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개구리
순간이다.
무엇인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순간에 눈 앞에서 급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체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삽을 높이 쳐 든 뒤에 땅으로 내리쳤다.
다시 후려쳤다. 긴 물건의 꼬리가 찍혔는지 주춤하는 듯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또다시 삽을 내리꽂았다.
또르르 말린 긴 물건의 몽뚱이가 반으로 잘라졌다. 연거푸 삽날로 내리찍어서 몸뚱이를 절단냈다. 피가 튕겼다.
섬뜩한 율무기.
거의 1m나 되는 긴 몸뚱이는 피 투성이. 배가 썩 갈라진 내장 틈새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삐져나왔다. 방금 전에 개구리를 통채로 삼킨 독사는 나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내뺀다는 것이 내 눈 앞으로 도망쳤으니 뱀의 저승사자인 나한테 용케도 들켰다.
개구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는 절단된 뱀을 삽으로 떠서 나무 밑에 묻었다. 거름이 되겠지.
재작년에도 뱀을 놓쳤고, 지난해 늦가을에도 뱀을 놓쳐서 늘 불안해 하던 나였다. 내가 놓친 뱀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한 마리라도 잡아죽였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될 듯싶다. 시골에서 살자면 이따끔 살생해야만 한다.
농약 안 치고, 꽃나무 과일나무가 즐비한 텃밭에는 잡초가 우거졌기에 작은 동물이 숨어 살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그래서 풀벌레도 많고, 풀벌레를 잡아먹는 개구리와 두꺼비도 많고,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도 덩달아 많을 수밖에. 온몸 피부가 붉으락 푸르게 색깔을 띈 독사인 율무기가 이따금씩 눈에 띄었다.
뱀은 시력이 아주 약해서 물체를 잘 보지는 못해도 청각과 피부감지력은 아주 발달해서 아주 작은 소리를 듣고,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한다. 흔들리는 소리의 진동에 민감해서 진동하는 생물을 순식간에 공격하게 마련이다. 뱀도 어느 정도껏의 지능이 있어서 사람의 심리를 노리기도 한다. 필살로 도망쳐야 하기에 그들도 다급하면, 공격거리에 들어서는 사람을 공격한다.
내가 밭에서 일할 때마다, 밭으로 들락거릴 때마다 뱀은 발걸음의 진동을 감지하고는 얼른 도망치기를 번번히 했다. 뱀에 비하여 인간의 인지능력을 아주 형편이 없어서 뱀이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기가 참으로 드물다. 그들이 재수없게도 사람의 눈에 띄일 만큼 눈 앞에서 움직일 때에라야 나는 그제서야 뱀을 발견할 수 있다.
뱀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재빨리 때려서 잡아야 할 것인지의 판단은 순식간에 발동하여야 한다.
나흘 전에도 그랬다. 내가 마침 손에 삽을 들었기 망정이지 삽이 없었더라면 뱀을 잡기는 거의 발가능했을 것이다. 뱀을 장화발로 짓이기는 극단적인 선택에도 순간적인 판단이 앞서야 한다. 장화발로 짓이겨도 뱀은 유연한 몸짓으로 용케도 빠져 나간다.
사람이 뱀을 무서워 하듯이 뱀 또한 사람을 무서워 한다. 서로가 다 무서운 존재들이기에 서로를 경계한다. 사실 말이지 나는 뱀을 참으로 무서워 하며, 두려워 한다.
어디에 숨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도록 스르륵 움직임을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뱀을 발견하는 순간은 뱀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재빨리 내뺄 때다. 순간 포착이 늦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뱀을 잡기가 참으로 어렵고, 성공하는 기회가 무척이나 희박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는 나는 뱁을 잡아 죽여야 했다. 그런데 어디 쉬운 일이랴.
시골 생활이 늘 낭만적일까? 나한테는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내 텃밭에는 농약 안 치고, 밭을 기계로 갈지 않기에 작은 짐승과 벌레들이 많게 마련이다. 거기다가 잡초까지 무성하니 이들 작은 동물들이 숨어 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 되었다. 맹독성 동물이 무섭고, 벌레도 많고, 잡초도 지겹도록 무성하다.
수많은 나방이 종류의 애벌레인 쐐기들이 내 피부에 스치면 살갗에는 이들 해충의 솜털이 박혀서 살갗이 금새 따갑고, 부풀어 오르기 일수다.
왕탱이(말벌), 나나니벌 등 맹독성 벌들도 많았다. 들쥐와 두더지도 많이 사니 이들을 잡아 먹는 뱀도 많다. 들쥐와 집쥐, 들고양이도 살고, 산의 고라니도 은근슬쩍 내려와 머물다 가기에 텃밭에는 늘 동물의 배설물이 있게 마련이다. 배설물에서는 작은 벌레들이 꼬물거리고, 쥐벼룩과 같은 전염성 병균이 득실벅실 거리게 마련이다.
시골에서 살자면 불편하고 위험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내 왼손가락 하나에는 붕대를 감았다. 일전 텃밭 가생이에 난 풀을 왜낫으로 베어내는 순간에 내 손가락을 석뚝 베었다. 날카로운 날이 목장갑을 싹뚝 베고는 손가락도 썩 베어냈다. 통증과 함께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급히 울안으로 들어와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붕대로 찬찬히 동여매고...
지금 내 등허리는 앞으로 굽었다.
서울 올라온 지가 며칠 째인데도 나는 허리통증을 앓고 있다. 풀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종합병원 중환자실과 일반병실로 오가면서 어머니를 모신 탓으로 나는 텃밭짓기를 포기했다. 잡초들의 세상이 되었다. 재작년 10월부터 올 봄철까지 밭을 놀렸으니 1년 반이 넘도록 잡초들만이 가뜩 찼다. 이 잡초를 어떻게 처리한다?
우선 풀 깎은 기계인 예초기로 풀을 자른 뒤에 갈퀴질을 했다. 풀 깎고, 갈쿠질을 무려 세 번이나 거듭 한 뒤에라야 관리기(작은 경운기)로 질퍽거리는 땅을 갈았다.
애를 먹이는 토끼풀. 풀 뿌리를 걷어내려면 쇠스랑질을 몇 차례나 해야 했다. 그런데도 토기풀 마디는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토끼풀를 참으로 힘들게 걷어내고, 밭을 간 뒤에 쇠스랑으로 두둑을 새로 형성했더니만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다.
또 허리통증이 도진 이유는 있었다. 이왕에 심은 들꽃 모종에도 물을 뿌려주어야 했다. 함석지붕 처마 밑에 큰 통을 갖다놨더니만 여기에 빗물이 철철 넘쳤다. 이를 다 소비해야 했기에 큰 그릇에 물을 담아내서 밭에다가 뿌려주어야 했다.
왜 빗물통의 물을 다 쏟아내야 했느냐고? 빗물 속에는 작은 벌레가 헤엄치고 있었다. 모기가 몰통 속에 알을 잔뜩 깠으며,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서 크고 있었다. 조만간 모기떼로 변신할 게다. 모기떼도 무서운 존재이니까. 미리 물을 다 쏟아내야 할 절박한 이유였다. 미연에 모기 서식처를 없애야 했다.
물을 쏟아낼 바에야 텃밭의 작물 위에 뿌려주는 것이 더 실속이 있었기에 무척이나 힘이 드는 데도 나는 물을 아껴서 활용했다. 수십 번 물을 밭으로 날랐더니만 물의 무게로 내 허리는 앞으로 더욱 수그러졌다.
시골 텃밭에서 일하려면 나는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
뱀이 무서우니 긴 장화를 신어야 했고, 벌레와 햇볕을 피하려고 팔목이 긴 옷을 입어야 했고, 햇볕에 얼굴이 타지 않도록 화장을 짙게 해야 했고, 머리 위에는 밀집모자를 꼭 써야 했다. 목장갑을 껴야만 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조금만 작업을 하면 땀은 줄줄 흐르게 마련이다. 힘에 부치고, 지치고,..
울 안으로 들어서면 흙투성이의 옷을 벗어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양말을 갈아신어야 했고, 샤워를 해야 했고, 세탁을 수시로 해야 했다. 또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이따금 다치기도 했으니...
지난 주에는 지방의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인 영농교육을 조금 받았다.
귀농 성공 사례 발표가 끝난 뒤 나는 질문하면서도 강사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렇다. 강사는 양송이 재배가 아직은 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양송이를 움막 안에서 재배하려면? 양송이는 식물과 동물 사이의 균이다. 균이 자라나려면 후꾼거리는 온도가 필요하다. 밀폐된 재배사에서 작업을 하려면? 그거 무척이나 힘이 든다. 땀으로 범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례자는 애써 발표하지 않았다. 강도 높은 노동력 투입에 대해서는 그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질문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공만 하는 버섯재배일까? 아닐 게다. '어쩌다가 우연히 성공했군요.'라는 정도로만 나는 질문을 삼가해야 했다.
며칠 전 서울에 올라왔다.
친구가 가꾸는 텃밭, 도시텃밭을 구경하려고 성남 모란시장 도로변을 지나쳤다. 도로변에는 채소모종을 파는 모종장사꾼이 제법 많았다. 나는 토란 한 알이 든 작은 화분을 보았다. 1개 1,000원이라는 팻말에 빙그레 웃었다. 시골 사는 나한테는 토란 모종 값이 무척이나 비쌌다. 내 텃밭 한 구석에는 토란을 재배하지 않으려고 와그르 쏟아버린 퇴비장이 있다. 그 많은 토란 씨앗들이 무더기로 썩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시에는 한 알에 1,000원씩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전업농사꾼이 아니기에 농사를 재미로, 취미로, 적당히 짓는다. 안 되면 할 수 없고, 잘 되면 더욱 좋을 뿐이다. 농사 지어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는 건달 농사꾼, 게으른 농사꾼이다. 어쩌면 한심한 농사꾼이다. 그런데도 나한테는 농사 짓는 작업이 무척이나 힘이 들고 어렵다. 대농이라면 각종 대형 농기계가 있고, 무수한 농연장이 있어서 농사를 보다 수월하게 짓겠지만 나로서는 이런 농기계와 농기구가 전혀 없거나 턱없이 부족했고 보유한다고 해도 극히 보잘 것 없었다.
대형 농기계를 사야 할 만큼의 넓은 땅을 경작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골집 주변의 텃밭에서 내 근력으로 꼬작거리고 있다. 근력에 의존하는 농작업이 나이 들어가는 나한테는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뜻이다.
힘이 드니 농사를 엉터리로 지을 수밖에.
엉터리로 짓는 텃밭이기에 각종 작은 동물이 함께 서식할 터다. 풀이 많으니까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가 있으니 개구리도 많고, 개구리가 많으니 이를 잡아먹는 독사도 많을 게다. 풀꽃이 있으니 왕벌, 땡벌, 나나니와 같은 맹독성 곤충도 많을 터.
나로서는 목이 긴 장화를 늘 신고는 눈을 땅바닥에 내리깔고, 손에는 두툼한 목장갑을 끼고 삽과 같은 연장을 들고었다. 햇볕을 가리는 밀집모자를 눌러 쓴 뒤에 고개를 쳐들어서 나뭇가지를 살펴야 했다. 나뭇가지에는 맹독성 벌들이 집을 짓고 사는 지를 예의주시해야 했다.
동물뿐만 두려운 게 아니다.
식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일전, 두릅나무와 엄나무의 새순을 농기구 연장으로 자르고, 작은 칼로 다듬을 때 날카로운 나뭇가시에 손가락을 찔렸다. 아차 하고 방심하는 사이에 억센 가시에 찔렸다. 가시 하나도 남아 있을 세라 조심스럽게 손질한 뒤에라야 아내에게 넘겼다. 삶아 데칠 때 아내는 가시에 찔리지 않았거나 덜 찔렸을 게다.
잡초 가운데는 날카로운 털가시가 있는 환삼덩쿨, 쇠무릎(우슬), 며느리배꼽 등도 많다. 잎사귀와 줄기를 잘못 건드리면 잔가시에 피부가 굵히게 마련이고, 이 잔가시에는 어느 정도껏의 독성이 있어서 피부가 금세 따갑고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매사에 조심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게 농촌의 일상이다.
일전 농업기술센터에서는 관리기 판매상이 와서 농기계에 관하여 실외 특강교육을 했다.
관리기의 장점을 선전하였다.
특강이 거의 끝날 무렵에 나는 또 얄미운 질문을 했다. 농기계의 장점만 부각시키지 말고 단점도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농기계를 다룰 때 위험이 늘 도사린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난해 관리기(작은 경운기)을 다루면서 그 무거운 기계에 내 발등을 찍혔다. 발등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 그리고 엄지발가락 하나가 금새 퉁퉁 부었다. 다행히도 뼈는 안 다친 모양. 발가락은? 글쎄다. 걷기에는 그다지 통증을 느끼지 않았으니 뼈가 다지치 않았다는 증거. 그러나 발톱 하나는 새까맣게 죽어서 몇 달만에 빠지고 새 발톱이 나왔다. 새 밥톱이 나온 뒤에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하여튼 나한테는 텃밭가꾸기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힘이 든다고 말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살고 싶어' 라는 유행 가사처럼 환상적인 낭만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실토한다.
텃밭 속의 개구리가 늘 행복해 할까? 작은 생명을 잡아먹을 때야 행복하겠지만 개구리 등 뒤에는 또 무서운 동물이 노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텃
밭농사도 양지와 음지가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2015. 5. 20.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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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9. 1. 11. 금요일.
햇볕이 났다. 날씨도 제법 온화하다.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문을 열어서 바깥바람이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베란다 위에는 화분 60여 개가 올려져 있고, 화분 속에는 작은 화목과 화초, 심지어는 마늘, 미나리, 쪽파도 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서해안 산골마을 텃밭에 내려가 있기에 잡글 하나를 여기에 옮겼다.
일기이며, 생활글이다.
첫댓글 온화한 날씨에 서해안 나들이 같이 들렸다 갑니다
편한 날 되세요~()
ㅋㅋㅋ.
서해안 보령지방(무창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인근에 사신다는 것을 김준희 님은 알고 계시는군요.
주민등록 주소지가 시골로 되어 있으니 저는 영락없는 촌사람이지요.
늙은 어머니와 둘이서 살다가 그 어머니 아흔일곱 살 나던 해에 땅에 묻고는 그참 서울로 올라왔지요.
겨울철에는 서울에서만 머물고 해동되는 봄철부터 늦가을까지는 잠깐씩 시골에 내려갔지요.
텃밭을 비워두니까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이 주인행세하대요.
올 봄에는 잠깐이라도 시골 다녀와야겠습니다.
갯바람도 쏘이고...
댓글 고맙습니다.
김준희 님의 가족사의 산문을 기다립니다. 지나간 과거사가 줄줄이 이어질 것 같대요.
우리나라 초기 소설인 것처럼요
농사를 경험하고 힘든점을 잘 묘사해 주셧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위 글에서는 멧돼지 이야기가 빠졌으나 멧돼지가 자꾸만 동네를 휘젖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산밑의 밭에서는 고구마 재배가 거의 힘들다고 합니다. 마을회관이 있는 제 텃밭까지 밭두둑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멧돼지의 소행...
저는 고구마 농사, 옥수수 농사를 포기했지요.
밤꽃 필무렵에 밤나무에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면 밤은? 95%가 밤벌레가 파먹겠지요.
모과는 또 어떨까요?
농약 안 치고 농사 짓는 저는 그먹기보다는 그저 꽃과 열매를 바라보는 구경이나 할려고 농사 짓는가 봅니다.
농사 짓는 일을 잘 표현해 주셨네요.
건강하세요.
곧 봄이 오겠지유.
법도리/ 김일제 님은 건강 많이 회복되었군요.
예.
법도리님한테도 다시 봄날이 와서 더욱 건강해지겠지요.
저도요.
@최윤환 아직 흉골이 붙을려면 몇 달 걸리는데
대신해서 해 줄 사람이 없어 나왔어유.
텃밭농사이니 좀더 쉬운 방법으로 하셔요,
동네 농사짓는 분들한테서 이야기도좀 들으시고요.
올봄부터는 재미있는 농사일 되시길요~~
ㅋㅋㅋ.
사진 속의 농작물이 엄청나게 크고 잘났군요.
세 분 모자가 독특하군요...
옆지기랑 가끔 귀농은 아니고 귀촌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전에는 그러고 싶다고 하더니 지금은 도회자가 좋다고 합니다
저도 귀촌하면 적응못하고 못살것 같습니다
귀농이 아닌 귀촌은 좋은데...
삶을 살찌게 하지요.
귀농은 돈 벌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귀촌은 돈 슬슬 쓰는 재미가 있지요.
작은 화초도 사고, 인근 지방으로 여행다니고,... 자잘한 돈 쓰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푸성귀 등의 채소는 조금 가꿔도 식탁이 풍성해지고, 남한테 나눠주는 재미가 있지요.
귀농이 아닌 귀촌은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영농하시기가 그리 녹녹치 않으셨을겁니다. 지금은 농기계 아니면 영농도 못한답니다.
근력으로 농사 짓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지요.
예컨대 2016년 산소 이장하는데 잔디 심는 일을 하는 남자 임금은 250만 원.
포클레인 한대(엄청나게 큼) 60만 원. 만약에 인부를 사서 산 흙을 판다면? 아마 인부 50 ~60명을 써야겠지요.
농기계 값도 엄청나게 비싸서.. 그거 기계값을 뽑으려면... 점점 힘든 농작물(어촌, 산촌도 포함)이지요. 여기에 해외수입농작물이 범람하고...
조심하세요
너무 많이 자주 다치시는 거 아닌가요
전 어릴때 농사를 짓다가 커서는 농사와 멀어졌지만
그 힘겨웠던 기억은 하나도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이야 다들 취미로 농사를 짓는 분들 많으시지만
당시는 온식구가 거기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죽기 살기로 지었지요 여튼 조심하세요 ..
예.
조심할 게요.
운선작가님. 한 번 뵈었으면요...
힘이 든 세상을 용케도 버텨서 이겨내고, 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더 높은 곳에 올라선 모습이 장하고요.
하나의 예로써 운선 님이 쓴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지요.
슬쩍 퍼다가 옮기고 싶더군요. 짧은 문장을 길게 합치면 훌륭한 산문으로 변신하대요...
댓글 고맙습니다.
조심할 게요... 안 다치게끔...