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는 사람에게 드리는 말씀
한국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거의 다 미신적인 습관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을 번역할 때 잘 못 번역해서 그러한 오해를 초래한 경우도 있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잘 못 해석함으로 시작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기도에 대하여 거의 잘못 가르쳐 왔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도는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 큰 교회 할 것 없이 기도만 시작하면 큰 소리로 주여 삼창하고 모든 성도가 한꺼번에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하면 대부분 무엇을 위하여 기도했는지 아무런 대답도 못할 것입니다. 허구한날 부르짖는 그들의 기도의 내용이란 대부분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욕심과 소원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어쩌다가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상하게 기도하는 것을 지적하면 성경에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를 했던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모든 기도가 항상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고 입술만 움직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함께 교회에 모여서 주여 삼창을 하고 집단으로 부르짖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마구 부르짖어대라고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렇게 허구한 날 부르짖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인격적인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도 자기 자녀들이 허구한 날 입만 열면 고함을 질러대고 부르짖고 탄원하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울고불고 비인격적으로 소리질러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할 아버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면 믿음이 자란다는 기록도 없고 그렇게 소리 지르고 부르짖어야 응답하신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 자체가 믿음이 있어서도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에 굴복하실 분이 아니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감동하실 분도 아닙니다.
성경에 부르짖으라 하신 말씀은 딱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나오는 곳은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23:14)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이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 얄랄 ]의 뜻은 정말 부르짖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 즉 [ 얄랄]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말 부르짖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영어성경에서 이 단어 (얄랄 )은 howl [haul] vi.입니다.
그 의미는 (비탄의 소리로) '울부짖다', 또는(사나운 소리로) '고함을 치다': - 소리지르다(소리지르게 하다), 울부짖다 1)으르렁거리다, 울부짖다, 노호하다
① (개·이리 따위가) 짖다, 멀리서 짖다.
② 바람이 윙윙거리다.
③ 《++》 (사람이) 울부짖다, 악쓰다, 조소하다
┈┈• ~ with laughter 배를 움켜쥐고 웃다.
━vt.
① 《++》 악을 쓰며 말하다《out; ɑwɑy》.
② 《++》 호통쳐서 침묵케 하다《down》
┈┈• ~ down a speaker.
③ 《미국속어》 조롱하다.
━n.
① 짖는 소리; 신음 소리, 아우성 소리, 큰 웃음;
《구어》 몹시 웃기는 것, 농담, 우스운 사람
┈┈• give a ~ of rage 화가 나서 악을 쓰다.
② 〖무선〗 하울링《음향의 이상 귀환(歸還) 따위로 증폭기 속에서 일어나는 잡음》.
③ 불평, 반대.
④ 《미국속어》 조롱, 우롱. [imit.]
성경에서 이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곧 망하게 될 다시스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고 큰 소리 치던 성읍이 무너지고 망하게 되었으니까 슬피 울며 부리짖으라 하신 것입니다.
[ 얄랄 ]이란 단어는 구약성경에 28회 사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한 이방인들과 악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얄랄이란 이 단어는 기도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실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나 민족이나 도시가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게 될 때에 슬피 울며 부르짖으라!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사 13:6, 사 14:31, 사 15:2, 사 15:3, 사 16:7, 사 23:1, 사 23:6, 사 23:14, 사 52:5, 사 65:14, 렘 4:8, 렘 25:34, 렘 47:2, 렘 48:20, 렘 48:31, 렘 48:39, 렘 49:3, 렘 51:8, 겔 21:17, 겔 30:2, 호 7:14, 욜 1:5, 욜 1:11, 욜 1:13, 암 8:3, 미 1:8, 습 1:11, 슥 11:2
두 번째 나오는 곳은 예레미야서에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렘 33:0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오역)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구절에서 부르짖으라고 번역한 단어는 [부르짖으라]가 아니라 [부르라]입니다. 영어 번역에서도 그냥 Call 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를 부를 때 부르면 되는 것이지 도대체 부르짖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라]인데 688 회나 사용되었지만 한 번도 부르짖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르다, 칭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다음 성경 구절들을 다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히브리어 [카라]라는 단어가 부르짖으라가 아니라 [부르라]라고 번역해야 했던 것을 한글 성경번역자들이 오역을 한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카라 ]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기는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아서 33장 3절도 위와 같이 [부르짖으라]가 아니라 [부르라]로 번역을 했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부르짖는다는 말은 [짜아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부르짖다]라는 구약 성경에 236 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그야말로 부르짖다. 절규하다, 간구하다, 소리치다,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말로 부르짖다로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 원어나 헬라어에서는 [소리를 지르다' 소리치다, 외치다, 부르다, 도움을 청하다, 소집되다, 크게 소리지르다, 함께 부르다 등의 말들이었고 히브리어로는 여러 가지 단어였습니다. [짜아크] [예랄라] [솨아크] [루우아] [솨바아] [아나흐] 등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부르짖다라는 말은 [크라조]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에서는 불과 10회가 사용된 말입니다. 본래적 의미로는 <까마귀처럼)'소리지르다', 또는 '외치다',
'크게부르다'('소리치다', '외치다', '탄원하다') <마 9:27>동. to call or cry out;
막 3:11, 막 5:7, 눅 8:28, 눅 9:39, 눅 18:7, 행 7:59, 행 21:34, 롬 8:15, 계 10:3, 계 12:2
귀신들이 부르짖는다는 경우게 사용되었고 죽음을 직면하거나 위급하고 다급할 때 절규하듯이 부르짖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짜아크]나 신약에서 사용된 [크라조]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경우이거나 너무 다급하여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경우에 비명을 지르듯이, 절규하듯이 부르짖는 경우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귀신들이 예수님께 부르짖는 경우 등입니다.
예배 시간에 그렇게 부르짖는다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에 [무슨 일이 있거던 아빠에게 부르짖어라!] [학비가 필요하거던 아빠에게 부르짖어라] [용돈이 필요하거던 아빠아게 부르짖어라] [매일 새벽마다 아빠에게 부르짖어라] [금식하면서 철야하면서 아빠에게 부르짖어라]라고 하는 아버지가 세상이 있겠습니까 ?
항상 부르짖는 절규가 있다면 거기에는 무엇이 잘 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1. 아버지가 자녀들을 돌보지 않아서 그 자녀들이 항상 부르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자녀들이 도무지 공손하지 않아서 자기 아버지께 악을 쓰고 있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관계가 아닐 때 그렇게 부르짖는 소리가 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것은 어쩌면 그 아버지를 욕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들의 신은 어찌하여 그 자녀들을 좀 돌아보지 않고 저렇게 절규하는 것인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허구한날 입만 열면 주여삼창하고 부르지는 이상한 가정을 보면 하나님을 이상한 하나님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노우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