<示精舍學徒>․<사단칠정론>․<人心道心圖說>등과 교서(성혼, 안응휴, 박화숙 등과의 왕복 서한)․시문․祭文․묘지명이고 정치경제 방면-<동호문답>․<만언봉사>․<경연일기> 등과 疏箚1)에 있고 사전은 <경연일기>등에 실려 있다.
< 自警文 >
율곡은 16세 때, 뜻밖에 어머니상을 당한 이후로 정신적 변화가 생겼다. 그는 어머니상에서 받은 충격과 불교의 개심견성에 관심을 가졌던 일과 묘막생활에서 얻은 선적 심경으로 인하여, 드디어 19세에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교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불교연구중 勿作增感想이라는 말에 의심하여 불교의 그듯됨을 깨달고 다시 유학으로 돌아왔다. 오죽헌에 가서 그는 <자경문>을 써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성인의 학문을 닦는 것으로써 목적을 세웠던 것이다.
< 천도책 >
이 천도책은 천지만상의 자연이치와 정치를 관련하여 출제한 별시문과 과거답안으로 기술한 명논문이다. 당시 시험관 정사룡, 양응정 등은 2,500자에 달하는 책문을 보고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우리들은 여러 날 애써서 생각하던 끝에 비로소 이 ’문제‘를 구상하여 냈는데, 율곡은 짧은 시간에 쓴 대책이 이와 같으니 , 참으로 천재이다.“ 이 글은 음양이라는 氣의 작용으로 천지의 조화를 설명한 것이니, 율곡의 자연철학에 관한 근본사상이 여기에서 전개되었다. 율곡은 천지의 조화를 아래와 같이 氣化理乘으로 본다.
만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기)일 따름이다. 이 기가 動하면 양이 되고 靜하면 음이 된다. 한 번 은 동하고 한 번은 정함은 기요, 동케 하고 정케 하는 것은 理이다.
율곡의 이기론, 즉 성리학의 독특한 입장이 여기에 드러나 있는 것이며, 후일 율곡의 사상은 이것을 보다 심화시킨 것이다. 우주를 氣化理乘으로 보기에 그의 심성론도 氣發理乘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퇴계의 理氣互發說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 천도책은 리기론에 입각한 우주관이며 또 천인합일설이다. 나중에 명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 東湖問答 >
율곡이 34세(1569, 선조 2) 되던 해 9월 홍문관 교리로 동호독서당에서 賜暇독서하면서 지은 것이다. 이 <동호문답>은 새로 등극한 선조를 위하여 올린 글인데, 그 요지는 왕도정치를 금일에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경륜과 포부를 명쾌하게 논술했다. 그 내용은 가상적으로 문답하는 주객 문답체로서 먼저 치란의 도를 술하여 왕도정치와 패도정치이 구별을 논하고 君道와 臣道의 이상을 말하여 선조에게 三代지치를 지향할 것을 진술한 뒤, 그 실현방법으로서 먼저 시세를 논하고, 구체적으로 시책을 진술하였다. 율곡은 이 책에서 眞儒는 入言(저술)垂後(교육)를 하는 사람이라고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른바 진유라는 것은 나아가서는 일세에 도를 행하여 이 백성으로 하여금 태평을 누리게 하고, 물러 나서는 가르침을 주어 학자로 하여금 큰 꿈을 깨치게 하는 것이니, 나아가 도를 행함이 없고 물러나 교를 줌이 없다면 비록 진유라 할지라도 나는 민지 않는다.
< 四端七情論 >
율곡과 우계 성혼은 평상시에 경학이나 도학과 관련하여 문답하는 서한을 교환하였는데 성리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율곡이 37세(선조 5)가 되던 해이다. 1년 사이에 9회에 거쳐 주고 받았다. 대체로 우계가 당시이 주류인 퇴계의 이기설을 채택할 것인지의 여부를 질의하고 율곡이 회답하는 것으로 되어있어 율곡의 철학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계의 리기호발설에 대한 재론으로 인하여 율곡은 퇴계는 물론, 서경덕, 라흠순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경전의 본의와 송대 여려 유학자의 성리설을 집약적으로 논술했다.
퇴계에 있어서 이발과 기발, 사단과 칠정, 그리고 도심과 인심은 각각 순수한 정신적 가치와 신체적․물질적 욕구의 두 방향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리기는 왕과 신하의 관계에 있는 것이요, 인심은 항상 도심의 명령을 순종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전도된 상테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도덕성의 방기를 가져오며, 사회적으로는 윤리의 파멸과 정치의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요, 기는 리의 타(승)는 곳이다. 여기서 승한다는 것은 타고 부린다는 뜻이다. 이것을 비유한다면 사람이 말을 타고 부리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써 人乘馬 즉 理乘氣이다. 또 기가 아니면 능히 발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하게 하는 것이 없다.“ 즉 발돌하는 자체는 기요, 그 발동하게 하는 것은 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칠론이나 인심도심설에 대한 해석도 이원적인 논의와 다르다. 사칠론에 있어서도 사단(측은․수오․사양․시비)이란 칠정 중의 善者일 뿐이며, 칠정(喜․怒․哀․懼․愛․惡․欲)이라 하여 形氣에 속한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율곡에 의하면 본연지성 또한 기질지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리와 기는 논리적으로 구별하는 것이지, 사실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퇴계에 있어서 사단이 기발이라 함은 용납되지 않는다. 리기는 선후와 이합이 없는 것이다.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소이는 ‘리’라고 한다.
< 萬言封事 >
율곡이 39세(1574, 선조7)가 되던 1월에 왕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재해로 인하여 구언하는 왕의 교지에 응하여 올린 것인데, 1만자에 달한다 하여 이렇게 불리워진다. 만언은 장문의 상소라는 뜻이고, 봉사는 남이 볼 수 없도록 밀봉한 상소를 말한다. 대략 일만어를 초과할 때, 보통 상소와는 다른 봉사라 한다. 이 글에는 16세기의 사회상황을 잘 엿볼 수 있다.
율곡의 후기저작
< 聖學輯要 >
성학이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과 성왕이 되기 위한 학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40세(1575, 선조 8)되던 해 9월에 이 책을 편찬해 올리니, 이는 군왕의 도를 상술한 것이다. 이는 경․사․자․집에서 유학의 요지를 간추려 편찬한 책으로서, 그 내용은 제1편 통설, 제2편 수기, 제3편 正家, 제4편 爲政, 제5편 성현도통의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성학집요>는 율곡의 사상과 경륜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저서이며, 또한 동양에서 유학의 근본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집약한 유학사상의 중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율곡의 성학집요는 유학을 공부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자기 완성을 이루고, 다시 가정․사회․국가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이념적 지표를 간결하게 편집하였다. 그 골격은 유교이 입문서라 할 수 있는《대학》을 성리학의 입장에서 풀이한 것으로 정평이 있는 《대학연의》로 삼아 차례를 정하고, 사서오경과 성현의 말을 인용 참고하여 고증 설명하고 있다. 율곡은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3대의 정치도 부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주로 4서5경에서 수기치인에 관련된 글을 뽑아서 편장을 나누어 분류하고 송나라 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여 해석을 하고 자기의 글을 按語로써 첨부했다.
성학집요에서 율곡은 성학의 최종목표를 선정에 두고 있다. <성학집요>는 인군에게 있어서나 범부에게 있어서나 그 마음의 총명을 밝혀주는 등불이라 할 것이다. 이같이 <성학집요>는 유학을 공부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요긴한 경사이 요처와 학문 및 정사에 필요한 것이 망라되어 있으므로, 율곡의 학통을 전승한 기호학파에서는 물론이며, 학계를 달리한 학자들까지도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조선시대에 <격몽요결>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혔던 책이다.
이 <성학집요>는 제왕학의 요체이기에 제왕의 학문에서는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고, 제왕의 치인을 위해서는 성심으로 용현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점에서 <성학집요>는 설총의《화왕계》, 퇴계의 《성학십도》와 그 사상적 지주를 같이 하고 있다.
< 사서율곡언해 >
이 책은 율곡이 41세 되던 해 임금의 명으로 지어 바친 것이다. 이는 활자본이다. 사서오경의 언해를 지어바치라 명하였으나 사서언해만 지어바쳤다. 관본 사서언해보다 구절의 끊음과 해석음의의 정확함이 관본보다 뛰어나다고 높이 평가받았다. 이 책은 영조 25년에 이르러서야 교서관의 활자를 얻어 간행하게 되었으니 율곡이 죽은지 166년만이었다. 현재 규장각 도서에 있으며, 1973년 성균관대학교의 영인 간행에 이어 1984년 홍문각에서 영인한 바 있다.
< 小學集註 >
43세되던 해인 선조 1년(1578)에 완성되었다. <소학>은 8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배우던 수신서이다. 주자의 제자 劉子澄이 주자의 지시에 따라 여러 경전에서 어린이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일상생활의 범절과 수양을 위한 격언과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율곡은 “소학은 초학의 급무인데 제가의 주해가 잡다하여 그릇된 것이 많다”고 하여, 모든 학설을 집합하여 이것을 절충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충하였다. 이책은 뒷날 현종 7년(1666)까지 널리 읽혀져 왔다는 사실이 <현종실록>에 실려 있다.
율곡은 그후 그의 <격몽요결>․<학교모범> 독서장에서도 글읽는 순서는 <소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감안국이 한글로 번역한 <소학언해>가 민간에 보급되었으며, 박재형이 <소학>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유현들과 충신․효자․열부의 사례를 첨가하여 <해동소학>을 간행하기도 했다.
< 은병정사 규속 >
내용을 살펴보면 도는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누구나 성현을 표준으로 하여 학도들은 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며, 또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세심한 주의를 가지도록 노력하며, 특히 의관은 반드시 올바르게 하고, 바른 자세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 高山九曲歌 >
43세 때 해주 석담에 은거할 때 수양산에 들어가 그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모두 9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지었다고 하나, 서로 내용을 검토해보면 단순한 모방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퇴계의 연시조 <도산십이곡>과도 비교되는 것으로, 오히려 문학적 형상과 자연발견의 아름다움이 더 뛰어난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이 작품은 17세기에 와서 기호학파의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적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한역되기도 했고 자연소재의 많은 한시가 창작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율곡은 그외에도 <자경별곡>, <낙지가>등도 이무렵에 지었을 것이다.
< 擊蒙要訣 >
42세에 12월에 지었다. 이 글은 학자의 도학의 입문을 지시한 것이다. 전체 내용은 입지, 혁구습, 지신, 독서, 사친, 상제, 제례 가신, 안입,. 처세 등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가운데서 입지, 지신, 사친, 거가, 접인 같은 장은 오늘날의 교육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여기서 율곡이 특히 강조한 것은 입지이다.
이같이 <격몽요결>은 초학자를 위한 교육입문서로서, 율곡이 일생동안 품어오고 또 주장하여 온 교육관을 유감없이 토로하면서,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음을 깨우쳐 준 명저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조선시대이 초학자는 물론, 사림 일반이 읽어야 할 책으로서 일반에게 널리 퍼졌던 것이다. 그 후, 이 책은 인조 때 각 군․현의 향교에까지 널리보급되었다.
< 어록 >
< 箕子實記 >
< 學校模範 >
율곡 당시의 교육기관은 공부와 행실보다는 허명만을 좋아하는 풍조였다. 이 책은 율곡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47세(1582, 선조 15) 교육훈규이다. 당시 청소년의 교육을 쇄신하기 위한 것으로 학령의 미비한 점을 보충하였다. 후술하여 살펴보겠다.
< 小兒須知 >
율곡이 아동 교육이 지침 또는 학규를 엮은 것이다. 학교모범 16조는 성인교육을 위한 규범이거니와, 소학학규를 위해 17조를 지었다. 이 17조이 학규를 실천시킴에 있어 세번 그릇됨이 있으면 벌을 주고 한 번이라도 중하면 또한 벌을 주었다.
<人心道心圖說>
이는 이기로 밝힌 인성을 논한 것으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 중에 제일 근본 문제인 마음이 닦음을 위하여 밝힌 명쾌한 철학적 수상집이다. 즉 인심도심설은 유학의 심성론에서 심의 양면성에 관한 학설이다. 우계 성혼과 처음 인심도심 논쟁이 시작된지 10년후 그가 죽기 2년전 47세 때인 선조 15년(1582) 7월에 율곡은 <인심도심도설>을 지어 인심도심에 관한 자신의 학설을 정리하고 있다.
그에의하면 사단은 도심과 인심의 선한 것이요, 칠정은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의 총명인 것이다. 즉 사단을 포함한 칠정이 외부로 발할 때에 사단이 주가 되고, 칠정이 종이 되면 그것이 바로 도심이요, 칠정이 주가 되고 사단이 종이 되면 그것이 바로 인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수양에 따라 도심이 인심이 되기도 하고, 인심이 도심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인심도실설>은 율곡의 서거 1년전의 저술로 그의 성리론을 최종으로 정리한 역저이다.
. 초등과정 교재-격몽요결
<격몽요결>은 1577(선조 10)에 율곡이 일반학도들에게 도학의 입문을 지시하기 위해 저술한 것으로, 2권 1책이며 인본이다. 이 책은 덕행과 지식의 함양을 위한 초등과정의 교재로 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번 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학자들에게 <천자문>․<동몽선습>에 이어서 널리 읽힌 책으로 되어있다. 격몽은 몽매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서문에 의하면 율곡이 해주의 은병정사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초학이 향방을 정하지 못하여 귿은 뜻이 없는 제자들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책을 지었다고 하였다. 본문은 입지에서 부터 처세 등 10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 입지-처음 배우는 이가 먼저 뜻을 세워서 스스로 성인이 될 것을 기약하고 스스로 작게 여겨 물러 가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것을 강조했다.
2장 혁구습-학문에 뜻을 두어도 성취가 미약한 것은 구습이 있기 때문이므로 구습의 종류를 여덟 가지 를 둘고 있다.
3장 지신-九容으로 몸과 마음을 지키고, 九思로써 학문을 진취시키는 뜻을 세울 것을 강조하였다. 구용 이란 걸음걸이는 무겁게 하라, 손가짐을 공손히 하라, 눈가림을 단정히 하라, 입은 조용히 가 져라, 말소리는 조용히 하라, 머리 가짐은 항상 곧게 하라, 숨쉬기를 정숙히 하라, 설 때는 덕 스럽게 하라, 얼굴 모습은 장엄하게 하라는 것이다. 구사란 초명스럽게 할 것, 안색은 온화하 게 할 것, 모습은 공손히 할 것, 말하는 데는 충을 생각할 것, 일하는 데는 경건히 생각할 것, 의문이 있을 때는 물을 것, 성나는 것은 참아야 할 것, 보고서 합당한 연후에야 얻을 것 등.
4장 독서-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먼저 독서를 해야 하며, 독서를 하되 반드시 책 한 권을 선택, 숙독하여 완전히 통달할 것, 다독을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다. 책을 읽는 순서는
↓소학-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웃어른에게 순종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 과 친해지는 도리를 음미하며, 힘써 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대학 및 혹문-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이치와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배우며
↓논어-仁을 구하고 자신을 위한 학문의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를 익히라고 하였다.
↓맹자-의리를 밝게 분별하여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설을 밝게 살피며,
↓중용-性情이 덕과 位育이 묘를 음미할 것을 권하였다.
↓시경-성정의 그릇됨과 올바름, 선악을 가려 표창할 것과 경계할 것을 분명히 하며
↓예경-하늘이 이치 가운데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궁구하여 분명히 뜻을 간직 할 것
↓서경-역대 중국의 성왕이 천하를 다스린 경륜과 대법의 요령을 얻고, 그 근본을 소급해서 구할 것을 가르쳤다.
↓주역-길흉․존망․진퇴․성쇠이 기미를 관찰, 음미할 것
↓춘추-착한 것은 상을 주고 악한 것은 벌하며, 어떤 이는 억누르고 어떤 이는 높여주는 화법과 심오한 뜻의 깨달음을 가르쳤다.
↓그 밖에 선현이 지은 책과 성리학설
5장 사친- 효도의 당위성을 강조하여 잠시도 효를 잊지 말것을 밝히고 있다.
6장 상제-“죽음을 보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큰 마디이다. 여기에 그 정성을 쏟지 않는다면 어디에 그 정성을 쏟겠는가?”라고 하였다. 스승의 상례에는 스승은 그 정과 의리의 깊고 얕음에 따라서 심사을 3년, 9,5,3개월간 할 것이요, 벗의 상례는 평소에 가장 교분이 깊다 하여도 3개월을 지나지 못한다고 했다. 심상이란 스승이 돌아가면 제자가 상복은 입지 않으나 마음으로 복을 입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제지간이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7장 제례-제사는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위주로 할 뿐이다. 재산의 규모에 따라 하고, 병이 있으면 제 근력을 헤아려서 제사를 드릴 것이며, 재력이 미치는 자는 마땅히 예법대로 행하여야 함
8장 거가-부부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집안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군자는 도를 걱정할 뿐이요, 춥고, 배고픈 것을 면할 정도만 할 뿐이요, 재물을 모아서 풍족할 생각은 해서는 안된다.
9잡 접인-부드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접대할 것과 학문을 믿고 스스로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벗을 택하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숙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하라고 했다. 함께 거처하면서 규계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나이 결함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에 게으르고 희롱을 좋아하며 부드럽고 아첨을 하여 곧지 못한 자라면 사귀어서 아니될 것을 말하고 있다. 절하는 예도 실려 있다.
10장 처세-벼슬을 위해 학문하지 말것을 강조하고 있다.
. 조선시대 국민교육헌장-학교모범
<학교모범>은 율곡이 1582년(선조 15)에 왕명에 의하여 지은 교육훈규 16조이다. 이는 당시 청소년의 교육을 쇄신하기 위한 것으로서 학령의 미비한 점을 보충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균관 <태학지>에까지 기재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있어 일종의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 책은 학교생활 뿐만 아니라 가정 및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준칙까지 제시되어 있다.
①뜻을 세움(立志)- 학문을 배우려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 도로써 자임할 것을 강조하였다.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닌데 사람이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 만 가지 선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 있기 때문에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옛 성인을 위해서 絶學을 계승하고 온 세상을 위해서 태평을 열어 주기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②몸가짐(檢身)-배우는 자신 한 번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운 이상에는 반드시 구습을 씻어 버리고 오로지 학문을 지향하여 몸가짐과 행위를 검속하여야 한다고 했다. 즉 일상생활에는 밤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의관을 정숙하게, 용모는 장중하게, 보고 들음은 단정하게, 거처는 공경하게, 걸음걸이는 똑바르게, 음식은 절제있게, 글씨는 조심성 있게, 책상은 가리절하게, 서재는 깨끗이 해야 한다.
③글읽기(讀書)-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얼굴을 정숙하게 가지고 단정히 앉아서 뜻을 한결같이 하여 한 가지 글이 익숙해진 다음에 비로소 다른 글을 읽을 것이며 많이 보기만 힘쓰지 말고 글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글읽는 순서는 소학을 먼저 배워 근본을 배양하고 다음에는 대학과 근사록으로써 그 규모를 정하고 그 다음에는 오경을 읽고 사기와 선현의 성리서를 간간이 읽어 뜻을 넓히고 식견을 정밀히 해야 함을 밝혔고 성인이 짓지 않는 글은 읽지 말고 무익한 글을 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글읽는 중 여가에는 거문고․활쏘기․투호 등의 놀이는 좋으나 장기․바둑 등 잡희는 공부에 방해가 되니 가까이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④말을 삼가는 것(愼言)-배우는 자가 선비이 행지를 닦으려면 모름지기 언어를 삼가야 한다. 말은 반드시 정성스럽고 믿음직스럽게 해서 때맞추어 말하고 긍정이나 허락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목소리는 조용하고 엄숙히 하고 익살이나 지껄임을 말아야 한다. 다만 문자와 이치에 유익한 말만 하고, 허황된 귀신의 이야기나 거리의 상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리들과 잡답으로 날을 노내거나, 시대이 정치를 함부로 논란하거나, 남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은 모두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니 일체 조심해야 한다.
⑤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存心)-마음을 닦으려면 안으로 마음을 바로 잡아서 외물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만 마음이 태연하여 여러 가지 사특함이 물러나고 진실한 덕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먼저 할 일은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본연의 자세로 양성하여, 조용스런 가운데서 흐트러지지도 않고 사리에 어둡지도 않음으로써 종요로운 근본을 세월 것을 말하고 있다.
⑥어버이를 섬김(事親)-선비의 온갖 행실에서 효도와 우애가 근본이요, 죄목 3천가지에 불효가 제일 큰 것이다. 그러기에 어버이를 섬기는 이는 모름지기 공경을 극진히 하여 어른의 명을 순순히 좇는 예를 다하고, 즐거움을 다하여 음식의 봉양을 드리고, 병환에는 극진한 근심으로 의약의 치료를 다하고, 상사에는 지극한 슬픔으로 마지막 이별의 도를 다할 것이요, 제사이 행사에는 엄숙함으로 추모의 성의를 다하라고 하였다. 겨울에는 따스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아침 저녁으로 보살펴 드림과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알리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옵는 것을 모두 성인의 교훈에 좇지 않음이 없게 하고, 부모가 만일에 잘못이 있을 때에는 성의를 다하고 진실을 다하여 간하고 말리어 점차로 도리를 깨닫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⑦스승을 섬김(事師)-배우는 자가 성심으로 도에 지향한다면 모름지기 스승 섬기는 도리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임금․스승․아버지는 섬기기를 같이 하는 것이니,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으랴 만일 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조용히 질문하여 그 득실을 분별할 것이요, 곧 자기의 사견으로써 스승을 비난하지 말 것이다. 또는 옳은 도리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스승의 말만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옳지 못한 것이다. 봉양에 대해서는 힘에 따라 성의를 극진히 하여 제자의 직분을 다하라고 하였다.
⑧벗을 택함(擇友)-도를 전해받고 의혹을 해결하는 데는 스승에게 힘입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나, 서로 의뢰하여 인을 돕는 것은 진실로 벗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모름지기 충성과 신이, 효도와 우애, 강직하고 방정하며, 돈독한 선비를 선택하여 교우를 정하여 허물이 있으면 서로 경계하고 선행으로써 서로 권하고 충고하여 덕행을 닦음으로써 벗의 인륜을 다할 것이다. 만일 뜻을 세움이 돈독하지 못하고, 자유이 절제가 엄밀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님과 즐겁게 노는 것만 좋아하고 말이나 기운만 숭상하는 자는 모두 벗으로 사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⑨가정생활(居家) -배우는 자가 이미 심신을 닦았으면 모름지기 가정에서 윤리를 다하여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여 한 몸같이 보며,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양순하여 예를 잃지 말며, 의로운 방법으로써 자녀를 교육하되 애정으로 총명을 현혹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아랫사람(하인)을 통솔하는 데는 엄숙함을 주로 하되, 관대한 용서를 행하여 굶주림과 추위에 대한 사정을 살펴 생각하고 아랫사람에게 정연하고 엄숙하며 안팎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⑩사람을 접함(接人)-가정을 바로잡았으면 사람 접하는 데까지 미루어 예의를 준수하여, 어른을 공손히 섬기되 어린이는 자애로써 어루만져 주어야 하고, 가족들에게는 돈독하고 화목하며, 이웃마을을 잘 사귀어 환심을 얻어야 하고, 매양 덕과 학업을 서로 권장하고 허물은 서로 경계하며, 예의의 풍속을 서로 성취시키고, 어려운 일은 서로 구훌하여 남을 건져주고 항상 남을 이롭게 할 생각을 가져야 하되, 남을 해치는 생각은 털끝만지치라도 마음 속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⑪과거에 응하는 것(應擧)-과거의 급제는 비록 뜻있는 선비의 애써서 구할 바 아니나. 요즈음에는 그것이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 되어 있으니, 만일 도학에 온 마음을 쏟아서, 나아가고 물러남을 예의로 하는 이는 과거를 숭상할 까닭이 없지마는 국가의 부름으로 과거에 응하게 되면 또한 마땅히 성심으로써 공을 이룰 것이요, 날짜만 낭비하여서는 아니된다.
⑫의를 지킴(守義)-배우는 자는 무엇보다도 義와 利이 분별을 밝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의란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⑬충직함을 숭상함(尙忠)-충직하고 순후함과 기개와 절조는 서로 표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예의에 관한 학문을 밝힘으로써 웃사람을 높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했다.
⑭공경을 돈독히 함(篤敬)-배우는 자의 덕에 나아감과 공부는 오직 공경을 돈독히 하는 데 있으니, 모름지기 표리가 한결같이 되어 조금도 그침이 없어야 한다고 보았다. 율곡에 의하면, 말에는 가르침이 있고 움직임에는 법도가 있으며, 낮에는 하는 것이 있고 밤에는 얻는 것이 있으며, 눈 한 번 깜짝하는 동안에도 보존하는 것이 있고,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양성하는 것이 있어서, 공부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계속하되 그 효과는 구하지 말고, 오직 날마다 쉬지 않고 힘쓰다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 실학이라고 했다.
⑮학교생활(居學)- 학교에서의 행동거지는 令에 의거해야 한다. 만일 스승이 학교에 있으면 읍을 하는 예를 행한 뒤에 질문하여 虛心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늘 잊지 말 것이요, 무익한 글을 물어서 마음과 힘을 낭비해서는 한된다고 했다.
16, 글읽는 방법(讀法)-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학당에 일제히 모여 사당에 배알하고 읍하는 예를 행하며, 예가 끝난 뒤에는 자리를 정하고 掌議가 소리를 높여 白鹿洞敎條 또는 <학교모범>을 한번씩 읽어야 하며, 그리고 나서는 서로 토론하여 실질적 공부로 타일러 힘쓰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율곡은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위 열여섯 가지 조항은 스승․제자․학우 사이에 서로 타일러 힘쓰게 하고 경계하며 명심하여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 <학교모범>은 유교정신에 입각한 당시의 교육목표이자 학교교육이 준칙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전통사회의 교육관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율곡의 철학사상
불교, 도교, 양명학에 대한 이해
조선시대 교육의 관심은 오직 유교-주자학을 근본으로 삼아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송학을 받아들이는 성리학자들은 주자의 진의를 해득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사상은 主理․主氣와 같은 개념을 찾는 데 두었다. 그러나 율곡은 유학만을 연구한 것이 아니다. 불교․도교 등의 사상을 같이 연구했다. 그는 노자․장자의 책을 두루 읽고 <酷言>을 짓기도 했다. 뒤에 <김시습전>을 지은 것도 그의 불교․도교에 관심을 나타내준다.
율곡은 유․불 양교가 다 극처에 가서는 동일한 유심론임을 말했다. “불교에서는 본체를 마음이라 표현하고, 유교에서는 이것을 性, 또는 이라고 했음이 다를 뿐이다”고 했다.
교육적 인간상인 성인에 이르는 길은 <만언봉사>에서 “궁리의 공부는 격물치지이고 거경역행의 공부는 성의정심”이라고 한 바가 있다. 이를 율곡은 <성학집요.>에서는 正心 또는 一心이라고 말했다. 율곡의 독창성이라고 일컬어지는 ‘理通氣局’의 용어가 불교 화엄의 ‘理事’와 ‘通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율곡이 평생 불승의 자취를 보인 김시습을 평하여 “마음은 儒요 자취는 佛”이라고 했다.
율곡이 도교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이해하려 했던 것은 금강산에 머물때 작시한 <도중>에서 처음 보인다. <도덕경>의 사상은 무위자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는 “도는 언제나 무위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의 무위이고, 자연은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율곡은 <도덕경>81장을 40장으로 줄여 <순언>이라는 주석서를 써냈다. 율곡은 노자의 근본적인 입장은 유교의 입장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고, 그런 점들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도가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을 유가사상에 통합시키려고 했다. 즉 도가사상과 유교사상의 일치점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양명학은 명나라의 왕양명(본명은 왕수인)에 의하여 주창된 유학의 한 계통이었다. 왕양명은 송의 육구연과 명의 진헌장의 심학을 계승하고 주자의 격물궁리를 추구하는 주지주의적인 이학과 대립하는 심학을 완성하고 致良知學을 창조했다. 왕양명은 특히 愼獨을 중요시했다. 그는 천리를 보존하는 일과 인욕을 없애는 일이 한 가지로 良知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때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일을 신중히 하는 신독의 공부가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신독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마음에 내재된 인욕, 물욕을 인정하고 그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며, 악을 나누어지는 기미를 마음 속에서 신중하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왕양명의 良知(선악을 구분할 줄 아는 마음)가 바로 천리라는 주장은 주자의 “각각의 사물에 그 이치가 있다”라는 주장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한동안 邪學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1509년 왕양명은 획기적인 知行合一說을 제창했다. 사람은 효도를 실제로 행하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효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앎이 있어야만 바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율곡 역시 초학자의 성에서 신독을 무척 중히 여겼다. 또한 지행합일설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율곡의 유학사상
율곡의 유학사상은 儒者 본래의 사명인 수기․치인의 도를 강조하여 그 중의 하나라도 결하여서는 진유가 될 수 없다는 태도였고, 철학사상의 면에서는 기발이승을 주장하여 先儒의 설에서 일보를 내킨 느낌을 주었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 만물의 발생과 변화는 이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자는 기운기 자로서 기운이다. 기운이란 힘으로써 움직이는 것이다. 즉 생물이 살아있다. 힘․활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비단 생물뿐만 아니라 기계 등 무생물의 움직임도 역시 기운으로 움직인다. 그러기에 기사상은 영육이원관․물심이원론과는 전연 다르다. 중국철학사를 보면 송대 이전은 주류가 기론이었고, 이는 細條理의 뜻으로서 법칙․당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송대 이후의 철학은 이-이성을 강조하고 감성을 억제했다. 조선 성리학이 주자학에 대한 원론적 이해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는 것은 퇴계와 율곡 이후부터이다. 물론 지평을 연 선구는 서경덕과 회재 이언적이다. 이 두사람은 이기론에 대한 주장을 통해 자기의 강조점을 달리함으로써 독자적인 학문을 개척했다. 화담이 율곡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회재는 퇴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이 주리․주기 개념은 퇴계에게서 언급되고 있다. 그는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리를 주로 해서(主於理) 말한 것이며, 사단이 이것이다.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경우가 있는 것은 기를 주로 해서(主於氣)말한 것이며, 칠정이 이것이다.” 퇴계는 세계의 시원은 물질적인 기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라고 하였다. 또 사람이 성에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있는데, 본연지성이란 사람이 본래 날때부터 선천적으로 천리에서 받은 어질고, 의롭고 예절있고, 지혜로운 품성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행동을 하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기질지성이란 인간의 육체적인 기질에서 생기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착한 것도 있고, 불순하고 악한 것도 있으며, 그 기질의 차이에 따라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갈라지게 된다고 했다. 이같이 퇴계는 이와 기를 구별하여 리기이원론적 사고방식을 제시했다. 흔히 ‘리’를 형이상자라 하여 정신시하고 기를 형이하자라 하여 물질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퇴계의 ‘이귀기천’ 사상에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율고은 이도 선악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리기론의 또 하나의 특징을 나타낸다. 즉 리는 기가 발하는데 따라 제약을 받아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다고 하여, 리의 순수성과 고귀성만을 강조한 퇴계의 철학을 비판하였다. 사단․칠정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퇴계는 사단이 이의 발, 칠정이 기의 발이라고 하였으나, 율곡은 사단이 칠정에 포함되며, 사단도 기가 발해서 리가 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율곡은 사물의 운동변화의 원인를 리일원론자들처럼 그 어떤 초자연적인 천리의 힘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물질적인 음양이기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면서 자연 자체가 자기 스스로 그렇게 움직이게도 하고 또 변화하게도 한다고 했다. 율곡이 이의 우위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상계에 있어서 기의 역할을 중요시한 것은 이성적 인식과 동시에 감성적인 인식을, 관념과 동시에 경험을, 도덕과 동시에 물질의 합일을 지향하고자 하는 균형감각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율곡은 “이는 태극이요 기는 음양이다 성은 리요, 심은 기이다, 리는 매우 은미하여 현상으로 나타나기 이전의 본질적인 것이고 기는 본질적인 리를 유통하게 하는 작용인 것이다“ 이색․정약용의 기철학은 율곡과 비슷하다. 율곡은 이는 형이上적 존재로서 純善한 것이며, 기는 형이下적 실재로서 청․탁․수․駁이 같지 않아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라고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형이상은 자연의 이이고, 형이하는 자연의 기이다.
리는 불선함이 없으나 기에는 청․탁․수․박의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다.
율곡은 기와 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하면 리는 형이상자로서의 이치․원리로, 어떤 존재가 바로 그링 수 있는 본래성이 된다. 또 리의 속성은 무형성을 갖는 것이다. 기는 형이하자로서 이가 의착할 바요 리가 탈 바이다. 따라서 기는 어떤 존재의 본래성이 마침내 실편되어지고 구상화될 수 있는 요소이다. 만약 리만 있고 기가 없다면 그 존재는 하나의 관념으로 존재할 뿐이어서 구체적 존재이기에 미흡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곡철학은 물심이원론이 아니고 물심일원론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리가 아니면 기는 근거할 데가 없고, 기가 아니면 리는 의거할 데가 없다. 리와 기는 두 개의 물건도 아니며,또 하나의 물건도 아니다. 하나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이라 하고, 두개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라고 했다. 이와 기는 상호의존적이다. 리는 기에 대해서 주재기능 재지 근저적 의미를 갖는 것이고, 리는 기에 대해서 리의 의착처 내지 있어야 할 바가 된다.
무형 무위하여 유형 유위의 째가 되는 것은 리이고, 유형 유위하여 무형 무위의 기구가 되는 것은 기 이다.
율곡의 사단칠정론이나 인심도심설에 대한 해석도 이원적인 논의와 다르다. 사칠론에 있어서도 사단이란 칠정 중의 선자일 뿐이며, 칠정이라 하여 형기에 속한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사단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네 가지 마음씨로서 각각 인․의․예․지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정감이다. 사단과 칠정은 서로 포섭관계에 있지만 인심과 도심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서로 포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율곡에 의하면,인심과 도심은 결코 두 마음이 아니다. 인심이나 도심은 하나인데, 어떠한 의지적 방향을 가지고 작용하는냐에 따라 인심과 도심이 구별되는 것이다. 퇴계는 사단칠정을 이성적 작용으로 파악했다. 율곡은 이성적 작용도 작용인 이상 기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이는 무위라는 주자의 측면을 계승, 존재와 도덕을 일괄하여 이기 관계를 이른바 ‘기발리승일도설’로 제시하였다.
사단은 칠정의 선한 일부분이고, 칠정은 사단을 종합한 것이다
칠정 이외에 다른 정이 없으며, 칠정 가운데서 인욕이 섞이지 않고 순연하게 천리에서 나온 것이 사단이다.
율곡은 퇴계가 “사단은 리에서 발생하여 기가 거기에 따르고 칠정은 기에서 발생하여 리가 그것을 탄다”는 것에 반대하면서 “사단이나 칠정이나 그것은 모두 기에서 발생하고 리가 그것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연후에야 비로소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인데, 이것은 측은히 여기는 ‘기’가 발동하여 생긴 것은즉 ‘기’는 측은한 것의 인이다. 그러니 리가 기를 올라 탄다고 하는 것이다. 이같이 율곡은 이발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단은 칠정 중의 선한 부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율곡에게는 “어떻게 칠정 중에 순수하고 완전하게 리에 해당하는 사단이 발생하게 되었는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본연지기’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 기를 편협한 것, 정신에 상대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율곡이 말한 본연지기-호연지기는 정신적인 기백이요, 의로운 힘이다. 충만한 정신이다. 따라서 호연지기는 진취적 기상의 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본연지성이란 원래 기질지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연지성이 나타나는 것은 기질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담일허명한 ‘본연지기’가 문제되는 것이다. 기에는 본연ㅇ,; 기가 있는데 그것은 순수하고 청명하여 이를 싣고 리 그 자체대로 움직여 그대로 사단이 된다는 것이다.
율곡은 기를 물질적인 것, 감성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 심령이나 이성까지도 기로 본다. 그러므로 기는 본연지성을 언폐하는 것일 뿐 아니라. 본연지성을 회복시키는 것이요, 본연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율곡은 서경덕이 주기론에 대해서는 ‘리통기국설’을 퇴계의 리기이원적 경향에 댛서는 ‘기발리승일도설’을 가지고 논하였다. 리통기국설에 있어서 기는 물질적․시간적 유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국’이고, 리는 초월적 존재로 보편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공에 국한되지 않으므로 ‘이통’이라 하는 것이다. 즉 무는 무형이요 기는 유형이므로 리는 통하고 기는 국한한다는 것이다. 리통기국설에 따르면 리는 본래 선후도 없고 형태와 작용․운동 능력도 없지만 모든 사물에 구비되어 있는 본연지묘이다. 이것을 리통이라 하며, 이때이 리통은 보편자라는 말이다.
리통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만물이 동일한 이라는 것이고, 기국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만물이 각각 一 氣라는 것이다. 理一分殊라고 하는 것은 리가 본래 하나인데 기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소속한 바에 따라서 각각 하나의 리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분수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리가 본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기는 이와 달리 모든 사물에 통할 수 없는 유한자이며 개체에만 국한된 것이니 기국이라는 것이다.
우주와 인생이 구조를 밝혀 선악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래서 다시 그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선악이 공존하여 악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국의 세계, 즉 형기나 형질이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그 세계를 극복하고 초월하여, 오직 선만이 존재하는 리통의 차원 즉 본연의 이성으로 돌아가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려 한 것이 이기학이 지향하는 목표요 동시에 율곡철학의 이상이었다고 하겠다.
율곡은 “주자도 리기가 호발한다고 하면 주자가 잘못이다. 성인이 다시 나더라도 자기이 이 주장은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시대 리기론자 가운데 가장 논리적․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퇴계와 율곡이라고 한다면, 앞서 말한 율곡의 뜻은 퇴계의 호발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특히 율곡은 리기이 기능으로서 리무위 기유위라는 측면에서 ‘기발이승’, 리기의 속성으로서 리무형 기유형이라는 토대아래 ‘리통기국’의 명쾌한 논리를 전개한 것이라든가, 또 우주․인생으로서 ‘천지만물일리’, ‘심성정일로’등의 정연한 이론을 제시한 것 등은 율곡철학이 도달한 리기학이 절정이었다고 하겠다. 율곡의 ‘리통기국설’은 기정진의 이일분수설과 임성주의 기일분수설과 더불어 우리 나라 성리학의 중요한 특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의 ‘기발리승일도설’은 더 나아가 心是氣를 주장하게 된다. 율곡이 심을 기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심에 지각이라고 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주자이 심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 심설 논쟁 각각의 입장에 근거를 마련해준다. 심을 이적 측면에서 강조하는 심주리의 입장에서는 심이 일신을 주재하고 심이 리와 합일된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 대신 심을 기적 측면에서 강조하는 심주기이 입장에서는 심이 지각이라고 하는 작용성을 갖는다는 점이 주된 근거가 된다. 율곡의 심시기의 설은 김장생, 송시열, 권상하 등으로 계승되었다.
율곡의 학설을 지지하는 학자로는 성혼, 구봉 송익필, 신응구, 이유경 등과 경기, 호남, 호서의 여러 학자들이 있다. 후학들이 율곡, 우계, 구봉 세 학자에게서 두루 배워 기호의 학문을 형성하엿으니, 이를 기호학파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김장생, 정엽, 한교, 이귀, 조헌, 안방준, 송시열, 송준길, 권상하 등이다. 그 후 실학파이 학자 가운데도 율곡의 사상을 받은 이가 적지 않다. 권상하는 유곡, 김장생, 송시열이 뒤를 이어 기호학파의 맥을 계승한 사람이다. 권상하의 문인에는 인물성동 논쟁이 주인공이 되는 외암 이간, 남당 한원진 등이 있었다. 이처럼 성리학이 주기설은 15세기 서경덕 16세기의 이이, 17세기 우암, 18세기이 한원진으로 이어진다.
교육의 첫출발로서의 입지론
1. 교육의 가능성과 입지
<논어>에서 공자는 교육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1) 사람이 세상에 태어남에 그 천성이 착한 것인데, 바르지 못한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요 행이 면한 것이다. (옹야편)-출생이 선량하기 때문에 교육하는 것이 가능하다
(2) 본래 사람의 천성은 대개 같은 것이나, 습성은 서로 먼 것이다.(양화편)-학습의 결과로 차이가 생김
(3) 사람이 그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위령공편)-사람이 노력을 강조
<논어> 계시편에서는 “나서 저절로 아는 사람(生知)은 으뜸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學知)은 다음이고, 못내 애써 배워 아는 사람(困知)은 그 다음이며, 모르면서 애써 배우지 않는 사람(下愚)은 못난 것이다”
<중용> 성론편에서도 청소년의 氣稟 극복에이 길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같이 일반적을 유교에서는 노력에 의한 후천적인 변화이 가능성을 거의 확신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변화에이 길이 바로 철저한 태도로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변별하며, 독실히 행하는 학문의 수행에 있다. 맹자도 청소년 교육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맹자> 고자상편에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같이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에 의하면 가엽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진 마음의 단서이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옳은 마음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바른 마음의 단서이고, 옳다 그르다고 판별하는 마음은 지성의 단서이다.
공자는 인․의․예․지의 전통을 세워 놓았는데, 맹자는 성선론을 제시하여 이 학설을 보충․완성하였다. 성선이 없으면 유학은 안에서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의 덕을 중시하는 문화정신으로 말하면 성선론은 이 정신의 최고의 기반과 근거가 된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 본래이 선은 내적 자기 수양을 통한 노력에 의하여 발전시킬 수 있으며, 또한 교육에 의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신체가 동일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도 역시 동일한 법이라고 하였다.
율곡 역시 <성학집요>궁리장에서 아래와 같이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 어떤 것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비록 지극히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어떤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래 불선이 없다가 비로소 그 어떤 것이 나타나게 되면 바로 선과 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악이 드러나는 것은 기질과 물욕의 구애나 은폐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의 본래의 모습이 그렇게 악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은 완전히 선한 것이다.
율곡에 의하면, 교육은 인간 자신의 선한 능력을 전제로 그 선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율곡은 <어록(상)>에서
초학자의 공부는 선을 행하고 악을 바라는 것뿐이다. 오늘 출석한 제군은 앞으로 모두 선을 행하고 악함이 없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군은 힘쓰라.
또 보통사람도 實心의 성으로써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교육의 가능성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성인의 덕은 천과 합일하고 신묘함이 헤아릴 수 없어서 비록 거기에 도달하기를 바라지도 못할 것 같지만, 정성 으로 공부를 누적하면 도달하지 못함이 없다.
율곡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성학집요>에서 “현자는 반드시 위에 위치하고, 불초자는 반드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계급․세력이 아니라 덕임을 강조하고, 이는 입지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신분 구분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다. 율곡은 이같이 인간은 누구든지 교육하는 데 있어서 기와 질을 키우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양기․양질의 가능성은 모든 인간이 구유하고 있는 보편성이라고 했다.
율곡은 그의 성론에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나누고 있으면서도 본연지성이란 기질지성 속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본연지성은 尊指理이요, 기질지성은 兼理氣라 하여 기질지성 속에 본연지성이 있으므로 본연을 순선이라 할 때 기질은 선악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따라서 기질을 변화시켜 본연의 선으로 갈 수 있다고 하여 “矯氣質”을 강조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입지’에 있다고 하였다. 교기질은 편벽된 기질을 개선한다는 뜻으로, 이는 인간의 본성, 즉 진실한 마음을 회복하여 삶의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올바른 삶을 구현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율곡은 교기질의 방법으로 학문하는 데 있어서 입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같이 율곡의 교육사상은 우선 교육의 가능성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입지로부터 성립한다. 그는 <격몽요결> 입지장에서 아래와 같이 교육의 가능성을 말해 주고 있다.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뜻을 세워 반드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할 것이요,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작게 물려가려는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대개 衆人이나 성인이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淸(聖)․濁(衆)․粹(聖)․駁(衆)의 다름이 없지 않겠으나, 참답게 알고 실천을 통해서 젓어온 구습을 버리고, 그 본성을 되찾는다면, 털끝만큼도 보탬이 잆이 萬善이 충분히 갖처질 수 잇을 것이다.
이러하거늘 어찌 중인도 성인으로 自期하지 아니햐랴, 그러므로 맨자가 ‘성선설’을 주장하여 말마다 요․순을 들어 실증하여 말하기를 ‘사람이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였으랴! 항상 스스로 분발하기를 인성은 본래 착하여 古今智愚의 구별이 없거늘, 성인은 왜 홀로 성인이되며, 나는 왜 홀로 중인이 되는가.
이같이 율곡은 물은 변화시킬 수 없지만, 인간은 마음이 허명하여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교육가능이 존재이며, 누구나 노력만하면 그 가능성이 드러나 교육적․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율곡은 또 復其性과 矯氣質을 통해 교육의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율곡은 사람의 본연지성은 모두 선한데 그것이 발할 때 기질지성의 작용 때문에 선하지 않은 특성이 발생한다고 했다. 따라서 입지를 통하여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율곡의 입지는 교육의 가능성을 전제 조건으로 성립한다.
2. 立志의 뜻
율곡에 있어서 입지는 교육의 이념과 목표, 학습의 목적관을 포괄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교육은 유목적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교육이 바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거기에 쏟는 숱한 노력들이 모두 헛수고가 될 우려가 있다.
인간이 만약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에 불과하다면, 인간을 위한 교육적 노력은 자연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될 터이므로, 하등에 교육적 과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의 정신적 존재로 규정할진데 거기에는 반드시 학습목표나 행동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고등동물에 속하고 있고, 또 그 자체로서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둑 그러하다.
우리가 행동목표를 바르게 세우려면 입지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입지란, 뜻을 세움이다. 이는 ‘자기지향적’인 것으로서, 자의식에서 출발한다. 율곡은 그의 <진시폐소>중의 일조에서 “일심의 가는 바를 뜻이라고 한다.”하고 또 <어록>(상)에서 “뜻이라는 것은 마음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율곡의 입지는 내 인생과 내 운명에 대한 ‘관’의 정립이기도 하다. 결단과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각자 스스로가 져야 한다. 물론 이 인생의 결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의 조언을 참고로 삼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결정 자체를 어떤 권위자의 의사에 맡겨서는 아니 된다. 율곡에 의하면, 자신이 돈독한 입지를 세워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한 인간으로 탄생된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는 과정이며, 그 의미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어디에 뜻을 두는가, 공자는《논어》에서 “도에 뜻을 둔다(志於道)”고 하였다. 그래서 공자는《논어》위령공편에서 입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열 다섯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는 뜻이 섰고, 마흔에는 모든 사리에 미혹하지 아니하였고, 쉰에는 하늘의 도리를 깨쳤고, 예순에는 모든 일을 들으매 저절로 알게 되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법도를 넘은 적이 없었노라, (子曰 吾十有五而志干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주자는 공자의 ‘지어도’를 해석하여 말하기를,
뜻이라는 것은 마음이 가는 바를 이르는 것이요, 도라는 것은 인륜․일용 사이에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이르는 것이니, 이것을 알고 마음이 가면 반드시 나아가는 바가 발라서 다른 길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율곡 역시 <성학집요> 수기장에서 입지를 논하고 있다. 즉, “도에 뜻을 둔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울러 주자가 이를 부연, “도란 인륜․일용 사이에 마땅히 행해야 할 바”라고 한 말을 들었으며, 맹자가 성선을 주장하여 요․순을 일컬은 점을 논거로 그의 聖人自期論으로 발전하여 간다.
위의 ‘所之’는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지향하여 간다는 것이요, ‘所行’은 이를 마땅히 행할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 율곡은,
이른바 지가 正向이 있다는 것은, 시비를 명백히 하여 선을 향하고 악을 등지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로써 보면, 지는 마음이 어떤 방향을 결정짓고, 이를 마땅히 행할 것을 뜻한다. 요컨대 자기지향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요건은 확고한 마음의 자세인 것이며, 그것이 곧 입지이다. 학습이라는 것도 필연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또한 응용을 포함한다.
그래서 율곡은 학문을 강의할 때마다 초학자들에게 입지를 강조하였다. 그 자신도 별로 사승의 계통이 없이 거의 독학으로 성인의 학에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한 사람이다. 불교에도 ‘學無常師’라는 말이 있다. 이는 특수한 스승을 정하여 모시지 않고, 高德이라면 누구에게서나 그 高行을 본받는 마음을 갖도록하여 두루 배우는 태도이다.
3. 초학자의 입지
율곡은 學人들에게 항상 입지를 돈독히 하여 성인을 自期하라고 권하고 있다. 즉 그는 40세 때에 쓴 <성학집요>에서도 입지장을 앞에 두고 말하기를
학은 입지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니, 뜻이 서지 아니하고는 능히 성공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입지를 수기조목에 먼저 놓았다.
고 하고는, 여기서 泛言立志, 立言志之目, 言立志之效, 言 立志之反 등을 논하고 있다.言立志之效,에서는,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한 것이 없어진다.
고 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입지의 소재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지금 사람들 가운데는 성현의 학문 듣기를 즐기는 이가 있으나, 끝내 세속의 비루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만 뜻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이며, 배우면 문득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하였다. 율곡은 입지장의 按語에서
뜻이라는 것은 기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니, 뜻이 한결 같으면 기가 움직이지 않을 리 없다.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뜻이 서지 않은 까닭이다.
라고 하여, 지는 기를 통어하는 것으로서, 지가 한결 같으면 기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율곡은 志不立의 병이 셋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를 믿지 않음(不信)이요, 지혜롭지 못함(不智)이요, 용기가 없음(不勇)이라고 지적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불신이란, 성현의 가르침을 믿지 않기 때문에 뜻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입지를 못하는 자들은 이를 성현들이 단순히 유혹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불지는 성현이 되느냐, 아니면 어리석은 자가 되는냐에 문제는 결국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불용은 성현이 후학을 속이지 않고 기질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태만하여 발전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성학집요>에서 여러 곳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먼저 입지를 굳게 하여 기질변화에 노력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율곡의 교육사상은 <자경문>에서 <학교모범>에 이르기까지 입지로 요약됨을 알 수 있다. 율곡의 <어록>(상)에도 이런 글이 보인다.
문:입지에 대하여 선현들은 대개 범연히 말하였는데, 선생께서는 책을 지을 적마다 언제나 이것을 첫머리에 말씀하였으니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답:입지를 하지 않으면 만 가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4. 인군의 입지
5. 입지의 교육학적 이해
율곡의 교육사상은 입지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를 ‘學莫先於立志’라 하여 학문의 첫출발로 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입지는 자의식에서 출발한 참된 주체로서 자기자신을 가늠하는 힘이 되는 동시에 학문에 나아가게끔 하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그는 입지를 존양․궁리하는 자기지향성, 목적지향성이라 하고 보통사람과 성인과의 거리는 먼 것이 아니라 ‘立志不退轉’을 하고 아니함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율곡의 입지 속에는 교육의 이념, 목표와 학문의 이상이 포괄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의 입지는 학문연구의 자각적 태도의 확립이었다. 이는 자아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동기유발과도 상통한다.
오늘날 우리 나라 교육의 맹점은 무엇보다도 율곡의 교육사상에서 볼 때 입지의 결여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청소년 교육도 개인적인 자각이라는 면에서 도덕적인 목표에 대한 확신, 가치관의 확립, 주체의식의 형성, 인격적인 인테그리티 등 이러한 목적 설정이 갖는 입지에대한 진리의 빛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인간교육의 길로서의 誠사상
1. 성의 뜻
율곡의 제자가 뜻을 세우는 데는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참(誠)되면 志가 저절로 서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어록>(상)에 보면
문:입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합니까?
답:誠하면 지가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나 敬으로써 그것을 간직해야 한다.
율곡의 <어록>(상)에 의하면, 성․경의 관계는 이러하다.
성이라는 것은 참된 이치를 말하는 것이고, 경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을 주로 함을 말한다. 경에 종사하면 욕심이 적어지고, 성에 이를 수 있다.
성의 字原적인 뜻은 言과 成을 합한 글자이다. 즉 “말한 바(언)를 반드시 이루도록(성) 정성을 다함”을 말한다. 그러니 성은 말(언)을 그 의미대로 이룬다(성)는 글자이다. 그러니 성의 자원적인 듯은 ‘정성’과 ‘참’ 또는 ‘진실’의 뜻이 있다.
율곡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것을 忠이라 하고 마음이 진실한 것을 信이라 한다. 충은 진실한 참 마음이고, 신은 진실된 일이다. 사람이 충하고 신하지 못하다면 모든 일이 참되지 못하다.” 또 율곡은 “생각을 간사하게 가지지 말라”는 말도 성을 의미한다는 정자의 글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참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우선 나의 태도부터 참되어야 할 것이다.
율곡은<어록>(상)에서 이런 글이 보인다.
문:‘誠無爲’라고 하는 것은 성은 그 성의 본체를 가리키고, ‘不誠無物’이라고 하는 성은 노력의 뜻이 있는 것입니까“
답: 성이라는 것은 ‘참된 이(實理)이다. 참된 이가 없으면 物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성이라고 하는 것에 어찌 다름이 있겠느냐
문:불성무물의 성에 대하여 주자는 해석하기를 “보는 것이 밝지 못하면 물을 볼 수가 없고, 듣는 것이 똑똑하지 못하면 물을 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무위의 성과는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답: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기 때문에 노력의 뜻이 있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무위의 성과 무물의 성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율곡 “참되고 거짓됨이 없음(진실무망)은 하늘의 도이고, 참되고 거짓됨이 없으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라고 했다. 율곡에 의하면, 진실무망은 하늘의 도이고 참되고 알차 거짓이 없도록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실무망하기 위해서는 성 공부에 힘써야 하는데, 이 공부로써 擇善고집․愼獨․입지․궁리․역행을 들 수 있다. 물론 성 공부의 일차적 개념은 誠體敬用의 논리로 볼 때, 경이라 말할 수 있다. 율곡이 성은 경의 근원이고 경은 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功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이, 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적 개념으로 誠意 또는 誠志와 같은 種의 개념적 자리에 있다.
2. 초학자의 성
율곡의 교육사상의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성실이다. 율곡이 앞서 “참(誠)되면 志가 저절로 서는 법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성은 지와 이의 핵심이 될 뿐 아니라, 또한 성실은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요, 노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격몽요결> 지신장에서,
학자는 반드시 성심으로 도에 향하고 세속의 잡사로써 자기의 뜻을 흔들리지 않게 되어야만 학문의 기초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 하여, 학문은 성실로부터 싹튼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마음을 진실하고 성실히 하라, 또 애써 공부하라” 등의 말도 다 이런 뜻이라고 했다.
특히 <성학집요>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 그의 교육사상의 밑바닥을 꿰둘고 있는 것은 성실이다. 그는 <성학집요>에서 성현도통에서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증자의 학문은 성실하고 독실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배움이란 성실을 귀한 것으로 삼는다. …증자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세가지로 반성하느 데 즉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 게 마음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는 데 신용 없이 하지는 않았는가, 스승으로부터 가르쳐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고, 주자의 해석을 끌어다가,
자기를 다하는 서은 忠이라 하고, 진실하게 하는 것을 信이라 한다. 傳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習은 몸에 익히는 것이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그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썼는데 , 그가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성이 이와 같으니 정말 학문을 하는 바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순서로는 또 충․신을 傳習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러니 충․신이라는 것은 성인데, 즉 성은 성실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착한 데 밝지 아니하면 그 몸을 성실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율곡은 <성학집요> 성실장에서 주자의 말을 끌어다가,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수양에 으뜸인 것이다.
고 하고, 다시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배우는 자는 정성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정성되지 않으면 선해질 수 없고, 정성되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도 없다. 학문을 닦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학문이 잡되고, 일을 하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일이 실패된다. …때문에 배우는 자는 정성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율곡은《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성한 것은 천도요, 성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인도이다.
라 하고는, 또《중용》의 말을 끌어다가,
성이란 것은 사물의 종말과 시초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고 하였다. 이같이 율곡은《중용》의 성을 강조하면서 《대학》․《논어》․《맹자》에 일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의하면, 성실은 만물의 끝이요 시작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일한 인간의 경우에는 그의 말은 그 자아의 성실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말하는 사람의 진의를 표현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말이 불성실할 뿐만아니라, 그 말하는 인간 자신이 또한 불성실한 것이 된다. 율곡이 <성학집요>에서,
사람의 말에 남의 말 듣는 법은 반드시 그가 한 일을 가지고서 보니, 말하는 자가 감히 망령되게하지 못한다.
고 하고, 待人接物에 있어서 성을 내세운 것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성실은 爲學의 근본인 동시에 사람으로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도리이다. 그리고 율곡은 인간의 도리에 참되려고 노력함이 하늘의 眞實無忘함과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천도․인도도 딴 것이 아니고 성이라고 보았다. 이같이 성은 하늘의 도이고, 이 성을 온전히 하는 것이 사람의 도이다. 그는 학문을 하는 데 성실하였으면 반드시 편벽된 기질을 바로잡아 고침으로써 본연지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 본연지성이란 무엇인가? 성은 기질 속에 들어 있는 본성을 기질과 관련시키지 않고 그 자체만을 지적해서 말할 때 본연지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질지성이란, 그것은 성을 기질과 관계지워서 말할 때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본연지성이란 원래 기질지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의 본바탕인 湛然虛明이 기와 욕에 가리우지 않고 그대로 나나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음의 昏․亂과 人欲 때문이라고 보았다. 욕구를 알맞게 가지면 천리가 되는 것이지만, 어긋나서 과불급이면 인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율곡은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궁리․篤志․함양․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궁리로써 선을 밝히고, 독지로써 기를 휘어잡고 함양으로써 성을 보존하고 성찰로써 거짓을 버리고, 그 혼과 란을 다스리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했다.
3. 인군의 성
4. 성의 교육학적 이해
율곡의 말을 빌리면 성실을 통해서 진리가 밝혀진다. 즉 성이야말로 진리를 보는 눈이다. 따라서 성과 眞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교육 역시 성실에서 이루어진다. 성실이 없이는 참다운 교육이 성립되지 않는다. 역으로 교육 없이는 성실도 없는 것이다. 성실이야말로 인간의 계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동인이다. 앞서 말한 율곡의 입지와 성실의 자세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며, 또한 삶의 의미를 규정짓는 일이 될 것이며, 나아가 개인과 국가 민족에 대한 긍지는 물론 개인과 민족의 주체의식도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율곡의 입지와 성실을 통하여 인격완성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인간교육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주체성이라는 것도 인격의 주체성을 통하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과 같이 율곡의 입지와 성실은 인간행동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것으로, 특히 인간의 전인격에 관계되는 교육사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성의를 궁극적 신조로 삼았던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사상에서도 성실은 크게 강조되었다. 그리고 동학사상도 ‘非誠이면 無成’이라 하여 성실을 마음의 근본 자세로 삼았다. 도산 안창호의 무실역행에서 성실사상은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성실은 자기 개인의 범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안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경애와 신의를 수반하여 충실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이처럼 성실은 모든 인간활동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목표한 일을 충실히 달성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교육의 목적
1. 성인군자의 이상적 인간상 추구
유교에서는 인간을 역사적 인간․도덕적 인간․이상적 인간으로 나눈다. 역사적 인간이 종적․시간적 측면이라면, 도덕적 인간은 횡적․공간적 측면이다. 그리고 이상적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인간상의 조명이다. 유학은 원래 인간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다. 소인․악인이 아니라, 성인․군자을 희구한다. 그러기에 공자의 인은 모든 덕의 총제적 표현이다. 전인성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인의 극치를 聖人이라 하고, 인을 추구하는 이를 군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인을 실천하고 성취하여 仁人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이상적 인간상을 군자로 설정했고, 사람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곧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러기에 유교의 교육목적은 “성인을 바라보는”(希聖), “성인이 되기 위한”(위성) 공부에 초점을 두기에 이른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으로써 지도이념 및 국학으로 삼았으니 교육도 이 성리학의 범주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사회는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모두 잡학이라 하여 이단시 하였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은 성인․군자를 목표로 하는 이상주의적 도덕에 두었다.
율곡은 <동호문답>에서 도덕적인 인격을 갖춘 군자를 아래와 같이 중히 여겼다.
군자는 말을 할 때에 특히 소인을 나무랄 때 그 말이 도리를 따르면 이치가 된다. 그는 마음이 정직하고 행실이 결백하여 흠이 없다, 또한 지조가 굳어서 비굴하지 않는다.
양명학을 세운 왕양명이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채점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가장 위대한 성인을 만점으로 친다면 공자는 9천점이 된다. 고사리를 먹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는 5천점이 된다. 이보다 낮은 점수로는 ‘狂’이 있고, 최하가 향원이 된다. 광이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길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자세를 가리킨다. 거리에 흔한 보통사람을 향원이라고 한다.
율곡의 교육목적 역시 성인에 두었다. 그는 <격몽요결> 입지론에서 “처음 배우는 이는 모름지기 뜻을 세워 반드시 성인이 될 것을 기약할 것이요…대개 중인도 그 본성은 성인과 한 가지일 것…이러하거늘 어찌 중인도 성인으로 자기하지 아니하랴”고 했다. 그는 또 <학교모범> 제1조목에서도 아래와 같이 교육의 목적을 성인에 두고 있다.
천지의 요인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옛날 진실되게 살았던 성인의 위업을 깊이 인식하고 그 위대한 업적이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여, 온 세계를 평화로운 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한 일이 최종목표가 되어야 한다.
율곡은 성인이 되기위해선 입지와 明知와 篤行은 인간이 성인의 교육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율곡에 의하면 성인의 특색은
첫째, 성인은 기품이 청명하고 渾然한 도리를 체득한 사람이다.
둘째, 성인은 천리에 순수하여 誠의 온전함을 얻은 사람이다.
세째, 성인은 四德(인의예지)의 체현자이다. 그는 사욕이 없어서 하고 싶은 바가 모두 規矩를 어기지 않아서 인심과 도심이 일치한다.
넷째, 성인은 타인의 성도 가르침으로써 회복하게 하고 명덕을 천하에 밝혀서 타인을 교화할 수 있는 덕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다섯째, 성인은 말할 때, 특히 소인들을 나무랄 때 그 말이 도리를 따르면서 이치가 곧다. 그는 마음이 정직하고 행실이 결백하여 흠이 없다. 또한 지조가 굳어서 비굴하지 않다.
여섯째, 성인은 실천력이 강하다. 성인은 한다고 하면 진실도 수행한다. 정심으로 한다고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의로 한다고 하면 곧 뜻을 성실하게 한다.
율곡은 <諫院陳時事疏>에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아래와 같이 5개조로 나누었다.
첫째, 도리대로 진퇴해서 爵位에도 불구하는 자는 반드시 군자인 것이고, 利祿만 탐해서 尸位素餐-직책을 다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여 녹만 먹는 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자는 반드시 소인인 것이다.
둘째, 陳善하고 閉邪해서 왕의 희노도 생각지 아니하고 그의 잘못을 바루는 자는 군자이고, 왕의 의사만 영합해서 국사를 그르치면서 녹만 굳히는 자는 소인이다.
셋째, 特立해서 獨行으로 속류에 오염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군자인 것이고, 이욕만 따라서 세력에 아부해 그 방향이 일정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소인이다.
네째, 일 처리가 명백해서 청천백일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마음씀이 음험한 자는 반드시 소인이다.
다섯째, 善類를 인도해서 道脈을 진작하려고 조정에 많은 선비를 모으는 자는 군자이고, 말을 만들고 일을 꾸며서 선비를 모함하고 사람을 해쳐서 출세하려는 자는 소인이라고 했다.
2. 인륜의 실현
다음으로 율곡의 교육목적은 인륜 즉 오륜과 오상의 도를 행하는 것에 두었다. 유학에서의 학문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할 것과 자기의 도덕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다른 어떤 교육목적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은 개인의 자기수양함이고 자기 극복의 학문이다.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어두운 까닭에 모름지기 글을 읽지 않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힌 다음에야 조예가 바름을 얻고 실천하는 바에 중용을 얻는 것이다.
이같이 율곡은 지식이 갖는 중요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기릉 ㄹ밝혀서 중정한 조예와 실천을 이루도록 하는 과정에 국한된 것이며, 지식 그 자체가 학문의 결과나 목표는 아니다. 즉 인륜의 길을 밝히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율곡이 말하는 도란 인간이 도리와 현실의 도리, 즉 도덕의 도와 도리의 도를 말한다.
율곡은 오륜을 추상적인 덕목의 해석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이를 인간이 사회 생활이라는 한 덩어리의 활동 가운데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오륜사상을 실천에 옮기기를 아주 돈독하게 했다. 다시 말하면, 율곡은 그의 언행을 통하여 모범을 보이고 구체적 사례에 따라 말하였다.
3. 애민보국과 과거교육
유교의 근본사상은 충군애국과 救世行道로 집약된다. 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에서도 특히 치국평천하에 역점이 놓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과거시험에 응시치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특히 조선시대에는 교육 내지 학문의 목적이 과거준비에 있었다.
유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교육의 목적에는 두 가지 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성인․군자를 목표로 하는 이상주의적 도덕파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말할 경학을 배워서 과거에 응시하여 관리로 등용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현실주의적 관료파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과거교육에만 매달리는 학풍에 대해 율곡은 <격몽요결> 처세장에서 관료파의 교육목적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예전 학자는 벼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 성취되면 위에서 천거하여 쓰는 것이니, 대개 벼슬은 남을 위한 것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로 인재를 뽑게 되므로, 비록 천리를 통하는 학문과 絶人한 행실이 있어도 과거가 아니면 출세하여 도를 행할 수 없으므로 ,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에게 권하는 것이 과거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士習의 버려짐이 이 과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왕조의 교육제도가 과거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목적으로서 과거교육을 전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격몽요결> 처세장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요새 사람들은 과거공부한다 하면서 공명도 못하고, 학문을 다스린다 하면서 실지로는 착수도 아니하여, 만일 과거공부를 책임지우면, “나는 과거 공부 관계로 실제의 공부는 할 수 없다”하여 이렇게 미루기만 하고 유유히 날짜만 보내어, 마지막에는 과거공부, 학문 다스림 둘다 성취함이 없으니, 늙어서 뉘우친들 소용이 있으랴, 아아! 경계할지니라.
고 하여 과거공부와 학문 다스림을 서로 핑계삼다가. 결국은 하나도 성취하지 못함을 경계하면서, 그는 다시 <학교모범> 應擧章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는 비록 뜻있는 선비가 애써서 구할 바 아니나. 요즈음에는 그것이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 되어 있으니, 만일 도학에 온 마음을 쏟아서 나아가고 물러남을 예의로 하는 이는 과거를 숭상할 까닭이 없지만, 국가의 부름으로 과거에 응하게 되면 또한 마땅히 성심으로 공을 이룰 것이요, 날짜만 낭비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과거의 득실로써 그 지킬 바를 앓을 것이 아니요, 항상 입신행도하여 충군보국할 생각을 가질 것이다.
4. 현실중심의 생활교육
율곡은 학문이란 무슨 유별나고 특수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학문은 사람이 가정․사회․국가에 있어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생활-일상생활의 양식으로 보았다. 그는 <격몽요결>서문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스럽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되어서는 사랑해야 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해야 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가 되어서는 우애가 있어야 하고, 젊은이가 되어서는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가 되어서는 신의가 있어야 하는 이런 것을 말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있어 처한 일에 따라 각각 합당하게 처신하는 것일 뿐이며, 현묘한 데 마음을 두어 기이한 효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경연일기>에서도 교육의 목적이 실생활에 있음을 아래와 같이 말해주고 있다.
옛적에는 학문이란 명칭은 없었다. 일상생활에 당연히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하는 것이었으므로 실행할 도를 닦는데 있었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실제를 떠난 특이한 별개의 일이 아니며, 또 일상생활 바로 그것이 학문이기 때문에 원래는 학문이란 말도 따로 있지 아니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는 도학이 밝지 못하고 윤리가 퇴폐하여지자, 학문이란 명칭이 따로 등장하게 되었으나 학문이란 결국 일상생활을 통하여 옳은 것만 구하여 행하는 일을 이름하는 것이지 그것이 일상생활과 별개의 다른 것은 아니다.
그는 <성학집요>(四)에서 아래와 같이 知․行의 병진을 강조하고 있다.
지와 행이 비록 선후로 나누어지지만 실은 일시에 병진한다. 혹은 지로 말미암아 행에 도달하고 혹은 행으로 말미암아 지에 도달한다..
교육과정, 교육방법, 평생교육
1. 교육과정과 교과내용
조선왕조의 교육제도인 성균관.四學.향교.서원 및 서당 등 각급학교의 교육과정은 주로 유교적 경서와 중국의 역사.문화 등이었다. 학교의 정도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 내용이 중국적인 것이라는 점과 모든 서적이 한문서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
율곡의 교육과정을 「학교모범」독서장에서 살펴보면, ꡔ소학ꡕ․ꡔ대학ꡕ․ꡔ근사록ꡕ․ꡔ논어ꡕ․ꡔ맹자ꡕ․ꡔ중용ꡕ의 순서로 나가며, 그 사이에 아래와 같이 ꡔ史記ꡕ와 선현의 성리서를 읽으라고 하고 있다.
글 읽는 순서는 소학을 먼저 배워 근본을 배양하고, 다음에는 대학과 근사록으로써 그 규모를 정하고, 그 다음에는 논어.맹자.중용 등 사서를 읽고, 사서와 선현의 성리서를 간간이 읽어 의취(意趣)를 넓히고 식견을 정밀하게 할 것이다. 非聖의 책은 읽지 말고 무익한 글은 보지 말아야 한다.
율곡의 「학교모범」의 교육과정은 ꡔ소학ꡕ으로부터 출발하여 ꡔ사기ꡕ에 이른다. 그러니 율곡의 교육내용은 경험적.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추상적․형이상학적으로 나아간다. 율곡은 글 읽는 여가에는 때로 거문고 타기, 활쏘기 연습, 투호 등의 놀이도 좋으나, 모두 각자의 법도가 있으니 때가 아니거든 유희하지 말고, 장기.바둑 등 잡희에 눈을 돌려서 실제의 공부에 방해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율곡은 「격몽요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五書와 五經을 돌려가면서 익혀 읽음으로써 事理를 깨달아 마지 아니하면 의리가 나날이 밝아질 것이요, 송대 선현들이 지은 근사록 .가례. 심경. 二程全書. 주자대전. 朱子語類와 같은 서적과 그밖에 성리학설을 틈틈이 정독하여 의리가 항상 내 마음을 적시우고 끊임없이 주입되도록 하며, 여력으로는 역사를 읽어 고금의 역사적 사건의 변천을 통달하여 식견을 기를 것이요, 잠시라도 이단.잡류의 부정한 서적을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율곡은 또 「만언봉사」에서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하께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계실 때는 항상 학문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학문을 함에있어서는 4서와 5경 그리고 선현의 격언, 심경 .근사록 등의 책을 돌려가며 읽어야 하고, 그 책에 나오는 올바른 의미를 깊이 연구하여 성현의 뜻이 아니면 감히 마음에 생각하지도 않고 성현의 글이 아니면 감히 보지도 않아야 합니다.
율곡의 교육과정과 조선왕조 일반의 교육과정 비교
ꠐ일 반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예경 서경 주역 춘추 근사록 사기 주자가례 예기
ꠐ율 곡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예경 서경 주역 근사록.심경.이정전서.주자대전 사기
2. 교육방법
교육방법은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된 교육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이다. 율곡의 교육방법은 그의 교육목적, .교육과정과 연관된다. 그는 입지를 교육방법의 으뜸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篤敬.九容.九思도 중요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입지는 학습에 있어서 준비성(readiness)이요, 동기유발의 발동자다. 敬은 「성학집요」(二) 수검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학문의 시작이요, 또한 학문하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이다. 다시 말해 경은 면학에 있어서 마음을 주재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므로 그는 「학교모범」에서 말하기를, 배우는 자의 덕의 나아감과 공부는 오직 경을 돈독히 하는데 있다고 하고, 경에 돈독하지 못하면 다만 空言을 일삼을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학습자가 학문을 함에 있어서 경을 지니는 것은 궁리의 근본이 된다. 궁리란 바로 理에 다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같이 경은 수양의 방법론적 개념이다. 율곡은 아래와 같이 함양과 성찰은 오직 경에 의거해야 한다고 했다.
경으로써 마음을 지커어 함양이 오래 쌓이면 스스로 마땅히 힘을 얻게 된다. 소위 경으로써 햠양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다만 고요해서 염려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을 밝게 해서 혼미가 조금도 없게 할 뿐이다.
율곡이 설명하는 경은 “마음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主一無適)이라고 한다. 그는 “마음을 모으는 것”(主一)을 경이라 하고, “흩어짐이 없게 하는 것”(無適)을 일러 일이라 한다. 이 말은 마음을 오로지 하여 잡념을 가지지 않는데 있다는 것이니 곧 정신집중을 뜻한다. 여기 ‘一’이라 함은 純一. 專一.유일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우리 말로 고쳐보면 ‘한결같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이 말이 표현하려는 대상은 마음(心)이 靜에 있을 때와 動할 때에 있어서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곡은 主一無適과 궁리를 靜中 공부라 하여 敬의 요체로 삼고 수작만섭(酬酌萬燮, 多邊應待)을 動中공부라 하여 경의 활용으로 보았다. 그러니 동정간(動靜間)에 제자리를 찾는 마음을 지녀야 진정으로 自主을 찾는 마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학습자는 마음을 방만하지 말고, 항상 정신이 집중 통일된 주일무적의 상태를 지녀야 할 것이며, 또한 起居동작을 가벼히 함이 없이 만사에 조심하고 삼가는 整齊嚴肅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는 일부러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심신이 숙연하여지고 표리가 하나로 되는 경지이다. 이같이 율곡에 의하면, 경은 마음 공부와 지.행의 기본적인 자세가 되는 동시에 학문의 시작이요 끝이 되는 것이다.
율곡이 설명하는 경은 퇴계 이황의 것과 전반적으로 견해를 같이 한다. 다만 율곡은 그의 형이상학적 관점이 퇴계와 다르고, 퇴계가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立志와 存誠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역설하는 가운데 경을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율곡의 교육방법은 궁리.居敬.力行을 말하고 있다. 입지는 목표를 설정한다는 말이고, 그 목표에 따라 교육방법으로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고’(궁리), ‘항상 마음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거경), 그리고 ‘힘써 행한다’(역행)하는 것은 절차적 방법인 것이다.
궁리진성(窮理盡性)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타고난 본성을 다해 천리에 이른다는 뜻으로, ꡔ주역ꡕ의 설괘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송대 성리학이 格物致知를 학문의 방법론으로 채택하면서 새롭게 중요한 의의를 부여받게 되었다.
궁리가 분명해야만 궁행할 수 있고, 반드시 實心이 있어야만 반드시 實功이 있다. 그러므로 성실은 궁행의 근본이다.
율곡은 또 “궁리로써 善을 밝힌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궁리인 격물치지가 誠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율곡은 궁리의 필연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배우는 사람은 항상 이런 마음을 갖고 다른 사물이 빈 틈을 타고 침입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라야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가 뚜렷하게 앞에 있는 것 같아서 진보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이치를 궁리해야 하고, 이 이치를 궁리하려면 먼저 독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은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하는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율곡이 말하는 거경 역시 성리학에 있어서의 학문의 수양방법이다. 거경과 궁리는 똑같이 중요한 것이며, 궁리가 능하면 거경에 대한 공부가 날로 나아가며, 거경 공부가 능하면 궁리 공부가 날로 치밀해지는 서로의 관련을 갖는다. 그러기에 인식론적인 의미의 궁리와 실천론적인 뜻의 거경을 합하여 거경궁리라고 한다.
율곡이 궁리를 거경 앞에 놓고 역행을 거경 뒤에 놓은 것은 도덕교육의 절차상의 의미도 크거니와 경공부를 설명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경공부는 지(궁리).행(역행) 공부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경은 학문을 하는 구심적 정신자세이다. 이는 곧 학습자가 盡德修業함에 있어서 학문 이외의 일에 사로잡힘이 없는 일이다.
力行은 자기를 이김으로써 기질의 병통을 치료하는 데 있다. 유약한 사람은 강건하게 고치고, 무능한 사람은 자립하게 고치고, 엄한 사람은 친화하게 하고, 조급한 사람은 여유있게 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맑게 하여 청정하게 하고, 私에 치우치는 사람은 큰 공에 이르게 하여 힘써 스스로 도와 아침.저녁 언제나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역행의 요점이다.
이같이 율곡의 수기의 교육방법으로는 궁리.거경.역행을 강조했다. 이를 종합하여 율곡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궁리는 곧 격물치지이고 거경과 역행은 곧 誠意正心과 수신이다. 이 세가지를 닦아 아울러 나가면 理가 밝아져 닿는 곳마다 거침이 없다. 안이 곧아서 義가 밖에 나타난다. ‘자기를 이겨서’(克己) 본래의 착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니 성의정심의 功效가 몸에 깧이면 얼굴이 화창해지고 몸이 튼튼해지고 집에서 모범이 되어 형제가 족히 본을 받고 나라에 나가서는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워진다.
다음으로 교수기술면에 들어가서는 앞서 교육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ꡔ소학ꡕ에서 차츰차츰 형이상학적 근본문제로 올라가는 ‘下學上達’(귀납방법)의 방법을 취했다. 즉 단순에서 복잡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올라가는 교육방법이었다.
처음 배우는 학동에 대한 교육방법은 ꡔ천자문ꡕ 등을 한 자 한 자씩 가르쳤다. 다음은 單字를 붙여 음독하는 것을 가르치고, 다음에 句讀의 文理를 가르치고, 또 그 다음에 一章의 大義를 가르쳐서, 마지막에는 학습자 스스로 풀이하여 읽도록 했다.
율곡은 그뿐만 아니라, 글을 짓는데도 일부러 만들기에 힘을 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수양에서 얻어진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道에 통하면 저절로 글이 되는 것이지만, 마음이 도에 통하지 못하면 글을 지어도 어색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기에 글짓는 공부보다도 도학공부가 앞서야 한다.
율곡은 도에 들어가는 데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없으며,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독서라고 하고서, 이것은 성현의 마음 쓴 자취와 선악의 본받을 만한 것, 경계할 만한 것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독서와 실천의 변증법적 통합을 강조했다. 이러한 독서관을 가진 율곡은 배우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잘 보존하여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지 않게 하고, 모름지기 이치를 궁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행할 도가 앞에 있어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기에 율곡은 글을 읽어도 ‘의심’이 없는 독서를 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성학집요」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글을 읽어도 의심이 없는 것은 처음 배우는 이의 공통된 병통이다. 대개 평소에 많이 읽기만 했을 뿐 자세하게 연구를 하지 않고 속히 읽어 넘겼으니, 지금 이 일을 깊이 경계하여 일소하고 따로 규모를 갖추어 문자를 보되, 더욱 정밀하고 가장 급한 것을 가려내어 한 책을 보고, 하루의 힘에 따라 한 두 단을 보되 한 단을 깨달으면 비로소 한 단을 나아가고, 한 책을 바꾸어 읽되 먼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르게 한 다음에 숙독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한 자, 한 귀절을 다 여러 어진 이의 주해와 대조하여 일일이 꿰뚫어 이해하고 난 뒤에 그 시비를 비교하여 성현의 뜻을 세운 근본을 구하고,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역시 되풀이 하여 익혀서 그 의리가 살을 베이고 골수에 젖어야만 학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율곡은 강독에 있어서는 학생들에게 먼저 바르게 정좌하는 것을 가르치고, 또 九容으로 몸가짐을 단정하게 한 다음 熟讀을 하도록 했다. 그는 이 숙독에 대해 「격몽요결」과 「학교모범」 두 독서장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무릇 독서를 하되 반드시 책 한 권을 선택하면 숙독하여 뜻을 모두 알아 통달하여 의심이 없게 된 후에 다른 책으로 바꿔 읽을 것이요, 다독에만 힘을 써서 이것저것 바삐 읽어서는 아니된다. 매양 글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얼굴을 정숙하게 가지고 단정히 앉아서 心志를 專一히 하여 한 가지 글이 익숙해진 다음에 비로소 다른 글을 읽을 것이요, 많이 보기만 힘쓰지 말아야 한다.
고 하여 다독보다 精讀을 권장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독서할 때에는 매양 虛心熟讀과 精思體察하기를 가르쳤다.
특히 강독에 있어서는 학습자의 능력에 맞게 범위를 정하여 놓고 하루종일 숙독시켰으며, 그 자신 손수 학생들의 글 읽은 수(讀數)를 세었다. 숙독한 것은 다시 그 다음날 암송시켜 통한 후에 다음의 책을 공부하게 하였다.
그는 또 학생들에게 밤글(夜讀)을 장려했으며, 흔히 밤 열두시가 넘도록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경연일기」(二)를 통하여 매양 학생들에게 “古人이 夜對가 晝講보다 낫다고 한 것은 밤에 群動이 이미 휴식하였으며... 思慮가 精專하므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주위가 시끄러우면 학문연구는 물론 讀書三昧에 이를 수 없다. 그러기에 옛 사람들이 讀書三餘를 겨울.밤.비 올 때라고 한 것이다.
3. 학습하는 사회로서의 평생교육
평생교육.평생학습이라는 말은 ꡔ율곡전서ꡕ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율곡이 전생에를 통해 추구한 聖人自期論과 그 전체 조건으로써 제시한 立志는 오늘날의 교육의식에서 볼 때 생애교육 또는 평생교육의 이념이 된다. 율곡은 이미 학교교육이 교육의 핵심도 표준도 아니라는 인식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생에 결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율곡은 「자경문」.「격몽요결」.「성학집요」(三) 등에서 교육을 ‘종신사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양공부는 늦추지도 말고 급히 하지도 말고 죽은 뒤에 그만 둘 것이다. 敬으로써 근본을 세우며, 궁리로써 善에 밝으며, 力行으로써 實을 행할 수 있으니 이 세가지는 일생 동안의 일이다.
인간이 본연한 기운을 회복한다는 말은 곧 본연지성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즉 천리르 실현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진리의 수행자이다. 진리를 실현하는 능동적 존재로서의 인간파악을 우리는 율곡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일생동안 수행한 평생교육이다.
출처: 네이버지식 <x>ethnos44</x> 2005.04.11 11:45
[출처] 2021년 1월 28일 오후 12시 2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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