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묵계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 중에서 외국인이 아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번데기, 깻잎, 오징어, 청국장이 그러하지요. 번데기는 그 생김새 때문이고 깻잎은 독특한 향이 익숙하지 않아서이며 오징어와 청국장은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외국 비행기 안에서 마른오징어를 뜯으면 비행기가 회항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맛난 오징어 냄새를 외국인은 사체 썩는 냄새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오래되지 않은 옛날 강릉이나 삼척 앞바다에 가면 밤바다가 오징어 집어등<漁火, 어화>으로 환하게 수놓아지곤 했는데 요즘은 수온의 상승으로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어류로는 문어가 꼽힙니다. 한자로 문어(文魚)로 글월문자를 쓰니까요. 왜냐하면 문어의 머리에는 먹물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놈 먹물께나 먹었구나." 옛 어른들이 지식인을 지칭하던 말이었고 문어의 대가리가 사람의 머리와 많이 닮아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잉크가 귀하던 시절에는 오징어나 문어의 먹물로 글을 썼는데 매끈매끈하니 잘 써졌다고 합니다. 문제는 볼펜도 오래되면 색이 날아가는 것처럼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1년 정도 지나면 글자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것을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표현합니다. 즉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지요.
오징어는 ‘까마귀 잡아먹는 도적’이란 뜻의 ‘오적어(烏賊魚)’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오징어가 바다 위에 먹물을 뿜어 대며 떠 있을 때 까마귀가 잡아먹으려 쪼아대면 재빨리 긴 두 팔로 까마귀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지요.
오징어는 발이 열 개라고 하지만 양쪽으로 길게 달린 것은 발이 아니라 팔로 분류하는 것이 옳습니다.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 힘껏 끌어안는 용도로 사용하니까요.
어찌 되었거나 오징어묵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약속을 비교적 잘 지키지만 윗사람과의 약속이 겹쳤을 때 아랫사람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위치의 고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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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 윗사람과의 약속이 겹쳤을 때 아랫사람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란 말을 썼는데, 이 분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을까요? |
첫댓글 95년 11월에 저를 포함한 5명(장교 2, 부사관 3명)이 영국 노스요크로 잠수정 인수교육 받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총 책임자였는데, 그때 말린 오징어도 한축 가져갔습니다. 이 오징어를 쉬는 시간에 간식으로 먹으니 교관들 중에 오징어에 관심을 보인 분들이 있어 한마리씩 드렸는데, 잘 먹는 교관분(찰리)이 있었고(이분은 한마리 더 달라하여 집에 가져가 가족들에게 맛보여 주겠다고 하셨지요), 다른 분(노엘)은 절대 손도 안대었던 적이있었지요. 그때가 생각납니다. 벌써 29년 전의 일이네요.
외국인들에게 오징어 냄새가 호불호가 심하다고 들었네. 김치도 그랬었다는데, ㅇ;젠 김치를 찾는 외국인도 많아졌다니 격세지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