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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 이 사내 참 무모하다. 하필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싸움이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인 가장 간결한 결말의 방식. 승리라는 확답을 얻기 위해 그가 찾아 다닌 상대들은 국적과 신분의 구분이 없었으며 싸움 소마저 그의 대련 상대가 되어야 했다. 매번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도전을 감행했던 까닭은 영화 속 상대 가토의 말처럼 ‘싸움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최배달의 업이었을지언정 그는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승자의 이름으로 살아 남았다. 오오야마 마쓰다츠, 그가 떨친 이름은 애석하게도 한국이름 '최영의'가 아니었다.
<바람의 파이터>는 오오야마 마쓰다츠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인 영웅으로 인정받고 있는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최배달은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대중들에게는 그를 소재로 한 방학기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와 영화 <넘버 3>에서 송강호가 극중 대사에서 일컫는 소와 싸운 최영의 선생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그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무도인을 포함한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소와 싸운 사나이, 소년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으로 귀화한 무도인으로 폄하된 최배달은 그렇게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배달의 일화가 전설이 아닌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의 영웅이 되지 못하고 이국 땅, 그네들의 영웅으로 대접 받아왔다.
최배달의 일대기 중 유년기와 청년기에 초점을 맞춘 <바람의 파이터>는 영화 초반 최배달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게 된 경위와 그곳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핍박과 설움, 그 울분을 무도로 승화시키게 되는 계기를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영화의 전반부를 최배달이 무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으로 할애하는 것은 지나친 친절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바로 그가 무도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기 전까지 최배달은 한낱 평범한 조선청년에 지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나라 없는 설움에 휩싸인 ‘이케부쿠로의 오줌싸개'였지만 시대적 배경을 배제하고서라도 그는 자신의 유약함을 강함으로 전복시키고자 했던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였다. 그래서 무모한 힘이 아닌 정의가 선 힘을 얻고자 '도장격파'라는 형식을 통해 강함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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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나 실존인물을 영화화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담이고 어려움이다. 또한 만들어지고 난 후에도 실제와 가공의 잣대에서 끊임없이 평가되고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틱했던 한 사람의 생애를 그린다는 것, 그것도 전설적인 인물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것은 감독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작업이며, 관객에게는 그 대상을 만나고픈 욕망을 보고 싶은 욕구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바람의 파이터> 역시 얼마나 실제에 가까우며, 얼만큼 기대에 부응하는가 하는 다소 복잡한 감상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파이터>는 영화로써 충분히 매력적이다.
영화 속 최배달이 영웅적인가 아니면 보다 인간적인가에 대한 대답은 조금 모호하다. <바람의 파이터>에서 만나는 최배달은 영웅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그를 영화 캐릭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숨을 불어넣은 이가 양동근이다. ‘진짜 목숨을 걸어야만 진정한 파이트’라고 한 최배달의 명제를 따르듯 몸을 사리지 않는 양동근은 그 스스로 진정한 연기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바람의 파이터>는 양동근이라는 배우에 대한 가능성의 재확인인 동시에 한국인 최배달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바로 최배달을 무도로 이끈 미야모토 무사시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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